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표지공연_ 슈투트가르트발레단 강수진 은퇴공연 〈오네긴〉

1. 슈투트가르트 현장 스케치

서운하지 않다. 또 다른 일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장광열_춤비평가


 타티아나가 사랑을 포기하는 마지막 장. 오래도록 간직해 해어질 대로 해어진 사랑의 편지를 품에 안고, 비탄에 가득 찬 여인의 찢기는 마음을 움켜쥐며 눈물 흘릴 때 1천4백 명 관객들은 하나같이 그녀와 함께 전율했다. 7월 22일 밤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
 믿기지 않았다. 강수진의 쉰 살 몸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녀의 춤과 연기는 가슴 속을 후벼 팠다. 막이 채 닫히기도 전에 극장이 무너질 것 같은 박수와 발 구르는 소리, 브라보를 외쳐대는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수십 송이의 꽃들이 무대 위로 던져졌다. 미소로 답하던 강수진의 얼굴 위로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듯 강수진은 두 얼굴을 감싸더니 오열했다.
 커튼콜은 계속 이어졌다. 강수진 혼자 무대에 남게 되자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의 신호로 관객들은 일제히 A3 크기의 페이퍼를 그녀를 향해 펼쳤다. 일층 이층 삼층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은 순식간에 붉은색 하트와 “DANKE SUE JIN”(감사해요 수진)이란 글자로 뒤덮였다. 동시에 단원들과 스태프들은 차례로 장미꽃 한 송이씩을 강수진에게 건넸다. 아이를 껴안은, 지금은 은퇴한 단원들까지 족히 일백 명은 훨씬 넘어 보였다. 한 신사복 차림의 남자와 맞닥뜨렸을 때 강수진은 화들짝 놀라며 더 세게 그를 포옹했다.

 

 



 수십 개의 풍선이 쏟아지고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 할 거에요”라고 쓰인 스크린이 내려오면서 무대는 화려하게 변신되었다. 관객과 단원, 스태프들이 즉석에서 함께 연출한 이 깜짝 이벤트는 장관이었다. 기립한 관객들은 강수진의 이름과 브라보를 연호하며 20분이 훨씬 넘게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막이 내린 뒤. 극장 무대. 단원들과 스태프들은 타티아나의 초상화 뒷면에 자신들의 싸인을 담아 강수진에게 전하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강수진은 단원들과 극장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멘트를 전했다. 한국에서 강수진의 공연을 보러 온 분들과의 시간도 이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보낸 축하 꽃다발도 베를린에 있는 한국문화원 권세훈 원장에 의해 전해졌다.

 

 



 안무가 존 크랑코가 만든 작품 중 가장 빼어난 발레로 꼽히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간판 레퍼토리 〈오네긴〉은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이날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슬픔과 절망감, 기쁨과 회한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연기력, 주인공의 심리를 담아내는 감정표현과 춤과의 조합은 일품이었다. 음악을 타고 흐르는 제이슨 레일리와의 호흡은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때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결코 쉽지 않은 크랑코의 안무를 그녀는 온 몸으로 녹여냈다. 세 차례의 파드되에서 보여준 강수진과 제이슨의 앙상블과 감정의 교감은 춤이 얼마나 사람의 감성을 저 깊은 곳에서 터치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슈투트가르트로 올 것이라고 알리지 않은 채 무대 위에 장미 꽃 한송이를 들고 깜짝 등장했던, 강수진과 함께 적지 않은 작품에서 춤추었던 마레인 레데마크(네덜란드 국립발레단)는 “암스테르담에서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와야만 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공연이다. 강수진은 특별한 무용수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공연에서도 오네긴 역을 맡았던 제이슨 레일리는 “믿기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최고다. 앞으로도 수진이 원한다면 어디서든 같이 춤추고 싶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중년의 남성 관객 Rudy Speier는 “강수진 공연을 여러 번 보았다. 그녀는 오늘 춤춘 여성 주인공의 배역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녀보다 뛰어난 타티아나를 본적이 없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다시 강수진의 타티아나를 만나서 기쁘다”고 말했다.
 올가 역으로 출연, 단원들과 작별을 고할 때 강수진이 누구보다 오래 안아주었던 강효정은 “아킬레스건을 다쳐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지만 오늘 공연만큼은 꼭 하고 싶어 근육주사를 맡고 출연했다”며 “강수진 선생님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무용수들에게 끼친 영향은 정말 크다”고 덧붙였다.
 공연 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마련한 늦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마주한 강수진의 주치의 볼프강 헤르프는 “그녀의 몸은 의사가 고쳐주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훈련을 통해 다져진 몸이고,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알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동안 춤출 수 있었다”라며 그 비결을 털어놓았다.

