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린 구도로, 국민을 향해 달린다
홍승엽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인터뷰

댄스 시어터 온 대표로서 90년대 이후 주목작을 발표해온 홍승엽씨가 지난해 8월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에 선임되었다. 올해 1월 창단 공연을 거쳐 초석을 다지고 있는 국립현대무용단의 향방에 대해 춤계를 비롯 많은 이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다. 초창기인 현시점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은 생성 과정 속의 무용단이며, 관심만큼 궁금한 점도 늘어난다. 이번 인터뷰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향방을 소개하는 중에 홍승엽 예술감독은 관객 확보와 유능한 안무가 발탁을 통해 국립현대무용단을 일반인 속에 뿌리내리려는 의지를 강하게 비췄으며, 그가 실현에 옮기는 새로운 구상과 포부를 들어본다.
 

 

대담: 김채현(본 협회 공동대표 / 무용원 교수)
2011. 3. 22. 저녁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실



먼저 개인적으로 초대 예술감독 선임을 축하드린다. 창단의 의의가 크고 또 역사 기록 측면을 고려하여 창단 이래 지금까지 가장 큰 애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홍승엽 창단 준비 과정에서 새 방향을 추구하다 보니 춤계 내에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겠다는 짐작이 들기도 했다. 이는 새로움과 낯설음에 대한 이해 부족, 그로 인한 오해로 해석된다. 그런 점이 핵심 애로는 아니었고, 언젠가 이해되면 해소될 점이라 본다. 오히려 지난해 8월 중순 이후 창단기념식, 조직 기본틀 구성, 단원 선발, 올해 1월의 창단 공연 등의 빡빡한 일정으로 움직이다 보니 국립현대무용단의 새로움을 이해시켜 드릴 여유가 부족했던 점, 그 점이 가장 큰 애로였던 것 같다. 게다가 창단 공연 일정이 늦게 잡히다 보니 극장 대관 사정도 여의치 않아 창단 공연을 단 이틀간 올린 것은 아쉬운 점이다.


조금 막연한 질문이긴 한데, 국립현대무용단의 지향점은 어떻게 소개될 수 있는가?

한 방향으로 고정된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큰 방향은 우리가 내거는 ‘국립현대무용단은 국민을 향해 달려갑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은 무용인들 사이에 머물기보다 일반 관객에게 공감을 사는 작품을 중시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무방하다. 춤계 내에 맴도는 작품으로는 시장 형성도 되지 않을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안팎에서 절대 다수 여론이 우리 슬로건에 동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슬로건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것이고 나 또한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

아직은 갓 창단한 초기라 좀 기다려봐야 하겠는데, 그래도 그 구체적 방법을 예시할 수 있지 않을까?
창단 공연 ‘블랙 박스’를 두고 춤계의 많은 분들에게서 왜 신작을 내지 않았느냐고 지적을 받았다. 신작을 하려면 절대 준비 기간도 필요하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이 첫선을 보이는 상황에서 특히 국립현대무용단을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험을 자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의 이전작들 가운데서 일반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느슨하게 엮는 방식으로 창단 공연을 준비했는데, 굳이 창단 공연작을 논하자면 그 예술성이 약한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겠지만 현대춤으로 일반인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방안으로서는 유효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창단 공연 기간에 설문지 조사를 하였고, 응답지 회수율이 38%였는데, 대부분 비무용인이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 38%의 응답지에서 만족․매우 만족을 표한 비율이 85%였다. 외부에선 국립현대무용단 동호회도 결성되고 있다. 말하자면 일반인을 향해 달려가는 구체적 방안을 계속 개발하여 저변 확대에 박차를 가하려고 한다.

