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인천·대구·천안시립무용단 ‘ALIVE 2015’
시립무용단들의 ‘살아나기’
이지현_춤비평가

 인천시립무용단이 천안시립무용단(예술감독 김종덕), 대구시립무용단(예술감독 홍승엽)과 댄스컴퍼니 jjbro(표상만 출연)를 초청, 특별기획 ‘ALIVE 2015’(2015년 12월 18일. 인천시립무용단 대연습실)를 개최하였다.
 인천시립무용단 김윤수 예술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연습실에 조명을 설치하고 의자와 방석을 놓아 임시로 공연 공간을 만들어 진행되었다.
 김윤수 감독은 “전문 춤 집단의 춤이 보는 이의 관점에서 추는 이의 관점으로 조금 더 돌려놓아진다면 어떨지”라는 생각에서 이 공연을 기획하였다고 한다. 이 질문은 춤이 시장의 요구에 맞춰지는 데서 오는 창작 집단으로서의 고민이 사라진 모습에 대한 아쉬움에 근거한 듯하다. 물론 엄밀히 시·도립 무용단은 시장의 요구가 부담이 아니라 ‘지역 공공성’이라는 요구에 의해 존재하는 무용단으로 ‘공공성과 예술성의 갈등’이 항시 부담인 무용단일 것이다.
 어쨌든 이 무용단들을 모을 수 있었던 힘은 직업무용단으로 의무공연이 아닌 좀 더 자유로운 분위 속에서 동병상련을 나누고 공통분모를 찾아, 소통을 확대하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됐다고 보인다. 그래서 공연은 중심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만나서 인사를 나누듯이 서로의 현재를 보여주고 나누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소품 중심의 공연이 주를 이루었다.

 



 댄스컴퍼니 jjbro(표상만 출연)의 <훌륭한 사람>(표상만, 최원석 안무)는 얼마 전까지 국립무용단원이었던 표상만의 솔로이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허름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무대 중앙에 작은 조명 빛으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가방을 머리에 이고 중심을 잡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초점을 주는 첫 장면은 이 남자의 표정과 행색으로 많은 것을 상상하게끔 다른 움직임은 절제되어 있고 표정은 우는 듯, 웃는 듯 두 가지가 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아버지에 헌정하는 듯한 작품들처럼 이 작품 역시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기본 정서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한다. 표상만의 장난기가 작품에서 여유를 만들어 내면서 관객은 편안하게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잠시 후 익숙한 구음 살풀이음악을 전곡 다 사용하여 전형적인 한국적인 분위기에다 춤은 현대적인 동작이 주를 이뤄 흘러가는데 이 배합이 자연스럽다. 처음에 코미디언의 몸 개그처럼 장난스럽게 장단을 타던 동작이 점차 살풀이 음악에 녹아갈 때쯤 동작도 현대적으로 격렬해지고 확장된다. 아버지는 가방이라는 부담을 이리저리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지만 결국 그 가방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지 못한 채 옷을 벗어 가방에 넣거나 다시 꺼내 입으면서 자신을 다시 추스르는 수밖에 없다.

 



 천안시립무용단의 〈Love is ... Ⅰ〉은 어머니에 대한 편지 낭송과 그에 맞춘 김종덕의 솔로에서 시작된다. 편지 내용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도록 감상적이다. 어머니의 떠나심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라는 인류 공통의 감정은 여지없이 마음을 흔든다. 낭송과 병행되는 김종덕의 솔로는 본인 실화의 힘에서 나오는 호소력으로 춤동작과 평행선을 그리면서 감정을 적절히 중화시킨다. 이어지는 군무는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주제를 익숙한 팝송을 반주로 대중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끌어갔다.
 대구시립무용단은 단원 안무인 <넋두리>(신승민 안무)와 <코끼리를 보았다>(홍승엽 안무/ 대작 중 워낙 짧은 부분을 공연하였기에 여기서 언급을 피한다) 중 2부를 발췌해서 보여주었는데, <넋두리>는 약간은 우울한 듯 하면서도 격정적인 힘을 잃지 않으면서 “쏟아내듯, 한숨을 뱉아내듯... 통탄하듯, 미소짓고, 삼키듯이”라는 설명처럼 현실에 대한 진솔한 감정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문제적인 현상을 다루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거기서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다루려는 신선한 감각이 돋보였다. 공감을 얻어내는 무대적 법칙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한다면 단원들의 춤 동작과 그들의 감정 간의 거리가 없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또렷이 전달되는 장점이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인천시립무용단의 <네 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육현(六鉉)의 심상>은 제목 그대로 남녀 각 2쌍의 무용수가 거문고 산조에 맞춰 추는 현대적 산조춤으로 볼 수 있다. 연습실의 나란히 난 2개의 문을 활용하여 여자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작품은 기량이 훌륭한 주역무용수들이 거문고산조의 격조 있는 음악을 반주로 상당한 미적 지향점에 도달하는 성취를 보여주었다.
 안무가 김윤수는 무용수들의 의상디자인과 의상의 색, 동작의 조형적 요소를 섬세하게 고려하고 다루면서 관객을 집중시켜 나가는 법을 알고 있다. 초연 공연으로 무용수들이 단번에 소화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리프팅과 섬세한 동작의 시퀀스들이 주는 긴장감이 객석까지 전해져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었으나 긴장과 이완의 조화가 아쉬운 게 흠이었다.

