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제네바 현지취재_ 스위스 컨템포러리 댄스 데이
허리를 비틀면서도 보게 되는 현대춤의 난해함
김혜라_춤비평가

 이 곳 제네바에서 공연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연 중간에라도 객석을 나가는 관객들의 모습이다. 평자도 객석을 나가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무언가를 기대하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지루함’과 ‘난해함’이 문법처럼 받아들여지곤 하는 현대예술임을 고려해도 관객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품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는 제네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도시인 제네바는 의외로 컨템포러리 춤 고정관객이 확보되어 있는 듯하다.
 이를 방증하듯 제네바의 대표적인 예술축제인 앙티젤 페스티벌(Festival Antigel)은 올해 ‘스위스 컨템포러리 댄스 데이’란 타이틀로 현대춤에 집중하였다. 주로 제네바와 스위스 전역,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안무가들이 참여하였는데, 특히 마기 마랭(Maguy Marin)의 〈Umwelt〉와 신디 반 애커(Cindy Van Avker)의 〈Elementen Ⅲ-Blazing Wreck〉는 BFM(Bâtiment des Forces Motrices) 대극장 매진 사례로 기대를 모았었다. 개인적으로는 제네바의 터줏대감 격인 질 조벵(Gilles Jobin)의 〈WOMB〉 3D필름과 푸푸와 디모빌리떼(Foofwa D’imobilité)의 〈Histoires Condansées〉가 흥미로웠다.

 



 먼저 마기마랭의 〈Umwelt〉(1월 29일 BFM극장 관람)는 독일어로 한 개인이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이란 의미이다. 2014년 한국에서 상연된 농 단스(Non-Danse)인 〈징슈필Singspiele〉을 본 관객이라면 〈엄웰트Umwelt〉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제스쳐로만 진행되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과 상황을 무작위적으로 배치시켜 놓은 형식적 전개에 신선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서너 명씩 캐논형식으로 쉴 새 없이 댄서들이 등퇴장하기에 솔로 작업이었던 〈징슈필〉보다는 속도감이 있지만, 동일한 구조의 반복은 관객들의 집중력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지구라는 시공간에 사는 평범한 삶의 군상을 표현하려는 주제를 부각시키고자 한 안무가의 의도가 읽힘에도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듯한 굉음, 수직형 거울 같은 세트가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로 댄서들은 등퇴장 한다. 시끄러운 소리, 세찬 바람에도 전혀 개의치 않은 9명의 댄서들은 다양한 의상과 사회적 상황을 보인다. 셔츠, 흰 가운, 작업복을 입은 상황의 묘사. 바로크 풍의 드레스, 하와이언 치마, 부르카(burka)를 입은 이슬람 여인들의 몸짓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들이 나열된다.
 댄서들은 돌아가며 사과를 먹거나 돈을 세거나 볼일을 보는 소소한 일상을 담기도 하고, 나무를 들고 서 있거나 애완동물, 고깃덩어리를 들고 무심하게 이동한다. 남녀의 격정적인 포옹, 수갑을 찬 차가운 뒷모습, 드레스를 움켜쥐고 울거나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변화무쌍한 감정들이 이어진다. 점차적으로 비슷한 듯 다른 상황들이 연출되는데 감정이 사라진 육체, 고깃덩어리, 흙더미 그리고 여자, 아기까지 가차 없이 버려진 쓰레기가 난무한 무대만 남겨진 채 끝이 난다.

 



 객석에서는 개인이 직면한 사회적 환경은 다르지만 일상에서 먹고 싸고 울고 소리치는 행위들의 단면을 통해 기쁨, 슬픔, 분노의 감정 그리고 무언의 정치적 상황까지 유추하게 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댄서들이 거의 객석을 등지고 무대 세트 선상에서 이탈하지 않기에 텅 빈 무대 상수와 객석과의 거리감이 확보되어 관객들에게 만화경 같은 세상을 보는 공간감을 주는 점이다. 공연 진행 사이사이 댄서가 조용히 객석을 ‘응시(凝視)’하는 부분도 이 작품의 키워드로 관객에게 한 템포 숨을 가르고 실제 현실을 ‘주시(主試)’할 공간적 여백을 준 것이 이 작품을 인내하고 본 보답인 것 같다.
 프랑스의 새로운 춤(Nouvelle Danse)을 주도해 온 마기 마랭은 전작들을 통해 미에 대한 관념의 해체, 연극적이며 시각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한 춤 언어의 확장, 현실적 고민들의 주제를 무대에서 관철시키는 개념무용을 지향하는 안무가이다. 초연된 지 13년이 지난 〈엄웰트〉가 오늘의 시점에서는 형식적으로 새롭진 않지만 그녀가 걸어온 안무 행보와 해석적 가치 면에서는 아직도 유의미한 작품이다.

 



 다음으로 컨템포러리 춤 축제 오프닝으로 상연된 신디 반 애커의 〈Blazing Wreck〉(2월1일 BFM 극장 관람)는 제네바의 발레 단체인 그랑 씨어터 단원들과 협업한 작품이다. 작품 제목인 ‘Blazing Wreck’은 항해 중 난파된 배를 상징하는데 무대는 폐쇄된 공간 안에 갇힌 댄서들과 등대불빛을 연상하게 하는 전구가 세 줄로 무대 위에 배치되어 규칙적으로 인 아웃된다.
 안무가는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조난당한 배 그림과 유클리드의 기하학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고, 방파제 같은 거대한 사각 큐브 세트가 주된 의미를 생성한다. 평행한 사각형 모양으로 나열되어 있는 큐브는 점차적으로 분해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에서 댄서들과 일체화 되거나 댄서들의 몸 라인을 통해 외연이 확장된 기하학적 선형을 표현한다. 일레트로닉 사운드 트랙은 거친 폭풍우처럼 격렬하게 몰아치지만 댄서들은 최소한의 이동만 하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일관한다.

