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영 공동제작 프로젝트 〈로잘린드〉의 안무가 제임스 커즌스
극과 극의 대조적인 움직임 추구
김인아_<춤웹진> 기자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영국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로잘린드(Rosalind)>의 초연을 위해서 영국 안무가 제임스 커즌스(James Cousins)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6주간의 창작과정을 거쳐 만들어질 신작은 10월 중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2016) 무대에 오른다. 공연에 앞서 그는 지난 9월 22일 서울무용센터에서 오픈콜 리허설을 열고 작품의 일부를 공개하였다. 3주 정도 진행된 초기 작업과정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밀도 높은 움직임과 흡입력이 돋보인 장면들이었다. 리허설을 마친 그를 만나 이번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김인아
한·영 합작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이 궁금하다. 이번 <로잘린드>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제임스 커즌스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은 세계 100여 곳에 위치한 국제기구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영국 현지 문화원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기반으로 한 작품공모전을 열었다. 협업할 수 있는 나라 12~13곳과 작품 리스트가 제시되었는데 나는 그 가운데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을 선택하였고 작품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다가 한국을 떠올렸다. 한국은 모든 면에서 급성장을 이뤘고 특히 여성 인권 신장에 있어서는 빠른 변화를 겪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원작 내용과의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을 선택하여 제안서를 제출했고 공동제작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행운을 얻어 주한영국문화원과 함께 작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재해석하면서 춤의 은유적인 표현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은데, <로잘린드>를 통해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원작의 이야기를 춤으로 재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내재된 굵직한 테마 가운데 몇 가지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원작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내용의 희극이다. 로잘린드가 모함을 피해 아덴의 숲으로 떠난다거나 남자 주인공 올랜도와 사랑에 빠지는 주요한 장면에 전통적인 성 역할, 여성의 인권, 자아발견, 자유와 해방 등의 사회·정치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이를 춤 어법으로 재창작하고 있다.
안무를 하며 계속 상기하게 되는 물음이자 근원적인 메시지는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고 있는가, 다시 말해 사회의 억압이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 그대로이고 싶은 욕구에 대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서는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었고 남성 캐스팅이 전부인 작품이 많았다. 현재도 여성의 인권은 억압받고 있고,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성적지향성이 아니라 성적정체성의 측면에서도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이고 싶을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사회가 많은 억압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젠더의 문제는 동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라고 본다.

 

 



고전을 젠더의 시각으로 접근하는 이번 작업의 구상단계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참고(reference)했던 자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세계 투어공연에 합류했고, 제1회 뉴 어드벤쳐 안무가 상(New Adventures Choreographer Award)을 수상하면서 그에게 직접 멘토링을 받았던 이력이 눈에 띤다. 매튜 본은 여느 누구보다 많은 레퍼런스와 리딩 리스트를 기반으로 창작에 임하는 안무가이지 않나. 그에게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타장르의 작품 등에서 레퍼런스를 자주 찾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작품이 아닌 뉴스와 미디어에 나타난 실제 상황을 집중해서 살펴보았다. 원작이 핍박받고 박해받는 주인공이 다른 공간에서 자유를 찾고 성 역할을 새롭게 발견하는 내용이므로 이와 관련된 미디어자료도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세계 곳곳의 소식을 접했는데 중동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탄압에서부터 한국과 영국의 광고에서 드러나는 여성상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사회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성 역할이 주된 관심사였다. 이밖에 서울에서의 레지던시 경험, 무용수들과 작품창작을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구상에 좋은 소스가 되어주고 있다.

서울에서 6주간 머무르며 창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서 레지던시 경험이 안무에 영향을 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서울이라는 지역적 색채가 작품 안에 녹아있다. 서울은 작품창작에 굉장히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로잘린드가 성에서 숲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실제의 숲이 아닌 LED 조명을 부착한 큐브(프레임 구조물)로 구현하는데,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서울의 도시 이미지와 상통하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네온 컬러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의 표면적인 이미지라 한다면, 체류하는 동안 느낀 것은 여성의 권리라든지 자유에 관해 서울이 런던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변화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자기발견과 해방의 과정을 그리는 작품에 서울이라는 곳이 보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픈콜 리허설로 짧게 공개된 몇 개 장면에서 정제되고 강렬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다. 본 공연에서는 움직임 이외 어떤 장치들이 주요하게 활용되는지 궁금하다.

