인터뷰

표지인물 인터뷰_ 안무가 정영두
푸가로, 움직임의 다성적 조화 풀겠다







김채현
새 작품을 10월 9-11일 삼일 동안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리지요. 제목이 <푸가>네요. 개인적으로는 푸가 곡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푸가 음악 그리고 바하 <푸가의 기법(The Art of Fugue; BWV 1080)>을 선택하게 된 배경부터 듣고 싶습니다.
정영두 LG아트센터와 회의를 하면서 클래식 음악으로 작업을 해보자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전에 <제7의 인간>이나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메시지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 메시지입니다. 그것 자체로 느끼는 것도 중요한 메시지라고 느껴서 클래식 음악에 중심을 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푸가 음악은 LG쪽에서 먼저 추천했습니다. 그 전에 <볼레로>나 <두 자매> 했을 때는 다 모리스 라벨 곡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모리스 라벨 곡 한 곡 더 해서 솔로, 듀오, 트리오면 하룻밤 프로그램이 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국내에서 라벨 곡을 갖고 굳이 장르상으로 표현하자면 현대발레 쪽으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조금 다른 방법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여러 곡과 함께 푸가를 소개해 주어서 바하의 <푸가의 기법> 위주로 들어봤는데 참 좋더라고요. 주변에 음악을 공부하는 지인 분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요.
바하가 푸가의 형식을 집대성한 것을 접하면서, 이 분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하게 변주해가면서 본인이 어떤 것을 완성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에 푸가를 공부하면 안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푸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푸가 음악을 의식하면서 듣게 됐군요. 나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에 바하 음악과 푸가를 처음 듣고 매우 깊은 인상을 갖게 되었어요. 바하 음악은 서양음악의 원류라고 많이 그러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전과 전통으로 되돌아가서 현대춤과는 어떻게 접목을 시킬 것인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꼭 봐야 하겠구나 싶었어요.
저는 현대 안무가이긴 하지만 저 스스로는 사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가리진 않습니다. 형상화된 모습이 현대무용으로 나타나긴 하지만요. 전에도 모리스 라벨이라든가 다른 클래식음악으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음악가들과 협업한 경우도 더러 있었지요. 그런데 푸가 음악을 들으면서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 이전에 집대성됐던 것들을 궁리해보면 단순한 컨셉트가 아니라, 실없이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서 조금 더 현대적인 점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무가로서 안무의 탄탄한 형식들을 공부하고, 만들고 싶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좀 긴 시간을 두고 음악을 갖고 안무와 공간의 형식을 도출해내기를 의도하고 있는데, 이번 작업은 저에게 큰 공부입니다.
저와 처음 작업하는 무용수들도 다수여서 제 움직임이 새로운 무용수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달라지고 또 어떻게 표현될지 하는 점도 기대됩니다. 그만큼 걱정되기도 하고요. 익숙한 것,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새로운 색깔과 맛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지 부담도 있습니다.




푸가 음악과 이번 작업의 관련성 이야기를 잠시 뒤로 돌리고, 독자들이 먼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부터 나누지요. 이번 작품에 출연하는 7명의 무용수들이 다채로운데 어떤 기준으로 기용하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좀 풀어주시죠.

두댄스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LG아트센터 상주단체로 있다 보니 아무래도 LG아트센터와 두댄스하면 신선한 느낌이 적을 듯해서 새로운 무용수들과 새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는 LG아트센터와 안산문화재단의 공동제작입니다. LG아트센터 공연 후에 10월 23-24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합니다. 무용수 선정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니까 클래식과 현대를 잘 소화해서 움직임으로 보여줄 수 있고, 대중들에게 인지도도 있는 무용수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김지영, 엄재용, 최수진, 윤전일, 최용승, 하미라, 김지혜 이렇게 7명의 댄서와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발레와 현대무용을 전공한 사람들이죠? 발레를 전공한 사람이 3명 내지 4명은 되잖아요? 발레전공자를 절반 정도 기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요?
클래식에서 많이 접했던 무용수들이 클래식 공연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아닌 그 사람들이 가진 개성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들이 좀 더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거꾸로 현대무용을 한 사람들은 자유스러운 움직임에서 클래식 안에서 좀 더 갖춰진 움직임을 하면서 갖게 될 신선함을 찾고 싶었습니다.

