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액상 프로방스 현지취재_ 앙줄랭 프렐조카주 신작 〈STILL LIFE〉
자신의 본능과 영감을 따르는 자유로움
이선아_재불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Angelin Preljocaj)의 신작 초연은, 9월 21-23일 프랑스 액상 프로방스에 위치한 프렐조카주의 안무센터(CCN) 극장 PAVILLON NOIR에서 올려졌고 나는 첫날인 21일 공연을 보았다.
 건물 입구에는 영화 폴리나(Polina, 2016) 사진이 이번 시즌 포스터로 크게 걸려 있었다. 영화 폴리나는 프렐조카주와 영화감독인 그의 아내(발레리 뮐러)가 함께 만든 무용 영화다. 극장안으로 들어서자 “그래서 작업 제목이 뭐예요?”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 들려왔다. 프렐조카주의 매니저가 대답한다.
 “〈Still Life〉예요. 오늘 오후 정해졌어요.” 

 


 이번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신작 제작방식은 조금 새로웠다. 보통 프렐조카주의 신작 준비는 먼저 작품 제목과 내용이 정해지고 홍보부터 시작된다. 발표한 작품 제목과 내용에 맞춰 작업이 진행되고, 유명 의상 디자이너, 작곡가 그리고 무대 디자이너와의 협업이 이뤄진다. 제작지원 역시, 샤이오 국립극장, 떼아트르 드 라 빌, 몽펠리에댄스축제 등 프랑스의 주요 극장과 축제가 그의 작품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번 신작은 유명 예술가와의 협업도, 작품 지원도 없이 이뤄졌다. 작품 제목도, 초연 장소와 날짜도… 많은 것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자유롭게 자신의 본능과 영감에 따라 작업하고 싶었던 프렐조카주의 선택이었다. 

 


 프렐조카주는 그림에 관심이 많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그의 그림 실력 또한 뛰어나다. 작년에 발표했던 작품 <라 프레스크(La Fresque, 그림에 관한 중국 소설)>에 이어 이번 신작도 그림에 관한 작품이다.
 제목 〈Still Life〉는 불어 “Les natures mortes” 정물이란 뜻을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17세기 회화인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에서 영감을 받았다. 바니타스는 불어로 바니떼(Vanité): 헛됨, 공허함, 덧없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시간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시계, 모래시계 등이 많이 나온다. 이 작품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이 나고 헛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에 출연하는 무용수 6명은 검은색 레오타드 정도의 심플한 의상을 입고 있다. 알바노토와 류이치 사카모토(Alva Noto & Ryuichu Sakamoto) 음악에 효과음으로 시계 초소리가 많이 나온다. 무용수들은 소품으로 해골, 왕관, 새 등을 들고 나와 춤을 추기도 하고, 큐브 6개를 사용해 무용수들의 머리, 다리 등 신체 일부를 큐브 안으로 넣어 무용수들의 몸이 서로 뒤엉키기도 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어둡고, 에로틱하기도 하고, 죽음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첫 시작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첫 장면은 무용수들이 한명씩 나와 무대 위에 눕는다. 죽어 있는 사람들처럼. 무용수 한명이 나와 누워있는 무용수들을 건드리면 그들이 리액션을 한다. 이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 다시 반복되는데, 무용수 손에 칼이나 소품 등이 쥐어지면서 그 장면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다. 작품 중간 중간에 나오는 듀엣과 군무 장면들은 역동적이고 날렵했다. 

 


 프렐조카주의 무용수들은 언제 봐도 잘 단련된 몸과 훌륭한 테크닉을 선보인다. 이번에 처음으로 프렐조카주의 신작을 대극장이 아닌 그가 작업하는 건물의 아담한 극장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위 프렐조카주의 연습실들을 들려 볼 수 있었다. ‘이 연습실이 어떤 무용수들에게는 꿈의 공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간을 잠깐이나마 밟아 보고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이번에 발표한 신작은 10월부터 알베니아, 코소보 등에서 투어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특별히 알베니아는 프렐조카주가 태어난 곳으로, 알베니아에서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프렐조카주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과 <몸>지를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