 

 



 공연을 지켜본 황선혜 국립발레단 이사장(숙명여대 총장)은 “예술가로서의 피날레를 해외무대에서 이렇게 갈채 속에서 끝낼 수 있다는 것, 완전한 자기희생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을 성취해낸 강수진의 존재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주한 스웨덴 대사를 역임하다 지금은 독일로 옮긴 Danielsson 대사는 “강수진은 타티아나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석해 내는 것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작별을 고했다.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 그녀는 물론 그녀를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로 만든 우아함, 깊은 표현력, 완벽한 테크닉, 그리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녀만의 표현력까지, 그 어떤 것도 떠나 보낼 수 없는 듯했다. 이제 강수진의 발레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한국에서 이어지는 것에 대해 한국의 발레팬들은 누구보다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수진의 커튼콜 모습을 보며 객석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던 박인자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장은 “30년 전 5월은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단원이 된 날이다. 입단 이후 낯선 상황에 대한 부적응에서 오는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그녀는 피눈물 나는 연습에 집중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발‘을 만들어냈고, 그녀의 튀어나오고 발톱이 뭉개지고 살은 갈라져 흉하게 일그러진 발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감동하고---. 발끝에 운명을 매달고 달려온 강수진의 삶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다”며 “우베 숄츠, 글렌 테틀리의 대표작과 2015년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이어 올해 마르시아 하이데 안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레퍼토리 확보와 여기에 단원들의 예술성 향상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 6개월 동안 예술감독으로서 강수진이 보여준 성과는 눈부시다.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오직 발레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얻어낸 자양분을 이제는 그녀의 고향인 대한민국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오롯이 베풀어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내길 바란다. 그녀가 30년 동안 일궈낸 국제적인 명성과 인맥이 앞으로 한국 발레의 세계화에 큰 디딤돌이 될 수 있음을 이날 공연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한국인 관객들의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강수진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직장에서 휴가를 내고 왔다는 이숙경은 “오늘 공연은 50년에 가까운 그녀의 인생에서 쌓아온 연륜과 30년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활동하며 다져온 테크닉과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감정선, 즉 모든 내공을 폭발적으로 뿜어낸 공연이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김해리는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강수진 씨의 공연을 보아 왔다. 나에게 무용가를 꿈꾸게 했던 소중한 분의 인생의 한 부분을 함께 한 것 같아 너무나 감격스럽다. <오네긴>은 완벽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대표작임을 강수진 단장은 오늘 공연을 통해 보여주었다. 평생을 절제된 삶을 산 강수진씨에게 정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친구 세 명과 함께 한국에서 일부러 강수진의 공연을 보러왔다는 김근임은 “사랑스럽고 어여쁜 십대부터 우아한 귀부인까지 강수진씨의 타티아나는 공연 내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너무나 가볍고 우아한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 연습량때문일까 생각하니 존경과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고별 무대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에 감격하면서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강수진씨의 발레를 보면서 그간 참 기쁘고 감사했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강수진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남긴 유산은 결코 적지 않다. 그녀는 또 한국 무용수들을 위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라고 말했다.

 

 



 독일 시간으로 7월 21일 은퇴공연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직전인 강수진에게 단 한 개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심경은? “하루 남았다. 타티아나만 생각하고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까---.”
 섬뜩했다. 마지막까지 작품에 몰입하는 고도의 집중력은 여전했다.
 은퇴 공연을 마친 후인 7월 22일 밤. 마지막 공연이 끝난 지 2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다. 이제는 주는 것만 남았다. 나는 오늘 내가 춤추고 싶은 대로 추었기 때문에 이 느낌이 아주 좋다. 춤출 수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하다.”

 공연이 끝난 지 36시간이 지난 24일 낮 강수진과 그녀의 남편 둔치 소크만과 오페라 극장 근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 편안해 보인다.
“이제 끝났다. 이제 춤을 내려놓고 나니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게 아니라 운이 좋게도 누군가에게 내가 뭔가를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 이곳에 와 무용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얼마 전에 있었던 넥스트 제너레이션 공연에서 국립발레단 무용수 강효영의 안무 작품에 대해 하나같이 칭찬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국립발레단이 있는 줄 몰랐는데 강수진 단장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운이 좋았다. 올해가 리더 앤더슨 예술감독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취임한지 20년이 되는 해여서 이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공연들이 준비되었고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그 중 하나였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이후 단원들에게 안무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시작한 기획 프로그램에서 발표된 작품이었는데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다.”