일부 무용수들은 발레 토슈즈를 신나요?
아니요. 전체 여성 출연진들이 다 토슈즈를 신을 수 있다면 신는 것을 고려해봤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발레하는 사람들이 특정 장면에서 신고 나오면 작품 전체 분위기가 엉성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또 저 자신도 안무에서 토슈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토슈즈를 신어보거나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신으면 제 움직임이 많이 한정될 것 같았습니다. 사실 2월부터 처음엔 토슈즈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안무를 점차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김지영씨가 토슈즈를 신는지 여쭤보더라고요. 그때서야 깜짝 놀라서 “생각 안하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했었죠.(웃음) 언젠가 기회 닿으면 토슈즈를 신는 안무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 준비를 언제부터 했죠?
작년 5월에 클래식을 갖고 하기로 결정해서 클래식 음악을 들어오다가 늦가을 쯤 푸가가 결정돼서 음악을 들어왔고, 올 2월부터 매달 <푸가의 기법> 두 세곡 정도 스케치를 하고 그 뒤 매달 일주일 정도는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들어간 때가 8월부터입니다. LG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매일 합니다.

출연진들 중에 직장에 나가는 분도 있을 텐데 어떻게 하나요?
일단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하고 정해 놓고 있습니다. 직장이 있고 개인 작업을 하고 있는 무용수들이 있으니까 앙상블이 제일 걱정이 돼서, 2월부터 저와 작업을 해왔던 하미라, 김지혜씨와 여러 곡들을 갖고 스케치 동작을 준비해두었고요. 발레단에 있는 김지영, 엄재용씨는 보통 6시에 퇴근하시니까 그 후에 연습하고 있습니다.

 



아까 공부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했는데 정영두씨 개인한테도 리서치로서 중요하겠지만 무용수들에게도 그럴 거라고 봅니다. 또 춤계에서 안무자를 지망하는 사람, 그리고 무대에서 충실한 연기를 하고 싶은 무용수들에게도 이번 공연이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합니다. 바하의 <푸가의 기법>이 1시간 20분 정도 되지요? 그 곡의 전체 가운데 발췌해서 원곡 그대로 사용하는가요, 아니면 편집 작업이 있습니까?

원곡 그대로 사용합니다. <푸가의 기법> 중에서 7~8곡, 그리고 바하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곡 중에서 푸가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2~3곡, 푸가의 기법인데 현악 4중주로 나오는 것이 5~6곡, 푸가의 기법인데 피아노 솔로가 2~3곡, 나머지 <소나타와 파르티타>에선 바이올린 솔로인 2~3곡 정도가 엮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곡으로 따지면 푸가의 기법이 70~80%, 악기 배열로 보면 현악4중주가 50~60%, 나머지 30~40%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솔로가 들어갑니다. 음색의 다양함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전체 작품 길이는 어떻게 되나요?
70분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바하의 푸가 하면 큰 성당에서 대형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지요.
네. 그래서 오르간 연주도 들어봤는데 오르간 연주에서는 음색이 겹치고 그러니까 그것이 몸의 정확한 움직임으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제 취향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현악 4중주나 피아노 연주가 주는 영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여러 음색들이 주고받으며 대위해나가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오르간 같은 경우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있는데 정영두 선생의 안무 기질을 보면 담백하다고 해야 할까요. 뭔가 비워내는 그런 점들이 음악이나 음색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네. 일단 무대는 심플하게 가자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런 생각들이 의식적이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장치는 전혀 쓰지 않습니까?
있는데, 정말 심플합니다. 무대 전환이 2~3번 정도 있을 예정입니다. 3~5분 정도 되는 곡이 주를 이루고 8분, 10분 넘어가는 곡들이 2~3곡 있어서 장면 전환이 너무 없으면 지루할 것 같아 심플하지만 몇 차례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센세이셔널한 정도는 아니고 하나의 포맷이 조금씩 변하는 정도일 것 같습니다. 오늘 무대 장치 2차 시안을 받았습니다.

