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비엔나 현지취재_ Impulstanz 2017(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상반된 가치 충돌 속에서 빚어낸 아름다운 춤
김혜라_춤비평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풍을 드러내는 뮤지엄들. 로코코, 바로크, 고딕 양식의 궁전들과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즐비한 오스트리아 비엔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비엔나 시내 곳곳 극장과 길거리에서 임펄스탄츠(Impuls Tanz)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마치 전세계 무용인들을 반기는 듯한 인상이었다. 최신 현대춤의 흐름을 이끄는 임펄스탄츠는 문화 행정가인 칼 리젠버거(Karl Regensburger)와 안무가 이스마엘 이보(Ismael Ivo)가 결성, 1984년에 춤교사들과 소박하게 워크숍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 교류를 주도하는 중요한 춤축제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매년 스칼라쉽으로 60여명을 선발해 모든 프로그램과 공연기회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니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이 도전해 볼만한 춤 행사이다. 그 외에도 연구와 토론, 특별 전시까지 5주간의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구성되어 있었고, 특히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촘촘하게 짜인 워크숍은 무용수와 안무가에게 여러 스타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였다.
 축제 기간 동안 만난 서울탄츠스테이션 예술감독인 미나유 선생은 40년간 지켜본 축제가 규모나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축제가 어려울 때 사비를 털어가며 유지시켜온 칼 리젠버거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한 달(7월13~8월13일)동안 진행된 축제 기간 중 평자는 일주일간(7월30일~8월4일) 머무르며 10여 편의 공연을 보았다. 그 중에서 오스트리아의 시몬 마요(Simon Mayer)와 세네갈의 제르멘 아코니(Germaine Acogny) 공연은 자신들의 민속적 뿌리를 에너지원으로 삼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시몬 마요는 안느 테레사 키어스마커, 빔 반데키부어스, 비엔나 국립오페라단에서 댄서로 활동하였고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가수 겸 작곡가, 기타리스트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올해 임펄스탄츠에서 발표한 〈Sons of Sissy〉(Volkstheater,7월24일)와 〈SunBengsitting〉(Kasino am Schwarzenbergplatz,7월30일) 두 작품은 오스트리아 전통 민속춤(Wiener Staatsballett)과 민속음악(Jodel)을 해석, 해체하여 관객에게 의도적으로 구식으로 여겨지는 농촌문화의 면면과 남성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가 비엔나 댄스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농촌에서 자라면서 민속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하였기에 발레의 협소한 움직임과 통제에서 자유로운 무언가를 그곳 뿌리에서 찾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작품 〈SunBengsitting〉에서 시몬 마요의 벌거벗은 몸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자연의 일부로 몸과 오브제를 활용, 원시적인 형태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뛰고 돌고 자신의 몸을 두드리며 리듬의 구조를 찾는 방식이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채찍으로 예상치 못한 리듬을 찾아내고 마이크를 가지고 놀기도 하는 한편 컨츄리 한 노래를 부르며 평온한 무대를 그려내었다. ‘SunbengSitting’이란 단어는 농가에 비치된 해를 맞는 의자로, 시몬 마요는 통나무를 가지고 의자를 만드는 과정의 퍼포먼스를 펼쳤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며 날리는 톱밥과 스모그를 이용해 환각적인 파티의 장면을 연출하는 등 앞뒤 맥락 없는 놀이가 주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뒹굴고 춤추었고, 영락없이 내키는 대로 노는 천진난만한 시골 아이의 모습을 연출했다.

 



