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아키타 현지취재_ Odoru. Akita(1) 현장 스케치 & 예술감독 인터뷰
춤추는 아키타, 궁극 목표는 지역문화 활성화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일본의 현대무용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이시이 바쿠(Baku Ishii)와 히지카타 타츠미(Tatsumi Hijikata)의 고향인 아키타에서 올해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 무용축제의 타이틀은 ‘Odoru. Akita’ Intenational Dance Festival 2016 Baku Ishii & Tatsumi Hijikata memorial 이다.
 일본 북서쪽 동해와 접해 있는 아키타(秋田)는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보여 진 아름다운 설경으로 우리나라에 알려 졌다. 인구 30만의 이 작은 도시에 새로운 국제무용축제가 태동한 것이다.
 ‘Odoru. Akita’ (춤추는 아키타)를 표방한 이 새로운 축제는 예술가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고, 아키타가 제대로 된 전문 무용단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무용의 불모지란 점, 그리고 이시이 바쿠의 내한공연을 대한민국 신무용의 기점으로 잡고 있다는 점 때문에 국내 춤계에서도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 전에 이시이 바쿠는 독일에서 당시 유행하던 현대무용을 배워 일본에 소개했고, 히지카타 타츠미는 일본의 현대춤인 부토의 창시자이다. 이 두 아티스트의 이름을 내걸고 출범한 이 축제는 유명 무용가가 태어난 고장을 매개로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의 이미지를 고양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본격적인 축제는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 이어졌지만, 예술감독을 맡은 부토 비평가 야마카와 산타(Santa Yamakawa)는 이미 6월부터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배치해 축제의 분위기를 띄웠다.
 해외 초청단체 첫날 공연(10월 31일, 아키타시문화회관 소극장) 공연은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장식했다. ‘한국의 전통춤에서 현대무용까지'란 타이틀로 이철진이 〈승무〉와 현대적인 재킷 차림의 복장으로 살풀이춤을, 이화석이 두 명의 무용수와 함께 불교적인 소재의 작품 〈다비〉를, 그리고 5명의 무용수들이 남정호 안무의 〈빨래〉를 공연했다.

 

 



 둘째 날(11월 1일, 아카타시문화회관 대극장)에는 안무가 김재덕의 〈다크니스 품바〉가 풀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다이라쿠다칸 부토무용단과 더불어 2개의 단체가 단독공연을 한 셈이었다.
 이틀에 걸친 네 개의 한국 춤 공연 편성은 한국의 전통에서부터 전통을 변형한 현대무용, 그리고 라이브 연주가 곁들여진 다소 파격적인 컨템포러리댄스에 이르기까지 각기 성격을 달리한 춤의 양상을 보여주려는 예술감독의 의지가 다분히 감지된 프로그래밍이었다.
 이에 대해 야마카와 감독은 “한국 현대무용의 기초를 만든 한 사람이 이시이 바쿠의 제자이자 전쟁 전에는 ‘반도의 무희’ 라고 불리어 일본에서도 대스타였던 최승희이기 때문이다”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11월 3일에는 아키타문화회관소극장에서 ‘미국 모던댄스의 원류’란 타이틀 아래 마사 그레이엄무용단의 단원이었던 미키 오리하라의 이사도라를 위한 춤 〈Maenad〉와 〈Nocturne〉(안무 마사 클락), 그리고 오리하라가 안무한 〈Prologue〉 등 세 개의 솔로춤과 RIOULT Dance NY 무용수들이 춤춘 〈City〉와 〈Wine〉 두 개 작품이 함께 공연되었다.
 지역 댄스의 진흥을 위해 마련된 ‘아키타 댄스컬렉션’은 11월 3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아카타시문화화관 대극장에서 펼쳐졌다. 대만에서 온 Lee Tsia Oe 무용단이 특별 순서에 배치되어 공연했고, 아키타를 대표하여 가와무라 이즈미의 신작, 그리고 지역의 댄스교실 공연과 아키타 젊은 댄서들의 무대 등 모두 16개의 작품이 이틀에 걸쳐 공연되었다.

