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시애틀 현지취재_ 정금형 온더보드 공연 〈유압진동기〉 〈심폐소생술 연습〉
세계여성행진과 맞물려 더 주목받은 페미니즘 작업
장수혜_<춤웹진> 미국통신원

 국제교류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 및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는 다양해지고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북미 지역과의 국제교류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6년에 국가 지원을 받아 북미로 진출을 한 팀은 불과 세 팀이었다. 그 중 한 명인 정금형은 세 군데의 북미기관에서 초청을 받았다.
 행위예술가, 시각예술작가, 무용수 등 장르를 불문하는 예술가 정금형이 1월 25일부터 나흘간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예술기관 온더보드(On the Boards)에서 시애틀 데뷔 공연을 가졌다. 공연 작품은 〈유압진동기(Oil Pressure)〉(2009년)와 〈심폐소생술 연습(CPR Practice)〉(2015년).

 

 



 온더보드는 1978년 북서부지역의 예술가들에 의해 세워진 기관으로 창작과 기획, 제작지원 등을 하고 있는 실험극장이다. 특히 티켓판매율로 극장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예술기관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예산의 60%이상이 지역주민들과 관객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극장이라 북서부지역의 관객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전통적인 형식의 예술보다는 다원적이고 진보적인 실험예술을 선보이며 시즌의 반 이상을 타 지역의 예술작품을 소개하며 국제 및 미국 내 예술가들의 교류에 꾸준히 힘을 쓰고 있다.
 실험극장으로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모델을 이끌어온 온더보드의 예술감독 레인 츠플린스키(Lane Czaplinski)는 4년 전 지인을 통해 정금형을 알게 된 뒤, 해외 국제축제에 참가해 그녀의 공연을 직접 보게 되었고 드디어 올해 2016-2017년 시즌에 정금형을 초청했다.

 

 



 예술감독 레인은 25일 〈심폐소생술연습(CPR Practice)〉 공연을 뒷좌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지역관객들의 흥미로운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마네킹'이라는 오브제로 연출한 그녀의 작품에서 온더보드 블랙박스 극장의 고정 관객석이 모두 가려졌고 마치 패션쇼 런웨이에 온 듯 관객은 무대의 양옆에 놓인 간이의자와 바닥에 깔린 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듯 무대 가장자리에서 숨소리를 내며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심폐소생술 훈련용 마네킹이 신비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정금형이 아주 천천히 등장했고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움직임은 매우 느렸지만 마네킹이 마치 남편이라도 되는 양 쉬지 않고 그녀는 마네킹을 이용해 동작을 이어나갔다. 마치 남녀의 잠자리를 표현하는 듯한 동작에 관객들은 더 의아해 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마네킹의 숨소리가 멈췄고 마침내 그녀는 마치 마네킹을 살려보려고 하는 듯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바삐 심폐소생술 기계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기계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따라 행동하는 정금형의 모습에 관객들은 키득 키득 웃음을 짓기도 했다.
 계속해서 기계들은 '너무 강합니다' '환자를 만지지 마세요' '계속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주세요' 등의 기계음을 냈고 무대 위에 있는 온갖 종류의 심폐소생술기계를 다 쓰고 난 뒤에야 공연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60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정금형이 인사를 했지만 관객들은 그녀가 소품을 모두 정리할 때까지 아무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온더보드의 관객들은 예술감독 레인의 예술적 기획력을 지지하며 시즌 티켓 구매자들이 관객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언제나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로비에서 작품에 대해 토론하곤 한다.
 로비로 나서자, 역시나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작품을 보고 남녀의 불만족스러운 관계를 연관시켰는지 한 여성관객은 매우 열성적으로 작품에서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하는 마네킹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왜 여성이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지 안타까웠다며 혹시 이 작품이 아시아 여성의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되물었다.
 한 관객은 인간의 연결고리가 깨진 현대사회를 비판한 것 같다며 매우 슬펐다고 했다. 정금형이 공연을 마치고 로비에 나오자 한 관객이 다가가 아이디어가 매우 참신하다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묻자, 그녀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그냥 (심폐소생술기계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서 했을 뿐이에요." 문을 나서는 관객들은 이런 드문 기회가 마련되어 참 좋았다며 수군댔고 예술감독은 로비 끝편에 조용히 앉아 이런 반응들을 엿들으며 먼 길을 온 예술가를 챙겨주기 위해 기다렸다.
 성공한 국제교류와 실험공연의 기획현장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예술가 정금형은 시애틀공연을 마치고 캐나다 씨어터센터 및 푸쉬국제공연예술제 등에 초청되어 연계공연을 떠날 예정이다. 온더보드를 약 15년 넘게 이끌어 온 예술감독 레인과의 인터뷰도 유익하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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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온더보드 예술감독 레인 츠플린스키

