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제38회 몽펠리에 당스
아크람 칸의 마지막 솔로작 〈세노스(Xenos)〉
이선아_재불 안무가

38회 몽펠리에 당스(38e Festival Montpellier Danse)가 6월 22일부터 7월 7일까지 열렸다. 예술감독 장 폴 몬타나리(Jean-Paul Montanari)는 모두 29개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 16개의 작품이 세계 초연 또는 프랑스 초연작이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이스라엘, 네덜란드, 스페인 등 12개국의 안무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기사는 올해 몽펠리에 당스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마지막 솔로 작품을 발표한 아크람 칸 소식에 포커스를 담아 보았다.
 이번 몽펠리에 당스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 & 마를렌 몬테이로 프레이타스의 작품 〈노란 송곳니 3번〉, 안느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Mitten wir im Leven sind〉, 카더 아뚜와 무라드 메르주끼가 공동 안무한 〈당세 까사〉, 아크람 칸의 솔로작 〈세노스〉를 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작년에 타계한 트리샤 브라운을 위한 오마쥬 특별전시가 열렸다.

 




바체바 무용단 & 마를렌 몬테이로 프레이타스 〈노란 송곳니 3번〉
Batsheva Dance Company & Marlene Monteiro Freitas 〈Canine Jaunâtre 3〉

이 작품은 예루살렘에서 먼저 초연을 갖고, 몽펠리에 당스 공연이 유럽 초연이다.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이 감독을 맡고, 객원 안무가 마를렌 몬테이로 프레이타스(Marlene Monteiro Freitas)가 안무를 맡았다. 이름이 길어 엠.엠. 프레이타스(M.M.Freitas)라 불리는 이 안무가는 카보베르데(Cabo Verde) 섬 출신의 안무가다. 바체바 무용단에 대한 기대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지는 못했다. 들리는 바로는 평론가들과 일반 관객 모두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다고 한다.

 




카더 아뚜 & 무라드 메르주끼 〈당세 까사〉
Kader Attou & Mourad Merzouki 〈Danser Casa〉

카더 아뚜와 무라드 메르조끼는 프랑스에서 힙합을 대중화시킨, 프랑스 힙합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은 30년 전 〈아크로합(Accrorap)〉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함께 활동했다. 그 후 메르주끼가 ‘캐피그(Kafig)’라는 자신의 단체를 만들면서 각자의 길을 갔고, 지금은 두 안무가 모두 프랑스 CCN 예술감독으로 활동중에 있다. 2018년 두 안무가는 이십여 년 만에 함께 공동 안무를 하기로 했다. 둘은 함께 카사블랑카에 가서 모로코 힙합 스트릿 댄서들을 만나고,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들을 뽑았다. 몽펠리에 당스는 이 프로젝트를 위한 작품 지원 및 몽펠리에 당스 축제 프로그램으로 초대했다.

 

 

 원래 이 작품의 의도는 기존의 작품을 모로코 무용수들에게 전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용수들을 뽑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계획이 바뀌었다. 모로코 무용수들의 개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아마추어 무용수로, 이번 무대가 그들에게 인생 첫 무대였다.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맞는 인생 첫 공연,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 작품은 모로코 무용수들이 무대에서 행복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관객에게도 그 행복이 전달된 그런 공연이었다. 이 8명의 모로코 무용수들이 이 경험을 통해 모로코 힙합춤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





트리샤 브라운 〈몽펠리에의 한 미국인〉 전시/설치
Trisha Brown 〈Une Américaine à Montpellier〉 exposition/installation

이 전시는 2017년에 타계한 트리샤 브라운을 향한 오마쥬 특별전이다. 몽펠리에 예술감독 장 폴 몬타나리(Jean-Paul Montanari)의 결정으로 시작됐으며, 당세까날히스토리크(http://dansercanalhistorique.fr/) 편집장인 아녜스 이즈린(Agnès Izrine)이 이번 전시의 총 예술감독을 맡았다. 트리샤 브라운은 1982년부터 2013년까지 9번이나 몽펠리에 당스에서 공연을 올렸다. 트리샤 브라운은 2002년 〈It’s draw〉라는 솔로 작품에서 석탄 연필을 들고 하얀 종이 위에서 춤을 추며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몽펠리에 당스는 지금도 이 그림을 보관 중이다. 바로 이 그림이 이번 특별전을 시작하게 된 영감과 동기를 주었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트리샤 브라운이 2002년 공연 당시 그렸던 그 그림이 바닥에 놓여 있고, 벽에는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의 작품 사진과 평소 그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세 개의 작은 방에는 트리샤 브라운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여러 개의 비디오 중 〈It’s draw〉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2002년 몽펠리에 당스 공연 당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은 트리샤 브라운이 관객 앞에서 몸을 푸는 모습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한쪽에 말아져 있는 종이들 중 한 장이 무대 위로 펼쳐진다. 트리샤 브라운이 석탄 연필을 쥐고는 발 모양을 그리고, 몸을 엎드리면 엎드려진 채로 그 모양을 빠르게 그려나간다. 종이 안에서의 규칙을 정하고 끈질기게 그 규칙을 지켜나가는 모습, 예측할 수 없는 방향 그리고 불편한 움직임을 선택해 움직이는 그녀의 몸짓과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아크람 칸 〈세노스〉
Akram Kahn 〈Xenos〉

