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요코하마 춤현장_ 요코하마댄스콜렉션 & 카나가와예술극장 공연
토탈적 재능, 골다공증 환자의 인생, 그리고 춤
남정호_안무가, 한예종 창작과 교수

 

 요코하마댄스콜렉션- 카와무라 미키코의 〈Inner Mammy〉

 무용가로서 일본에서 부러운 것이 부토(舞滔)였는데 이제는 요코하마댄스콜렉션이 되었다. 이 안무대회는 2004년도에 정영두가 ‘젊은 안무가를 위한 재일 프랑스 대사관상’ 을 수상한 이래 이선아, 김명신, 권영은, 김재덕, 김보라 등의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의 재능을 인정한 바 있다.
 이 대회의 강점은 본 대회에서 수상한 젊은 안무자를 지속적으로 보살핀다는 것이다. 올해는 요코하마댄스콜렉션 EX 2011 Competition2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고 요코하마댄스콜렉션 EX 2015 Competition1에서 심사위원상과 젊은 안무가를 위한 재일 프랑스대사관상을 동시에 수상한 카와무라 미키코에게 4일간의 무대를 제공하여 그녀의 군무와 솔로를 재공연하게 하였다.

 카와무라 미키코(川村 美紀子). 1990년생, 16세부터 무용시작, 일본여자체육대학 무용학 전공 졸업,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창작 시작,〈뱀의 심장(2012)〉유령의 새벽(2015)〉 등을 발표.
 “어딘가의 별에서 떨어진 무용계의 무서운 아이(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라고 Dance New Air 2014에 평론가 이시이 타츠로(石井達郎)에 의하여 소개되었음. 극장뿐만이 아니라 야외나 라이브 이벤트 퍼포먼스를 하고 영상제작, 자작시 낭송, 작곡, 레이스 뜨기 등 표현활동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음. 2013_16년도 세종문화재단 주니어 팰로.

 나는 5년 전 카와무라의 솔로를 보고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느슨한 힙합움직임을 주류로 한 그때 그 솔로는 작지만 대담하고 정교하고 강하였다. 무엇보다도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와 여성의 외설적인 흐느끼는 소리를 동시녹음한 음악은 쉽게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성 안의 성(性)과 성(聖)을 함께 이야기하는 겨우 21세 된 아시아 여자아이. 노골적인 선정성의 세계가 신선한 이유는 그 솔직함과 진정성에 있다.
 몸은 젊은데 생각은 늙어버린 한국의 젊은 안무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 카와무라를 2011년도에 한국무대 SiDance에 적극적으로 추천했었다. 그리고 계속 그녀가 궁금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 평론가들을 만나 그녀의 이름을 대면 다들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특별함을.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Inner Mammy는 카와무라의 2015년도 요코하마 수상작이다. 출연자는 4명의 여자 무용수와 4개의 커다란 플라스틱 인형(일본에서는 큐피쨩이라 부름),
 첫 장면에서 카와무라가 마이크로 절규를 한다.
 어떻게 만들어졌건 어차피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자!
 그리고 나서 40분간 정말로 열심히 나머지 세 명의 여자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춘다. 예쁘게 보이기 위하여 춤추는 차원이 아니다. 비바람과 싸우며 밭을 일구는 농부의 치열함이 있다. 이 무용수들은 뛰어난 기량뿐만 아니라 철두철미한 사무라이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다. 사무라이는 자신을 고용한 주군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이 무용수들은 이 작품에 목숨을 건 전사들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 썰렁한 농담처럼 자동 리모컨에 의하여 조작되는 큐피쨩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함께 간간히 등장하고 때로는 머물다가 퇴장한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타이밍과 공간이 꽤 절묘하게 배치가 된 것을 감지하게 된다. 연출감각이 예사롭지 않다.

 응~
 응?
 나를 진짜로 낳았어?
 그래.
 너야말로 내가 낳은 첫 번째 완성아였어.
 오랫동안 불임 치료하고 나서 두 명 유산한 후 너를 낳았거든.
 뭐라고?
 의사가 오늘 해야 한다는 사령을 내렸어.
 어땠는데?
 사무적이고 때를 맞춘 섹스였어.