 

 



 전체적으로 매 공연 객석은 거의 가득 찼다. 그리고 모던테이블의 〈다크니스 품바〉는 관객들의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라이브 연주와 7명 댄서들이 만들어 내는 앙상블은 시종 무대을 장악했다. 공연 후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환호했고 야마카와 예술감독은 “아키타에서 열린 무용공연에서 기립박수가 나오는 것은 처음 보았다”라며 흥분했다.
 무용평론가 노리코시 타카오는 “춤추는 아키타 축제는 단순한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아키타 사람들과 역사에 뿌리를 내린 페스티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새로운 축제 출범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해외에서도 예술가의 이름을 딴 예술축제들이 여럿 있지만, 무용가 두 사람의 이름을 동시에 내세운 아키타의 경우 지역적으로 무용예술 기반이 탄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향후 축제 운영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밀려왔다. 그러나 축제 운영에서 무용강좌 등을 편성 시민들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지역 상공인들을 축제의 집행위원장과 운영위원에 선임한 시도, 지역의 아마추어 무용단들과 지역 주민들의 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편성토록 한 시도 등 민과 관이 협력하는 모습 등은 향후 성공적인 축제를 위한 청신호임에 분명하다.

 

 



 축제 기간 중에 부대행사로 마련한 부토 포스터 전시는 무척 흥미로운 기획이었다. 부토의 출범 때부터 있었던 100장이 넘는 포스터가 오롯이 보관되어 있었고 그것을 한군데 모아 전시하는 시도 역시 춤 문화유산의 활용이란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마카와 감독은 12월 2일부터 한국에서 열리는 안무가 페스티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며 “〈춤추는 아키타〉 축제가 앞으로 아시아 젊은 무용인들을 포함한 전 세계 무용인들과 소통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했다.
 지역 출신 아티스트의 이름을 내걸고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엮어낸 지역 경제와 문화 활성화를 위한 행보, 예술감독의 분명한 미션과 치밀한 프로그래밍을 볼 때 이 축제의 미래는 비교적 밝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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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예술감독 야마카와 산타(Santa Yamakawa)

지역주민 축제 운영 참여확대, 시 지원 끌어내

 


 야마카와 산타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2월 후쿠오카프린지댄스페스티벌에서 였다. 이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있었던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때 다시 만났다. 그는 여러 번 내한해 직접 한국 춤 단체들의 공연을 보면서 축제에 초청할 작품을 고르고 있었다.
 1953년 아키타 시에서 출생한 그는 극단을 운영하며 극작가, 연출가, 배우로서 활약하다 부토 평론가가 되었고, 「백조의 호수 전설 ~코마키 마사히데와 발레의 시대~」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장광열
〈춤추는 아키타〉 축제는 실제로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야마카와 “6월 3일 오프닝 리셉션을 시작으로 아키타 현내 각지에서 여러 행사를 치렀다. 워크숍과 댄스강좌, 미타네 쵸(三種町)와 다이센 시(大仙市)에서의 아웃리치 공연 등을 개최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9월 24일에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도쿄예술대학 교수인 히라타 오리자의 아트 매니지먼트 강좌가 아키타 시청에서 개최되었고 이어 10월 22일에는 센보쿠 시(仙北市) 출신의 나오키상 작가, 니시키 마사아키의 댄스 강좌 ‘최승희 방랑의 무희’가 아키타시 문화회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최승희에 대한 강좌가 편성된 것은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내건 축제란 점에서 이 축제의 범위를 가늠하게 해준다.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 모두에서 최승희가 끼친 영향을 결코 작지 않다. 한국의 춤계에서 이 축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것도 이시이 바쿠와 최승의의 관계성에 기인한 면이 없지 않다.
사전 홍보 과정에서 최승희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세심히 조사하여 스릴 있는 전기소설로 엮은 니시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사람의 무용수로서의 최승희가 아닌 일본과 한국 사이의 비극적인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웃나라 한국에서는 지금도 ‘이시이 바쿠와 최승희가 없었다면 현재의 한국 모던댄스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커다란 존재로 전해져 그에 관한 연구서의 출판도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시이 바쿠와 히지카타 타츠미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이들 예술가들에 대한 춤 문화유산을 아카이빙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 제자 등을 프로그램밍 과정에서 연계시키는 작업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키타가 낳은 위대한 무용가인 이시이 바쿠는 현재 일본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시이 바쿠의 인기를 지탱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제자인 최승희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그들이 남긴 춤의 유산들을 축제를 통해 소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연극 배우로 시작해 부토 비평까지 당신의 이력은 다채롭다. 무용과 인연을 맺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는가?

