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파리 현지취재_ 아크람 칸(Akram Khan) 3개의 최신작
이선아_재불 안무가

 안무가 아크람 칸이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최신작 3개를 발표했다.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은 2016년 11월 말부터 본격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현재 극장 문을 닫은 상태다. 보수공사 기간 동안 떼아트르 드 라 빌 사무실은 에스빠스 피에르 가르뎅(Espace Pierre Cardin)으로 옮겨졌다. 2018년 가을 경 다시 문을 열 때까지 앞으로의 공연들은 에스빠스 피에르 가르뎅, 라 빌레트(La Villette), 104(Centquatre), 크리테이(Creteil) 등 여러 극장에서 진행된다.
 2016년 11월 25일은 떼아트르 드 라 빌 시즌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그 첫 공연을 맡은 안무가는 아크람 칸이다. 아크람 칸은 에스빠스 피에르 가르뎅에서의 오프닝 공연으로 자신의 솔로 작품 〈토로(TORO)〉를 발표했다. 그 후 12월에는 신작 〈Until the Lions〉 작품을 라 빌레트 극장에,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작품 〈Chotto Desh〉는 떼아트르 데 자베스(Théâtre des Abbesses) 극장에 올렸다.




 2인무를 솔로 작품으로 새롭게 만들어 공연한 〈토로(TORO)〉

 이 작품은 원래 〈토로바카(TOROBAKA)〉라는 제목으로 안무가 이스라엘 갈반과 아크람 칸의 공동작업으로 제작된 듀엣 작품이었다. 제목 〈토로바카〉에서 토로(TORO)는 '황소'라는 뜻으로 아크람 칸을, 바카(BAKA)는 '젖소'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갈반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아크람 칸은 이 작품을 솔로 버전으로 만들었고, 작품 제목도 〈토로〉로 바꾸어 새롭게 발표했다.
 나는 2014년 12월 떼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서 〈토로바카〉를 봤었기에, 이번 솔로 버전을 보는 것이 더욱 흥미로웠다. 〈토로바카〉는 아크람 칸의 카탁 움직임과 이스라엘 갈반의 플라멩코 움직임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낸 작품이다. 서로의 움직임을 교환하고 그것을 혼합시켜 놓은 조화가 흥미로웠었다. 마치 두 마리 동물이 신경전을 펼치듯 긴장감 넘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유머러스한 장면들로 조화를 이루었으나 안타깝게도 〈토로바카〉는 이제는 투어가 종료된 듯하다.

 



 이번 솔로 작품 〈토로〉에서 아크람 칸은 이전보다 더 민첩하고 빠른 움직임들을 보여주었다. 솔로 작품이지만, 음악인들이 이스라엘 갈반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마치 그룹 작품처럼 느껴졌다. 음악인들은 무대연출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연기도 하고, 춤도 춘다. 아크람 칸 역시 (노래도 아닌 것이, 언어도 아닌) 목소리로 음악인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듀엣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전 작품에도 음악인들의 역할이 비슷하긴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 음악인들의 역할은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철학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아크람 칸의 움직임을 그저 음악과 함께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소름끼치는 몰입력, 〈Until the Lions〉

 2016년 12월 파리 라빌레뜨(La Villette)에서 공연된 작품 〈Until the Lions〉는 아크람 칸의 신작이다. 초연은 같은 해 1월 12일 런던의 라운드하우스(Roundhouse)에서 있었다. 이 작품은 원형 극장의 특성에 맞춰 제작된 듯 무대디자인은 물론 작품 구성 역시 원형의 형태를 많이 살렸다. 무대는 거대한 바오밥 나무의 밑 둥, 나이테다. 나이테의 갈라진 틈 사이로 불빛이 보이고 연기가 올라온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불이 끓고 있는 듯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대연출이 인상적이었다.

