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취재_ 탄츠 플랫폼(Tanz Plattform 2018 Essen)
사회적 이슈와 미학적 담론을 이끌어낸 독일 현대춤의 장
김혜라_춤비평가
독일 컨템포러리 춤의 방향성을 진단할 수 있는 탄츠 플랫폼이 3월 14-18일 열렸다. 본 축제는, 1994년 베를린에서 시작하였으며, 지난 2년간(2015~2016년 10월) 독일에서 상연된 공연들 중 선발되며 2년에 한 번씩 도시를 돌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에센(Essen)의 졸페라인(Zoiiverein)을 중심으로 6개 극장과 400여 작품 중 엄선된 13작품이 선을 보였다. 에센이란 도시는 현대춤에서 한 획을 그은 피나 바우쉬와 그녀의 스승인 쿠르트 요스가 수학한 폴크방 학교로 알려진 곳이다. 또한 1970년대 우리나라 개발시기 외화획득을 위해 파견된 광부들이 일했던 탄광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2001년 유네스코 인류유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졸페라인 탄광소는 골조만 유지된 채 뮤지엄, 디자인센터를 비롯한 문화복합공간으로 변신해 있다. 필자는 루르 지방 탄광 역사의 산실인 박물관을 돌아보며 한국 광부들의 노고와 맥을 같이한 근현대사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었다. 

 


 필자는 5일간 전체 13작품 중 10작품을 관람하였기에 전체를 분석하기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인상은 춤에 대한 미학적 담론을 이끌기에 충분한 급진적인 작품들이 눈에 띠었다는 점이다. 또한 탄츠플랫폼에 선택된 안무가들의 국적이 다양했으며 독일 안무가만이 아니라 미국, 브라질, 필리핀, 프랑스 등 출신들의 작품이 꽤나 많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독일이 유럽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난민수용문제 등 정치적인 포용력을 예술문화정책에서도 강조하고자 한 의도로 읽혔다.




공상과 그로테스크 영역을 춤으로 흡수한 작품들


먼저 이번 축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클라우디아 보세의 〈the last Ideal Paradise〉와 에스더 살라몬의 〈Monument 0.5: The Valeska Gert Monument〉이다. 두 작품 모두 공상과 그로테스크 영역을 춤으로 흡수시킨 접근방식이 상당히 신선하였다. 학문을 비롯하여 이미 여러 분야에서 학제 간 협동관계로 영역의 구분이 불필요하듯, 이 두 작품은 춤, 연기, 소리, 미디어, 언어, 공간 연출 등 퍼포먼스 현장에서 가능한 형식을 차용, 융합시켜 놓은 작업방식을 채택하였다. 

 


 클라우디아 보세의 〈the last Ideal Paradise〉(Kokerei Zollverein, Salzlager, 3월16일 관람)는 관객을 과거 고대 사회로 초대한다. 벽에 투사되는 부족장들의 얼굴과 파괴당한 유적의 설치물, 창고 안쪽 무대에서 미래를 은유하는 행성 탐사 영상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음산한 기운의 음악, 뿌연 연기 속 미지의 땅에 발을 딛는 괴기한 퍼포머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움직임을 한다. 그리고 2층 난간에는 초점 없는 응시로 박제된 듯 서있는 무리들이 있다. 육중한 몸매의 아저씨, 가슴이 쳐진 할머니 등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역사적 시공간을 연결 짓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퍼포머들은 관객들을 창고 밖으로 인도하며 의례에 동참시키고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와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며 형형색색 비닐을 바닥에 깐다. 마치 영토를 구획 짓는 듯하다. 관객은 설 곳이 없어진다. 이것은 점령당한 혹은 획득한 영토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무리들이 “알카이다, 데모크라시, 테러...”같은 문장을 반복적으로 음성률에 맞춰 교차적으로 외친다. 그리고 이들은 흩어져 관객들에게 자신의 뿌리에 관한 자기고백을 한다. 한참이 지난 후 한 퍼포머가 확성기에 대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외쳤다. 

 

 

 클라우디아 보세의 본 작품은 역사적 공간을 영민하게 활용한 장소 특정형 전시이자 퍼포먼스이며 커뮤니티 춤까지 표방하고 있다. 2시간 30동안의 긴 시간이었지만 매 장면마다 다채로운 상상력과 조밀한 구성력으로 관객을 능동적인 퍼포머로 흡수시켰다. 안무가는 2005년 카이로와 아테네의 정치적인 이슈를 반영하고자 인터뷰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속적으로 인류학적 오브제를 모으고 비디오 작업을 박물관(Weltmuseum)에서 전시하며 2년 전부터 이 작품을 만들어 왔다고 밝히고 있다. 노력은 결과에서 나타나듯, 그녀의 오랜 준비기간과 짜임새 있는 플롯이 역력히 드러났다. 국가 간의 전쟁, 약탈, 난민, 영토, 종교, 테러....거시적인 인류사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관객에게 전방위적으로 주제를 관철시키는데 성공적이었다. 