- 슈트가르트발레단의 종신 단원이니 사실 발레단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춤을 추지 않아도 계속 단원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어떤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을 때 무대를 떠나고 싶었다.” 

-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단원으로는 은퇴 공연을 했지만 무용수로서 강수진은 아직 춤출 수 있지 않은가?
“무용수 강수진---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 이제 독일 생활은 어떻게 되는가?
“아직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의 임기가 남아 있다. 지금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남편과 함께 독일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나보다 남편이 더욱 한국에서의 생활을 원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늘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것을 한국에서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남편의 그런 마음의 결정이 고마울 뿐이다.”

 

 



 30년 간 활동한 무용수를 위해 특별히 단원들과 행정 기술 스태프들이 강수진에게 헌정한, 7월 22일 단 한차례의 공연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해외로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가 30년 동안의 프로 무용수로서의 치열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한국인 댄서들이 세계 춤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강수진은 많은 무용수들이 생각하는 시간, 그 이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커리어를 지속하였다.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그녀의 모습에는 표범과 같은 강인함과 나비와 같은 연약함이 동시에 담겨있다.
 이날 강수진이 흘린 눈물은 갈채 받는 화려한 스타의 뒷면에 숨겨진,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겨낸데 대한 회한의 눈물일지 모르지만, 관객들은 한 예술가가 성취한 고귀한 인간승리로 기억할 것이다. ‘강수진’이란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무대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가 얼마나 고양되고 있는지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다.

사진제공_슈투트가르트발레단/장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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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슈투트가르트 자이퉁〉지 고별 공연 앞둔 강수진 인터뷰

“그건 기쁨의 눈물이겠죠”

 


 


방금 막 연습을 마친 강수진이 다리에 워머를 휘휘 감은 채로 대기실에 들어왔다. 찜통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여름날이었지만 무용수는 더운 것을 좋아하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돌아오는 금요일, 이 한국인 무용수가 〈오네긴〉의 타티아나로 슈투트가르트의 관객들에게, 그리고 무대에 작별을 고할 때 그곳에는 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의 눈물도 함께 흐르고 있지 않을까.

강수진씨, 이제 곧 무용수로서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계신데 이번 공연이 정말 마지막인가요?
제가 마지막이라고 얘기했다는 건 정말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전 제가 이제까지 발레리나로서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던 일들과 행운들에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슈투트가르트의 팬들이 보내 주신 사랑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나이가 거의 50이 다 되었는데요, 여기에서 〈오네긴〉의 타티아나로서 저의 마지막 공연을 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기만 합니다.

이 역할로 데뷔하셨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죠. 그때는 Marcia Haydées 의 예술감독직이 끝나갈 때였어요. 제가 연습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딱 열흘밖에 없었죠. 첫 파트너였던 Benito Marcellino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다른 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춤추었고, 이제 Jason Reilly가 저의 마지막 파트너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고 믿음이 가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제 커리어의 마지막을 그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파트너들로부터 늘 많은 것을 배웠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네요.
“고마워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그 어떤 때보다 많은 눈물을 흘리시겠죠?
〈오네긴〉의 마지막 장면에서 타티아나가 에너제틱한 제스처를 취하며 무대가 끝날 때, 매 공연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연히 저의 마지막 공연이니 더 많은 눈물이 흐르겠지요.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될 이 순간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왔고 이번 공연을 타티아나의 역할로, 또한 많은 훌륭한 무용수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게다가 7월 22일은 제 남편의 생일이기도 해요. 사실 발레리나와 함께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무용수로서의 삶을 그리워하진 않으시겠어요?
아니요, 전혀 그리워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제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마지막이 찾아왔다면 힘들었을 테고, 공연 다음날인 7월 23일에는 마음에 구멍이 난 듯 허전했겠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무용단 단장으로서 100여명의 무용수들을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그리워 할 여유는 사실 없답니다.
또한 그 동안 저의 커리어는 제가 늘 꿈꿔왔던 대로 가득 채워졌어요. 그 동안 존 크랑코가 재해석한 줄리엣, 카타리나, 타티아나, 카르멘 등 중요한 역할들을 춤출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그저 춤만 추기를 원했을 뿐이지 이런 큰 역할들을 출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으니까요. 지금은 그저 앞으로 펼쳐지게 될 저의 새로운 삶이 궁금할 뿐입니다. 물론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트레이닝을 해나가겠지만 지금과 같은 부담감은 없겠죠. 7월 23일부터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 말은,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이 공연만을 위해 트레이닝을 해오셨단 건가요?
저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기도 하고 특히 공연기간에는 마지막 공연까지 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것은 관객들에 대한 예의이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할 공연이 단 하나뿐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다른 일들을 시작하기 전, 아침 일찍부터 저만의 트레이닝을 마칩니다. 지금 저는 보통사람으로서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쁩니다. 하루를 일이 아닌,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고 남편과 함께 아침을 먹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 같은 일상 말이에요.

