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우혜영뮤발레컴퍼니 〈스마일 마스크 신도롬〉
대중성과 실험성으로 풀어낸 현대병
김수영_영남일보 문화부장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20년 가까이 무용을 담당해왔는데, 그동안의 취재과정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는 '무용은 어렵다'였다. 대사 없이 몸동작으로만 내용을 전하다 보니 관객들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무용을 어려운 예술장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아직 무용은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화가 덜 된 듯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무용 장르에서 그래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발레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등 잘 알려진 스토리에 아름다운 발레복을 입은 발레리나들이 섬세하고 우아한 춤사위를 선보이니 무용을 잘 모르는 사람도 대표적인 클래식발레에는 호기심을 표시하며 이들 발레가 열리는 극장으로 가족과 함께 나선다. 특히 여성들, 이들 중에도 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이 잘 알려진 클래식발레를 공연하면 1천석이 넘는 대극장도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로 북적이곤 한다.
 하지만 대구지역 언론기자로서 늘 아쉬웠던 것은 대구지역의 발레단이 펼치는 멋진 발레공연을 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발레의 특성상 민간단체가 발레단을 이끌어가기는 힘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다보니 대구지역에 몇몇 발레단이 있지만 오래 존속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클래식 전막발레를 보여주는 경우는 더더욱 찾기 힘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0년대 중반 대구로 활동의 중심축을 옮겨 10년 넘게 지역에서 꾸준히 발레공연을 보여주고 있는 우혜영뮤발레컴퍼니는 지역 발레계, 나아가 지역무용계에서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발레로 보는 동화'시리즈를 기획해 <늑대와 빨간 두건><신데렐라><호두까기 인형> 등을 선보여 가족단위의 관객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준 것은 물론 창작발레 <논개>를 비롯해 많은 창작발레를 무대에 올려 발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도 나름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월 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에서 펼쳐진 우혜영뮤발레단의 2015년 공연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도 이같은 우혜영뮤발레컴퍼니의 저력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정기공연에서 우혜영 대표는 발레가 가진 대중성과 예술인으로서 추구하는 실험성을 골고루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공연의 타이틀에서 느껴지듯이, 올해 공연의 메인 작품은 모던발레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우 대표는 작품의 소재에서부터 클래식발레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성을 찾고자 했다. 현대의 삭막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가지는 스트레스에 주목하고, 신종 현대병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을 주제로 삼았다.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은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절망감으로 우는 병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수 있는 우울증의 하나이다. 이 신드롬은 과거에는 권위적인 남편이나 시부모와의 마찰로 인해 주부들에게 많이 나타나던 증상이었으나 최근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한다.
 이같은 현대인의 고통을 우혜영뮤발레컴퍼니는 발레의 테크닉을 기본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정형화된 발레동작에서 벗어나 때로는 현대무용의 이미지를 주듯이 파워풀한 동작이 곳곳에 등장해 자칫 어둡고 가라앉을 수 있는 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음악 역시 활기찬 춤사위에 맞게 박력 넘치는 곡들로 구성해 기존 잔잔하고 평화로운 발레음악에 익숙했던 이들에게는 낯설음을 넘어서 신선한 느낌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프롤로그에서 '빈사의 백조' 장면을 넣어 죽어가고 있는 백조를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클래식발레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장 '빛을 찾아 떠나는'에서는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을 겪는 사람들을 현실감있으면서 재미있게 표현했다. 마치 버스 안이나 방 안을 비추듯이 사각 형태로 조명 처리를 한 뒤 그 안에서 각자의 상황을 각기 다른 몸짓으로 풀어내는 군무는 약간은 코믹하면서도 애잔함을 주었다. 고통에 허덕이며 동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만 그것을 모른 채 자신의 삶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었다.
 2장 '그리움, 두려움…사랑'에서는 생(生)과 사(死) 사이에서 겪는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독하면서도 안타까운 그리움 등을 때론 힘찬 몸짓으로, 때로는 아름답고 애절한 춤사위로 표현했다.
 자칫 슬프고 어두울 수 있는 이 작품을 3장이 희망적이고 밝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희망과 또다른 절망 속에서'란 소제목이 붙은 3장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 내 삶을 스스로 긍정적으로 만드는 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필로그에서도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바꾸어나가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가려는 안무자의 강한 의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오랫동안 주역무용수로 활약했던 장오 무용가를 남자 주역무용수로 기용한 것도 이번 작품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또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고 동아무용콩쿨, 대구무용제 등에서 입상해 역량을 인정받았던 우혜영 대표가 장오 무용수와 호흡을 맞춰 작품을 이끌어가면서 전체 작품에 무게감을 준 것도 시선을 끌었다.
 현재 뮤발레컴퍼니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경표, 곽기훈, 조희경 등도 이번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정경표는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씨어터, 곽기훈과 조희경은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스마일 마스크 신드롬>에 앞서 영남대학교 재학생들이 십여분간 꾸민 클래식발레 <돈키호테>는 2006년 영남대 교수로 부임해 대구와 경북지역의 발레인재 양성에 힘을 쏟아온 우 대표의 교수로서의 역량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2015. 11.
사진제공_우혜영뮤발레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