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표지인물 인터뷰_ 안무가 김재덕
외국 무용단 통해 세계 춤 시장 진출

한국의 안무가가 외국 컴퍼니의 상주안무가로 활동하면서 만든 신작이 꾸준히 국제 춤 시장에 유통되고, 중남미 여러 나라로부터 연이어 신작 안무를 의뢰받고, 컨템포러리 댄스의 강국 프랑스의 워크숍에서 독창적인 메소드로 호평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주인공이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란 점에서 더욱 주목하게 된다. 양질의 국제교류를 보여주고 있는, 2015년과 2016년을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안무가 김재덕을 만났다. (필자 주)







장광열
올해 요코하마댄스콜렉션에는 두 개의 Asian Selection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싱가포르가 선정되었습니다. 싱가포르 T.H.E Dance Company의 공연작품 자료에 김재덕이란 이름이 있더군요. 2월에 요코하마에서 공연되는 것이니 안무가 김재덕의 2016년 공연은 일본에서 시작되는 것인가요?
김재덕 그런 셈입니다. 〈Organized Chaos〉는 T.H.E Dance Company의 예술감독인 퀵 쉬분과 공동으로 만든 한 시간 길이의 작품입니다.

T.H.E Dance Company는 싱가포르에서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무용단입니다. 일본 중국 한국 홍콩 등 아시아 전역에서 매년 공연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고, 각종 축제와 마켓 등에 진출, 적극적으로 해외 춤 시장을 개척하고 있더군요. 아시아 춤 시장에 유통되는 작품들 대부분이 이 단체의 상임안무가인 김재덕의 작품이란 점도 의외였습니다. 안무가로서 김재덕의 능력이 인정을 받은 것이란 점에 특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외국의 어떤 컴퍼니와 작업을 했는지 그 작업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2015년 1월에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무용단(Coampañía Nacional de Danza Contemporánea)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업한 작품은 45분 길이의 〈Tensíon Espacial〉로 3월에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후 브라질 Virtual Companhia De Dança 무용단에서 〈TEMPO SINGULAR〉을 안무하고 4월에 초연했어요. 9월에는 T.H.E Dance Company의 상임안무가 자격으로 공간특정형(site-specific) 공연인 〈IMPURSE〉를 새로 만들었고 이 작품은 10월에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기획하는 싱가포르댄스페스티벌에서 초연했습니다.

 



2015년의 경우 아르헨티나, 브라질, 싱가포르, 한국까지 합하면 4개국에서 작업이 이루어진 셈이네요. 아르헨티나에서 안무했던 〈Tensíon Espacial〉은 어떤 작품인가요?

‘공간적 장력’이란 뜻의 이 작품은 라반 움직임 분석(Laban Movement Analysis, LMA)을 공부할 때 영감을 받아 만들게 되었어요. 인간을 중심으로 몸과 감성, 특히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힘을 깊이 관찰한 작품이에요. 이를 낯설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힘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더 광범위하게 제 색깔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공간적 장력’이라고 타이틀을 정했죠. 이 작품을 통해 춤과 객석을 보며 춤췄던 방식이 바뀌었어요.

연이어 외국의 무용수들과 작업하면서 안무 메소드라고 할까? 자신의 기존 안무 스타일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요즘은 ‘한국적인’ 움직임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범위를 넓혀 안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악작업 역시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일본의 고토, 한국의 꽹과리와 장구 등을 이용해서 좀 더 컨템포러리 한 음악을 만드는데 재미를 들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어르거나 꽃이 피어나는 손짓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요즘은 극히 자연스럽고 릴랙스 한 움직임으로서 팔꿈치나 어깨가 계속해서 둥그러질 수 있는 동작을 주로 사용하고 있어요. 아르헨티나에서는 더더욱 극히 자연적이고 자연스러운 동양적 색채의 동작을 만들려고 했었습니다.

