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 춤 현장에서 본 현대무용단사포 30년
꽃으로 피는 무용예술영역과 평론의 거리
이상일_무용평론. 문화예술멘토원로회의 멤버

 나를 평론가로 여겨주는 분들께 나는 크게 고마워한다.
 모든 평론가들, 비평가들은 그 전공분야의 예술가들과 일반 독자들이 자기 논평의 수준과 척도와 권위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자기 존재의의를 느끼는 것 아닐까. 스스로 평론가로 자처하거나 매스컴 지면에 이름 몇 번 올랐다고 해서 아무 분야 비평가라고 명함 돌리는 짓거리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수필인지 에세이인지 글 같지 않은 논평의 글이 무용예술계 일각에서 시효를 잃고 사라지게 되면 비평가는 이제 지난 과거의 그림자일 뿐 현재 살아서 예술가와 독자들과 함께 담론을 이어갈 평론가로서의 자질은 이미 소진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를 살아있게 하는, 평론가로서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용예술가들과 관객들과 독자를 나는 고마워한다. 그렇게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와 나는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깊은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연극평론을 오래 썼던 나는 극장무대에서의 몸의 움직임에 매료되었고 어쩌다 무용공연에서 받는 ‘원초적 감명’을 글로 발표하다가 무용평론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연극이나 무용이 극장예술이고 몸이 매체라 뜻에서 넓은 의미의 ‘공연예술’에 속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분야의 비평가니 평론가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 아마도 나의 깊은 잠재의식 가운데는 평론가가 아니라 시인이나 극작가, 아니면 연기자, 혹은 무용가로서 직접 예술작품 제작에 관여하는, 예술가에 대한 직접적인 혈연의식 같은 친근감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비평, 평론의 본질은 간접적인 객관적 ‘거리(距離) 두기’에 있다. 자기가 매료되는 장르에서 그는 작품에 매료되어버리지 못 하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거리를 둔 채 작품들-무용공연을 보고 연극작품을 본다. 그런 측면에서 평론가들은 예술가의 혈연이나 가족이 아니며 동지가 되지 못 한다.
 그런 생리와 감각과 자세가 싫어서 나는 평론의 글쓰기를 몇 번이나 포기하였다. 그러면 예술장르의 한 식구가 될지도 모르며 평론가로서는 잊혀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쓰기의 유혹은 무용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 것만큼 끈질긴 것임을 붓을 꺾고 나서 비로소 깨닫는다. 그래서 혼자 무용공연을 보고 느낀 감명을 내 블로그에 담아두는 것은 뭐 어떠랴 싶어 비평가의 자의식을 버리고 그냥 ‘이상일 읽기’ 블로그 글쓰기만 계속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잊혀져가기를 기리는 나를 잊지 않고 평론가로 대접해서 원고청탁을 부탁받으면 우선 평론가 이 아무개가 잊히지 않고 있다는, 살아있는 존재감으로 고마운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사포의 겨울 숲〉(2016.10.15, 전주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의 논평 근거가 마련되었다. 전주소리문화의전당에서 사포현대무용단의 30년 역사는 오직 한번만의, 글자 그대로 기념공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화숙 예술감독이 정년퇴임한 다음 호남 현대무용을 대변하던 현대무용단 사포가 어떻게 존속될 것인지 궁금해 하던 관객들에게 이번 기념공연은 〈사포의 겨울 숲〉으로 리콜되었다. 말하자면 사포의 겨울 숲은 눈 덮인 산야의 추위와 바람 부는 지역 환경에서 나무들끼리 몸을 부비며 겨울을 나는 현대무용단 사포의 공동체의 상징이면서 겨울의 삭막한 환경 가운데서도 이를 버티며 무용예술을 지켜 나온 한국무용문화 공동체의 우화(寓話)이기도 하다.
 김화숙현대무용단은 현대무용단 사포로 자리매김하며 겨울을 이겨낼 것을 스스로 선언한다. 겨울 숲의 적막한 풍경 속에 들리는 소곤거림을 춤의 언어로 옮겨 읊을만한 사포예술가들은 이미지 네 개로 그들의 전 역량을 스토리텔링 식으로 극화하였다 - 1. 새벽 강가에서, 2. 흔들리다, 3. 나목(裸木), 너에게 가려고… 4. 그들은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롤로그 - 하얀 등짝을 모이는 여인의 긴 치마에 에필로그는 다시 피어나는 그들이 곁들여진다. 벌거벗은 나무의 숲은 어쩌면 강물 같기도 하고 한 많은 여인의 긴 치마폭 같기도 하다.