시각적으로 심플하면서 볼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푸가가 다성(多聲)으로서 폴리포닉하게 전개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 성부가 이어져가거나 동시에 전개되잖아요. 그런 음악의 대위법적 구성이 이번 작품 안무에 결정적인 영향 내지는 자극을 줬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번 안무에서 2가지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푸가가 재미있고 어려운 것이 다른 음악장르의 경우 하나의 메인 주제가 있으면 서브가 받쳐주는데 푸가에서는 각자가 독립적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주역이고 서브이고 없이 일테면 소프라노부터 알토, 테너, 베이스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이어지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이 형식을 그대로 안무에 적용할 것인가, 또한 곡이 주는 분위기를 제가 듣고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어떤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음악이 주는 영감, 그리고 푸가가 가진 대위법적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려고 합니다. 푸가라는 곡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이나 공간 활용으로 인해서 음악이나 무용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시각적으로 잘 느껴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의상도 궁금할 겁니다.
의상도 심플하게 가려고 합니다. 제가 구상하는 이미지는 아주 가볍고 경쾌한 쪽은 아닌 것 같고 살짝 갖춰 입은 듯 하지만 너무 품격이 강하거나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또 무용수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어서 무용수들의 몸 라인이나 움직임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로나 듀엣에 따라서 의상에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너무 튀지는 않을 겁니다. 모두가 하나이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헤어스타일도 깔끔하게 다듬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다양성 속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있군요. 다양성이 내장된 푸가 음악에서는 여러 음이 희생당하지 않고 대등하면서도 평등한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춤꾼들에게서도 이런 점이 반영될 듯한데, 어떻습니까?

네. 사실 무용수들에게 처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중요하다, 우린 무용수들이니까 무의식적으로 무대에서 돋보이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망하는 거라고요. 다른 이를 느끼고 뒷받침하려 할 때 오히려 자기가 드러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음악을 움직임으로 풀어내다보니까 무용수들도 쉽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기존의 현대무용에선 강한 에너지를 잘 하는 것처럼 인식하는데 사실 음악에 강약이 있잖아요. 무용수들이 이 느낌을 잘 이해하면 좋은데 에너지가 줄어든 부분에선 본인 스스로 너무 약하지 않나, 못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나 사물놀이에서도 강약이 있듯이 무용수들이 이를 이해하고 잘 표현해 낸다면 한발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립적인 개별들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작업이군요. 이번 작품에 독무도 있을 것이고 군무도 있을텐데 이 부분들을 어떻게 배치할 예정인가요?
솔로나 듀엣만 있으면 자칫 갈라 형식이 되고 통일성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솔로, 듀오, 트리오, 콰르텟, 퀸텟 등 1인무부터 7명이 다 나오는 장면까지 구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기준은 작품 전체 내에서 푸가를 즐기면서 솔로부터 7인무까지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출연진들이 유니송을 이루는 부분은 어느 정도 됩니까?
<푸가의 기법> 가운데 마지막 14번 미완성 곡이 17분쯤 되는데요, 이 부분과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바이올린 솔로부에서 유니송이 더러 첨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발레 전공자와 현대 전공자 구분 없이 조합을 이루는지, 남성, 여성 구분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전공자 구분은 하지 않습니다. 아마 2인무 할 때는 리프팅 장면이 있기 때문에 남자가 드는 구나라고 생각 들겠지만 그 외에는 성을 구분지어 안무하고 있진 않습니다.