 안무가이자 퍼포머인 시몬 마요는 〈SunBengsitting〉 작품에서 원초적인 표현이 복잡하고 인위적인 방식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려는 듯하다. 단순하지만 투박하지 않게 민속적 정취를 현대적 언어로 해석해 내면서도 서정적인 아련함을 자아내는 균형감이 탁월했다. 꿈과 희망 가득한 팝 가사를 부정적 현실로 개작하여 부르는 시니컬한 안무가의 유머러스한 패러디 또한 반전매력을 주었다. 단순히 민속춤과 선율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현재 모든 행위의 틀을 해체시키려는 그의 안무가적 시각이 명쾌하고 신선하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5년 임펄스탄츠에서 젊은 인재에게 주는 상(Gewinner FM4 Fan Award)을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다음 소개할 제르멘 아코니의 〈Somewhere at the Beginning〉 (Akademietheater, 8월2일)은 사전 지식 없이 본 작품이었다. 한국춤도 한 동작 보면 이미 어느 정도 춤꾼의 춤틀과 인생관이 엿보이듯이, 안무가이자 댄서인 제르멘 아코니가 팔을 들며 가벼운 웨이브를 하는 순간 필자의 분석적 시각은 무장 해제되어 그녀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세네갈과 프랑스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이자 댄서인 제르멘 아코니는 아프리카 춤의 대모이자 문화대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1977년부터 1982년 까지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L.S.Senghor)과 모리스 베자르가 만든 무드라 아프리카(Mudra Afrique)의 예술감독이었고, 1997년에는 파리에서 아프리칸 춤 분야 예술감독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2004년 세네갈에 무용학교(Ecole des Sables)를 창립하여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녀는 임펄스탄츠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워크숍을 통해 컨템포러리 아프리칸 댄스를 전파하고 있다. 

 



 〈Somewhere at the Beginning〉은 궁극적인 자아를 찾으려는 안무가의 자전적인 독백이자 증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불협화음을 겪었던 가족사와, 아프리카 조상들의 신앙과 지혜 그리고 유럽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귀향한 그녀 삶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작품에서 드러낸다. 대본을 맡은 미카엘 세르(Mikaël Serre)는 그녀의 치열한 삶의 여정에서 밀어낼 수 없었던 과거의 운명, 아버지와 여사제인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그리스의 비극적인 인물 ‘메데아’와 작품을 연결시켜 풀어낸다. 다시 말해 남성권력, 식민지를 향한 문명의 이기심과 배타성 의해 지배당한 아프리카 민족의 현실과 악녀로 지칭되는 비극적인 희생양의 제물로서 메데아를 투영한 것이다. 

 



 무대 위 찰랑이는 발 커튼은 제르멘 아코니의 정신적 시공간을 구획 짓는 오브제이다. 이런 장치는 앞뒤 공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포괄적인 정신의 영역을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글을 읽어나가며 그녀는 유년시절 기억을 얘기한다. 이어서 백인들의 ‘시민화, 문명화’라는 명명 하에 스스로의 과거를 부정하며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 할머니가 들려준 종족 이야기, 주술적인 의식 행위 영상들이 포괄적으로 교차되며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계속해서 죄짐을 감당하는 희생양 의식, 광활한 아프리카 대자연, 뱀과 같은 상징적인 동물들, 아버지, 할머니, 아이들의 얼굴이 발 커튼에 투사된다. 그녀는 스스로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자신의 과거와 역사로부터 자유 할 수 없는 상반된 가치관으로 갈등하는 자신을 몸으로 피력한다. 자신의 뿌리에서 습득된 아프리칸 리듬에 맞춰 몸으로 기운을 수용하고 다시 거부하는 응집된 힘을 표현하는 것이다. 필자는 운명을 수용하는 힘과 저항하는 양극의 기운이 그녀의 몸짓과 숨결에서 오롯이 전달됨을 느꼈고, 무대 위에 서있는 그녀의 처절한 투쟁이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르멘 아코니는 “지금은 위대한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개인의 정체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모든 사상, 철학 같은 헛소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라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자기를 들여다보고 대화하며 변화의 과정 속에 우리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주장한다. 노익장의 열연은 관객들에게 분명한 메시지와 질문을 던졌다. 불합리한 세상에서 고독하게 저항하는 방법과 지혜를….
 시몬 마요와 제그멘 아코니 두 작품의 뛰어남은 단순히 민족적 뿌리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들의 민속적 기반이 진솔하게 묻어나면서도 시몬 마요와 같이 자유를 만끽하는 예술가의 시선과 태도, 제르멘 아코니와 같이 노장의 지혜로운 인생관이 춤으로 관객에게 도전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면 임펄스탄츠가 개최되는 40여 년 동안 비엔나에서는 다른 현대무용 축제가 개최되지 않았기에 임펄스탄츠가 전문성과 대표성을 띨 수 있었다. 그리고 워크숍이 열리는 한 달여 동안은 주변의 댄스 스튜디오에서 수업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고 하니 국내에서 비슷한 시기에 정체성이 크게 다르지 않은 축제들이 열리는 양상과는 참 비교되는 대목이다. 예술 축제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7. 09.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