“정치 사회적 혼란기에 정금형 같은 예술가의 존재는 매우 중요“

 


 



장수혜
이번 정금형의 시애틀 공연에는 〈유압진동기(Oil Pressure)〉와 〈심폐소생술연습(CPR Practice)〉 두 작품이 4일에 걸쳐 소개되었다. 정금형의 작품을 특별히 이번시즌에 기획한 이유가 있었나?
레인 정금형의 작품은 2년 전부터 초청을 계획하고 있었다. 국제예술가를 초청하려면 비자나 예산문제가 조금 복잡한 이유로 미리 기획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번 그녀의 공연이 우연히 세계여성행진(Women’s March) 시기에 맞추어 공연되면서 관객들이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담긴 국제예술가의 작품에 더 큰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게 된 듯하다. 이즈음 같이 정치적, 사회적인 혼란의 시기엔 정금형 같은 예술가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더보드는 관객들이 믿고 보는 기관이기에 정금형이 온더보드를 통해 관객들에게 소개되어 매우 다행이라 생각한다. 해외예술가나 타 지역의 예술가보다 지역예술가의 참여가 매우 강조되는 북서부지역에서, 그리고 미국 지역 내에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제예술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어려운 점은 없나? 왜 계속 국제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어렵다. 일반 관객들은 해외작품을 소개하면 그 작품이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소개되는 투어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금형 같은 예술가는 아무데서나 소개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한번 공연되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온더보드’는 영국 속어로 무대 위의 아티스트 (Artist on the stage)를 뜻한다. 사람들은 ‘극장’을 생각했을 때, ‘창작’, 한가지만을 생각하지만 온더보드는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고, 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좋은 해외작품들이 소개되면 타 지역에 직접 가서 배울 수 없는 이 지역의 아티스트들이 더 넓은 시각을 기를 수 있다. 또 좋은 해외작품은 다른 시각을 가진 타 지역의 관객들 앞에서 재공연을 함으로써 시각을 넓힐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의 문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예술가들과의 교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흑인인권운동, 여성행진, 트럼프의 취임 후 미국의 상황이 더 악화된 듯하다. 또 미국국립예술기금(NEA,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의 예산삭감이 발표되어 국제교류의 자리가 더 좁아진 듯하다. 해외 예술가들이 미국의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어떤 주의를 해야 할까?
요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미국에서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예술인들이 우리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이 항상 사회적인 것만 이야기한다면 지루하지 않겠는가. 이런 시기일수록 예술인들이 관객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가를 위한 예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시기엔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반항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Art can be everything)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세계의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건 한 장르에 대한 기술만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의 트렌드에서 많이 배우고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원예술을 많이 선호하는 듯하다. 정금형을 초청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해외 국제예술축제에 가면 많은 예술가들이 보여주기 위한 공연을 하는 듯하다. 관객은 무대 앞에 앉아있고 예술가는 관객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공연을 하는 형태다. 물론 그런 형태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온더보드에서 소개하는 작품으로 나는 항상 더 쉬운 접근이 가능한 작품을 찾고 있다.
정금형의 작품은 프로시니엄극장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빈 공간이라면 어디에서나 공연이 가능하다. 또 다원예술의 형태를 잘 표현하는 작품으로 시각적인 효과가 길게 남는 작품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문화의 예술가의 작품을 보고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한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 정금형 같은 예술가가 해외에 (특히 아시아에)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은 듯하다. 있더라도 잘 알려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정금형 같은 예술가가 드문 것도 맞지만 훌륭한 예술가가 많이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는 것도 맞다.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우리 예술가들이 이제는 공연의 배급 (distribution)에 더 힘써야 할 때다. 온더보드에서는 온더보드TV(http://www.ontheboards.tv/)라는 온라인 채널을 런칭했다. 온더보드TV는 전 세계에 있는 무용영상 구독자를 대상으로 세계의 다양한 공연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채널이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예술을 보여주는 초기의 공연방법이라면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있다. 물론 라이브로 보는 것만큼의 큰 감동을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마치 좋아하는 음악을 인터넷으로 듣고 직접 라이브콘서트를 가면 더 큰 재미를 느끼듯 공연예술도 이제는 배급분야에 투자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방법으로 디지털 기록(Digital Archiving)을 할 수도 있다. 이번 정금형의 공연은 티브이 상영은 되지 않을 예정이지만 다른 온더보드의 기획공연을 확인할 수 있다. 

2017.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