이번에, 움직임이 갖는 질감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푸가라는 음악 속에 잘 녹아들어서 사람들에게 품격 있는 묘미를 안겨주었으면 합니다.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공연 보면 ‘대단한 거 봤다’, ‘신선한 거 봤다’ 보다는 꽃바구니를 선물 받은 기분, 잘 대접받은 기분을 들게 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 소개 글에 화합이랄까 조화를 정치인들도 봐서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소망까지 담겨 있던데, 정치인들뿐 아니라 가정불화 등등을 겪고 있는 분들도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웃음) 격 있게 조화하는 느낌을 갖고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무용수들도 다 개성이 강한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무용수들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들이 서로를 위해 조금 더 양보하고 춤춘다면 앙상블도 잘 드러나고 개인의 개성도 드러내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을 예로 들었던 건 파벌과 지역주의가 너무 팽배해 있으니까 그 부분이 좀 해소되었으면 했습니다. 푸가에서도 드러나듯이 각자 개성을 지키는 것이 정말 독립된 개성이 아닌 서로를 도와주는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무용수들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드러났으면 합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해서 어울리되 같지 않은 모습이 <푸가>에서 잘 녹아 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방향을 좀 돌려서 근황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해외 교류를 자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는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해요. 국내 무용인들에게도 참고가 될 점들이 있을 것 같고요. 언제부터 해외체류를 시작했는지요?

2004년도에 무용원을 졸업하면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해 요코하마에서 상 받고 프랑스대사관 장학금을 받고 뚜르 안무센터에서 6개월 동안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2005년도에는 국내 신진예술가 지원을 받아서 프랑스랑 미국을 왕래하면서 6개월 정도 체류했었습니다. 그 후 주로 한국에 있었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씩은 프랑스, 일본, 중국, 미국, 우크라이나, 독일, 벨기에 등지를 갔다 왔습니다.
중국은 최근에 연극작품으로 다녀왔고요. 일본은 많이 갔었습니다. 교토에 핫 섬머 인터내셔널 댄스 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2006년도부터 매년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년에 열흘 정도 강의하고, 그 외에도 거기 무용단 작품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도쿄 아오야마 극장이랑, 후쿠오카에서 레지던시를 2년 정도 했고요.

아오야마 극장은 국내 무용인들도 더러 아는 극장이고, 한일 춤 교류도 진행한 대극장입니다. 그 극장의 기획자가 우리 춤계를 매우 자주 방문하였지요. 이 극장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30년 전에 어린이 시설을 건설하면서, 곁에 문화 시설로 극장을 짓는 게 좋겠다는 동기로 지어진 것이 아오야마 극장입니다. 약 5년 전에 이 극장을 민영화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여론들이 고개를 들고 나서 이제 극장이 폐관되었습니다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극장을 철거하고 쇼핑센터로 바꾼다는 계획은 일단 취소된 것으로 압니다.

근래 몇 해 사이 장기 체류한 외국 춤계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2013년에 도쿄 외곽 사이타마에 있는 릿교대학교 현대심리학부 영상신체학과에 특임 준교수 5년 계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초빙교수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실기 위주의 교수가 없다보니 무용 안무하고 춤추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해서 인연이 닿았습니다. 이제 2년 반 정도 지냈고요. 릿교대학 본부는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습니다.

그럼 얼마정도 거기에 있나요?
학사 일정 동안에는 그곳에 있습니다. 제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수업을 2~3일 하고 한국에 다시 와서 작업하고 가기도 합니다.

 



영상이라면 우리는 영화를 연상하게 되는데, 영상신체학과 구성이 궁금하군요.

먼저 현대심리학부 안에는 영상신체학과와 심리학과가 있습니다. 영상신체학과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비디오아트, 연극, 무용 전공 학생들이 통합적으로 같이 공부합니다. 현대심리학부 입학 정원이 한 학년에 250명 정도 되고, 그 중 영상신체학과 학생들은 반 정도 됩니다.

전임 교수진은 몇 분이나 있는지, 학생들은 어떻게 선발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꽤 많은데, 현대심리학부까지 하면 20명 안팎인 듯합니다. 학생들은 필기와 면접으로 선발합니다.

