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현대무용단 자유 정기공연
욕망의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의 뜨거운 쓸쓸함
송성아_전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강사

 무더위와 여진(餘震)과 비바람이 뒤엉킨 시월 초입, 현대무용단 자유(대표 박근태)의 정기공연이 10월 4일과 5일 양일간에 걸쳐 부산 금정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졌다. 부산대학교 출신 동인단체로 출발한 이들은 1995년 창단 이래 지속적인 정기공연과 기획공연, 다양한 형태의 무용제와 연극제 참여 등을 통해 활동의 깊이와 폭을 더해가고 있는 지역의 대표적 무용단 중 하나이다. 공연은 조현배의 15분 남짓의 솔로작 〈사람, 나는 착하지 않다〉와 한 시간 가량의 긴 호흡을 가진 박근태의 〈Lady Macbeth〉로 구성되었다.

 

 




 억압된 욕망과 차가운 웃음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는 오늘이다. 최현배의 춤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오른쪽 앞에 놓인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그의 움직임을 찍어 지속적으로 배경 막에 확대 투사한다. 확대된 시각 이미지는 움직이는 실재를 압도하며 관객의 시선을 독점한다. 영상의 처음은 마임을 하듯 자신의 얼굴을 뭉개고 펴는 모습의 반복이다.
 이어 무대 한 바퀴를 돌아 카메라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 차가운 얼굴은 노골적으로 우리를 향한다. 일그러지고 비열한 조소는 주변을 의식한 듯 재빨리 무표정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무심히 카메라를 툭 쳐 앵글의 방향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 난쟁이의 크고 헐렁한 바지가 스르르 벗겨지는 것 같은 모습이 비치고, 힘겹게 철봉을 하듯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이후 카메라를 벗어나 영상 없이 춤추기도 하고, 영상과 함께 빠른 비트의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익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그는 무대 중앙을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춤은 끝을 맺는다.
 〈사람, 나는 착하지 않다〉는 춤추는 실재를 압도하는 영상, 일그러진 추(ugly)에서 무표정으로 되돌아오는 패턴의 반복과 그 이미지의 강조, 신체 중심선을 중심으로 힘 있게 펼쳐졌다가 울림 없이 되돌아오는 건조하고 격렬한 움직임 등을 통해 이미지의 시대(simulations)를 사는 개인의 차가운 내면을 보여준다.
 특히 적절한 카메라의 활용과 간명하고 적합한 동작언어 및 무대 경로(path) 사용을 통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정서인 냉소(冷笑)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차가운 비웃음이 슬픔, 분노, 눈물, 시니컬한 웃음 등으로 전이되지 않고 하나의 톤으로 지속됨으로써 정서적 울림과 공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삶 속에서 피어오르는 크고 작은 욕망과 요구를 억압하고 평준화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속 깊은 이해와 연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안무가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이다. 여타의 예술 장르에서 초기작의 다수는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이다. 치열한 자기응시를 전제하는 이것은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과 삶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연민 없는 냉소는 이 같은 자기 고백의 통과의례를 필요로 한다.
 두 번째 작품인 박근태의 〈Lady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출발한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와 더불어 4대 비극의 하나로 꼽히는 이 희곡은 나라를 구한 영웅이 절대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어질고 착한 왕을 살해하여 왕이 되고, 정적(政敵)들을 계속해서 죽이다가 결국 반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타의 다른 비극의 주인공과 달리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을 연속적으로 행하는 맥베스에게 연민을 느끼는 까닭은 양심과 야심, 선과 악, 충성심과 역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스스로 자멸해 가기 때문이다.
 욕망·갈등·파멸은 비극 『맥베스』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맥베스의 부인은 갈등하는 남편을 부추겨 살인을 돕는 적극적인 조력자로 극의 말미에서 살인의 환영에 미쳐 자살한다. 오늘날 연극·오페라·영화에서 그녀는 욕망과 파멸이 극대화된 드라마틱한 인물로 빈번히 표현되며, 원작보다 비중이 커진 경우도 많다. 또한 19세기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쓴 러시아 소설 『Lady Macbeth of Mtsensk』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새롭게 해석된 맥베스 부인 카테리나는 러시아의 작은 도시인 므첸스크에 시집 온 젊은 여인으로 집안에 고용된 남자와 간통을 한다. 레스코프는 그녀의 무모하고 공격적인 욕정과 그로 인한 파국의 과정을 부조리한 현실과 더불어 세밀하게 묘사한다. 이후 1934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의해 오페라로도 각색되었으며, 선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박근태의 〈Lady Macbeth〉는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주인공 맥베스의 조력자인 부인을 거대한 욕망의 화신으로 극대화시켜 춤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욕망의 두 얼굴, 뜨거움과 쓸쓸함