 이 민망한 모녀간의 대화가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는 설명서의 내용이다.
 청년실업, 보이지 않는 빈곤 그리고 N포는 한국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배신당한다고 믿는 불신의 함정에서 태어난 히끼고모리(引籠) 나오타쿠(御宅)가 주류를 이루는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래도 어차피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 것이라는 절규를 하다니 발칙한 만큼 대견하면서 가슴이 아프다.

 

 



 카와무라의 가장 큰 강점은 음악성이다. 자신이 만들었다는 헤비메탈적 사운드의 음표 하나 하나를 노련한 지휘자처럼 일일이 몸으로 지휘한다. 이 시끄러운 음악은 천박하지 않다. 작품이 끝나니 공연 내내 나도 그 음악에 취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조금씩 흔들었다는 낭패스러운 유쾌함을 깨닫게 된다.
 5년 전의 투박한 치기가 사라지고 젖살도 빠지고 민첩하고 당당해졌다.
 프로가 되었다!

 “나의 엄마는 자기의 엄마에게서 태어났을 것이고 또 그 엄마는 다시 자기 엄마에게서 그리고 또 그 엄마는~
 나는 이 모든 엄마들이 오랜 세월 동안에 내려 받은 아름다운 세포들의 숫자의 공식을, 나의 삶으로 증명해 보이려 한다.”

 테시가라 사브로도 자신이 음악, 조명, 의상 등을 다 맡아서 하고 근래에 와서는 종전보다 더 춤꾼으로 활약한다. 이런 토탈적 재능을 갖춘 안무가는 흔치 않은 만큼 당분간 일본의 무용계는 카와무라에게 주목할 것 같다.




 카나가와예술극장 - 클레어 커닝험의 〈Give Me a Reason to live〉

 2월은 동경에서 머무르기 좋은 기간이다. 요코하마댄스콜렉션과 TPAM(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 그리고 KAAT(Kanagawa Art Theater)가 모두 이 기간에 열리기 때문이다.
 비 오는 일요일, 무용평론가인 이시이 타츠로씨가 이번 시즌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다는 클레어 커닝험(Claire Cunningham)의 솔로 퍼포먼스를 보기 위하여 요코하마의 카나가와 예술극장을 찾았다.

 “중세 네덜란드의 화가 Hieronymus Bosch의 작품 중에 죄인을 상징하는 거지불구자의 역할에서 영감을 받았다. Give me a reason to Live는 그 역에 대한 감정이입의 개념과 환기에 대한 연구(study)이다. 20세기 중반에 나치 ActionT4에 의하여 안락사 된 장애인 희생자와 최근에 영국에서 일어 난 복지개혁에 의하여 희생된 장애인들을 위한 살아있는 기념비이다. Give me a reason to Live는 신체와 믿음에 대한 시험(test)이다” -안무자의 노트에서

 

 



 텅 빈 무대가 어두워지고 어렴풋한 작업등의 도움으로 한 사람이 무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여 무대 뒤에 세워 진 벽 코너를 마주보고 선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아주 익숙한 몸짓으로 두 팔을 벌려 그 팔에 붙어 있는 목발을 좌우 벽에 부착하여 삼각구도를 만든다. 그 삼각형의 공간에서 목발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바닥에서 좀 떠 있는 뒷모습 특히 다리 그리고 그 말단의 맨발이 왜곡되어 비틀어진 발가락들과 함께 생생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두 발의 좌우 대칭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발들로 제대로 설 것 같지 않다는 감이 잡힌다.
 그러나 불완전하게 뻗은 발가락을 집요하게 꼬물거리는 여러 시도는 벽을 지지하여 버티는 두 거대한 목발과 연결되어 고군분투하는 상체의 강한 힘과 낯설고 묘한 상황을 만들어 관객을 압도시킨다.
 팔이 없어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 화가를 보고 경탄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자세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커닝험은 처음부터 자신의 불완전함을 또 다른 조형감각으로 연출하여 관객을 여태까지 보지 못한 또 다른 신체미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삼각코너에서 일어나는 상·하체의 모순된 힘의 부조화는 한 신체에 존재하는 강함과 약함을 일깨워주면서 그 양면의 거대한 차이에 순수하게 집중하게끔 유도한다.
 이윽고 목발을 거두고 서면 조명이 조금씩 밝아져 황량한 전체무대를 보여주고 커닝험은 목발에 의지하여 보통 장애인처럼 걸어 나온다. 이제야 공연 예술가가 아닌 장애인으로서의 그녀의 정직한 현실을 앞모습을 통하여 실감하게 된다.
 무대 중앙 앞쪽에 도착하여 천천히 주저앉고 목발에 의지하여 일어나려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한다. 필사적이라고 볼 수 있으면서도 무엇보다도 익숙한 도구를 다루는 장인적인 능숙함을 감지하게 될 때쯤 그녀는 갑자기 두 목발을 손에서 떼어내고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선 상태가 된다.