수년전부터 중남미 국가들의 무용예술, 특히 컨템포러리 댄스가 수면 위로 적극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남미 권역의 공연 마켓은 물론이고 네트워킹의 속도도 몰라보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안무가가 중남미 국가들과 춤 작업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무용단과 작업하게 되었나요?
2014년 10월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했었어요. 그때 아르헨티나 무용관계자들께서 제 작품을 보았고, 아르헨티나에 있는 중남미한국문화원 이종률 원장님께서 초청 안무가로 저를 무용단에 제안해 주셨습니다. 무용단에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어 한 달 동안 머무르며 새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중남미한국문화원은 남미에 처음 생긴 한국문화원이죠. 한국의 예술을 중남미 문화권에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Tensíon Espacial〉이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로 남겨졌는데, 안무료는 제대로 받았는지요?
(웃음) 네. 무용단 측에서 안무료를 지급해주었고, 다음 아르헨티나 국립현대무용단의 작업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곧 사후 지원에 대해서도 제안을 했습니다.

안무료 외에도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은 셈이군요. 이제는 우리나라 안에서의 유통에만 머물러 있던 국내 무용계의 시선을 세계의 무용시장으로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외국의 전문 무용단체가 한국의 안무가를 초청했을 때 그 계약 조건은 국내 무용계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향후 국내 안무가들이 해외 진출 시 모델이 될 수 있지요. 함께 작업한 외국 무용단이 안무가 김재덕의 작품을 재공연할 경우 저작권의 문제는 어떻게 계약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르헨티나는 특별히 없었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재공연의 저작권을 무용단이 갖는 것으로 명시했었습니다.

처음 제작비를 지불한 곳에서 저작권을 갖는 것은 맞지만 그 기간은 명시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공립 예술단체의 경우 3년 동안은 단체에서 공연 권리를 갖고, 이후 재공연 시 에는 안무가 및 프로덕션 관계자에게 허락을 받고 소정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공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해외 안무가를 초청해 작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지난해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도 안무가 존 크랑코 재단과의 계약에서 공연 기한을 강수진 예술감독의 임기 동안으로 한정했어요. 작품은 저작물이자 중요한 상품이 되기 때문에 잘 관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작품은 세계 시장에서 유통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재공연을 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요. 브라질 무용단과의 작업이 이어졌는데요. 아르헨티나에서의 작업이 계기가 되었나요?
브라질과의 작업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아르헨티나에서의 작업이 계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브라질의 Virtual Companhia De Dança 무용단은 마르셀로 예술감독이 이끄는 민간 무용단입니다. 제가 안무 및 작곡한 작품이 무용단 투어를 통해 여러 차례 공연되고 있어요.

 



싱가포르댄스페스티벌에서 초연한 〈IMPURSE〉는 김재덕씨가 지난달 <춤웹진>에 기고했듯이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 극장에서 이뤄진 장소특정형 공연인데요. 싱가포르의 관객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람했는지 궁금합니다.

현지 프로듀서가 에스플러네이드의 공간 8곳을 소개해주었는데 그 중 네 군데를 선택하고 공연순서를 정했습니다. 중요한 건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브릿지였어요. 일단 장소별로 안무를 했으나 그 장소로 관객을 어색하게 끌어들일 수는 없었던 거죠.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단원 중 한명이 공연 전에 안내를 하는 것이었어요. 무용수가 움직임을 마치고 사이렌 불빛을 들고 서있으면 안내자를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는 지침이었죠. 장소특정 공연에서 찾은 저만의 방법이었어요. 사이렌 불빛을 가지고 서있으면 관객은 안내자를 찾았고,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지하 2층까지 내려와 다른 장면을 관람할 수 있었어요.

뉴욕의 퍼포먼스 <델라구아다(De La Guarda)>가 떠오릅니다. 그 작품도 관객들이 어디를 봐야하나 두리번거릴 때 공중에서 시작해버리죠. 〈IMPURSE〉도 마찬가지로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만들어 관객에게 새로운 관람체험을 준 것 같네요. 회당 관객은 몇 명이었나요?
30명으로 제한했었어요. 그래서 횟수가 12회로 늘어났죠. 360명의 관객이 찾아주신 셈이 되네요.