 



 대구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시·도립 무용단은 한국춤을 기반으로 창작을 하고 있기에 한국창작춤이 갖는 현대화의 고민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으며 개별적으로 그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것을 예술적 기준으로만 접근한다면 오히려 단순할 터이지만 지역의 관객대중이 작품을 향유하게 해야 한다는 공공성도 충족시켜야 하고 그러면서 직업무용단으로서의 전문성에 있어서도 앞서 나가야 한다는 압박을 골고루 받고 있는 어려운 환경이 그들의 고민을 깊게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용단은 전통 레퍼토리를 갖는 한편, 현대적 창작을 시도하는 등 균형감있는 활동을 해왔으며 창작의 현재적 단면을 ‘ALIVE 2015’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훌륭한 사람>과 <네명의 무용수를 위한 거문고 산조>에서 한국 음악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전곡을 다 쓰는 호기로움을 높이 사고 싶다. 이는 한국춤 전공자로서 익히 듣고 사용해 온 한국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바탕에 있을 것이고 그것에 전형적으로 배워서 춘 춤에 대해 전체적으로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져서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음악의 구조와 장단을 몸으로 충분히 알고 그것을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어느 정도 현대무용 동작이나 현대적으로 변형된 동작에 대한 연구가 있기에 한국음악과 현대적 동작을 매칭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한국음악에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동작에 대한 기대를 깨고 전혀 다른 동작과 구성, 분위기를 보게 될 때 그 신선함은 배가 된다. 그 음악이 살풀이라면 또 다른 살풀이를 보는 맛을, 그 음악이 산조라면 또 다른 산조를 보는 감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럴 때의 부담은 앞선 살풀이나 산조와 비교해서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만약 전통 형식의 춤만큼 원리에서나 미적인 것에 미치지 못한다면 당연히 실망이 뒤따를 것이다. 앞선 한국춤과 음악의 원리와 미적인 것의 구조와 흐름을 연구하여 그것에서 벗어나고, 뒤집고, 비틀고, 해체하는 시도를 해본다면 거기서 지금의 감성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우리의 젊은 한국춤 기반의 안무가들이 이런 의미 있는 시도를 용기 있게 한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일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현대화 작업을 하는 같은 조건에 놓인 무용단끼리 모여서 강의도 듣고 심포지엄도 함께 하고 이번 특별기획처럼 각각의 새로운 시도를 서로 나누고 본다면, 벽을 쌓고 적절히 타협하는 절충적 현대화에 머무는 한계를 벗어나 많은 자극을 받고 시너지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시·도립 무용단 예술감독들이 연합회를 만들어 공통으로 처한 예술작업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현안 해결을 공동으로 모색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함께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는 매우 건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술감독 연합회가 자칫 또 하나의 집단 이기적인 해법을 내고 그것이 갈등을 부추기게 될까봐 우려가 된다. 연합회의 결성과 활동이 노조와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그 문제 뿐 아니라 무용단의 실질적인 다른 문제들도 해결해 나가려는 대화와 논의의 장을 열고, 담당 행정기관과 소통하는 공식창구가 돤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그 중심엔 시·도립 무용단이 공동으로 처한 사안인 예술성과 공공성의 조화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해법모색이 놓여야 할 것이고, 그 외의 사안을 무용단이라는 공동의 운명을 놓고 풀어나간다면 보다 장기적인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기집단만 살겠다고 하는 싸움은 자기 자신도 살리지 못하는 단견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용단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도 받고 인정도 받아야 단원도 살고 그 무용단의 예술감독도 명예롭다.

2016. 01.
사진제공_인천시립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