 


 에스더 살라몬의 〈Monument 0.5:The Valeska Gert Monument〉(Musiktheater Im Revier, 3월 17일 관람) 작품은 과장과 괴기미를 작품의 중앙에 내세웠다. 안무가는 1920년대 독일의 대표적인 표현주의자이자 다다이스트였던 발레스카 거트(Valeska Gert)를 회고하며 그의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정신을 다시금 해석해서 보이고자 했다. 흰 수트에 긴 넥타이를 늘어뜨린 중성적인 퍼포머는 춤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몸짓과 소리, 부자연스러운 화장과 표정으로 연기를 한다. 경직된 얼굴과 과장된 묘사, 정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경한 장면들이 연속된다. 이어 자유에 관한 얘기를 나열한다. 사회적 질서를 빌미로 한 규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학교, 교통, 군대, 의료, 결혼, 섹스, 자국민, 재산 그리고 가족관계라는 울타리의 부자유함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녀는 과거 발레스카의 예술적 관점과 시도를 현시점에서 다시 짚어봐야 함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독일어와 독일사에 우둔한 탓에 전체작품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한 편의 공상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클라우디아 보세와 에스더 살라몬은 사회에서 컨템포러리 예술이 어떻게 역할해야 하는지, 그러한 고민의 표현방식까지도 새롭게 발견하고자 한 것 같다. 이들의 작품을 보며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으나. 문득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현대예술이 잘 이해된다는 것은 이미 현대예술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살아 있는 몸의 당위성을 확인시킨 작품들


샤샤 발츠는 작품 〈kreatur〉(Aalto-Theater, 3월15일 관람)에서 14명의 댄서와 분열된 사회에 저항하는 인간 존재의 현상을 탐구한다. 권력, 지배, 무기력, 나약함, 자유, 절제, 공동체, 고립이란 각각의 이미지를 묘사해 내었다. 특별히 디자이너 반 허펜이 제작한 의상과 몽환적인 퓨전음악은 강렬한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여기에 세련된 공간구성까지 더해져 그 어떤 불필요한 요소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망사실로 얽힌 의상과 투명 알루미늄에 비추인 댄서들의 몸은 한 인간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를 은유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울림을 주는 이미지였다.
 제2의 피나 바우쉬로 탄츠시어터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샤샤 발츠가 전작들에 비해 〈kreatur〉에서는 파격적인 담론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말로 규정하기도 쉽지 않은 인간 심연의 심리를 작품에서 노련한 댄서들과 함께 유연하고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녀는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감각과 내공을 소유한 것 같다. 

 


 보리스 샤마즈와 뮤제 드 라 당스의 24명 댄서들은 작품 〈10000 Gestures〉(Musiktheater Im Revier, 3월17일 관람)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만 가지 움직임을 각각의 댄서들이 숨 가쁘게 표출했다. 무대 뒤와 양 옆 윙까지 열어 제친 넒은 무대에서 댄서들은 각자 뛰고 흔들며 발작적으로 움직임을 토해낸다. 웅장하고 고요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음악과는 무관하게 막춤에 가까운 난장의 무대는 격정을 뿜어낸다. 움직임을 넘어 들리는 비정상적인 소리와 하울링이 번져나가며 처절하고 과격한 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성적 묘사는 물론이고 상대에게 가학적인 동작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고통의 순간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모든 동작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렸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쉼 없이 움직이는 댄서들은 갑작스럽게 해일에 쓸린 듯 객석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무정부 상태의 댄서들은 객석 의자 위로 올라가고 관객들에게 물을 뿌리기도 하며 자유를 가장한 불편한 행동을 했다. 이것들은 움직이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움직임의 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안무자는 돌이킬 수 없는 움직임, 나아가 행동으로 야기되는 고통과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윌리엄 포사이드가 안무한 댄스 온 앙상블의 신작 〈Catalogue〉(Pact Zollverein, Kleine Böhne, 3월17일)는 쇼케이스 성격의 듀엣작업이다. 2015년 창단된 댄스 온 앙상블은 작품을 통해 미와 아름다움이 젊은 댄서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성숙한 댄서들을 통해 더욱 표현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고 소개하였다. 작품에서 중년을 훌쩍 넘은 듀엣의 남녀는 거의 제자리에서 손동작을 시작으로 몸의 관절, 부위를 사용하는 움직임을 점진적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쉼 없이 만들어 나가는 두 사람의 움직임들은 공간에 활자를 새기듯 무궁무진하다. 촘촘히 연결된 움직임에 에너지가 생성되어 갔고, 선형에서 원형으로 채워가는 구성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하지만 점점 다른 질감으로 변화하는 동작을 보며 움직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컨템포러리 춤 분야에서 믿고 보는 안무가들인 샤샤 발츠, 보리스 샤마즈, 윌리엄 포사이드의 작품은 춤이 작품의 중심축으로써 가장 직접적으로 살아 있는 몸의 당위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감각적인 재치와 비판적 풍자의 작품들