 



싱가포르의 T.H.E Dance Company와 공동작업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공연했습니다. 김재덕 안무가에게는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기회가 되었고, 무용단의 입장에서는 김재덕의 객원 안무 작업이 한국 진출을 비롯한 해외 춤 시장 진출을 이루는 상생작용의 모범적인 케이스로 보이는데요. 컴퍼니와는 어떻게 해서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T.H.E Dance Company를 이끌고 있는 퀵 쉬분은 저에게 무용의 아버지이자 형제와도 같은 존재예요. 퀵 쉬분을 만나게 되는 과정은 2008년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다크니스 품바>로 참가했는데, 수상하지 못할 뻔 한 제게 지금은 작고하신 타카야 세이지 아오야마 극장장께서 심사위원상을 만들어 제게 상을 주셨어요. 이를 계기로 2009년에 일본 아오야마 극장 Dance Triennale Tokyo에 초청받게 되었죠. 도쿄에서 공연할 당시 무토 다이스케 평론가께서 인도네시아 댄스페스티벌에 초청해 주셨고요. 그렇게 이어진 인도네시아 공연에서 저의 <다크니스 품바>가 오프닝을, 퀵 쉬분의 T.H.E Dance Company가 폐막작을 맡았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쉬분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본 저의 작품을 인상 깊게 보고 컴퍼니의 안무를 의뢰하는 내용이었죠. 그것을 인연으로 2010년 초청안무가로서 〈Bohemian Parody〉를 창작했어요. 그 다음해에는 레지던시 안무가로, 이후에는 상임 안무가로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컴퍼니와 인연을 굳게 다지게 되었고요. 〈RE:OK...BUT!〉(2011), 〈Hey Men!〉(2012), 〈Present〉(2013), 〈MR. Sign〉(2013), 〈Organised Chaos〉(2014)를 차례로 만들었습니다. 퀵 쉬분은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준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뛰어난 안무가의 재능을 간파한 컴퍼니의 예술감독이 안무가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얻은 창작 산물을 레퍼토리로 삼아 컴퍼니를 성장시키는 좋은 사례를 퀵 쉬분을 통해 보게 되네요. 그 자신이 나초 두아토가 이끈 컴퍼니에서 무용수로 활동을 했고 이를 통해 얻은 경험도 컴퍼니를 운영하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2015년에는 국내 어디에서 공연을 했나요?
제가 만든 작품들은 국내외에서 활발히 공연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Organised Chaos〉 가운데 제가 안무한 장면을 발췌해서 6월에 열린 부산국제무용제에서 선보였고, 8월에는 뉴댄스아시아국제축제(2015 New Dance for Asia International Festival) 무대에 공동안무작 〈Present〉를 올렸어요.

2016년에는 어떤 작업이 기다리고 있나요? 향후 일정이 궁금합니다.
우선 말씀드린 대로 2월 10일에 T.H.E Dance Company 공동안무작 〈Organised Chaos〉를 일본 요코하마 댄스컬렉션에서 공연합니다. 11월에 다시 새로운 작품을 위해 싱가포르를 찾을 예정이고요. 4월에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활동하는 비디오댄스 제작자와 작업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의 피앙세이자 안무가인 김보라씨와 동행합니다.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의 소개로 작업을 제안 받았는데, 어플을 이용한 흥미로운 비디오댄스 작업이라 기대가 큽니다.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로의 지아데마(Diadema) 시립무용단, 살바도르에서 활동하는 카스트로 아베라스 발레시어터의 35주년 기념공연에 안무제의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밖에 모던테이블의 <다크니스 품바> 투어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김재덕 안무가가 이끄는 모던테이블의 공연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퀵 쉬분이 컴퍼니를 운영하는 방식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국내 민간무용단에서도 레퍼토리 공연이 가능한 앙상블컴퍼니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지난해부터 모던테이블은 단원 출근제로 변경해 모던테이블 김재덕 프로젝트라는 명칭 대신 모던테이블 댄스컴퍼니로 운영되고 있어요. 차근차근 체계를 다져나가며 앙상블컴퍼니로의 도약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단원들은 일주일에 네 번 출근해서 11시부터 5시까지 연습하고 있고, 제가 없을 때에는 어시스턴트 안무가나 해당 공연작품과 가장 근접한 단원이 컴퍼니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무실과 연습실을 마련해서 프로듀서와 매니저도 업무를 보고 있고요. 단원들의 급여는 무용가로서 만족도와 경제적 만족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범위에서 지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모던테이블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요?
〈다크니스 품바〉를 브라질 상파울루와 쿠리치바, 호주 시드니, 중국 칭다오에서 공연했고, 한국에서는 한국공연예술센터 주최의 ‘공원은 공연중’에서 선보였습니다. 대전 코미디아츠 페스티벌에서 업그레이드 버전의 〈NEW 다크니스 품바〉를 공연했고요.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기획공연에서 〈속도〉, PADAF 대극장 공연에서 〈시나위 산조〉를 올렸어요. 그밖에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Earthquake〉 〈팝니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가을프로그램 ‘춤추는 가을’에서 〈Stay〉 등을 공연했습니다.

