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표지공연_ 현지취재 2017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벌(1)
3세대를 아우르는 컨템포러리 춤의 향연
김혜라_춤비평가
 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 댄스페스티벌은 1981년 시작하여 올해로 37회를 맞이한 대표적인 국제 현대춤 축제이다. 몽펠리에는 2007년 국립안무센터의 정착과 함께 명성 있는 안무가들의 공연부터 신진육성까지 일 년 내내 춤 스튜디오와 프로그램이 풍성한 춤의 도시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서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도시의 중심인 코미디 광장부터 아고라 극장을 잇는 운치 있는 중세풍의 골목길, 공연장 근처 까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축제다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진행된 축제 기간 동안 평자는 7월 2일부터 5일간 머무르며 공연들을 관람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은 모던댄스 3세대를 아우르는 18개 단체들이 참여하였는데, 루신다 차일드, 한스 반 마넨 같은 상징적인 포스트 모던 안무가들, 앙쥴랭 프렐조카주, 마틸드 모니에, 베르나도 몬테 등의 개성 있는 중견 안무가들, 다국적의 젊은 안무가들이 공공장소에서 펼친 공연과 마스터 클래스 그리고 머스 커닝험을 비롯한 안무가들의 영상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7월 2일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엠마누엘 갓(Emamuel Gat)과 리옹발레단(Ballet de l’Opéra de Lyon)이 협업할 아고라국제안무센터 야외극장으로 향했다. 밤 10시 어둑한 빛과 조명에 비췬 소담스럽고 중후한 야외무대는 매력적이었다.




 축제의 감독인 쟝 폴 몬타나리(Jean-Paul Montanari)는 엠마누엘 갓과 리옹발레단의 협업이 경제성과 효용성을 갖춘 춤 방식이자, ‘춤 유산의 재조명과 스타일의 조합’이란 축제의 취지에 적합한 작품이라 강조하였다. 이스라엘 출신의 엠마누엘 갓은 23세에 춤계에 입문, 몽펠리에 축제와 인연이 많았다. 그는 2007년 프랑스에 정착한 후 2013년 페스티벌 예술가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성장,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에서 안무가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Duos〉〈TENWORKS (for Jean-Paul)〉두 작품을 공연했다. 




 〈TENWORKS (for Jean-Paul)〉는 엠마누엘 갓이 9년간 자신을 지원한 축제의 감독인 쟝 폴과의 협력을 기념하는 작품으로 자신의 무용단원과 리옹 발레단원 댄서들이 10개의 짧은 이야기를 엮어 놓은 것이다.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에서는 20명 댄서들의 자유로운 기교와 발랄함, 듀엣에서 친밀한 정서적 교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댄서 개인의 체험 같은 이야기는 때론 왁자지껄한 경쾌함으로, 혹은 내밀한 정적감으로,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강렬함으로 체화되었다. 특히 작품시간을 거꾸로 설정해 놓고 놀이와 실험을 하며 자신의 안무 방식을 강조한 점은 흥미로웠다. 〈TENWORKS〉는 서로 다른 단체가 협력을 통한 작품 구성 과정에 의미를 둔 것으로, 가벼운듯한 단편들이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은 삶의 모습이 묻어나는 오마쥬(hommage)로 인상에 남았다. 

 