 18명의 춤꾼이 등장하고 한 시간 가량 지속되는 〈Lady Macbeth〉는 암전(暗轉)을 중심으로 크게 다섯 장면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장면1〉은 사람들이 등장하여 분주하게 걷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중 몇몇은 희고 네모반듯한 건물의 벽면과 철 계단을 연상시키는 세트를 밀면서 들어와 무대 위에 세워 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흰색 정장과 투피스를 잘 차려 있은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뛴다. 이들이 맥베스 부부(夫婦)이다. 남편은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기도 하고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반면, 부인은 큰 움직임 없이 그를 응시한다.
 암전 후 이어지는 〈장면2〉는 몸을 최대한 땅으로 낮추었다가 힘 있게 돌면서 도약하는 여성 트리오의 거친 춤으로 시작된다. 맥베스는 욕망을 암시하는 이들과 함께 또는 몇몇의 남자들과 뒤섞여 욕망의 춤을 춘다. 여기서 부인은 〈장면1〉과 유사하게 지속적으로 남편을 응시하고 있다. 〈장면1, 2〉에 등장하는 세트와 의상은 〈Lady Macbeth〉의 시대적 배경이 셰익스피어가 살던 과거가 아니라 현대임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비교적 덩치가 왜소한 인물을 맥베스로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영웅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작고 왜소한 맥베스를 들끓게 하는 욕망의 실체는 무엇일까? 셰익스피어의 극에서처럼 왕이 되고 싶은 권력욕인가? 아직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없다.
 〈장면3〉은 어릿광대를 연상시키는 두 명의 춤으로 시작되고, 왕관을 쓰고 검은 망토를 입은 왕이 등장한다. 왕좌를 연상시키는 세트 앞에 그가 서면, 어릿광대와 맥베스 부부는 사람들과 함께 왈츠를 춘다. 우스꽝스러운 연희의 춤이 계속되는 동안 저녁상이 차려지고 부부는 무대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는다. 남아 있는 사람은 왕과 마주 앉은 부부 뿐이다. 부부의 식사가 시작되면, 살인을 암시하는 남자가 무대 왼편에 등장하여 춤을 추고, 왕은 죽음을 묘사하듯 왕좌를 떠나 무대 오른편으로 이동한다. 죽고 죽이는 살인이 맥베스 부부를 감싸며 무대 외곽에서 전개되는 동안, 남편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먼저 퇴장한다. 반면, 부인은 홀로 남아 음미하듯 천천히 음식을 즐긴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몇몇의 여자들과 함께 역동적이고 거친 춤을 춘다. 그러다 속옷만 입고 서 있는 그녀의 벗은 몸이 잠깐 보였다가 암전된다.
 이처럼 연희와 저녁식사로 구성된 〈장면3〉은 왕 살해와 가해자 맥베스 부부의 심리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부인은 일체의 죄의식도 없는 적극적인 가해자이고, 현대로 시간을 옮겨와 궁금증을 자아냈던 욕망의 실체는 셰익스피어의 극과 동일하게 권력욕에 있음을 시사한다.
 〈장면4〉는 개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맥베스의 솔로 춤으로 시작된다. 두 명의 어릿광대가 비웃듯 깔깔거리고, 서로의 몸을 애무하듯 뒤엉켜 춤을 춘다. 이어 높은 사다리에 올라 선 것처럼 거대해진 맥베스 부인을 정중히 모셔온다. 붉고 아름다우며 높이 올라서 있는 그녀는 왕처럼 위압적인 모습으로 무대 왼쪽 뒤에 위치하고, 살해된 왕이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이들과 대면하는 맥베스는 괴로워하다가 이내 싸움을 하듯 격렬하게 움직인다. 부인은 거만하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맥베스는 그녀의 체스판 위 말(馬)과 같다. 천천히 퇴장한 부인은 핏빛 옷을 입고 다시 등장하여 여러 춤꾼들과 함께 격렬하고 거친 욕망의 춤을 춘다. 이들이 퇴장하면 홀로 남은 맥베스가 두려움에 떠는 죄인처럼 잔뜩 움츠린 채 하늘을 보고 무대는 암전된다.
 〈장면4〉는 왕이 되어 군림하는 맥베스 부인과 그녀의 발아래에서 죽은 왕의 환영 또는 정적들과 사투를 벌리고 있는 맥베스를 대비시키고 있다. 그녀는 철옹성과 같고, 죄의식 속에서 번민하는 맥베스는 초라하다.
 마지막 〈장면5〉는 살인의 가장 적극적인 가해자이고 욕망의 화신으로 군림한 부인의 공포와 파멸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 출연진이 함께 하는 군무의 중앙에 위치한 부인역의 안선희는 몽환적이고 신경질적인 움직임과 함께 공포 속에서 미쳐 자멸하는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이후 테이블이 다시 등장하고 모두가 사라진 무대 위에서 맥베스만 홀로 식사를 한다. 그를 감도는 정서는 영웅의 최후가 뿜어내는 비장도 숭고도 아니다. 끊임없이 망설이면서도 금지된 욕망을 쫒아 온 한 남자의 쓸쓸함이다.