특임준교수로서 일주일에 2~3일 정도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주로 어떤 강의를 하지요?
1학년부터 대학원생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심리학부가 생긴 배경을 알면 이해가 좀 쉬울 것 같습니다. 현대심리학부가 생긴지 8년 정도 되었는데, 현대 철학, 현대 심리학에서 신체가 많이 연구되잖아요. 단지 이론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알아가면서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들뢰즈 제자였던 우노 쿠니이치라는 분이 만드셨습니다.
쿠니이치 이 분은 야마다 세츠코 같은 무용가들과도 친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춤이나 영상, 연기 전공자들도 철학을 기본적으로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학부라 1학년 학부생 전체가 실기 수업과 이론수업을 거칩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수업은 현대 학문에 신체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강의 그리고 신체적인 경험, 그리고 2학년에게는 기본적 테크닉을 가르치고요. 3학년부터는 조금 갈라집니다. 본격적 안무를 원하는 친구들에게 안무법을 가르치고요. 그리고 4학년들은 본인 작품을 만들 수 있게 좀 더 세분화된 수업을 합니다. 음악분석, 동작분석, 공간분석 등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졸업작품을 만들고요. 그리고 대학원 수업 같은 경우는 전공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아서 몸을 통해 어떻게 사고에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신체가 얼마나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가르칩니다. 몸과 결부된 실습 작업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는 일주일에 4~5개 정도의 강의를 합니다. 하루 3개 연달아 할 때도 있고요.

전임교수 가운데 무용전공자도 있나요?
저 전에 테시가와라 사부로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인프로젝트를 맡아서 올해부터는 전임교수직은 그만 두고 수업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학과의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되나요?
안타까운 건 예술계 취직을 많이 못합니다. 연극 쪽에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한 두 명 있고요, 그나마 영상 쪽은 많이 취직합니다.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아서 그나마 취직을 많이 합니다. 순수예술 쪽에서 연극이나 무용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학과는 하나이지만 3학년쯤에는 영상을 할지, 연극을 할지, 무용을 할지 정해서 수업을 듣습니다.

 



다양하게 배우는 만큼 학생 스스로 주제를 정해서 깊이 있게 학습하는 노력이 필요하겠군요. 릿교대학이 거대한 창의적 실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JCDN(Japan Contemporary Dance Network)과 후쿠오카에서 하는 교환 프로그램에 아티스트로 초청됐었다고 하는데 이 작업도 좀 소개해주시죠.

JCDN과는 2007년부터 “위어 고나 고 댄스”에 참여하면서 같이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일본 각지의 컨템퍼러리 무용가들이 희망하면 각 지역 현지에서 춤을 펼칩니다. 그런 춤들 가운데 몇을 선정해서 도쿄에서 판을 펼치지요. 본부는 교토에 있습니다. 저는 거기 제안으로 가을 등불축제 때 커뮤니티 댄스도 했었습니다.
또 JCDN과 후쿠오카에서 2012-13년, 2013-14년, 두 번 2년간 레지던시를 했습니다. 레지던시를 하면서 부산하고 가까워서 후쿠오카를 부산과 연계해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부산의 한국 무용수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작업도 했었습니다. 한국 무용수와 일본 무용수가 절반씩이었습니다. 큐슈대학교 박물관과 극장에서 공연했습니다. 규슈대학은 인체 및 유골 분야 대학으로 이름이 좀 있고, 또 규슈는 아시아의 중심을 지향한다는 의식도 강하더군요. 규슈가 지리적으로도 도쿄보다 서남쪽의 아시아와 더 가까우니까 그런 발상을 하게 되는가 싶더군요.
JCDN이 일본 국내의 여러 춤 공연을 코디네이터하는데요, 뱃부 온천춤축제, 커뮤니티댄스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후쿠오카에서 커뮤니티 댄스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을 때 JCDN이 저를 추천해서 참여했었습니다.

그럼 등불축제에서 커뮤니티 댄스를 어떤 식으로 진행했던가요?
그때는 매우 재미있었던 게 초등학교 6학년부터 60세 이상까지 오셔서 했습니다. 한 분은 2시간 거리를 매일 기차타고 다니면서 참여하셨습니다. 하카타(후쿠오카 옛 지명)를 중심으로 ‘우리는 왜 서로 다르지 않는가’가 주제였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후쿠오카 사람, 하카타 사람이라 해서 미묘한 지역 내부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카타를 소재로 서로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아 작업했습니다.