구체적 방법은 궁극적으로 작품으로 표현될 텐데,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을 예측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국민을 향해 달려갈 경우 작품의 상품성과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성 측면에서 가령 대중문화 코드를 여과하지 않은 채 작품과 뒤섞어 버리면 순수예술의 품격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순수예술의 내공을 쌓으면서 일반 관객에게 접근하고 또 그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이 국립현대무용단의 경향으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테면 일반 관객의 리듬을 간파하고 함께 호흡하는 작품을 중시하고 싶다. 그런데 그 전단계로서 이번에 펼치는 ‘안무가 베이스캠프’는 일반 관객보다는 춤에 더 관심이 높은 관객을 주 타겟으로 설정하고 있다. 베이스캠프 참여 안무가들은 안무가로서의 역량은 갖추었다고 판단되며, 이 프로그램은 그들이 관객과 호흡할 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비중을 둔다.

현대춤의 동반자 육성 측면에서 귀중해 보이는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다른 이견도 있는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굳이 안무가 육성 같은 작업을 해야 하는가 식으로 애정어린 의문을 표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줄로 안다. 국내에 신진 안무가 발굴 등 프로그램들이 다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젊은 안무가들이 충분한 여건을 지원받으며 안무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은 흔치 않은 것 같고, ‘안무가 베이스캠프’는 초보적 학습 캠프가 아니라 역량을 갖춘 안무가들이 안무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고무하는 전진 기지로서 제안된 프로그램이다. 말하자면 명작의 고산준령으로 떠나는 베이스 캠프이다.


 



대담하는 홍승엽 예술감독 - 김채현 교수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 계획을 소개해달라.
올해는 이전의 창단 공연, ‘안무가 베이스캠프’ 그리고 8월에 예술감독의 신작과 11월에 조엘 부비에의 해외 안무가 초청 공연이 있을 예정이고, 내년에는 적절한 안무가를 찾아내서 관객 속을 더 적극 파고드는 작업을 하나 정도 더 추가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공공 조직이다 보니 내부 살림살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초창기여서 적은 예산을 소상히 밝혀드리기 곤란한 점에 대해 우선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러면 살림살이를 짐작할 만한 부분으로서 단원 운영을 소개해주었으면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단원이라는 용어 대신에 출연자란 용어를 쓰는 줄로 아는데...
그렇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하면서 각 프로젝트 별로 출연자를 선발한다. 이 말은 국립현대무용단이 큰 수박 한 덩어리보다는 포도송이처럼 다양한 프로젝트를 내놓는 방향으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 ‘안무가 베이스캠프’에 참여하는 6명의 안무가들이 모두 23명의 출연자를 독자적으로 선발했고, 첫 창단 공연에서는 23명을 선발하여 그후 남은 출연자와 10명을 더 선발하여 8월 정기공연의 출연자 25명을 선발하였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양쪽 프로젝트에 중복 출연하므로 현재 계약 출연자는 모두 46명이다. 출연자 계약 기간은 ‘안무가 베이스캠프’가 6주, 정기공연이 4개월이고, 모두 실습(작품 준비 작업) 시간당 급료를 지급한다. 우리는 급료에 해당하는 말로 연습비라는 용어를 쓴다. ‘안무가 베이스캠프’의 여섯 안무가에게는 5개월치 급여 1천만원과 실습비 1백만원을 지급한다. ‘안무가 베이스캠프’의 출연 계약 기간을 내년에는 4개월 정도로 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출연자 급여는 월간 180만~220만원 수준이고, 8월초 정기공연이 끝나도 일부 출연자는 9월까지 두어달 정도 인턴쉽 신분을 유지하도록 해서 월간 급여의 절반 수준을 지급할 예정이다. 여기에다 국내외 순회 공연까지 실현되면 계약 기간이나 연습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아마도 한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출연 계약자의 30% 남짓 교체 순환되는 구조로 운영되는 것이 앞으로의 방식이 아닐까 전망된다. 그리고 다른 국공립 단체에 비해 아직은 처우가 미흡할 것이어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부 업무 분장을 소개한다면...
이사회와 예술감독 관계는 다른 재단법인 무용단과 유사하다. 이사회는 정관 운영 및 예산 심의권과 사업 승인권을, 예술감독은 예산 집행과 사업 운영에서 결정권을 갖는다. 예술감독을 단장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는 그 개념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 운영과 예술 창작 양 측면에서 예술감독이 대표하기 때문에 그렇다.

