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스위스 현지 공연_ 오하린 나하드 〈Last Work〉 & 미셸 안느 드 메이 〈Cold Blood〉
사실적 메시지, 미묘한 시적 정서
김혜라_춤비평가
 그들만의 보이콧 〈Last Work〉

 파란 원피스를 입고 무대 한 편 트레드밀에서 뛰는 댄서는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한 시간여 동안 무대에서 벌어지는 은밀하고 격렬한 움직임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러너(runner)는 오하린 나하드의 작품 〈Last Work〉(12월19일 BFM극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오하린 나하드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바체바무용단은 자신들만의 움직임(Gaga) 접근방식으로 신체 탐구에 주력하는 대표적인 이스라엘 단체이다. 그들의 명상에 가까워 보이는 동작들, 쉼 없이 움직이는 유연한 흐름은 보는 이를 감각적인 미의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발레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테크닉은 춤의 본질적인 쾌감을 주는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마치 몸과 정신의 정점에 다다르려는 구도자를 무대에서 만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물론 오랜 세월 수련한 가가테크닉 구사 방식이 익숙한 관객에게는 그다지 신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단체만의 독자적인 에너지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왼편 구석에서 러너는 달리기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댄서들은 연체동물이 연상되는 흐느적거리는 동작을 하며 몽롱한 분위기로 초반 분위기를 이끈다.
 이어지는 시퀀스의 흐름은 때론 격렬하게 혹은 절도 있고 질서 정연하게 군무로 응집되고 또 흩어진다. 보이지 않는 힘에 동요되고 지배받는 무리들이 보이고 흑과 백을 상징하는 이미지들, 이를테면 사제와 백색 튜튜를 입은 댄서의 은밀한 만남, 유월절 종교의식을 은유하는 장면, 퇴폐적인 장면들은 전자 음악과 함께 집단적으로 과열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일련의 장면과 속도 그리고 시선 무엇 하나 흔들림이 없는 러너와의 병치는 안무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후반부에 가면 각 댄서들의 광란의 몸짓은 저지를 당하는데 즉 테이프로 몸이 묶이고 또한 그 행위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처연한 음악이 흐르고 온몸이 묶인 댄서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가능한 범위에서 끝까지 항거한다. 무대는 구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다시금 고요해진다. 러너 또한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 있지만 백기를 들고 결박된 채로 뛰는 모습을 드러내며 작품은 끝난다.




 전작들에 비해 이번 작품 〈Last Work〉은 사실적인 메시지를 축으로 전체 흐름이 조율되었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이스라엘) 처한 정치, 종교, 윤리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이르면 안무가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2015년에 초연되었으나, 몇 년이 지난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삶에서도 작품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작년 한 해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도도한 민주주의 역사를 이어가듯이, 오하린 나하드는 작품으로 자신이 직면한 사회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외침을 무대에서 표명한 것이다. 즉 그들만의 보이콧(Boycott)이다.




 촉각적 정서를 극대화 한 〈Cold Blood〉


 장마처럼 겨울비가 내리는 제네바의 저녁 무렵 안무가 미셸 안느 드 메이(Michèle Anne De Mey)와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Jaco Van Domael)의 공동작업인 〈키스 앤 크라이〉의 후속작인 〈Cold Blood〉를 관람(1월 21일.Théâtre de Carouge)하였다. 

 

 손가락으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그려내었던 〈키스 앤 크라이〉와 마찬가지로 이번 〈콜드 블러드〉 역시 멜랑꼴리한 정서를 시각적으로 부각하여 현장에서 조밀하게 배치된 모형 셋트와 촬영기술을 토대로 융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무대 중앙 스크린으로 투사되는 영상을 축으로, 각각의 장면을 완성해가는 기술자와 퍼포머들의 치밀한 계산과 동선을 관객들은 동시에 감상하게 된다. 처음에는 다소 부산해 보이는 면에 집중력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들이 펼치는 이미지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나를 발견하며 매우 매력적인 작업방식임을 자각한다. 

 


 〈콜드 블러드〉에서는 죽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한다. 과거 역사에서 존재했던 여느 때, 황홀한 순간, 미묘한 감정들을 시적이미지와 낭송으로 완성하고자 한다고 이해된다. 주된 장면을 살펴보면, 먼저 세계2차대전 때 드레스덴 폭격사건이 남긴 삭막한 상황 묘사는 ‘공포와 죽음’을 상기시킨다. 우주선 착륙 전후를 묘사한 장면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잘 묻어났고 안개가 자욱한 거리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설레임’의 순간을 포착해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1930년대를 풍미한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 콤비의 기가 막힌 탭댄스의 묘사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에서 누레예프로 활약한 호르헤 돈을 연상시키는 붉은 원반의 열정적인 장면은 관객을 압도했다. 굳이 온몸이 아니더라도 두 손가락으로도 전체 에너지를 품어내는 장악력과 섬세함은 촉각과 시각이 접속되는 지점을 완벽하게 꿰뚫어본 것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손동작을 겹쳐 화사하고 신기한 데칼코마니 방식의 장식적인 요소는 작업의 개성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시나리오작가인 토마스(Thomas Gunzig)는 “우리가 죽기 직전에 우리 삶에 남아 있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 망막에 남아 있는 순간의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고민해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조가 담긴 〈콜드 블러드〉는 삶의 거대한 사건에서부터 찰나적 순간까지의 스펙트럼을 연출함으로써 대형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에게 미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영화감독과 안무가 부부의 마법 같은 미니어처 세계에서 삶과 죽음에 직면한 인간 몸의 유한성을 엿볼 수 있게 하였고, 죽음을 생각하며 그 이면인 생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하는 의도도 읽혀졌다. 〈콜드 블러드〉는 영화적 기법과 장치기술 그리고 손가락 춤의 시너지로 상상과 현실의 가교 역할을 완벽히 수행함으로써 촉각적 정서를 극대화 시킨 작품이라 하겠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음의 간극까지도 아름답게 묘사하고자 한 의미심장한 파편들이다.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8. 02.
사진제공_adc-geneve.ch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