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춤, 미디어를 만나다: 네 번째 만남
‘이야기’가 있는 춤, 어떻게 만들까
이단비_방송작가, 무용칼럼니스트

방송을 제작하면서 여러 무용수와 안무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길을 걷게 된 데에는 거창한 계기가 아니라 우연히 보게 된 영화나 공연 작품 한 편이 인생을 결정지은 경우가 많았다. 재미있는 건 현재 40~50대 이상이 된 무용수 출신의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백야〉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춤이다. 영화 〈백야〉는 예민한 10대 사춘기 남학생들이 기꺼이 타이즈를 입게 만들었다. 〈지젤〉, 〈플래시 댄스〉, 〈더티댄싱〉에 이어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쉘 위 댄스〉, 〈스텝 업〉이 관객동원에 성공했다.
 이 영화들이 춤바람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춤이 멋있고 아름답게 표현돼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용 자체가 갖는 재미 때문이다. 이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한다. 무용 공연이 멋진 동작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관객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버무려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 〈백야〉 〈빌리 엘리어트〉




관객을 사로잡는 구성의 힘

방송가에서 방송작가는 보통 드라마나 예능 외에 모든 장르는 ‘구성작가’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다큐, 뉴스, 교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집필하는 작가에게 구성작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모든 프로그램에서 구성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 준비되었을 때 그것들을 모범적으로 일렬로 나열하지 않고 가장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조립을 하게 되는 게 그게 바로 구성의 힘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공연과 그 공연이 만들어지는 전후 과정을 방송에 담는다고 해보자. 방송의 시작은 공연 당일의 분위기와 공연 장면으로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디로 갈까? 화면은 공연 장면 중 주요한 장면에서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한 달 전 연습 현장으로 건너뛸 수 있다. 즉, 과거와 현재의 순서가 뒤바뀌는 구성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습 모습에서 본공연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이렇게 구성하는 게 훨씬 몰입감을 높이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동원에 성공하는 영화들 대부분은 이렇게 시간을 건너뛰거나 넘나들고 사건의 순서를 바꾸는 구성의 묘미를 갖고 있다. 몽타주 기법, 교차편집, 플래시백 같은 다양한 편집기법을 통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구성의 흐름을 이끌어낸다. 몽타주 기법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이어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가 상황을 가늠할 수 있게 만들고, 교차편집은 동일한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이상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주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플래시백은 앞선 시간들을 현재 모습 사이에 끼워 넣어 회상 장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뿐 아니라 TV 프로그램에서도 이 방식은 종종 쓰인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흐름을 담는 것이다.
 영화 〈시민 케인〉의 경우를 보자. 거부 찰리 포스터 케인이 ‘로즈버드’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것 하나로 구성의 묘미는 끝났다.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관객은 마지막 장면에 썰매가 등장할 때까지 영화의 여정에 꼼짝없이 사로잡힌다.




영화 〈시민 케인〉(1941)




‘안무’는 무브먼트인가, 이야기인가

 이런 방송과 영화 속에서 구성의 흐름이 안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질문은 과연 ‘안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아이돌이 추는 방송댄스에도 안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자신의 심리를 연극적으로 풀어내는 춤사위에도 안무라는 단어가 쓰인다. 안무는 무브먼트를 맛깔스럽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안무철학이 있겠지만 안무는 단순히 동작을 만드는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무브먼트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이 무브먼트가 어떤 구성을 갖고 전개되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이 모든 개념을 총괄한다고 생각한다.
 방송 프로그램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영상물 안에서 시간의 흐름은 뒤섞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이야기는 분명해야 하고, 그 이야기는 시청자의 시각을 사로잡고 있을만큼 재미있는 구성이어야 한다. 시청자와 매순간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리모컨을 누르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싸움인 것이다. 그 줄다리기에서 성공하기 위해 촬영의 미장센이 더해지고 편집의 힘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영상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안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과 동작, 조명의 힘, 눈길을 끄는 무대세트, 귀를 감싸는 음악, 모든 것은 결국 안무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영화 〈시민 케인〉처럼 관객을 끝까지 사로잡을만한 구성이 안무에서도 필요하다.


춤 안에 이야기를 담는다, 드라마투르기

이런 과정에서 ‘드라마투르기(dramaturgie)’의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투르기와 그 일을 하는 드라마투르그는 연극 쪽에서는 보편적이지만 우리나라 무용에서는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자리 잡은 개념이 아니다. 보통 안무가 스스로가 안무와 연출을 도맡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적은 예산도 이유이겠고, 자기 색깔과 고집이 뚜렷한 안무가들이 굳이 자신의 작품에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둘 지도 모르는 드라마트루그와 손을 잡고 작업을 하는 것도 꺼려질 수 있다. 드라마투르그는 공연의 창작과정에 전부 관여하면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체크해 줄 수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연말 렉처 공연인 〈댄서 하우스〉의 경우도 드라마투르그와 함께 구성을 완성하는 대표작이다.






국립현대무용단 〈댄서하우스〉 Ⓒ국립현대무용단




 그렇다면 안무가가 드라마투르기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을 방송작가의 업무를 보고 발견하게 됐다. 방송 구성작가는 호기심, 잡학다식을 기본 성향으로 갖고 있고, 하는 일이 주어진 재료와 테마를 구성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안무가들이 적용하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첫째는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인문서적을 많이 읽거나 전시회, 다른 공연들, 자신의 바운더리 밖의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좋겠다. 작품에 대한 영감은 이런 경험들 가운데서 얻어지게 되고 그걸 전개해나갈 방식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에는 주요 극장들, 국립단체들마다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좌들을 듣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드라마투르그들이 문학이나 인문학 전공자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강좌와 경험들은 밑바탕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구성과 드라마투르기 하는 방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글을 구성하는 방법을 배우면 된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운영하는 비드라마 부문 교육과정에 한 번 참여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교육내용은 예능이나 교양,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들의 구성, 제작 방법인데 그 과정이 안무에서 스토리텔링을 만드는 방식과 유사하다. 총 21주의 교육과정에 수강료는 80만 원으로 매년 4월과 10월에 신청을 받는다. 주로 방송작가 지망생이 오게 되지만 여기서 대본 작성법을 배우게 되면 이후 기획서 작업, 안무 노트 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홈페이지 http://edu.ktrwa.or.kr/cmm/main/mainPage.do)
 휴먼 다큐를 제작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경우는 주인공이 화려하게 멋있게 나올 때가 아니라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그 사람이 겪었고 이겨냈던 과정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배어나올 때다. 그건 방송 출연자가 자신의 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 내어놓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화려한 결과물보다 더 제작진이나 시청자에게 감동을 주고 그 모습 때문에 출연자에게 반하기도 한다. 안무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쁘게 연출된 동작과 무대는 즐거움을 주지만 감동을 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안무가 자신의 이야기가 솔직하게 드러날 때 그 공연은 관객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무대 위에서 잘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단비

KBS, SBS를 시작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MBC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제작, 집필하고 있다. 발레를 비롯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과 집필에 매진하고 있으며, 발레와 무용 칼럼을 쓰면서 강연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 ​ 

2019. 08.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