지난해 안무가 김재덕은 국내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해외 체류 기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해외 체류 기간이 더 길지 않았나요?
(웃음)사실 한국에 있을 때가 더 많았는데 주변인들에게는 외국 활동이 더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아르헨티나, 싱가포르, 브라질에서 안무와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각각 3주에서 한 달씩 체류했었고, 잠깐씩이지만 홍콩과 베이징도 다녀왔어요. 한국에서 계속 공연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귀국하자마자 레퍼토리 찾고, 공연이 끝나면 다시 출국하고 또다시 돌아오고... 출국과 귀국을 반복했던 한해였어요.

 



아시아권에 속하는 한국과 싱가포르, 중남미권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네 개 나라에서 안무작업을 하면서 느낀 힘든 점이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민족적 성향도 다르고 컴퍼니의 규모, 무용수들의 트레이닝 수준 등 차이가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곳은 아르헨티나였어요. 중남미 무용수들은 손목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상체 중에 특히 팔사용이 유연하지 않았어요. 반면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에서 모인 다국적 무용단이라 그런지 움직임이 훨씬 자연스러웠어요. 손가락 움직임처럼 디테일한 동작에서도 우리나라 무용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였죠. 아르헨티나 무용수들은 어깨에서 팔꿈치, 손목, 손가락까지 움직임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알려야만 했어요. 그런 경험이 서양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저의 움직임 메소드를 연구하고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지난해 프랑스 국립무용센터에서 진행한 국제 안무플랫폼 ‘CAMPING’에서 저의 트레이닝 코스가 개설되었는데, 그때 아주 재밌게 유럽 각지에서 모인 무용인들에게 제 메소드를 소개할 수 있었어요.

‘CAMPING’은 프랑스 국립무용센터(예술감독 마틸드 모니에)가 2015년 6월에 론칭한 국제안무플랫폼으로 시작 전부터 춤 국제교류의 새로운 유형으로 주목받았었죠. 당시 한국 아티스트로는 특별히 이선아와 김재덕, 두 분의 워크샵이 열렸는데 진행과정이나 현장 반응은 어땠는지요?
더플레이스, 탄츠하우스 등 유럽에서 활동하는 프로 무용가나 전공생들이 주로 수강했어요. ‘신체 타격 역이용’, ‘공기 타격 역이용’이라는 저만의 테크닉 메소드로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앞의 것은 신체를 타격했을 때 두뇌를 사용해 역이용시키는 방법, 후자는 내 몸의 바깥쪽을 우주라고 상정하고 우주상태의 공기에 내가 힘을 가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여 이를 역이용시키는 방법이에요. 처음에는 당연히 유럽에서 인지도가 높은 더플레이스 안무가들에게 수강생이 몰렸어요. 민망하게도 제 클래스에는 첫날 3명이 전부였죠. 둘째 날은 2명, 아예 다른 친구들이 살펴보자는 식으로 들어온 거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셋째 날에 열 몇 명으로 늘어났고, 마지막 넷째 날에는 30여 명이 제 클래스를 수강해 주었어요. 입소문을 타고 많은 친구들이 와준 것이었는데, 성취감과 동시에 황홀함마저 들었죠. 현지에서 ‘amazing(!)’하다는 반응도 있었구요.

