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제2회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함께 한 열린 춤 잔치
방희망_춤비평가

 노원문화예술회관이 주최하고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가 주관하는 제2회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예술감독 장광열)이 6월 7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되었다. 7일부터 3일 동안은 커뮤니티 무용 워크샵이 열렸고, 8일부터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을 번갈아 가면서 공연이 이어졌다.
 노원문화예술회관은 서울에서 공연의 중심지라고 부를 수는 없는 위치에 있지만,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도로에서 공연장 입구까지 굉장히 가까워 심리적 거리가 적고 문턱이 낮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도, 중심부의 문화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 좋은 공연물이 절실히 필요한 극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코믹댄스페스티벌 같은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노력은 좋은 시도로 보인다.

 

 



 8일과 10일의 대공연장 공연은 두 시간을 넉넉히 채우는 제법 풍성한 볼거리가 있었다. 8일의 개막공연에는 요즘 해외에서 각광받는 안무가 김재덕의 〈다크니스 품바〉가 60분의 러닝타임으로 코믹 버전으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한때 최장기 최다 관객동원으로 기록을 세웠던 일인극 〈품바〉도 있었듯이 세태를 풍자하고 애환을 노래하는 품바는 우리 전통유산 중 하나다. 검은색 수트로 통일한 의상에 각 잡힌 안무, 라이브 밴드와 소리꾼을 동원하고 김재덕 본인까지 창에 가세해 규모 있는 공연을 펼쳤다.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김재덕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대적으로 스타일링 하는데 치우쳐 작품이 다소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통해 꾸준히 즉흥작업을 소개해온 프랑스의 Emanuel Grivet는 한국의 무용수 강수빈을 데리고 그의 체격과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로봇에게 움직임 언어를 만들어준다는 내용의 짧은 작품 〈No Title〉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아이디어로 쉽고 간결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동안의 즉흥작업을 통해 사물의 핵심적인 특성을 포착해내는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MOKK는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여자아이들을 무대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Dum Spiro, Spero〉(안무 Sumire Muramoto)를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10일 공연에도 한 번 더 무대에 올랐는데, 기존에 볼 수 없이 시끄럽고 한바탕 난장 같은 공연에 당혹스러웠던 첫날보다 다시 한 번 더 보았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신체와 속옷을 건드리고 신발을 던지거나 구르는 등 유치하게 보일 수 있는 동작들로 점철되면서도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이 생각나는, 건강한 신체의 활짝 열린 율동감이 인상적이었다.

 

 



 10일에는 스위스의 Beaver Dam Company의 〈Murky Depth〉작품을 필두로 6개 단체가 인터미션을 두지 않고 저녁 시간을 빼곡히 채웠다.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8일보다 노년층, 혹은 자녀를 동반한 부모 등 일반 관객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 것이 보였다. 〈Murky Depth〉는 호페쉬 섹터 무용단 등에서 활동했던 안무가 Edouard Hue의 작품으로 유쾌하면서 화려한 몸짓으로 남녀의 대화를 풀어내었다.
 발레를 기반으로 한 국내 창작단체의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무용단과 유회웅리버티홀이 그 주인공이다. 다크서클즈의 〈노련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지젤〉의 음악과 구성을 갖고 와 코믹하게 비튼다. 안무가 김성민은 빌리들의 위계 서열, 춤추도록 강요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 크고 작은 구성단위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가 위협에 못 이겨 튀튀 스커트를 입고 지젤의 스텝을 밟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면서 젠더의 문제도 살짝 건드렸는데, 뒤이은 헝가리 Batarita Dance Company의 〈Pleasure on the Edge〉 역시 안무가를 포함 두 명의 여성 무용수와 한 명의 남성 무용수가 쫙 달라붙는 애니멀 프린트의 여성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젠더 비틀기로 웃음을 유발시켰다.

 

 



 유회웅리버티홀의 〈비겁해서 반가운 세상〉은 작년 여름에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베테랑〉처럼 갑을 관계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유회웅은 권력을 등에 업고 목에 힘이 들어간 밉상 캐릭터의 얼굴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공기를 불어넣어 빵빵하게 부풀린 비닐옷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는데, 신체를 과장함으로써 캐릭터를 조롱하기도 하고 주저앉았을 때 사지가 접히는 것을 완전히 가리면서 인체가 축소되어 보이는 착시효과도 냈지만 무엇보다 모든 동작들이 귀여워 보이면서 풍자가 무겁지 않고 유쾌해지도록 만드는데 한 몫 했다.
 마지막 무버(Mover)가 올린 〈온 더 스노우〉는 제목 그대로 동계 올림픽 종목들에서 착안한 작품이었다. 다섯 무용수의 몸이 스케이팅, 봅슬레이, 스키, 아이스하키 등의 특징적인 동작들과 자세를 연달아 꾸미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무용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이라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 건강한 웃음을 갈망하지만, 여유가 없는 세태를 반영하듯 코미디도 억지웃음을 쥐어짜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에서는 슬랩스틱에 의존하는 작품이 거의 없었던 것이 놀라우면서 다행한 부분이었다.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일상에서 반 발짝 정도 나아간, 소소하면서도 나름의 주제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선보여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고루 볼 수 있는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코드도 통할까 싶은 장면에서도 객석의 웃음이 연달아 터진 데서 긍정적인 소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해외와 국내 직업무용가들의 작품들로 꾸민 대공연장 공연과 달리 9일에는 소공연장에서 공모 선정팀 이종현의 〈잠에서 일어나세요〉와 일반인이 참여하고 즐기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몸꿈춤 예술치유창조팀, 워크숍 커뮤니티 무용단 등 노원구 주민들이 출연한 커뮤니티 공연은 이 축제의 성격을 새롭게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요즘 많이 확산되고 있는 커뮤니티 댄스는 무엇보다 ‘코믹’이라는 주제로 포섭될 때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하다. 7세부터 77세까지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무용의 체험을 통해 생활에서 예술로 나아가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욕구가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원국제코믹댄스페스티벌의 이러한 프로그램은 무용축제가 전문 무용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어우러지는 자리가 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른 축제에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워크샵을 개최하지만 장소가 공연 중심가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타깃이 불분명해져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생활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구 단위의 지역에서 치러지는 축제라 참여자들의 친밀감과 동질감이 높다는 것이 ‘코믹’이라는 축제의 성격과 들어맞아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이렇게 구립 문화예술회관에서 비교적 수준 높은 국내외 단체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차려낸 것도 관객 서비스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2회째를 맞이하지만 축제가 앞으로 더 건강한 춤 문화를 확산시키며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2016. 06.
사진제공_최시내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