 현대로 옮겨진 〈Lady Macbeth〉의 〈장면1, 2〉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욕망을 소재로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결말에 도달하는 것은 〈장면3, 4, 5〉이다. 이들은 권력욕 때문에 왕을 죽이고 죄의식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파멸한다는 셰익스피어의 서사구조를 순차적으로 옮겨 놓고 있다. 물론 맥베스 부인을 살인이 난무하는 권력 쟁투의 주체인 동시에 수혜자로 묘사하고, 맥베스를 영웅이 아닌 자괴감 속에서 갈등하는 나약한 이인자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변형된 이야기 속에서 왕위를 향한 권력욕은 진부하며, 세태를 풍자하는 날카로운 비판정신 또한 찾기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Lady Macbeth〉는 셰익스피어극의 패러디(parody)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다섯 개의 장면들이 기승전결의 구조로 이어짐으로써 원작의 주제, 소재, 제재 따위를 제멋대로 해체하고, 흩어진 편린들을 다른 이질적인 것들과 마구잡이로 짜깁기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며 노는 재기발랄함을 찾기 어렵다. 패스티시(pastiche)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양자가 작품 평가의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 박근태의 작품은 분명 한 시간이라는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을 몰입시키는 힘과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며 셰익스피어의 서사구조를 재현하고 있다.
 〈Lady Macbeth〉의 움직임은 몸매를 고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신체의 다양한 부분들의 적극적 사용, 유연하고 역동적인 굽힘과 폄, 빠르고 느림의 적절한 안배, 움직임 공간의 다채로운 조직화 등을 통해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만들며 보는 쾌감을 준다. 무대 사용에 있어서도 여러 명이 등장하는 군무를 불균등하게 펼쳤다가 하나의 점 또는 선으로 강렬하게 집중시킨다. 그리고 무대의 정면 방향을 관중석으로만 잡지 않고 등퇴장을 하는 좌우나 뒤에 있는 막으로도 잡아서 춤꾼들을 이동시킴으로써 무대공간을 다채롭게 사용한다.
 이처럼 무정형으로 확산되었다가 강렬하게 집중되고, 다양한 방향으로 다채롭게 전개되는 무대 사용은 시각적 쾌감과 더불어 정서적 긴장감 속에서 춤에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Lady Macbeth〉의 또 다른 장점은 리듬감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것은 움직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장면과 장면, 군무와 군무, 군무와 솔로, 이인무와 삼인무 등등의 전환을 매우 리드미컬하게 진행함으로써 관객의 정서와 시각을 지루하지 않게 긴장시키고 이완시킨다.
 〈Lady Macbeth〉의 움직임, 무대 사용, 리드미컬한 전환 등은 분명 보는 즐거움과 정서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들과 더불어 인상적인 것은 춤꾼들의 진지한 몰입과 그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에너지이다. 맥베스 부인 역의 안선희는 움직임을 구사하는 기량뿐만 아니라, 성격 표현에 탁월하며 등장하여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시선을 빼앗는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출연한 김기훈 역시 자괴감 속에 갈등하는 맥베스를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외에도 출연한 모든 춤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진지하고 뜨겁게 표현함으로써 공연장은 관중과 춤꾼이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고 공유하는 역동적 필드(field)가 된다.

 2016년 자유 정기공연을 구성한 조현배의 〈사람, 나는 착하지 않다〉는 삶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박근태의 〈Lady Macbeth〉는 당대성·풍자성·유희성이 불충분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일정정도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주제나 제재를 드러내는데 성실하고, 관객을 끄는 흡입력이 있으며, 뜨겁고 진지한 열기를 뿜어낸다. 또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욕망을 소재로 삼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크고 작은 것을 욕망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 욕망한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며 원동력이다.
 그러나 욕망은 평준화된 가치들로 인해 억압되기도 하고, 가치체계를 벗어나 탈주(脫走)하기도 한다. 이 때 개인은 욕망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조현배는 냉소로 욕망을 억압하며 홀로 쓸쓸히 서 있다. 박근태는 금기시된 것을 욕망함으로써 타인을 가해하고 죄의식 속에 자신을 가해한다. 그리고 홀로 남아 피 흘리는 쓸쓸한 피해자가 된다. 두 작품 모두 욕망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우리의 뜨겁고 쓸쓸한 이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16. 11.
사진제공_현대무용단 자유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