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취재_ 시디 라르비 쉐르카위 신작 〈Fractus V〉
균열을 통한 성장
정다슬_안무가. <춤웹진> 유럽 통신원
 벨기에 출신의 안무가 시디 라르비 쉐르카위(Sidi Larbi Cherkaoui)는 지난 2014년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의 40주년을 기념하여 작품 〈Fractus〉 를 안무하였다. 당시 트리오로 구성되었던 작품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발생하는 ‘균열’을 이야기 하고자 탄생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5년 이 작품은 〈Fractus V〉라는 제목의 70분짜리 버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가 〈Fractus V〉를 가지고 2017년 10월 11일부터 14일까지 독일 함부르크의 공연장 캄프나겔의 무대를 찾았다.
 〈Fractus V〉는 유대인계 미국인 언어학자이자 정치 철학자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현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의 물결 그리고 그 조작을 중심으로 현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물음을 던진다.
 쉐르카위는 촘스키의 말을 빌려 〈Fractus V〉를 “개인이 넘쳐나는 정치적, 사회적 선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모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뉴스들의 폭격을 받고 있다. 때문에 정보를 습득하는 것은 이 폭격이 내포하고 있는 것을 여과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믿으라고 말해지는 것들에 저항하기 위한 강렬한 행동이다”라고 표현한다. 

 


 〈Fractus V〉에는 쉐르카위를 포함한 5명의 무용수와 5명의 음악가가 올랐다. 총 10명의 남성 공연자들은 마치 균열이 일어나 조각조각 깨트려진 듯한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이내 그들은 무대 위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는다. 무대 뒤쪽에는 다섯 개의 의자, 무대 양 옆쪽으로는 음악가들이 배치되어있는 구조다.
 한 무용수가 무대 중앙에 선다. 촘스키의 텍스트를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우리가 소화할 수 없는 정보들 혹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정보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우리의 생각은 얼마나 중립적일 수 있을까? 사회의 어느 곳에서 개인의 책임이 시작되고 끝나는가?
 철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을 곱씹는 중 무대는 움직임 장면으로 변환된다. 이야기를 하던 무용수 뒤에서 스멀스멀 팔이 뻗어 나온다. 5명의 무용수들은 마치 하나의 몸에서 여러 팔이 뻗어 나오는듯한 그림을 그려내고 마치 ‘시바신’ 혹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기를 뿜어내는 듯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열개의 팔, 하나의 몸이 해체되고 나면 몸은 하나, 팔은 두 개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다. 하지만 무용수들은 수동적인 몸에 역동적인 팔을 장착하여 오히려 손과 팔의 움직임으로 시선을 이끈다.
 힌두교의 대신인 ‘시바신’은 ‘파괴의 신’이라고도 불린다. 광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제 3의 눈을 통해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만 반면에 온화한 면도 지니고 있어 이해하기가 어려운 신이라고 불린다. 쉐르카위가 정보와 조작, 그리고 파괴라는 주제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신을 선택한 것 그리고 이것을 움직임의 모티브로 이용한 것이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었다. 정보야말로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물론 이 장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기대치 못한 지점이 발생했다. 불교, 힌두교에 대한 경험이나 정보가 거의 없는 유럽의 관객들에게는 ‘시바신’이 아닌 손과 손이 이어지면서 표현되는 그림들 즉, 왕관, 칼, 뿔, 그물 등의 표현으로 인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셰르카위는 명백한 폭력을 표현한다. 한 무용수가 총을 쏘아대고, 총알을 맞는 이는 쓰러진다. 그러나 이내 다시 일어나 총을 맞는다. 피할 곳 없는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총알이 꽂히는 순간, 그 반동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잔혹하다. 언제까지 총알을 쏠 셈인지 슬슬 걱정이 시작되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하나의 총은 두 개로 늘어나고, 양손에서 총알이 쏟아진다. 그리고 다른 무용수까지 가세하여 이미 너덜해진 몸에 - 물론 몸에 총구멍이 난 것도, 무대 위에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지만 - 총알을 쏟고 총성은 끊이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 보이는 잔인함은 발전을 거듭하여, 잔학무도함으로 끝을 맺는다. 수많은 총알을 쏟아낸 2개의 총은 카메라가 되어 지쳐 쓰러져 있는 몸의 형상을 찍어낸다. 이 장면은 관객 모두에게 불편함을 안기며 우리가 살아나가고 있는 사회와 정치 상황의 처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쉐르카위의 작업이 줄곧 서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균열이 생긴 무대가 갈라져 각각의 조각으로 변환되는 장면의 구성은 유창하다. 하나의 무대는 균열을 통해 조각이 되고, 균열된 조각은 몸을 일으켜 작은 벽이 된다. 공연자들에 의해 이동되는 조각들은 뱃길을 그리는 동시에 작은 돛단배를 연상시킨다. 조각들이 하나의 구도를 만들며 서있을 땐, 작고 뾰족한 세계에 갇혀 버린 고립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줄지어 선 오브제는 ―그것이 결국 인간을 깔아뭉개는 도구로 변환되지만― 아름다운 도미노를 보여주며 해체된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온 다섯 무용수의 조합 역시 흥미롭다. 서커스, 린디 홉 스타일, 플라멩코, 힙합과 브레이크까지 서로 다른 춤 언어의 대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이 묘한 조합의 대화를 보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이런 조합은 쉐르카위가 선택한 음악가와 그들의 음악에서 빛을 발한다.