 



 〈Until the Lions〉는 2015년 작가 카티카 나이어(KARTHIKA NAïR)에 의해 런던에서 발표된 책의 이름이다. 카티카 나이어는 작품 〈Desh〉를 비롯해 여러 차례 아크람 칸과 작업 중인 작가다. 책 〈Until the Lions〉의 부제 '마하바라타의 메아리((Echoes from the Mahabharata)'에서 볼 수 있듯 이 책은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각색한 소설이다. '마하바라타'는 바라타 왕국의 왕 산타누의 후손인 판다바 형제들과 두료다나 형제간의 전쟁이 주요 줄거리이다. 남성을 전사이자 영웅으로 담은 원작과 달리 작가는 여성을 전사이자 영웅으로 그려냈다. 아크람 칸은 자신의 사이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많은 신화에서, 여성의 캐릭터는 종종 숨겨진 영웅으로, 힘과 상상력 그리고 인내의 인물이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아크람 칸을 포함한3명의 무용수와 4명의 음악인이 출연한다. 아크람 칸과 함께 춤을 춘 두 여성 무용수는 마치 영화배우 같은 존재감으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쳤다. 작품을 보는 내내 O.S.T가 훌륭한 영화 한편을 라이브로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무용수 Ching Ying Chien은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한 역할을, 그리고 Christine Joy Ritter는 동물적인 느낌의 전사 역할을 맡았다. 두 무용수 모두 뛰어난 현대무용 테크닉은 물론 인도전통무용이 느껴지는 움직임 또는 곡예사들이나 가능할 것 같은 기묘한 움직임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용수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지? 작품 제작 과정은 어땠을까?’ 등등. 그것은 무용수들은 눈동자, 얼굴 표정,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온전히 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음악인들의 퍼포먼스까지….
 아크람 칸의 작품에 출연하는 음악인들의 존재감은 늘 음악 그 이상이다. 악기 연주는 물론 노래, 연기 그리고 춤도 춘다. 이들은 무용수들만큼이나 온몸으로 작품 안에 스며들어 있다. 이것이 아크람 칸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작품은 2016년 관람한 많은 공연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과 댄서의 조화 〈Chotto Desh〉
 

 아크람 칸의 작품 〈Desh〉는 2011년 처음 발표됐을 때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15년 10월 런던에서 초연을 가진 작품 〈Chotto Desh〉는, 7세 이상의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제작된 작품이다. 기존 작품〈Desh〉와 비교했을 때 작품 줄거리와 느낌은 그대로다. 의상, 음악, 애니메이션 등 〈Desh〉의 주요 장면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Desh〉에서 아크람 칸이 하얀 종이조각들 사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장면은 생략됐다. 무대세트 면에서 많이 심플해진 느낌이었다.

 

 



 〈Chotto Desh〉는 ‘작은 고향’이라는 뜻으로 아크람 칸의 특별한 문화적 경험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무용수와의 조화가 아름다운 상상력을 전해준다. 얼핏 보면 아크람 칸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에는 아크람 칸을 똑 닮은 젊은 무용수가 그를 대신해 출연한다. 무용수는 어린이들을 고려해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조금 과장되게) 취했다. 공연 뒤 리셉션에서 만난 무용수에게 “정말 즐겁게 춤추는 것 같아 보였어요”라고 말하자 무용수는 “네, 진짜 진짜 즐겁고,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기존단원인지 묻자, 이 작품을 위해 오디션을 봤고 이 작품을 시작으로 컴퍼니 단원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아크람 칸 출연이 아니어서 보러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이 무용수의 춤은 아크람 칸만큼이나 훌륭했다. 아크람 칸 컴퍼니의 사이트를 보면, 이 작품과 〈Until the Lions〉는 벌써 많은 투어가 잡혀 있다. 한국 아이들도 가족과 함께 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아크람 칸은 〈가이던〉지와의 인터뷰에서 2018년부터는 풀타임 퍼포머로는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저는 풀-타임 퍼포머로는 은퇴하려고 합니다. 대신 약간의 카메오로는 출연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매일 아침 스튜디오에 가지 않는다면, 저는 아마도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제게 '당신 왜 그만 안 둬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 왜 그만둬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2017.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