리차드 세갈의 〈BoD〉(Musiktheater Im Revier,3월16일 관람)는 컨템포러리 발레로 다국적 댄서들의 축척된 움직임의 특질과 발레의 기술을 접목한 작업이다. 여기에 아랍의 전통음악을 실험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댄서 몸의 한 부분을 과장한 의상도 시각적으로 볼거리를 주었다. 리차드 세갈은 윌리엄 포사이드 무용단에서 오랫동안 댄서로서 활동하였고, 2006년 뮌헨에서 자신의 첫 작품인 〈BoD〉를 안무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댄서였던 안무가는 자신의 경험을 발휘해 다국적 댄스들의 다른 감성이 내재된 움직임을 잘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 〈BoD〉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의 결합이 풍성하여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뒤이은 작품에 디제잉을 직접 하는 리차드 세갈의 흥이 넘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이사 조슨의 작품 〈Princess〉 (Zeche Zollverein, Hall5,3월 17일 관람)는 인종 차별과 문화 권력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내러티브 형식의 작업이다. 남장여자인 댄서(Russ Ligtas)와 안무가이자 댄서인 이사 조슨은 백설공주 동화의 주요 대사를 각색해서 연기를 한다. 퍼포머들은 과장된 웃음과 익살스런 표정으로 행복하고 순수한 공주 역할 흉내 내기를 반복한다. 인위적인 목소리로 연기하던 댄서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웃음 뒤 그늘진 흐느낌의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었다며... 드레스를 벗어 버렸다. 안무가는 포장된 웃음이 세뇌와 강요된 것이며, “우리는 끝까지 웃는다!”는 디즈니 왕국의 철학을 풍자하고 있다.
 디즈니왕국의 시장성과 그 상업적 전략을 조장하는 자본의 정치적 권력은 이미 우리 사회 공공의 영역에 침투해 있다. 백마 탄 왕자, 마법을 풀어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상상을 안 해본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꿈과 희망이 순수함을 상품화 한 것은 아닐까? 더불어 어린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주인공은 절대적으로 하얀 피부와 날씬하고 예쁜 서양인들의 전형(典型)으로 교육되고 있다. 필리핀 출신인 안무가는 홍콩 디즈니랜드에 고용된 이름 없는 역할만을 하는 필리핀인들을 보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전작 또한 실제로 여행자들이 필리핀여성 성매매를 가볍게 여기는 현실을 다루었듯이, 이번 〈Princess〉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작업이다. 디즈니 영화에 내재된 인종차별과 문화생산의 주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재치 있게 구성한 〈Princess〉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국제무대에서 필리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활동하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자비에 르 로이는 〈Temporary Title,2015〉(Sanaa-Geaáude, 3월16일 관람)에서 지각의 인식 과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5시간 동안 전시하였다. 필자가 중간에 다른 공연을 보고 돌아왔을 때, 퍼포머들은 공연 중간 중간 관객과 대화하며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또한 고양이가 기어 다니듯이 이동하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점을 표현하였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들 벗은 몸의 군상은 단순한 사물의 영역을 넘어 의미영역의 매개체로써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고 판단한다. 특히 세련된 폴크방 예술대학 건물 창으로 비친 오래된 졸페라인의 골조가 대비되며 켜켜이 쌓인 시간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도전 정신이 돋보인 작품을 만난 탄츠플랫폼은 관람자로서 시각의 지평이 확장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행사였다. 이런 특징은 필자가 참여했던 프랑스 몽펠리에, 비엔나 임펄스탄츠, 스위스 컨템포러리 축제와 같은 춤 축제에서 느꼈던 풍요로움을 넘어서는 다른 지점이다. 이와 같은 인상은 축제의 방향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축제의 기획자와 심사위원 그리고 퍼포머들은 사회 속 춤의 역할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표현하였다. 특히 독일 사회를 넘어서 범세계적인 정치적 이슈에 대한 안무가들의 관심과 의도 그리고 이를 반영한 안무 메소드는 본 행사에서 두드러진 작품 경향이기도 하다. 13편의 선택된 작품들은 “작업방식이 얼마나 전통적인 형식과 차이를 갖고 있는지, 그러한 접근방식이 실제 극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지”까지 검토했다는 전문 심사위원들의 선정 기준이 어느 정도 유효하게 작용된 것이라 할 것이다. 급작스런 꽃샘추위로 공연 내내 공연자와 관객 모두 추위에 떨어야 했지만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공연을 주최하는 자나 전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이유와 열정으로 참여한 관객까지도 컨템포러리 춤의 기반을 다져가는 뜨거운 행보로 기억할 것이다. 
김혜라
『현대 춤 공간의 형태지각(Gestalt) 분석과 해석적 지평 가능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스위스에 거주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춤비평을 기고하고 있다.
2018. 04.
사진제공_www.Tanzplattform2018.de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