 무대에 함께 오른 5명의 남성 음악가는 일본 퍼커셔니스트, 한국의 거문고 연주가, 인디안 음악가와 콩고 음악가다. 이 다섯 음악가는 모두 전통 음악 분야에서 전문가이면서도 크로스 장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주는 구성은 움직임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인지되었다.
 하지만 ―필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 무엇보다 귀를 사로잡았던 파트는 역시나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의 파트였다. 벌써 쉐르카위와 여러 번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박우재는 전통적인 악기인 거문고를 새롭게 연주하는 음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자신만이 발견한 새로운 주법이나 전자 음악의 주법 등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어 남들과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는 “술대를 놓고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기도 하고, 현에 다른 무언가를 붙여보기도 했으며, 악기를 분해하고 해체하는 등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행위를 했다. 그것이 찾아지면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지금 이상한 변이와 이상적인 변이 사이에 서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우재는 무대에서 활보했다. 거문고와 가야금 뿐 아니라 하프를 닮은 이름 모를 악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옮겨가며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양 악기인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더니 노래까지 불렀다. 악기 연주도 연주이지만, 한국의 구전민요인 ‘파랑새야’와 ‘뱃놀이야’를 구성지고 격조 있게 전달하는 박우재의 소리와 가락은 시원하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쉐르카위는 〈Fractus V〉에 대하여 “촘스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애원은 미디어를 지배하고 조작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나의 요구, 즉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재발견하려고 하는 요구와 맞물린다. 이 과정은 서서히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급진적인 균열과 과거를 지나가도록 내버려둘 때 일어난다. 진화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고 큰 혁명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라고 설명한다.
 공연이 끝난 후 있었던 아티스트 토크에서 역시 쉐르카위는 자신의 작업은 물론 철학에 대한 확고함을 보여주는 말들을 뱉어냈다. 어떻게 끊임없이 많은 작업들을 해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나는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전의 작업에 대해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 모든 작업들이 다음 작업을 위한 휴식이고,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항상 머리 속에 있는 컵을 비워내야 한다. 최고의 교육은 배우는 것을 지속하는 것이다. 만약 반복으로 이루어진 고리 속에 갇혀 산다면 우리는 변화에서 오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며 〈Fractus V〉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가 안무가 스스로의 작업과 삶의 철학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었다.
 〈Fractus V〉에는 서로 다른 국적의 공연자와 스타일, 음악 등 수많은 서로 다른 것들이 뒤엉켜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정체성들은 강렬하고 드라마틱하게 대화를 나눈다. 안무가 쉐르카위는 특정한 것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무대 위의 전형적인 구도와 앵글은 물론 몸을 변화시킨다.
 그가 내비친 스스로의 철학 그대로 그는 자연스러운 성장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단단하고 강해지기 위한 과정을 서늘하면서도 강렬하게, 따뜻하고 뭉클하게 풀어낸 매끈한 ‘균열’을 선보였다. 
정다슬
독일 함부르크와 한국 서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성질과 개인이 지니는 가치를 주재료로 하는 작업을 추구하고, 안무의 개념과 가능성을 넓히는 데에 관심을 두고 타장르와의 협업도 지속하는 중이다. 춤웹진에서는 유럽 통신원으로서 2013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Filip Van Roe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