좀 전에 한국무용수와 일본무용수가 같이 작업했다고 했는데 그에 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2013년 큐슈 대학에서 공연할 때 한국의 무용수 3명, 고등학생 1명, 그리고 제 무용단원 2명이 참여했습니다. 고등학생을 참여시켰던 것은 어른이 돼서 다른 문화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관념이 너무 앞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좀 일찍 어릴 때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참여시켰었습니다. 제목은 우리말로 <바람>이었고, 부는 바람을 뜻하기도 하고, 원한다는 바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했던 작품이 <까마귀와 까치>입니다. 우리나라는 까치가 많고 일본은 까마귀가 많잖아요. 재미있는 게 일본 사가라는 지역에 까치들이 텃새로 서식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니 조선통신사가 까치를 선물했다는 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일본으로 까치를 데려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지만 같은 부류의 어떤 이미지로 표현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후쿠오카에서는 다른 장르의 분들이 많이 참여했었습니다. 영상작업하시는 분, 그림 그리는 분, 글 쓰시는 분까지 해서 춤공연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해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2013-14년 때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부산LIG 아트홀과 부산문화재단의 도움을 받아서 제가 없더라도 이 프로젝트가 지속될 수 있는 방안으로 진행했었지요. 부산시와 재일동포들과도 많은 대화와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교류 단체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더 굳기 전에 중고등학생들이 나이 들기 전에 만나 춤추고 교류할 수 있도록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부산에서 함께 해줄 만한 파트너나 관심 있는 분들이 있으면 매년 또는 2년에 한 번 씩이라도 진행해갔으면 합니다.

 



JCDN과의 작업은 소개하신 대로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2013-14년에 했던 핀휠(Pinwheel)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했던 작업입니다. 일본의 어느 기획자가 가족이라는 주제로 작업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서 저하고 에스더라고 포사이드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안무가하고, 또 한 남성 무용가하고 쇼케이스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그 남성 무용가가 빠지고 일본의 기타무라 시게미 안무가가 합류해서 가족을 주제로 세 안무가가 솔로로 안무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제인데 동시에 기획자가 그 부분을 의도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주제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 또 다른 사람이 볼 때 예술가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보복’을 주제로 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하면 행복을 떠올리시는데 사실 가족으로부터 받는 상처도 없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겉에서 보면 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기획자들이 왜 보복이냐고 너무 세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받은 첫 번째 사랑도 가족일 테지만 세상에서 처음 받게 되는 상처도 가족일 것이고요... 그리고 저는 춤을 추다보니 할 수 없이 운명처럼 주어진 몸이 가족에게서 얻어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몸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오이디푸스도 그렇고, 자기 아들 잡아먹는 크로노스도 그렇고, 또 로미오와 줄리엣도 서로 다른 가족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과 제 개인이 생각하는 가족을 엮어서 2014년에 아오야마 극장, 교토 아트센터, 비엔나 탄츠 호텔이라는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공연했습니다.

또 안톤 프로젝트에도 참가했더군요. 안톤 베베른 음악을 주제로 한 작업입니까?
네. 샌프란시스코에서 2014년 3월말에 한 공동 프로젝트였습니다. 스탠포드대학에 야렉 카푸스친스키라는 폴란드 출신 작곡가가 있습니다. 그 분과 2010년도에 한국에서 만나 그 뒤로 연락을 가져왔고요. 샌프란시스코 컨템퍼러리 뮤직 앙상블이라는 페스티벌에서 본인이 곡을 위촉받았데요. 안톤 베베른의 피아노 협주곡의 한 부분을 따서 현대 곡으로 구성하고 발표하는데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참여했습니다. 제목은 〈Pointing Twice〉였습니다.
2013년 봄에 그 친구가 한국에 와서 일주일 작업하고, 제가 2013년 여름에 가서 작업했었습니다. 퍽 심플한 곡인데 음색 자체, 음 하나가 주는 즐거움을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느끼는지, 혹시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9명의 연주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춤추는 것이 굉장히 이질적이잖아요. 자칫하면 춤을 위한 연주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제안한 것은 모든 부분을 작곡했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안무를 하는 부분도 작곡을 해줬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되도록이면 다른 연주자들과 지휘자, 무용수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톤 베베른은 2차 대전 종전 직후 미 점령군의 오인 사격으로 숨졌습니다. 그런 비극도 연상하며 작업을 했었습니다. 협력 작업 중에 아주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향후 작업을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릿교대학에서, 차학경이라는 미술가의 저서 <딕테>(받아쓰기)를 토대로 언어와 움직임을 주제로 내년에 작업할 예정입니다.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씨는 부산 출신 미술가로 일제 시대에 연극, 영화, 여성성 등 다양한 분야의 방대한 내용을 담은 <딕테>를 집필했습니다. 다양한 언어와 신체를 경험한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로 요절했는데, 국내 미술 쪽에서는 아방가르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 내년 상반기에 꽃을 주제로 일본 미술가와 협업도 진행할 것입니다.

