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기획 SIDance Vs. SPAF 해외공연 스케치_ 2016SPAF 해외초청작 울티마 베즈
인간의 ‘관계’로 풀어낸, 사랑-본능적인 욕망
김인아_<춤웹진> 기자

 제1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2016SPAF)가 ‘무대, 철학을 담다(Philosophy in Stage)’라는 주제로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9월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펼쳐졌다. SPAF는 지난해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이관되었으나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2017년까지 2년간 한시적인 공동주최로 치러진다.
 올해는 최근 몇 년간 지속되어온 예산 삭감으로 인해 축제의 몸집을 늘리기보다 내실을 기한 작품으로 프로그래밍 방향을 맞추고 작년 22편에서 5편이 더 줄어든 총 17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무용부문은 2개의 해외 초청작, 국내 선정작 5개 작품, 창작산실 1개 작품, 한·영 합작프로젝트 1개 작품 등 총 9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고, 부대행사로 열린 제10회 서울댄스컬렉션 및 커넥션, 10주년 기념 역대수상자 공연, 관련 세미나 등이 축제에 풍성함을 더했다.
 ‘국제’ 축제의 성격과 수준을 결정 짓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해외초청작은 관객의 기대와 관심을 모으기 마련이다. 올해 SPAF는 개·폐막작으로 폴란드 연출가 크리스티안 루파의 <우드커터>와 슬로베니아 연출가 토마스 판두르의 <파우스트>를 배치하여 예년의 균형 잡힌 장르 편성과 달리 연극작품에 무게를 실은 듯 보였다.
 울티마 베즈의 작품은 이번 축제에서 춤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기대작이었다. <스피크 로우 이프 유 스피크 러브(Speak Low if you Speak Love)>라는 긴 제목의 작품은 지난 2013년 <왓더바디 더즈낫 리멤버(What the Body does not remember)>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안무가 빔 반데키부스가 원작에 담은 느낌을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 별도의 한국어 제목 없이 음차 표기되었다.

 

 



 ‘사랑을 말한다면 낮은 목소리로’와 같이 번역될 수 있는 이 작품은 기쁨, 슬픔, 분노, 질투, 갈등과 같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랑에 관한 갖가지 감정의 단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사랑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는 것을 단숨에 직관할 수 있다.
 <스피크 로우>를 강렬하고 자극적인 인상으로 이끄는 것은 단연 고도로 훈련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다. 도입의 10여 분간 무용수들은 얼굴을 베일로 가린 채 정확하고 빠른 회전과 온몸을 내던지고 받아내는 듀엣의 움직임, 때로는 몸싸움처럼 뒤엉킨 의도된 접촉을 통해 놀라운 테크닉을 구사한다. 무용수들의 면밀한 호흡은 시각과 청각의 감각을 예리하게 건드리는 탭댄스를 응용한 군무, 이어지는 에로틱한 접촉 움직임에서도 고스란히 유지된다. 이때 남녀 구별 없이 모두가 적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군무나 동성애를 표현한 듀엣 춤으로 젠더의 규범을 벗어난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운 성 역할을 제시하기도 한다.

 

 



 벨기에 현지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만큼 영상작업에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반데키부스는 기존작에서 영상매체를 긴요하게 활용해왔다. 영상을 배제한 채 넓은 스펙트럼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는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극장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움직임과 공존해야하는 음악과 사운드는 한층 강화되었다. 기타, 베이스, 드럼을 비롯한 퍼커션이 어우러진 사운드는 칠흑 같은 어둠의 음산함을, 때론 리드미컬한 자유분방함을 표출하며 에너지 넘치는 움직임과 뛰어난 조화를 선보인다.
 작품에서 유일한 싱어이자 액터인 여성 퍼포머의 소리도 특별하다. 클래식과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드는 노래, 기묘하고 독특한 구음에서부터 관객의 허를 찌르는 재기발랄한 한국어 대사까지 그녀는 작품에서 전방위로 활약하며 무용수의 움직임과 뮤지션의 음악을 한층 긴밀히 접합시킨다.
 여러 인상적인 이미지들 가운데 오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여성 무용수가 자신의 몸을 로프로 동여매고 한쪽 끝을 객석으로 던져 자신을 끌어당기게끔 하는 것이었다. 첫 장면에서 관객을 낚으려고 던져진 로프와 정확히 상반되는 연출이다. 객석의 누군가가 로프를 잡아당겨 여성 무용수를 무대 아래로 떨어뜨리고 만다. 옭아매는 속박과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행태, 구속과 종속을 오가며 반데키부스는 사랑이라는 강렬하고도 본능적인 욕망을 인간의 ‘관계’로 예리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무용공연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1시간 45분의 러닝타임 동안 반데키부스는 빠르거나 느리게 흐름을 조절하고, 가볍거나 무겁게 재빨리 분위기를 변환하는 등 노련하고 능수능란한 연출력으로 몰입과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무용수들의 강도 높은 테크닉과 면밀한 움직임은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끔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2003년 <블러쉬>, 2005년 <순수>, 2008년 <슈피겔-거울>, 2013년 <왓더바디>에 이어 다섯 번째 내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반데키부스가 주는 자극과 충격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SPAF에서 선보인 <스피크 로우>는 동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춤을 제시하며 그의 흔들림 없는 위치를 입증해냈다.

2016. 11.
사진제공_2016SPAF/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