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계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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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2019. 05.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의 레퍼토리 작품 〈라벨과 스트라빈스키〉가 5월 3-4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는 지난 2년간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았던 〈쓰리 볼레로〉(2017년 초연)와 〈쓰리 스트라빈스키〉(2018년 초연)를 함께 볼 수 있는 자리로, 각 공연의 대표작을 하나씩 선정해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쓰리 볼레로〉에서는 김보람 안무가의 〈철저하게 처절하게〉가, 〈쓰리 스트라빈스키〉에서는 안성수 안무가의 〈봄의 제전〉이 선정되었다.

반복과 변주를 통해 절정으로 치닫는 라벨의 ‘볼레로’, 예측 불가능한 변칙적 박자와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음악사와 무용사에서 모두 중요한, 빛나는 고전 두 곡을 2019년 국립현대무용단이 다시 깨운다. 박용빈 지휘자의 편곡으로 신선함을 더한 음악 ‘볼레로’를 배경으로, 김보람 안무가가 날카로운 음악적 분석과 움직임 연구를 거쳐 작품 〈철저하게 처절하게〉를 완성했다. 이어 안성수 안무가는 우아하고 때로는 광적인 움직임으로 원곡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작품 〈봄의 제전〉을 선보인다. 현대음악계 두 거장의 조합만큼 흥미로운 두 안무가의 만남이 새로운 명작의 탄생을 알린다.




김보람 〈철저하게 처절하게〉 ⓒBAKi/국립현대무용단




작품 〈철저하게 처절하게〉 구상 단계에서, 무용수들은 먼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렸다. 음악의 규칙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 움직임 고안을 시작할 만큼, 김보람 안무가는 치밀한 음악적 연구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처절하게〉를 완성했다. 작품 제목의 ‘철저하게’는 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철저한 움직임을 말한다. 음악에서의 규칙성이 춤으로 시각화되는 과정을 집중하여 감상한다면, 음악의 절정 부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객석에서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제목 속 ‘처절하게’는 위와 같이 ‘철저한’ 춤의 어법이나 음악적 규칙을 지키면서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와 발전을 갈망하는 움직임의 처절함을 표현한다.

〈철저하게 처절하게〉에는 ‘음악 이전의 소리’, ‘춤 이전의 몸’에 대한 김보람 안무가의 꾸준한 관심이 담겨 있다. 라벨의 원곡 ‘볼레로’는 작품 〈철저하게 처절하게〉 안에서 해체 및 재조립되고, 연주 악기 또한 다양하게 변주된다. 작품 음악의 편곡은 박용빈 지휘자가 맡았는데, 음악 작업 당시 안무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기에 더욱 ‘철저하게 처절하게’ 작품에 부합하는 음악이 제작될 수 있었다. 박용빈 지휘자는 원곡에서 한 프레이즈를 하나의 악기, 한 군의 악기 또는 하나의 조합이 이끌어가는 규칙에서 벗어나 한 프레이즈에서도 다양한 질감의 음색이 드러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음악 표현에서 자유로움을 더하되, 원곡의 에너지와 흐름은 파괴하지 않는 방향과 의도로 곡 작업을 진행했다.

김보람 안무가를 중심으로, 작품 속 무용수들은 모두 〈철저하게 처절하게〉를 위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출연진 중 한 명인 장경민 무용수는 과거 방송댄스를 했던 경험을 살려 일부 프레이즈에 걸스힙합 장르의 느낌을 담기도 했다. 무용수 개개인이 가진 예술적 배경과 경험이 각자의 춤에서 드러나므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해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즐거움을 더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유튜브에 게시된 메이킹 영상(https://youtu.be/E91SaJwvcS8)에서 이를 확인해볼 수 있다.




안성수 〈봄의 제전〉 ⓒAiden Hwang/국립현대무용단




‘봄의 제전’ 해석에 탁월한 감각을 보유한 것으로 정평이 난 안성수 안무가가 2018년 발표한 〈봄의 제전〉을 한 번 더 공개한다. 안성수가 해석한 ‘봄의 제전’은 2009년에도 한 차례 작품으로 발표된 적이 있는데, 〈장미〉가 그것이다. 기존의 〈장미〉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의도를 구현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 공연되는 〈봄의 제전〉은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강인함과 섬세함의 대비를 조금 더 강화하고자 하였다. 안무가의 음악적 감수성과 해석을 바탕으로, 섬세한 표현과 역동적 에너지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움직임에 주목한다면 〈봄의 제전〉 감상이 더욱더 즐거워질 것이다.