아크람 칸은 최근 몇 년 전 영국 신문을 통해 앞으로 솔로 작품 활동(full evening solo)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은퇴 선언은 아니다. 앞으로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이 마지막 솔로 작품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이목을 모았다. 몽펠리에 공식 기자 회견장에는 기자들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아크람 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몽펠리에에서 느낀 그의 존재감은 연예인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아크람 칸의 공식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춤웹진》과 나누고 싶다.

 

 

이제, 안녕인가요?
아크람 칸(이하 생략) : 불어로 오흐브아(Au revoir)는 ‘안녕’ 그리고 ‘또 봐요’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Good bye and See you later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몸이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 아이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도 아니고, 몸이 소리치기 시작했다는 표현을 쓰다니, 참 신선했다. 그 표현 하나만으로 여러 의미가 전달된다.)

앞으로의 계획은요?
저는 공연을 위한 안무 말고도 여러 장르와 일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필름, 연극, 설치미술 등이요. 그리고 앞에서 See you later라고 언급했듯이, 가끔씩 카메오 같은 소소한 역할로 무대와의 연결고리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번 작품은 육체적으로 감성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굉장히 무거운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의 의도는 역사를 다시 쓰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작년 영국 신문에서는 식민지 군인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전쟁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정말 화가 납니다. 지금의 세대 그리고 제 세대 그리고 미래의 세대는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역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왜곡된 역사에 정말 좌절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작업을 준비하면서 식민지 군인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했습니다.




 〈세노스(Xenos)〉는 그리스어로 ‘낯선’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영국의 식민지 군인으로 끌려가 희생된, 인도의 약 백오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위한 오마쥬(Hommage)이다. 작품〈세노스〉는 6월 26-27일 이틀간 몽펠리에 코럼(Le Corum)극장에서 올려졌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위 두 명의 연주자가 보인다.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또 한 사람은 장구 비슷한 악기를 연주한다. 그 모습이 한국의 소리꾼과 고수를 연상시킨다. 아크람 칸이 밧줄에 감긴 채 무대로 등장하자 관객불이 꺼지고, 고요해진다. 무대 위에는 거대한 언덕이 보인다. 무대에 놓인 사물들이 밧줄에 엮인 채 언덕 너머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쓰나미처럼. 아크람 칸은 그 밧줄들을 잡아보려 하지만, 그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아크람 칸 머리 위로 휘감긴 밧줄들이 그의 눈앞까지 가린다. 그는 하얀 전통 의상을 입고, 카탁춤(인도 전통춤)을 기본으로 한 춤을 춘다. 그러나 그 춤은 카탁 그 이상인 아크람 칸의 세계, 아크람 칸의 춤으로 보인다. 무대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흙으로 또는 작은 돌들로 완전히 뒤덮이기도 한다. 쇠사슬에 발이 묶인 채 춤을 추거나, 언덕위에서 내동댕이쳐져 굴려 내려오기도 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계에 빠져있는 인간의 모습처럼 보인다. 아크람 칸이 온몸으로 절규하듯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이번 작품 트레일러에서 아크람 칸이 직접 내레이션을 맡았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것은 누구의 손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아크람 칸의 이 메시지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낯선 땅에 끌려와 손에 총을 들어야 했을, 외로움과 싸워야 했을 젊은 군인들에게 마음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하고픈 아크람 칸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아크람 칸은 1시간 동안 풀 에너지로 춤을 췄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있었다. 나는 아크람 칸의 작품을 보고 나면 ‘영화 한편 본 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 이유는 무대 세트와 음악이 주는 역할도 크겠지만, 바로 아크람 칸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춤을 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춤, 표정, 그리고 감정까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역할 안에 그는 고스란히 빠져있다. 이번에 아크람 칸 기자회견에 참가해 그의 메시지를 듣고, 그의 공연을 보고, 그리고 트레일러 내레이션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서, 아크람 칸이 이번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그 무거운 마음이 전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있었다. 작품에 대한 브라보 그리고 아쉬운 마음이 담긴 관객들의 뜨겁고 따뜻한 박수였다.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8.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