30대 중반쯤에 내가 연극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 두었다. 실은 나의 본업은 연극의 방법론을 사용한 커뮤니케이션 연수의 강사이다. ‘드라마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은 내가 히라타의 감수를 받으며 개발한 것이다. 연극배우로 활동할 당시에는 밖에서 춤을 바라보았었는데 아키타의 춤을 보니 너무 쓸쓸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아키타는 인구 감소율 1위, 고령화 1,위 자살율 1위 지역이란 오명을 갖고 있다. 나는 18세 때부터 도쿄에서 생활했는데 덕분에 많은 공연들을 젊은 시절부터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고향인 아키타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너무나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목격했고, 한참이 지났지만 변화의 조짐이 없는 아키타를 보며 언젠가는 시민들과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열악한 무용 환경 속에서 국제적인 무용축제를 시작하기란 쉬지 않았을 덴테….
히라타는 프랑스 정부의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현역 극작가이자 연출가이고, 〈Odoru. Akita〉가 후원을 받고 있는 사단법인 지역창조(Japan Foundation for Regional Art-Activities)의 이사이다. 또한 효고 현 토요오카 시(兵庫県豊岡市)의 문화정책 담당으로 참여하여 국제 레지던시의 거점인 기노사키 국제 아트센터(城崎国際アートセンター)의 예술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는 등 일본에서는 ‘예술에 의한 지역활성화’의 일인자이다. 히라타와 지역 활성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히라타는 곧잘 ‘지방에서 젊은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거기에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흥미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흥미 있는 일을 만들어 내면 되지 않겠는가. 그게 저와 히라타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했고, 거기에서 발상한 것이 〈Odoru. Akita〉이다.

아키타 축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나?
아키타는 무용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20여개의 발레 학원이 있지만 전문 무용단은 단 한곳도 없다. 그러나 일본 무용계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명의 아티스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축제는 이들의 무용적인 업적을 기리고 이를 통해 다음 세대의 무용가들이 배출되도록 하고 싶다. 〈Odoru. Akita〉는 단순한 ‘댄스의 제전’이 아니다. 댄스는 하나의 발단에 지나지 않으며 궁극적인 목적은 ‘예술에 의한 지역 활성화’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모두 직접 작품을 보고 선택한 것인가?

그렇다. 이시이 바쿠와 히지카타 타츠미의 작업 정신과 인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아티스트와 단체를 선정했다. 초청 무용단으로 참가한 타이완의 Lee Tsia Oe는 올해 93세로 이시이 바쿠의 제자이다. 타이완의 인간문화재로 자신의 컴퍼니를 통해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에서 축제를 하려면 추진하는 사람의 의욕만으로 되지 않는다. 지역 공공기관의 후원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시도들이 있었는가?
아키타 시청을 수백 번 드나들었다. 지역 상인들로 이루어진 상인조합의 4개 단체를 찾아갔고 그곳에 속한 사람들을 축제의 실행위원회에 참여시켰다.

아키타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과는 어떤 연계를 시도했나?
아키타에는 1개의 무용단이 있긴 하지만 전문적이지 않다. 그리고 20여 개 정도의 발레를 가르치는 학원이 전부이다. 지난해에 프리(pre) 페스티벌을 열어 올해 무용 축제를 본격 출범시키기 위한 분위기를 다졌다. 지역 무용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축제가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틀에 걸친 아키타댄스컬렉션과 지역 상인들이 참여하는 미니 푸드 코너를 극장 로비에 마련했다. 공연 전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용 무료 강좌를 수차례 개설했다.

앞으로의 축제 향방은 어떻게 잡고 있는가?
아키타 축제는 3년에 한번 씩 열리게 될 것이다. 재능 있는 젊은 무용가들을 발굴하기 위한 국제경연대회와 이시이 바쿠와 히지카타 타츠미 상을 제정할 것이다. 

2016. 12.
사진제공_‘Odoru. Akita’ Intenational Dance Festival 201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