 

 



 사포현대무용단은 겨울 숲에서 느린 자연의 걸음 거리를 형상화하며 숲의 정령과 만나 솔로, 듀엣, 그리고 트리오로 이미지들을 엮으며 그들의 기량을 보편화한다. 숲의 영상이 바뀌고 흑과 백의 군무 의상 색깔로 추위의 환난가운데서 떠오르는 사포의 지난 아픔이 솔이와 용숙의 죽음으로 연상되는 것은 김화숙현대무용단 사포의 역사에 사적(私的)으로 내가 너무 깊이 끼어들었기 때문일까. 〈사포의 겨울 숲〉은 김화숙 안무에 한혜리 대본으로 굳어진 사포현대무용단의 생리와 감각, 그리고 팀의 캐릭터를 작품으로 펼쳐 보이는 하나의 전범처럼 보인다.
 숲의 악한 의지가 겨울의 고난이라면 숲의 선한 의지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정령들의 군무가 발레 〈지젤〉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예술감독이 떠나도 사포는 자립하는 용기로 호남에 현대무용단 사포의 기치를 높이 들 만큼 성장해 있다. 그만큼 팀웍이 짜여 있고 흐트러지는 호흡이 없다. 튀는 개인기를 보이지 않아서 30주년 기념공연에 들인 땀 값을 드러나게 한다.
 박진경 대표의 현대무용단 사포는 김화숙 예술감독의 주정(酒精)을 그들의 체내로 옮겨 담아 기품있는 포도주로 익혀낼 것 같다. 단지 호남 지역사회 문화재단들의 지원이 이번 30주년 기념사업에 한 푼의 배려도 없었다는 사실이 ‘사포의 독자성’을 어떻게 감싸줄 수 있느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는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패밀리처럼 가까이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30년간 그들의 춤을 보고 있었으면 이제 그들에 대한 비평가가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감의 평론가이기를 바라면서 거리를 갖기 싫어하는 심리적 모순을 지닌 나를 발견케 하는 이런 글쓰기는 즐겁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껏 김화숙무용단의 정확한 이름조차 모른다.
 1987년 6월 창무춤터 기획공연 시리즈에 초청된 〈I am I〉(신용숙 안무)와, 같은 달 현대춤협회가 주최한 미리내소극장 현대춤 신인발표회 참가작 〈비껴서기와 비껴가기〉(강형숙 안무)의 모태(母胎) 공식명칭은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이기 전에 전북가림다 현대무용단이었다.
 나에게 익숙해져 버린 김화숙무용단, 혹은 사포현대무용단이라는 이름은 김화숙과현대무용단사포가 되어도 좋고, 아니면 김화숙·사포현대무용단이라 해도 나에게는 별 차이가 없다.
 현대무용가 김화숙 교수가 이끄는 김화숙무용단과 사포라는 고대 그리스의 여류시인 이름을 딴 사포무용단이 하나로 엮인 깊은 내력을 아는 무용계 사람들은 그닥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 내력을 안다고 해서 김화숙현대무용단이 달라지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독특한 어감을 풍긴다--김화숙은 알겠는데 사포는 무어냐. 하필이면 먼 고대 그리스의 페미니스트 성향을 지닌 시인 사포의 이름을 표방한 그들은 1980년대의 여권운동가를 표방했던 것일까…
 1970년대 한국현대무용의 대표 주자는 이대 박외선과 육완순 교수였다. 그 제자 가운데서 스승의 그늘을 박차고 김복희·김화숙현대무용단이 창단된 것은 김복희와 김화숙이라는 젊은 세대의 결단력이었다. 그리고 그 두 젊은 지도자에 의한 한국현대무용은 테크닉의 현대무용에서 의식(意識)의 현대무용을 표방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김복희·김화숙현대무용단’의 두 주축(主軸)이 한 무용단 이름으로 묶여 있기보다 각자의 분리·독립을 부추기는 선동과 예언까지 서슴치 않았다. 결국 1990년 이 김복희·김화숙현대무용단은 창립20주년을 기념하듯 독립의 수순을 밟아 김화숙교수의 원광대학 무용과 제자 졸업생들이 나오기 시작한 1985년 전북 가림다현대무용단에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탄생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공연이 이루어지고 난 뒤 3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김화숙현대무용단과 현대무용단사포의 이름에는 특정된 여류시인의 신비한 존재감이 드리워져 있고,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창단30년이 되어도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 사포무용단, 김화숙현대무용단의 무용단으로서의 매력과 특질과 개성으로 스며있다. 사포의 꽃잎이 그들의 예술적 창조의 트레이드 마크로 30년 동안 버티어 온 것이 아닐까.