스트라빈스키가 자신의 신곡을 안무가 니진스키의 춤과 함께 대중에 공개한 만큼, ‘봄의 제전’은 이미 그 출발선에서부터 춤곡으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고자 대지에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는 파격적 서사에 니진스키 이후에도 다양한 안무가들이 매료되었고, 수많은 춤 작품이 창작되었다. 안무가마다 해석의 관점이 달라, 프랑스 안무가인 모리스 베자르는 생명의 재생산을 위한 성(性)의 결합을 표현했고,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시초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극한의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집단화된 폭력 등을 표현했다. 이번 안성수 안무가의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희생 제물의 역할이 남성 무용수에게 맡겨진다는 점이다. 니진스키가 안무한 원작을 포함해 대다수의 작품에서 단 한 명의 희생제물을 여성으로 결정해왔다면, 안성수의 〈봄의 제전〉에서는 사제인 여성이 남성을 제물로 삼는다는 역발상적 해석이 돋보인다.

안성수 안무가는 원곡에 내재된 스토리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캐릭터를 추출하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무용수 캐스팅 과정에서부터 작품 속 캐릭터를 고민했기 때문에,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이러한 캐릭터를 유추하며 이야기 흐름까지 파악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원곡이 지닌 원초적 에너지와 음악에서 느껴지는 서사의 매력,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안성수 안무가의 정교한 움직임이 만나 객석을 제전의 현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가 레퍼토리로서 재공연 되는 만큼, 공연 개막 사전행사로 진행된 ‘오픈 리허설’과 ‘오픈 특강’에도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오픈 리허설’과 ‘오픈 특강’은 국립현대무용단 ‘오픈-업 프로젝트’의 한 갈래인데,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예술저변 확대를 위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오픈 리허설’은 극장이 아닌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의 생생한 리허설 모습을 참관하는 행사이며, ‘오픈 특강’은 공연에 등장하는 음악 등을 전문가 특강으로 접하며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을 습득하는 행사이다.

먼저 〈봄의 제전〉 작품의 오픈 리허설이 4월 9일, 국립현대무용단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궂은 날임에도, 신청 인원의 95%를 뛰어넘는 인원이 오픈 리허설에 참석했다. 공연 연습 시연이 마무리된 후, 안성수 안무가와 출연 무용수들이 직접 관객과 마주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국립현대무용단 공식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행사를 생중계했으며, 생중계 시청자가 한 질문을 현장에서 예술가가 직접 답변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생중계의 경우 총 278명이 시청하여 공연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및 오픈 리허설 행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4월 14일에는 작품 관련 배경지식을 채우며 〈라벨과 스트라빈스키〉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시간, 오픈 특강이 열렸다. 음악 ‘볼레로’와 ‘봄의 제전’을 소재로 한 무용 작품과 영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고, 음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까지 특강으로 준비했다. 특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 교수(예술경영 전공)가 진행했고, 〈철저하게 처절하게〉 작품의 편곡 및 지휘를 맡은 박용빈 지휘자가 패널로 함께해 더욱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루어졌다. 참가자 총 35명이 행사에 함께하며 〈라벨과 스트라빈스키〉를 미리 공부하고 이해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앞으로도 현대무용의 매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관객 체험형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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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2019.5.3(금)~4(토) 금 8PM, 토 3PM
LG아트센터

소요시간: 80분
티켓: R석 5만원 S석 4만원 A석 2만원
관람연령: 8세 이상
문의:

〈철저하게 처절하게〉
안무: 김보람
음악: 라벨 ‘볼레로’
편곡·지휘: 박용빈
출연: 강다솜 김보람 김현호 박선화 신재희 임소정 장경민 조준홍 차규화
연주 : 코리아쿱오케스트라

〈봄의 제전〉
안무: 안성수
음악: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출연 : 김민지 김민진 김성우 김현 박휘연 배효섭 서보권 서일영 성창용 안남근 이유진 천종원

2019.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