 그는 이번 작품의 제작 방식이 20세기와는 다른 구조적 접근 방식임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해 국립 단체와 독립 단체 간에 존재하는 미적 혹은 시각적 차이가 없음을 지적하며 앞으로의 춤이 관계와 협력을 통해 창작되어야함을 피력하였다. 실제로 이 두 단체의 협업프로젝트는 페스티벌 총회와 문화 부처 그리고 지역 의회 등 공동지원의 성공적인 예로 예술 창작에서 ‘자원의 책임 있는 재분배’의 개념을 강조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협력방식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글로벌하게 시도되고 있으나 일회성이 아니라 9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상호 협력하며 성장한 창작품이 프랑스 전역으로 유통되는 지속성 있는 시스템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날 7월 3일 다니엘 리네한(Daniel Linehan) 안무가의 〈Flood〉를 감상하기 위해 아고라 스튜디오(Studio Bagouet Agora)를 찾았다. 몽펠리에 페스티벌에 세 개의 작품을 선보인 젊은 안무가는 시애틀과 뉴욕에서 안무를 시작하여 2008년 벨기에를 기반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안무 성향은 춤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행위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작품 〈Flood〉는 신기술의 홍수에 문화적으로 지배당한 사회를 생각하며 ‘출현과 실종’을 공간에서 실험하려는 작업이라고 안무가는 설명한다. 여자 댄서는 급속하게 남자 댄서들에게 돌진하는 동작을 반복하며 가속도에 따른 반응을 각인시키려 한다. 댄서들은 상대방 몸의 부위를 견적하는 모션으로 몸의 용적의 차이도 강조한다. 그들은 에너지와 호흡의 흐름을 신음소리로 내뱉으며 공기의 압축과 팽창의 상황도 함께 표현한다.
 이같이 〈Flood〉에서 안무가는 동작의 시퀀스를 설정, 반복적으로 들고 나는 행위를 조절하며, 가속과 감속의 차이, 그리고 질량과 부피를 대비하며 감각적인 반응을 실체화 해보려 시도하였다. 물론 안무가의 의도대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언저리에서 사라져 가는 가치를 발견하기엔 조금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이나 자신의 호기심을 춤으로 실행하는 논리적 접근에는 나름의 체계와 설득력이 엿보인다.

 

 


 셋째 날 이번 축제에서 기대했던 모던 발레의 거장인 한스 반 마넨(Hans van Manen)의 기념 무대가 펼쳐지는 오페라 극장(Opera Berlioz/ Le Corum 7월 4~5일)으로 향했다. 학창시절 지리 킬리언의 NDT(Nederlands Dans Theater) 모던 발레를 기억하며 한스 반 마넨과 함께하는 NDT의 스타일이 무척이나 궁금하였다.
 그의 레퍼토리는 총 5개로 〈Adagio Hammerklavier (1973)〉, 〈Two Gold Variations (1999)〉, 〈Sarcasmen (Pianovariations II) (1981)〉, 〈Frank Bridge Variations (2005)〉, 〈Metaforen (1965)〉으로 구성되었다. (https://vimeo.com/208509339)




 올해로 85세인 한스 반 마넨은 18세에 발레를 시작하여 1957년에 네덜란드오페라발레단에서 안무가로 데뷔, 61년부터 NDT와 네덜란드국립국립발레단(HET NATIONALE BALLET)에서 상주 안무가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NDT의 상주안무가인 그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을 비롯하여 전세계 발레단에서 120여개의 작품을 창작하였다. 최근에는 마린스키와 볼쇼이발레단 및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도 그의 레퍼토리를 채택한 바 있다.
 마카로바(Natalia Makarova)나 누레예프(Rudolf Nureyev)같은 전설적인 댄서들이 그의 작품에 출현했으며, 한국에서도 2008년 〈Black cake〉이라는 작품으로 유니버설발레단과 공연한 적이 있다. 그는 올해 프랑스 'Commandeur des Arts et des Lettres'라는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타이틀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대표작인 〈Adagio Hammerklavier(1973)〉는 베토벤 소나타 피아노곡 무드의 서정성과 모던 댄스의 급격한 하강과 정지된 포즈들의 강인함이 결합되어 안무가의 추상과 단순성을 추구하는 성향을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었다. 〈Two Gold Variations(1999)〉은 탱고의 끈적한 추임새, 상체의 유연한 뒤틀림, 빠른 타악기 음악의 리듬에 맞춘 힘있는 군무 바리에이션의 열기가 인상적이었다.




 〈Sarcasmen (Pianovariations II) (1981)〉은 피아노 연주자도 실연자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였고 유머와 에로틱함이 연주와 잘 어울리는 춤이었다. 〈Metaforen(1965)〉은 미니멀한 작품으로 대칭적 공간 구도의 배치와 절제된 감정에서 몬드리안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남성 듀오와 여성 듀오의 극적이지 않지만 섬세하게 발란스를 유지하는 교감이 특징적이었다.
 1965년에 선보인 이 작품은 남성 듀오의 춤만으로도 당시 성적 논란을 일으킬만한 혁신적인 설정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한스 반 마넨의 작품들은 네오 클래식 발레답게 음악적 구조와 친밀도 높게 리듬을 입체적으로 시각화 한 형식적 배열이 탁월하였다. 동시에 역동적인 모던댄스 테크닉과 격정적인 감정 및 관능미까지 미국의 조지 발란신과는 다른 그만의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작품이 끝난 후 안무가는 무대 위로 올라와 댄서들과 관객들의 경의 어린 기립박수를 오랫동안 받았다. 