 

 



 지독히 매력 없는 특정대표의 이름만을 딴 범용(凡庸)한 무용단들이 얼마나 즐비한 대한민국 무용계인가. 거기에 신비한 한 포인트 악센트를 둔 사포의 이름은 보석처럼 빛난다. 그 찬란한 빛을 쏟는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는 김화숙현대무용단과 사포현대무용단을 정서적으로 부드럽게 만들면서 동학(東學)의 원혼을 먼 북해도에서 모셔올 줄 아는 역사의식과 광주 민주화 3부작(1.그 해 5월, 2. 편애의 땅, 3. 그들의 결혼)같은 치열한 현대적 정치·사회의식으로 불타오르기도 했다. 꽃잎 같은 사포의 한 포인트가 우리 현대사회 구조의 드라이한 그늘에 따뜻한 살결의 온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치솟는 창작의지로 30년 동안 무용예술작품 생산에 매진하였다. 그런데 이른바 평론가라는 나는 지금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라는 예술집단의 경력만 훑고 30년 동안의 정기공연 숫자와 소극장시리즈를 헤아리고 특별공연과 초청공연 회수나 따지고 있다--이른바 비평의 잣대라는 싸늘한 이성적 작업이 이 예술집단과 나와의 거리를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무용가족으로서 사포현대무용단의 예술작품 생산현장의 증인이고 공동창작의 멤버가 되고 싶어 했는데 예술창작과 논평의 길은 어쩔 수 없이 거리(距離)로 인해 떨어져 있다. 우리 둘은 각자 길이 다른 것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저만치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작품들을 보면 창단 30년 세월의 금자탑에 가장 빛나는 기치(旗幟)는 동학의 역사의식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치사회의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서정성 짙은 인간미의 예술작품 계열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예술 중앙집권 체제의 바람 속에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에서 크게 이바지한 김화숙·현대무용단사포의 공적에 높은 평가점수를 주는 나는 결국 무용예술 창작에 동참하지 못하는, 예술집단에 거리를 둔 일개 비평가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괴(自愧)하면서 인간적 교류를 이어온 김화숙 교수와 사포현대무용단을 거쳐 간 그리운 얼굴들에게 내 감사의 글을 따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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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 현장에서 본 현대무용단 사포 30년

굵직한 사회문제 춤 창작과 연결한 살아있는 시대정신

 


장광열_춤비평가


 30년 넘게 무용예술 현장에 있지만, 나의 자리는 여전히 객석이다. 간혹 공연해설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간 적은 있지만, 손가락으로 겨우 꼽을 정도이다.
 극장 무대는 오롯이 출연자들의 몫이다. 춤 공연에서 주인공은 무용수와 안무가들이다. 무대 위 커튼콜은 공연을 위해 땀 흘린 퍼포머들에 대한 격려와 환호의 표시이다. 한 편의 작품을 위해 자신과 싸운, 화려한 커튼콜의 이면에 숨겨진 아티스트들의 땀과 노력이 관객들의 박수로 보상받는 셈이다. 현대무용단 사포의 무용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그들은 늘 창작과 공연의 현장에 있었다.

 

 



 돌이켜 보면 현대무용단 사포와 함께 한 추억은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춤 공연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역에 소재한 무용단에 대한 적지 않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포의 활동이 다양하게 이루어졌고, 그들의 행동반경 또한 좁지 않다는 것을 방증해 준다.
 원광대학교 캠퍼스에서 음미했던 상큼하고 역동적인 야외 공간의 춤들, 서울국제즉흥춤축제와 함께 꾸민 익산에서의 즉흥춤 공연, 전주소리문화의전당 무대를 수놓았던 크고 작은 공연들, 동학혁명과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현실참여적인 작업들, 전주 한옥마을 카페의 테이블 사이를 가로지르며 치러졌던 소담스러운 무대, 그리고 서울에서의 몇몇 춤 공연 등등이 뇌리를 스친다.

 

 



 〈편애의 땅〉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일층 이층 삼층 객석 구조를 이용,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도록 한 콘셉트의 공연으로 큰 화제가 되었었다. 이 작품은 당시 CD롬으로도 발매가 되는 등 의욕적인 시도도 있었다.
 사포의 중심에는 늘 안무가 김화숙 선생이 있다. 초창기 사포를 이끌던 중심 댄서들 강형숙 신용숙의 모습도 떠오른다.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신용숙은 정말 열심이었다.