 



정영두씨의 그간 작업에 대해 대담을 나누는 것은 인터뷰 시간 사정상 다음 기회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궁금해할 사항으로서 정영두씨가 춤에 입문하게 된 동기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 말하자면 춤 입문 과정을 간략히나마 소개해 궁금증을 좀 풀도록 하지요.

사실 춤을 처음 접한 것은 극단에 들어가서인 것 같습니다. 92년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극단 현장에 입단해서 박만호, 남기성 선생님들로부터 탈춤 등을 접했습니다. 제가 처음 익힌 춤 레퍼토리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박만호 선생님께 배운 범부춤입니다. 그 전에는 대동춤, 민중춤이라 할 춤들을 췄었습니다. 그러다 접한 것이 범부춤이었습니다. 그 때가 93년도였습니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극단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용을 하는 외부 사람들에 대해 인식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저도 춤을 추는 건 연극에 도움이 되고 연기에 도움이 되니까 했던 것이지 춤을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갖진 않았습니다. 아무튼 춤을 추는 게 재미있어서 춤추는 선배들한테 많이 묻고 익혔습니다.
그러다 94년도에 조기숙 선생님께서, 발레 전공이셨는데, 민족춤제전에 <잊혀진 어제> 작품으로 참가하시면서 남성무용수가 부족하다보니 저희 극단에 섭외가 들어왔어요. 특히나 발레다 보니 잘 못했죠. 그 때 발레나 현대무용을 접하면서 춤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서정숙 선배가 강습할 때 무료로 뒤에서 배웠어요. 그해 서울(국제)무용제 때 김광자씨의 작품 <바다에 잠긴 돌>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민중춤이 아닌 무대화된 한국무용 창작품을 접하면서 또 다른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춤을 배우러 다니고, 그때만 하더라도 돈이 없다보니까 이중덕 선생님께는 정말 연습실 대여비 정도만 내고 배웠습니다. 자동차 세차 아르바이트 하고 시간이 비면 조기숙 선생님 학원에 오전 수업이 있기 전에 연습실 가서 연습하고 그랬었습니다. 춤추는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매일 연습이나 수련은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95년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97년도에 제대한 5일 만에 이중덕 선배 소개로 안산 한양대 백정희 교수 공연 섭외가 왔어요. 그때 내가 무용이나 연극으로 먹고살 순 없더라도 날 믿어주는 분들이 있으니 할 수 있겠다는 나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래도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잘하는 사람 옆에서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랬죠. 그 뒤로 윤명화 선생님이나 홍신자 선생님 작품 <순례>에도 출연하게 되고, 그 다음에 경기도립무용단 객원으로도 참여하게 되고요. 그리고 제대한 첫 해에 대학로 정보소극장 연극 공연 뒤에 윤동주, 만해 한용운의 시를 대본으로 ‘시가 있는 몸짓’이라는 솔로작 3편을 공연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내가 춤 쪽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현대적인 움직임을 접하게 됐고, 같이 하던 친구들 중에 무용원 다니던 친구들이 있어서 무용원 창작과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지요. 그 영향으로 99년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무용원 때 너무 좋았습니다. 무용원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가졌던 질문들을 졸업 후 씨앗으로 풀어가면서 작업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연극에 대한 향수는 지금도 강합니다.