의상이 작품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주인공 로잘린드가 남장을 하면서 다른 형태의 탈출구를 찾기 때문에 옷은 로잘린드의 성 역할을 전복시키는 일종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옷을 입게 된 동기를 ‘억압’의 측면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녀가 사회적 요구 즉 외부적 억압에 의해 억지로 입게 된 것인지 혹은 내적 억압으로 스스로 입은 것인지에 따라 다른 이해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의상 디자인으로 성별을 구별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 중에 있다.
앞서 잠시 언급된 큐브의 경우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속일수도, 신성한 자기만의 영역일수도 있다. 사실 큐브는 벽면 없이 뼈대만 있는 뚫린 구조물인데 이를 통해 구속이나 억압이라는 것이 어쩌면 스스로 옭아맨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안무가로서 이번 작품 창작의 주안점은 무엇인가?
어떤 움직임에 ‘제한’을 가하고 그것이 주는 장애와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체성이 작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 또 다른 요소는 ‘대조’이다. 에미넴(Eminem)의 팝에서부터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으로, 혹은 공간 사용에 있어서도 대조를 이루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한국의 무용가와 드라마투르그, 의상 디자이너가 이번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 하는 한국의 무용수들은 어떻게 만났나?
카와사키 치히로는 제임스 커즌스 컴퍼니 단원이다. 한국 무용수 김성현은 작년 10월 첫 번째 리서치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알게 되었다. 올해 5월 두 번째 내한에서 작품에 함께 할 무용수 오디션을 가졌고, 그때 조인호와 김희정을 발탁하였다. 같이 작업하지 않았던 무용수 네 명이 만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무용수들과의 공동안무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한 장면 정도만 영국에서 리서치하는 기간 동안 미리 만들어진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서울 무용실에서 무용수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솔로에서 듀엣으로 발전하는 움직임 과정에 대해 안무과제로 주기도 했고, 부분적으로 무용수 저마다의 즉흥 장면이 가미되기도 했다. 때문에 무용수는 창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무용수의 능력 면에서 파트너와 협업을 잘 이룰 수 있는지, 과제에 대한 창의적인 수행이 가능한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치히로는 컴퍼니에서 함께 작업해왔었지만 다른 한국 무용수들은 서로 안면도 트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9월 2일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작품에 대한 내 머리 속은 일종의 퍼즐과 같은 상태였다.

 

 



한국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떠한가?

다행히도 3명의 한국 무용수들이 모두 제 역할을 잘해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특히 조인호는 오디션에서 보자마자 첫 눈에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무용을 베이스로 작업하다가 최근 들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작 작업을 하고 있는 무용가다. 유동적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시에 정확한 동작으로 자신을 컨트롤하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정확성을 가지고 동작을 끊어주는 것이 전문무용수들에게도 쉽지 않은 것인데 조인호는 오디션장에서 한 번에 요구하는 바를 해냈다. 극과 극의 대조적인 움직임을 찾으려는 이번 작품에서 그는 빼놓을 수 없는 좋은 무용수일 것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앞으로도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날지 궁금하다.
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항상 같이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도 한국 스탭들이 많이 참여해주기를 바랬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무산된 것도 있어 안타깝다. 지금 컴퍼니에서는 일본, 스페인, 노르웨이 등 다국적 댄서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있는 그 누구에게나 우리 컴퍼니는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월 마지막 공연이 어떠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단정 짓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지금도 <로잘린드>는 창작의 과정 중에 있으며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도 수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나 역시도 궁금하다. 두 번의 리서치 방문과 레지던시를 통해 짧은 기간이지만 이 도시를 최대한 많이 접하고 한국 분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왔다. 그 결과로 한국적인 요소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데다 언어가 필요 없는 움직임, 무용매체로 전하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쉽게 작품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 공연은 영국문화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무용센터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기 때문에 창작할 수 있었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16.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