 

 



 사포의 몇몇 공연에 대한 비평가로서의 스케치.
  1987년 6월이었던가? 신촌 창무춤터에서 사포의 전신인 전북가림다무용단(회장 신용숙)의 공연이 있었다. 원광대학교 현대무용전공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1985년에 결성된 단체의 첫 서울무대였다. 레퍼토리는 〈I am I〉(안무 신용숙), 〈참〉(안무 오문자), 〈메주는 떠야···〉(공동안무) 등 세 작품. 아홉 명 출연 무용수들의 기본 테크닉이 잘 갖추어져 있을뿐더러 작품에 대한 구성력이나 진지함이 곳곳에 엿보여 지역무용의 발전상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의 활동에 더욱 기대를 갖게 했었다.
 2005년 6월에 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본 〈그대여, 돌아오라〉는 사포의 20주년 기념공연이었다. 〈춤으로 보는 역사 II-다시 보는 동학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었던 이 작품은 50분이 넘게 풀어낸 짧지 않은 길이였던 만큼 작품의 전체적인 틀은 동학과 관련된 내용들을 서술적 구조로 풀어가는 틀이 예상되었으나 작가(한혜리)와 안무가(김화숙)는 이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 모두 7개의 다른 장면을 통해 상징적인 이미지로 풀어냈다.
 프롤로그에서 코러스를 배경음악으로 한 국화꽃 등장 장면에서부터 빠른 빠르기의 북소리에 실린 남성 4인무의 완급이 조율된 움직임, 현악기의 빠른 템포에 실린 상체의 움직임에 포커스를 둔 여성 7인무 등 초반부터 음악과 춤의 교합은 탄력을 받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감성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안았다.
 작품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베개를 활용한 장면은 소품을 활용한 움직임 확대와 시각적 변용의 성공이란 측면에서 근래 컨템포러리댄스 작품 중에서 기억될 만한 명장면이었다. 베개를 던지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안거나 베고 눕거나 다시 사선으로 하나 둘씩 놓았을 때 만들어진 간극, 그 앞으로 무용수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장면은 강렬했다.
 이 작품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극장예술에서 중요한 요소인 조명, 의상, 음악, 소품의 성공적인 융합, 그리고 그 중심에서 무용수들의 춤이 이루어낸 전체적인 앙상블의 힘 때문이다. 〈그대여, 돌아오라〉의 제작진들이 벌인 동학혁명의 현대판 굿은 이렇듯 요란스럽지 않은, 차분한 한 판이었지만 그곳에 담은 정신은 관객들과 따뜻하게 소통한, 인간적인, 휴머니티가 물씬 빼어난 지극정성의 한판 굿이었다.

 

 



 2008년에 공연한 〈길을 가다---〉 (23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11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는 탄탄한 앙상블과 연출력에 의해 빛난 따뜻한 춤판이었다. 편안했다. 너무 넘쳐나지도, 지나치게 장식적이지도 않았다. 휴머니티가 담겼고, 적지 않은 진폭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 3개의 장면을 각기 다른 콘셉트로 구성한 대본과 연출(김화숙), 그리고 무용수들의 집중력이 뛰어났고, 음악 선곡에서나 움직임 구성 그리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 등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냈다. 요란한 무대미술이나 현란한 의상, 난해한 테크놀로지와의 결합 등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back to the body 다시 몸으로 돌아가자”는 일련의 흐름을 보는 듯했다.

 

 



 현대무용단 사포의 창작 작업은 이렇듯 지난 30년 동안 사회성 강한 소재의 무대화와 야외공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의 특이한 구조를 활용, 위에서 내려다보도록 제작된 공연 콘셉트 등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의 작업은 지역 춤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 힘을 잃지 않고 있다.
 나는 수년 전 "전북 지역에서 현대무용단 사포의 정체성은 지역 무용계의 차원을 넘어 한국 춤사회 전체에 새로운 분위기를 띄웠다. 향후 꾸준한 제작지원을 통한 레퍼토리화 작업, 단원들의 앙상블을 더욱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훈련 프로그램 가동, 그리고 객원 안무가 초청 등을 통한 다채로운 색깔 입히기 등의 시행이 뒤따른다면 한국의 춤사회 전체 속에서 현대무용단 사포는 그 예술적 행보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했었다.
 선진 여러 나라들은 국가, 혹은 지역의 이미지 고양을 위해 지역을 대표하는 무용단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육성한다. NDT(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무용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무용단 사포는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단이다. 30년 넘게 극장의 유형에 따른 레퍼토리 시스템 구축, 광주항쟁, 동학학명 등 향토적인 소재의 무대작업, 그리고 무엇보다 탄탄한 앙상블과 예술적인 질을 담보하는 창작 작업은 전문 춤단체로서 신뢰감을 갖게 했다.
 창단 30년을 맞아 현대무용단 사포가 새롭게 도약하는 전기를 맞게 되길 기대한다. 

2016. 11.
사진제공_현대무용단 사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