그 동안 존 크랑코의 타티아나를 당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꼽아왔습니다. 강수진씨에게 이 여성과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번 이 역할을 춤출 때마다 저는 그녀의 일부가 되곤 합니다. 저는 늘 타티아나라는 역할과 감정적으로 연결이 되어있고 특히 제 나이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돼요. 작품에서 그녀는 아주 강한 여성이고 그녀가 표현하는 제스처에는 섬세함과 정확함이 있죠. 저 역시 제 삶을 살고 끊임없이 저의 길을 걸어 나갑니다. 실제 삶에서는 발레만큼 드라마틱하게는 아니겠지만 누구나 가끔 무언가와 작별을 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고요.

원숙한 무용수로서의 지금, 이 역할에 다르게 접근한다는 건가요?
예전에는 공연 전에 꼭 푸쉬킨의 시를 읽고 모든 감정들을 더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했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그냥 빠져들어 보려고 해요. 안무가인 존 크랑코가 이미 모든 것을 아주 단순하고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일이죠. 저는 그저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 되니까요. 모든 발레리나의 꿈이기도 한 이 역할에 대한 기억은 항상 저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거예요. 그 기억이 생각나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아마 기쁨의 눈물일거예요. 고마워요, 존 크랑코!

슈투트가르트에서 보낸 시간 동안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상은 괴로운 일들과 전쟁, 테러, 범죄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극장에 발을 들여 놓을 때마다 저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들어간 것 같아요. 이 장소는 저에게 마치 파라다이스와 같아요. 무용수들의 삶에는 늘 예술이 있고, 그 덕분에 우리는 함께 평화로운 기운을 만들어내죠. 트레이닝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한 지붕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에 이곳에는 아주 특별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시간들이 현재 단장으로서의 역할에 도움을 주고 있을까요?
슈투트가르트에서 어깨 너머로 늘 많은 것을 배웠어요. Marcia Haydées, Reid Anderson 뿐 아니라 리허설 코치님들과 선생님들로부터도요. 단장으로서의 저는, 행정부의 사람들은 물론 다방면의 사람들과 만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누구와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어요. 그건 분명 제가 이곳에서 쌓을 수 있었던 경험들 덕분이라고 믿어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죠. 제가 여기에서 배운 것은 인생은 쉽지 않다는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 손 안에 있고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죠.

슈투트가르트와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나가실 예정인가요?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으니까요. 저는 슈투트가르트에 자주 오고 공연장도 찾을 거예요. 예를 들면 안무가 Demis Volpi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서울로 날아와 우리 단원들에게 레퍼토리 작품을 가르쳐주기도 했으니까요. 저에게 슈투트가르트는 늘 중요한 부분으로 머무를 겁니다. 여기서 저는 새로운 것을 위해서 전통은 물론이고 단단한 기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런 견고함은 슈투트가르트만의 특징이죠. 정직하고 정확하고 올곧은 것이요, 저 또한 그렇고요. 슈투트가르트의 관객들이 늘 저를 열렬히 지원해 주신 것처럼 저 역시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해 나가겠습니다. 늘 곁에서 저를 지원해주신 Reid Anderson에게도요. 다가오는 그의 기념일을 축하하고 늘 그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년이면 50세가 되시는 데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실 수 있으신가요?
아마 늘 젊다는 기분으로 생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 주위에는 늘 젊은 무용수들이 있으니까요. 새로운 세대와 교류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열어줍니다. 발레도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함께 흘러나가니까요. 저 역시 트레이닝을 할 때 땀이 나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슈투트가르트와 서울 집에 작은 사우나를 설치했지만 사실 움직이면서 땀을 흘리는 것이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에는 훨씬 더 좋지요.

* 2016년 7월 18일자

2016.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