예술감독은 일테면 야전사령관 형의 CEO인 동시에 예술적 리더로 해석된다. 사무국 운영은 어떤가?
사무국 상근 인원은 예술감독 포함 10명이며, 경영-기획-홍보-제작 등 업무에 비춰 인원도 더 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게다가 문광부에서 조성한 국고 예산만으로 운영할 수도 있겠으나, 그래서는 운영이 원활치 않게 되고 심지어 적자까지 예상된다. 다시 말해 재단법인으로서 수익을 자체적으로 가능하면 최대한 확보해서 운영해야 하는 구도이다.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 후원회 구성도 시작한 단계이지만, 유료관객 유치도 절대 중요하다. 그런데 창단 공연 입장료를 1만원으로 했고, 앞으로도 입장료가 최고 2만원을 넘지 않도록 해서 국립 단체로서 소명에 충실할 생각이다.

이번 봄의 ‘안무가 베이스캠프’와 정기공연을 거듭하면 자체 레퍼토리가 축적되어 재원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도록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무가 베이스캠프’를 대하는 시각을 강조하고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술감독 혼자의 창작 작업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가 축적되기에는 누가 봐도 한계가 있다. ‘안무가 베이스캠프’ 프로젝트는 개별 안무가에게 작품을 의뢰해서 안무력을 다듬을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기도 하면서 우리의 자체 레퍼토리를 확보하는 중요한 통로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여섯 안무가를 선발하면서 가장 중시한 것도 작품 계획서가 아니라 안무가-예술가로서의 충실성이었다. 응모 안무가들에게 제출하기를 요구한 것은 기존 작품의 안무 노트나 그에 준하는 자료였고, 이것이 안무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였다. 나 개인적으로, 예정된 작품 계획서를 갖고 안무가를 선정하는 것은 변수나 거품이 많아 불합리하다고 본다.

‘안무가 베이스캠프’에서는 일테면 안무가가 쌓아온 안무력을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말인데, 우선 신선해 보인다. 이 기준이 누구의 발상으로 제안된 것인지 소개할 수 있는가?
나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경험하면서 기존의 오디션이나 심사들이 작품계획서나 경력들을 중시하는 것 역시 수긍할 만하되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번처럼 다른 기준을 선택하게 되었다. 안무 노트나 자료를 요구하니까 이전 작품에 대한 해설 리포트를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작품 해설이 아니라 안무가 자신의 안무력과 안무 과정이나 안무 실체, 안무 사고(思考)를 대변하는 자료를 요구한 것이었다. 각 응모자마다 10여분 정도 면접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했는데, 5명의 심사위원들이 하루 종일 수많은 응모자를 면접했어도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렵지도 않았다. 작품 제작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안무력이 꾸준히 축적되면서 진화하는 일테면 준비된 안무가를 선별하는 데 의견들이 대동소이하였고, 심지어 성별 안배 등 예술 외적 요소도 모두 배제하였다.

절대 기준은 없겠으나, 작품에 대해 묻기보다 안무가-예술가로서의 충실성을 중시하고 안무 작가를 판별해내는 방향으로 기본 전제를 바꾸어 예술적 역량에 집중해서 선발한 ‘안무가 베이스캠프’의 결과에 기대를 걸어도 좋은가?
나로서는 우선 일률적이며 타율적인 오디션을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안무가의 발상이나 창작 계획을 존중하는 오디션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정 안무가들이 발표할 안무 결과와는 별도로 이번 오디션 과정은 준비된 안무가를 선발하는 데 있어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안무가 베이스캠프’는 그러므로 작품이 기대되며, 이번에 선정된 안무가들이 다음에 다시 참여하길 원한다면 최대한 우선권을 부여해야 할 것 같다. 여섯 안무가들에게 자기 안무작 출연자를 완전히 자기 기준으로 선발하도록 일임한 것도 그들의 예술적 충실성과 역량을 전적으로 신뢰한 때문이다. 예술감독은 안무가 선정에 참여했을 뿐 출연자 선정이나 작품 구성 등에 관해 전혀 간여한 바 없다. 한국 실정에 적합한 오디션 관행을 뿌리내리고 싶다.

 

2011.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