 


 의식무용가로 불리는 베르나도 몬테(Bernardo Montet)는 모리스 베자르가 설립한 무드라 무용학교를 거쳐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감독, 현재는 프랑스(Tremblay-en-France) 루이 아라곤 극장의 상주안무가이다. 그는 주로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이번 신작 〈Carne〉(Théâtre la Vignette,7월5일)도 독일 선교사 마틴 거진드(Martin Gusinde 1886-1969)의 사진을 기반으로 서구 식민주의로 사라져가는 티에라의 델 푸에고 종족에 대한 이야기에 기인한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종족들을 만나고 연구하며 그들의 제례(the Hainceremony)를 보며 인간성의 뿌리와 정치적 상황에 놓인 몸을 다루고자 한 것이다.
 〈Carne〉는 시적이면서 정치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다. 무대는 짚더미와 방울소리, 마른 나뭇가지, 물소리 같은 오브제에서 제의성이 강조되면서 정적을 자아냈다. 이어 짚더미에 묻힌 댄서가 모습을 드러내며 마른영혼의 존재성을 부각시켰고 이것은 마치 우리에겐 잊혀졌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생명들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총 5명의 댄서들은 온몸을 떨며 일종의 카타르시스적 몰입과 짚더미 난장으로 몸의 의식을 공연 내내 표출하였다. 억압된 무의식을 몸이란 통로로 의식화해 보려는 작품 〈Carne〉는 서구 정치에 희생당한 영혼들의 저항하는 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날 감상한 샤론 에얄(Sharon Eyal)과 가이 베하르(Gai Behar)의 공동 안무인 〈Love Chapter 2〉(Opéra Comédie, 7월6일)는 놀라운 흡입력으로 몽펠리에축제를 즐기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샤론 에얄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바체바무용단에서 댄서로, 부예술감독(2003-2004) 그리고 상주안무가(2005-2012)로 활동하였다.
 오하드 나하린의 영향과 가가(Gaga) 테크닉을 기초로 한 그녀는 2009년 가이 베하르 프로듀서와 함께 L-E-V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년 몽펠리에에서 발표한 〈OCD LOVE〉가 2017 프랑스 비평가협회에서 최고의 상을 받았다. 〈Love Chapter 2〉는 작년 모다페(국제현대무용제)에서 선보인 〈OCD LOVE〉의 속편으로, 닐 힐본의 시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여섯 명의 바체바무용단 댄서들은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는 레온타이즈에 검정 양말을 신고 테크노 펑키 비트에 맞춰 요염하게 사방을 걷고 있었고 그들만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만한 허리 젖히기와 왜곡된 관절틀기의 반복적인 배열로 점점 형태미를 구축해 나갔다. 비트가 고조되면서 댄서들은 스스로의 몸에 침전되어 가며 음산한 기운이 응집되었으며 이 장면에서 부토가 떠올랐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개성은 침몰되고 우울한 익명의 몸부림 혹은 집단적 외침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작품 〈Love Chapter 2〉는 어떤 논리와 수사적 표현이 필요 없는 춤, 출구 없는 터널을 향해가는 집단무의식의 엑스타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의 뇌쇄적이며 도발적이었던 〈House〉(2014 모다페)보다 이번 작품 〈Love Chapter 2〉는 정제된 관능미와, 몽환적인 숭고함으로 이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각인 시키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댄서들의 집중력이 놀라웠고 현대 사회 누구나 겪는 불안과 집착을 춤과 음악(Ori Lichtik)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5일간 둘러 본 몽펠리에 페스티벌에서의 경험. 더 많은 작품들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내년을 기약하며 지중해 햇살만큼 따뜻한 예술가들의 열정이 고마운 시간이었다. 더불어 관람객의 88%가 지역에서 소비된다는 점과 축제 후 18개국 66개 도시로 창작물이 공연될 계획이 있는 시스템 잡힌 탄탄한 축제의 기반이 부러웠다.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6. 08.
사진제공_www.montpellierdanse.com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