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영희춤연구소 심포지엄 ‘검무의 역사와 미의식’
문화 양상으로 포착한 검무의 자취
박자은_성균관대 겸임교수

 초겨울의 정취가 이른 봄만큼 따사로웠던 11월 20일. 김영희춤연구소의 첫 번째 심포지엄이 동숭동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검무의 역사와 미의식’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심포지엄은 2012년부터 공연으로 매 해(3차) 기획된 <검무전(劍舞展)>의 연장이라고 한다. 강당 입구에 이르자 낯익은 무용인들의 모습보다 타 분야의 낯선 선생님들과 먼저 눈이 마주쳤고, 다행히 예의 목례로 그 어색함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이번 심포지엄이 ‘무용’에 국한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때서야 조금 파악하였다.
 논문발표에 앞서, 먼저 김영희 춤연구소장의 개회사로 심포지엄의 첫 인사를 대신했다. 간결하고도 담백한 어조로, 그간의 <검무전>과 이번 심포지엄의 상관성을 압축했다. 이어 채희완(부산대 명예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그는 쿠르트 작스의 『춤의 세계사』 책에 수록된 1900년대 한국기녀의 검무사진이, 한국춤에서 검무가 갖는 상징성과 가치를 대변하는 것임을 각별히 전했다. 또한 한국 근대춤사에서 칼노래·칼춤에 대한 연구가 함께 포함되지 못함에 대해서는 적잖이 아쉬워했다.

 



 이종숙(한국전통악무연구소장)의 사회로 1부 논문발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발제는 김영희(김영희춤연구소장)의 ‘한국춤의 역사에 등장한 검무의 양상’이었다.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로부터 연원한 검무의 역사를 되짚으며, 한국춤사에서 읽히는 다양한 검무를 시대별 양상으로 설명했다. 궁중검무, 기녀검무, 검결의 칼춤, 권번의 기녀 검무, 신무용의 검무, 민속에서의 검무 그리고 유교제례무인 일무에서의 무무와 1960년대 이후의 검무(진주검무, 통영검무, 호남검무, 해주검무, 평양검무, 밀양검무, 경기검무 등)를 언급하며 검무의 양상을 일축했다. 김영희의 논지를 종합하면, 검(劍)과 검무(劍舞)는 우리문화에서 오랫동안 회자되고 등장한 텍스트였으므로 그 각각의 다양한 면들을 인식하고 현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제자인 조혁상(홍익대 겸임교수)은 ‘조선조 기녀검무의 문학적 형상화에 대한 고찰 -검무시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기녀검무의 문학적 형상화가 지닌 세 가지 양태로 비장미(悲壯美), 검술형상(劍術形狀), 자색(姿色)을 들었다. 또한, 조선조의 검무시는 기녀라는 문학적 형상화보다는 기녀가 추는 무용자체에 더 주목해야 한다며, 문학적 텍스트는 실제로 서술목적 자체가 확실히 구분됨을 강조했다. 때문에 연구자는 조선조 기녀검무는 17~18세기 도검문학의 전성기와 맞물리는 것이라 정리하고 있다. 특히 검무시는 문학과 무용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로, 조선조의 검무를 연구·복원하는데 주요 실마리가 된다고 하였다.

 