이제 마지막 화두가 되겠습니다. 그 동안 본인의 생각을 안무로 표현해 왔는데, 춤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춤과 현실 간의 연관성에 비추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일단 춤을 추고 안무하면서 춤과 안무가 더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다른 것을 했으면 이만큼 부지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춤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면 ‘왜 내가 덜 게으를 수 있나’를 생각해보니 몸이더라고요. 끊임없는 수련을 필요로 하는 몸이므로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그래서 내가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게다가 어느 하나에 정통하면, 그것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또 춤에 대해 생각해보면 춤하고 안무는 다르잖아요. 춤보다 안무가 우월하다는 입장은 아니고요. 춤이 개인적이라면 안무는 좀 포괄적인 면이 있어서, 저처럼 멍청한 사람한테는 안무의 형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아지는 순간과 질문으로 남는 순간들도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안무할 때 마다 작업에 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새로운 요소의 변화를 주는 그런 작업들이 흥미롭습니다. 소재가 달라도 같은 형식으로 이어지는 작업이 흔한데, 저는 그 형식에 변화를 주려고 신경을 씁니다. 음악이 주가 됐다가 음악을 빼고 하기도 하고, 구성 공간을 변형시킨다든가, 한국적 움직임을 했다가 전혀 다른 형식으로 접근하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숙제 개념으로 하나씩 변화를 주면서 이어가는 작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도 남는 것들이 있으니까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합니다. 어제도 <푸가의 기법> 악보를 보면서 음악분석을 하고 있는데 형식은 단순한데 음악은 매우 아름다운 겁니다. 이것을 춤으로 만들면 형식은 단순한데,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것인가 고민해야 하지만, 그런 소재를 찾은 것만으로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것이 안무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점점 드는 생각으로, 춤은 역시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크구나 싶습니다. 시각적이라고 해서 단순한 것, 감각적인 것으로만 치부해버리는데요, 느낀다는 것, 평생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접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 가질 수 있는 느낌, 이런 것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일상적이라서 스쳐지나가는 원초적인 경험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그런 것들을 과연 내 몸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물고기의 움직임, 나뭇잎이 바람에 날리는 것이 아름답지만 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언어도 아니고요. 그런데 사회는 언어로 환원되는 것에다 우월한 가치를 부여하는 편이잖아요. 언어가 폭주하고 무용작품도 메시지로 환원되어야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고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해질녘 냇가 물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모습 그런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이 너무 소중한 거에요. 그 어떤 명언보다도 그런 이미지들이 소중하고 그걸 떠올리면 울컥할 때가 있고, 춤이 그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관객들에게 자연에서 맛볼 수 없는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임과 안무와 구성으로 승부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것이 춤의 힘인 것 같아요. 시각적 힘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것 그것이 춤이 가지고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사회와 연관해본다면 세월호도 분단도 정치도 혼란스러운데 내가 지금 푸가를 갖고 한다니 한가한 소리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고 보는데, 역설적으로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감상 활동에서 갖는 감동도 지금 사회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어로 순간 감동시킬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곁에 존재하면서 점진적 변화로 누군가를 설득해낸다는 것, 오히려 이 사회로 하여금 이슈에 대해 자기 성찰 시간을 갖도록 하는 역할에서 춤이 절실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사회의 현시점에서 푸가를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반문(反問)은 다시 남을 것 같습니다.

가슴으로 하는 감성적 수용의 가치를 깨닫고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공동체적인 것 가운데 선택해야 할 때는 많습니다.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고 공존 또는 병존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공존하지 않는다면 선택이라는 말도 성립하지 않겠습니다. 이것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인식만 있다면 향후를 기대해볼 만하겠습니다. 이번 작업도 그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며 강조하는 것이겠지요. <푸가>에서 창의적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며 오늘 긴 인터뷰 감사합니다.

2015.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