 

 



 어린 아이가 드디어 혼자 서게 되었을 때를 보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위태로우면서도 경이로운 광경을 노출하고 그리고 무심하게 상의를 벗고 또 하의마저 벗는다. 다행히도 더 이상 벗지 말아달라고 말리고 싶은 것을 아는 듯 속옷차림에서 멈춘다.
 옷을 반쯤 벗은 장애인의 몸을 보는 것이 곤혹스러울 터인데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다. 발달된 상체와 허약한 다리의 부조화마저 당연하게 보는 최면에 걸렸다.

그녀는 관객을 훑으며 응시한다.
천천히 자세하게 객석 왼쪽부터 가운데를 거쳐 오른쪽까지 시선을 돌린다. 아마 모든 관객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는 착각을 하게 될 것이다.
공연자인 그녀가 관객-목격자가 되었다.
동물원 원숭이를 보러 가서 그 원숭이에게 관찰 당하는 순간이다.
부끄러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이 장애인의 맑고 당당하고 서늘한 눈초리에 주눅이 든다.
그리고 한 순간 민첩하게 목발을 다시 낚아채고 그대로 뒷걸음질 쳐서 무대 뒤로 가 벽에 그대로 등을 대고 올라탄다.
목발이 없으면 불가능한 자세이다. 목발을 가진 그녀가 부러워진다.
하늘로부터 바하의 칸타타-Christ lag in Todesbanden-가 들린다.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천상에서 들리는 듯한 성스러운 목소리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하고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빼어난 목소리이다.
두 발을 한쪽 목발로 비스듬히 옮긴다.
죄인을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

 이 공연은 영국의회(British council) 기획, 일본문화재단(Japan Foundation)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한 사람의 장애인 공연예술가를 위하여 조명디자인, 음향디자인, 첼로 연주, 의상, 화가 Bosch에 대한 멘토, 스코틀랜드 멘토, 일본 공연을 위한 재제작 감독/재조명, 전체 제작 감독, 조감독 등 거대한 창작구성원(Creative Team)이 힘을 합쳐 움직인 것이 보인다.
 커닝험은 중증의 골다공증환자이다. 그녀의 뼈는 태어난 이래로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또 하나의 신체의 일부분인 목발을 연구하여 의도적으로 그 기능을 왜곡시키면서 창의적 도구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métier), 즉 움직임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스스로를 장애인 무용가라고 거리낌 없이 지칭하는 이 무용가는 의식적으로 전통적인 무용기법을 열등감 없이 거부하면서 자신의 몸을 과시하는 움직임이나 자신보다 더 미적인 것을 시도하는 몸, 반 장애인(non-disabled) 신체를 발전시켰다. 그녀의 춤은 복합적인 예술형식과 범위를 가지고 있고 기존의 대가적 기교를 둘러싼 관습과 연결되고 관계성을 가진 기존의 예술가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목적이다.

 신세타령 하지 않아 좋았다. 무겁지 않은 이 솔로공연은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비 오는 일요일에 2시간 걸려서 극장에 와서 40분 공연 보고 다시 돌아가는데 불평할 수가 없는 것은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보았다는 느낌 때문이다.
 충분하다.
 작년 7월 일본 장애인시설에 26세의 젊은이가 칼을 들고 침입하여 장애인 45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 비인도적인 사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다. 2020년 개최되는 동경올림픽에는 장애인 올림픽의 비중이 여느 해에 비해 더 커질 것 같다. 심중 깊숙하게 숨어 있는 장애인 약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돌려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정상인으로 태어난 책임과 의무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2017.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