 이진원(한예종 전통원 교수)의 사회로 2부가 이어졌다.
 세 번째 발제는 이태호(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의 ‘옛 그림에 보이는 칼춤 이미지’였다. 발표에서는 고분벽화로부터 확인되는 검(劍)과 무(舞), 18세기 조선조의 문인과 여협화(女俠畵), 18세기후반부터 19세기와 20세기 초 대한제국까지 검무의 그림자료를 차례로 수십 편 볼 수 있었다. 이들 사료로부터 주목할 점은 4~7세기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에서 우리 민족의 검무의 원형을 추정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안악 3호분 행렬도에는 2인의 남성무용수가 외날의 刀(칼)와 활모양의 도구를 들고 춤추는 형상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의 그림에서 보이는 2인 대련(對鍊)의 이미지는 19세기 중후반 <<헌종무신진찬도>> 병풍에서 검무의 도상이 4인 검무로 드러남을 구분했다. 이밖에 화폭에 담겨진 검의 다양한 군상을 통해 춤의 빠르기나 검의 손잡이 형태의 변모와 유소장식의 변화마저 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형식의 변화는 일제 강점기 칼춤 공연으로 전승되는 것임을 설명했다.
 마지막 발제는 박선식(한국인문과학예술교육원 원장)의 ‘동북아 역사상 한국의 칼잠개 다룸과 겨룸짓 및 칼춤의 상관성’이었다. 논문은 무예로서 칼잠개 다룸과 겨룸이 칼춤과 어떠한 상관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것으로, 동북아 특히 한반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각 시대의 도(刀)와 검(劍)의 운용, 무예(武藝)와 검객(劍客) 그리고 무객(舞客) 기예 등을 구분하고 있다. 주관적일 수는 있지만 심포지엄에서 소개되는 논문으로는 매우 방대한 편장을 준비한 연구자의 의지가 돋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논지는 좀 더 압축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연구자의 의도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마지막 주석에서였다. 전통적으로 겨룸짓(무예)은 생사를 결정짓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검을 다루는 예술인들의 행위가 ‘무예의 모방인지, 검기를 바탕한 춤사위인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 초입에서 우리말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칼잠개다룸과 겨룸짓 및 칼춤의 상관성’은 또 다른 전통성의 회복이길 이 논문은 말하고 있었다.

 



 종합토론에는 이종숙(한국전통무악연구소장), 백현순(한체대 교수), 최성애(성균관대 박사), 임수정(경상대 교수)이 패널로 참석했다. 김영희춤연구소의 제1회 심포지엄 ‘검무의 역사와 미의식’은 한 나절을 다 보내고 해가 지고서야 끝을 맺었다. 다섯 시간을 육박한 이번 심포지엄현장이 유달리 훈훈했던 이유는, 연구자와 패널의 열정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대다수 청중들의 진지한 경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무용사에서 습관적으로 인식하던 검무의 역사적 실체를 한 차원 진보한 문화 코드로 읽어내고자 한 것은 이번 심포지엄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달 한 국제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가했던 필자는, 이번 검무 심포지엄에서도 ‘학제간 융합’의 공통된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인물을 키워드로 다양한 분야(무용, 영화, 광고, 다큐멘터리)의 연구자들이 서로의 관점을 공유할 수 있었던 국제심포지엄이 그러했듯, 이번 심포지엄은 검(劍)이라는 오브제의 목적성(춤추다 혹은 대련하다)에서 출발한 다각화된 관점(춤과 문학, 춤과 미술, 춤과 무예)으로 한 차원 진화된 접근방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다.
 “만신 김금화는 작두 위에서의 검무조차 일품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신칼을 든 무인(巫人)에게서조차 검무의 양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검무가 무속의식(巫俗儀式)의 한 절차로, 또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절절하게 녹아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발표자들의 논지에서도 드러난다. 춤의 도구로 전환하기 이전 검이 내포한 다양한 인문학적 배경들, 도상학적 관점에서 하나의 코드로 인식되는 검의 형상, 검무를 춤추는 기녀들의 복색, 검무진의 구성인원 등. 그리고 무예의 한 편린에서도 검무는 다시금 재해석되고 움직임으로 복원되고 또 창작의 모티브가 된다. 새로운 화두가 후속 연구의 실질적 촉매가 되듯이 말이다.

 “우리 전통춤에 존재하는 검무들을 다시 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검무전(劍舞展)>은 2016년도에 계속된다고 한다. 차기 <검무전>에서는 3차에 걸친 공연에서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를 비롯해, 미처 소개하지 못한 검무들을 펼쳐본다고 한다. 기왕이면 이번 심포지엄에서 만난 문학·미술·무예 속 검무의 자취가 다음 공연에서 더욱 다채로운 모티브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역사와 미의식이 기운생동하는 <검무전>으로 말이다!

2015.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