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엠마뉴엘 갓 무용단 〈Sunny〉
안무의 무작위성이 그려내는 패턴
정다슬_안무가. <춤웹진> 유럽 통신원

“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써니, 어제까지의 내 삶은 비로 가득차 있었지)”로 시작되는, 바비 헵(Bobby Hebb)이 1966년 작곡한 ‘써니’는 이후로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은 버전으로 리메이크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많은 가수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써니’를 불러왔지만, 아마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강형철 감독의 2011년 영화 〈써니〉에 나왔던 보니 엠(Bonny M)의 버전이 아닐까? 70년대 독일에서 결성된 그룹 보니 엠의 ‘써니’는 경쾌하고 발랄한 디스코 버전으로 싱그럽고 젊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바비 헵의 원작에서 들려지는 재지한 리듬에서는 성숙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리고 독일 캄프나겔에서 지난 6월 7일에서 9일까지 공연된, 프랑스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엠마뉴엘 갓(Emanuel Gat)과 과거 컴퍼니의 무용수였던 아위어 레온(Awir Leon)이 함께 협업한 2016년 작, 〈Sunny〉에서는 마빈 게이(Marvin Gaye)의 버전이 연주되었다.
 프랑스 출신의 일렉트로닉 작곡자인 아위어 레온은 약 70분간의 공연 내내 모든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때문에 〈써니〉는 마치 라이브 콘서트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일반적으로 무대의 양 옆 혹은 관객석 옆에 설치되곤 하는 무용수들의 출입구 역시 무대 한가운데로 뚫려있어 마치 콘서트의 가수가 화려하게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써니〉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세 부분은 안무보다는 의상으로 쉽게 구분이 되는데, 첫번째 파트에서 무용수들은 수영복, 레오타드 등을 입고 등장하고, 두번째 파트에서는 반짝이는 자켓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파트에서는 리허설을 하는 듯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등장하면서 의상을 통해 명확하게 각각의 신을 구분짓는다.
 무대가 시작되면 10명의 무용수들은 제각각 희거나 검은 모노톤의 수영복을 입고 등장한다. 모노톤의 의상이지만 과감하게 커팅된 디자인의 수영복을 통해 드러나는 무용수들의 몸과 근육은 무대 위에 비현실적 이미지를 덧댄다.
 아위어 레온이 연주하는 키보드를 진지하다 못해 경건하게 둘러싸고 있던 무용수들을 통해 관객의 시선 역시 음악가와 그의 연주에 쏠리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용수들은 고요한 순간을 부수고 나와 번갈아 가면서 짧지만 풍부한 움직임 시퀀스를 선보인다. 이 시퀀스들은 각각 솔로, 듀엣 혹은 그룹으로서 변환되며 다양한 인스톨레이션을 만들어내는데, 움직임들은 끊임없이 흘러가면서도 고도로 절제되어 있기도 하다.
 특별한 내러티브가 시작될 것 같다가도, 어쩌면 내러티브 없이도 충분한 움직임의 컴포지션은 음악과 혼합되며 충만한 시각적 이미지를 선사하고 관객의 눈을 바쁘게 만든다. 이것은 10인의 무용수들이 동시에 같은 움직임을 실행하면서도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또렷하게 나타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엠마뉴엘 갓은 〈써니〉의 크레딧에 무용수들이 해석 작업을 함께 하였다고 표시한다. 그리고 여기에 〈써니〉의 핵심이 있다. 〈써니〉의 안무는 즉흥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스코어를 따라간다. 무작위로 나타나는 움직임들은 상호작용에 의해서 변화되고 대조를 이루며 무용수들 사이에서 복잡하면서도 명확한 패턴으로 드러난다.
 이를테면, 무대 위를 점령한 한 무리의 무용수들은 가장 중심에 서있는 무용수의 시퀀스를 함께 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무리 중 한 명이 ‘스톱’이라고 외치는 순간 시퀀스는 시작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가끔은 3초, 5초 이후에 누군가 ‘스톱’을 외치고 때로는 시퀀스가 끝나갈 쯤 다시 ‘스톱’이 나오기도 한다. 끊임없는 방해를 통하여 자주 그리고 가끔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움직임 시퀀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반복적 방해로 인해 명확해진다. 안무 작법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나열되고, 무용수들이 전달하는 말소리는 음악의 한 부분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때로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관객이 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인스트럭션을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는 마치 리허설 혹은 트레이닝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인상을 준다.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듯한 무용수들 사이에 발견되는 관계는 관객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들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섬세하게 구축되고 또 다시 무너진다. 섬세한 관계가 무대에 나타나는 것, 또 그것이 얼마나 유지될까 바라보는 것은 무대 안과 밖을 이어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관객은 통쾌함을 얻는다. 이러한 작법은 공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관계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고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동시에 관객이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상황들을 집중력있게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써니〉에서는 공연 내내 충분히 신나면서도 너무 시끄럽지 않은 적당한 온도의 음악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무용수들 역시 마치 음악처럼 매끈한 테크닉들, 그러나 긴장감이나 무리함은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들을 선보이며 무대 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수려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움직임과 음악은 독특한 방식으로 혼합되고, 움직임 컴포지션의 섬세한 접근 그리고 아위어 레온의 부드러운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 결과물이 무용 공연이든 라이브 콘서트든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한국인 무용수 김판선을 만나는 것이었다. 김판선은 2008년부터 엠마뉴엘 갓의 작품에서 춤추기 시작했다고 하니 벌써 10년째이다. 그 긴 시간동안 쌓인 연륜과 여유로움은 물론 엠마뉴엘 갓의 언어를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김판선만이 가지고 있는 퍼포머로서의 매력은 〈써니〉에서 빛을 발한다.



 공연장 캄프나겔은 〈써니〉의 프로그램에서 ‘안무 예술 (Choreographic Art)’를 감상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안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조금은 공허한 질문에 대해 〈써니〉는 안무 예술이라는 말처럼 명쾌한 시각적, 청각적 기쁨으로 답하는 듯하다. 개념적인 사고와 그 사고에 맞게 분석적인 움직임들이 독일 무용예술계의 특징이라면 엠마뉴엘 갓은 춤이 전달하는 일차원적 기쁨을 시원하게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무대의 분위기를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양하게 변환시키는 것과 더불어 관객은 예측할 수 없는 안무 컴포지션이 가져오는 복잡한 무작위성을 감상하도록 초대된다.

정다슬
독일 함부르크와 한국 서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성질과 개인이 지니는 가치를 주재료로 하는 작업을 추구하고, 안무의 개념과 가능성을 넓히는 데에 관심을 두고 타장르와의 협업도 지속하는 중이다. 춤웹진에서는 유럽 통신원으로서 2013년부터 비정기적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2018. 07.
사진제공_Julia Gat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