 



 신디 반 애커의 작품은 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안무가의 의도가 무대에서 사실과 추상의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는 것인지, 추상적인 선의 조형미를 강조하는 것인지, 테크닉적으로 수려한 발레 댄서들의 역할도 모호했다. 다만 거친 음악과는 상반되는 미니멀한 무대 장치와 긴장이 배제된 포즈에서 생성되는 맹렬함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이미지가 이 작품에서 남는 인상이다.

 



 다음으로 소개할 푸푸와 디모빌리떼의 〈Histoires Condansées〉(2월 2일 Centre des art 관람)는 렉쳐(lecture) 형식으로 춤사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작품을 풀어낸다. 조명이 설치된 천장위에서 안무가는 자신이 사용할 의상과 소품들을 무대 아래로 떨어트리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작품을 보라는 그의 권유가 일반적인 극장 매너와 달라 흥미를 유발시킨다. 슈트르가르 발레단과 머스 커닝험 무용단에서 활동했고 1998년 뉴욕에서 자신의 무용단(Neopost Foofwa company)을 만들어 활동했던 전적이 있는 중년의 안무가이자 댄서는 처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시작하게 된 춤, 본인이 참가했던 발레 콩쿠르를 회상하며 춤 입문과정을 추억한다.

 



 이어 20세기 이전 춤의 목적과 특징들을 설명한 뒤 적극적으로 현대 춤의 획을 그은 안무가들을 언급한다. 먼저 로이퓰러의 <스커트 춤>, 마리 뷔그만의 <마녀의 춤>, 이사도라 덩컨의 자연 모방의 춤을 영민하게 포착해서 보인다. 그는 바슬라브 니진스키가 <목신의 오후>에서 춘 획기적인 춤동작도 재현하며 몸짓과 표정으로 재미를 더한다. 그는 발레 뤼스가 파리 초연 당시 ‘외설과 혁신’이라는 상반되는 관객들의 반응을 재현해 보자고 하며 1912년 파리 샤틀레 극장으로 관객을 유도한다. 계속되는 루돌프 라반(Rudolf Laban)의 ‘라바노테이션’, 마사 그래험(Martha Graham)의 ‘수축과 이완’, 머스 커닝험(Merce Cunningham), 조지 발란신의 순수형식적인 특징까지 선보인다. 이어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의 극적묘사, ‘탄츠씨어터’ 등장의 아이콘인 운동화를 신고 무대 비상구를 열어 무대를 해체한다. 이본느 레이너와 트리샤 브라운 같은 포스트 모던댄서들의 즉흥적인 접근 방식까지 설명하며 시간이 부족하다고 댄서는 넋두리 하며 작품을 마무리 한다.

 



 125년이 지나온 현대춤사의 주요 맥락을 맛깔나게 캐리커쳐 해내는 그의 순발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으나 무용사를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책 한권의 분량을 이해하기엔 다소 길고 벅찬 시간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다역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그의 열정, 재치, 내공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렉쳐 방식은 최근 보게 되는 컨템포러리 춤경향으로 개인의 역량이 주된 관건임을 확인한 무대였다.

 



 질 조벵의 〈WOMB〉는 필름작품으로 영화관에서 4D 안경을 착용하고 관람하였다. 세 명의 댄서는 컬러풀한 색감의 프레임 밖으로 반복적으로 기어 나오며 4D에 적절한 원근법적 깊이감을 유도한다. 필름은 댄서의 큰 발과 병치되는 작은 레고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을 클로즈업 시킨다거나, 댄서들의 서로 다른 시선을 담아내 일체감을 주지 않거나 그리고 순식간에 맥락 없이 높은 어딘가에서 아래를 내다보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카메라 앵글의 시선으로 공간과 댄서의 몸까지 자유자재로 확장, 축소하며 화면을 연결하기에 무대 현장과는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최근 방영되었던 드라마 ‘도깨비’에서 문을 열면 상상했던 공간이 눈앞에 나타나듯이 비현실적 이질성과 동화적 상상력이 적당히 조합된 작업이다.

 



 질 조벵은 전작 〈Quantum〉(2013)나 〈FORÇA FORTE〉(2015)에서 유럽 원자핵 공동연구소 (CERN; European Council for Nuclear Research)와 협업한다거나 양자 물리학과 춤을 결합해 보려는 시도를 해왔었다. 생경한 분야와 융합시켜 보려는 그의 발상이 부족한 작품의 내용을 보완시켰다. 이번 신작 또한 필름이란 미디어로 자신의 상상력을 실천해 보는 그의 시도가 충분히 컨테포러리 한 현장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된다.
 ‘스위스 컨템포러리 댄스 데이’에 기대를 모았던 마기 마랭과 신디 반 에커의 공연중간에 객석을 나가는 사람이 유독 많았지만 허리를 뒤틀며 본 작품을 반추(反芻)해보면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기존의 작품과 조금만 달라도 기뻐하는 관대함을 갖춘 관객들의 인내심을 저버리는 작품이 많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7. 03.
사진제공_www.antigel.ch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