 



의미있는 성과네요. 내로라는 전문 무용수와 유망한 안무가들이 참가한 행사란 점을 감안하면 '김재덕'이란 이름을 각인시킨 기회가 되었네요. 다른 안무가와 다르게 김재덕씨의 경우는 작품에 사용할 음악을 직접 작곡하잖아요. 음악에 특별한 재능과 감각을 갖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가 전직 쿵푸 사범이자 기타 선생님이셨고, 어머니는 결혼 전에 블랙가스펠을 하셨었어요.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도 어렸을 때부터 밴드활동도 하고 어머니 권유로 작곡도 하게 되었죠. 그러다 무용의 길로 들어섰는데, 작곡할 수 있으니 안무에 맞춰 음악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무와 작곡을 동시에 진행할 때 하나에 집중할 수 없어 소홀해지거나, 반대로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떤 쪽인가요?
일단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점이 장점이에요. 동작에 맞는 음악을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바로 작업할 수 있어요. 안무와 음악이 통일된 컨셉트로 맞춰지기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컨셉트가 도무지 잡히지 않을 때에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더디고 힘들어요.

춤비평가로서 안무가로서 김재덕의 독창성, 다른 안무가와의 차별성을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 <다크니스 품바> 였습니다. 이 작품이 가진 강점이나 약점에 대해 자평한다면요?
강점은 스케일이겠죠. 라이브 음악을 비롯해 다양한 음악이 나옵니다. 춤의 속도가 빠른 점, 동양문화인 젓가락을 활용하고 있는 점도 강점이 될 수 있구요. 그리고 저는 요즘 '결여'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데 품바가 가진 없음(無)의 상태랄지 한의 정서가 무용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드러낼 수 있게끔 하기 때문에 이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크니스 품바>의 약점이라면 예술적 완성도 면에서 결코 내세울 수 없는 작품이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대중성을 겨냥해 만든 작품이지만 예술성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오히려 작품의 상품성을 부각시키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여 다양한 버전의 콘텐츠로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흰색의 한국식 정장을 깨끗하게 입고, 아쟁이나 거문고 하나로 구성된 음악을 사용하여 <다크니스 품바>의 차분한 버전도 만들어 올리고 싶어요.

안무한 작품 가운데 특별히 애착을 갖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2013년에 싱가포르에서 T.H.E Dance Company와 네 번째로 공동안무 했던 70분 길이의 〈MR. Sign〉을 들 수 있어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철학의 테두리에서 풀어보려 한 작품이에요. 한창 비트겐슈타인의 분석철학을 공부면서 논리적이거나 윤리적, 합리적 의사소통에 빠져있을 때였어요. 저에게는 개연성을 둔 마지막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안무가로서 성장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부모님이요. 작곡을 권유해주셨고 노래 방법에서부터 안무 테크닉, 세상을 보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일깨워주고 가르쳐 주셨어요. 특히 심미적, 미학적인 감각은 저희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시각을 갖추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부모님의 영향으로 음악에 더 근접해 있었을 텐데,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춤을 추면서 밴드도 하고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저도 모르게 춤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렸구요. 집에 무용한 사람이 있진 않았지만 아버지가 쿵푸 유단자이셔서 그런지 움직임에 열려있는 분위기이기도 했어요. 부모님께서 움직임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인지 아들이 무용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라봐주셨던 것 같아요. 제 남동생도 무용을 전공했고요.

안무가로서 영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무용작품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긴 하지만 안무가 가운데 직접적으로 영감 받은 분을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어요. 아티스트로 확장시켜 본다면 음악가 고 신해철을 들고 싶어요. 그의 음악이 한국적이고 동양적이라는 생각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왔어요. 그리고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필립 플레인(Philipp Plein)에게 감성적 영감을 받곤 합니다.

 



이즈음 유럽에서는 움직임을 조합하는 예술가로서 안무가라는 명칭 대신 공연에 수반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모두 조율하는 확장된 개념으로 컨셉션(Conception)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김재덕씨가 바라보는 '안무'에 대한 개념이 궁금해지네요.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축소된 개념으로 안무자 대신 '표현자'라고 저를 지칭하고 싶어요.

2016. 01.
사진제공_모던테이블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