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표지_ 창단 30주년 맞은 현대무용단 사포
장광열_<춤웹진> 편집장

현대무용단 사포가 창단 30주년을 맞아 그 기념공연을 10월 15일 전주소리문화의전당에서 가졌다. 원광대학교 현대무용전공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현대무용단 사포는 전북지역 뿐 아니라 서울 무대에서도 화제작을 공연했고, 광주항쟁 동학혁명 등 역사의식을 곁들인 현실참여적인 소재를 꾸준히 작품화 했다. 예술감독 인터뷰와 기념공연 리뷰, 30년을 지켜본 현장 비평가의 글을 통해 지역 춤단체 30년 활동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 예술감독 김화숙 인터뷰

아직 살아남아있다는 것에 감격

 
 

 



장광열
현대무용단 사포가 30주년을 맞아 10월 15일 전주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기념공연을 가졌습니다. 관객들로 가득 찬 객석과 서울에서 내려 온 예술가와 비평가 학자들을 보면서 지역 춤 단체가 30년 동안 걸어 온 길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광대학교 현대무용전공 교수로 재직시 사포를 출범시켰었지요. 창단의 주체로서 우선 30주년을 맞은 소감이 궁금합니다.
김화숙 이번 30주년 작품을 준비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픈 기억들을 떠올려야만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년을 하고 나서 다시 매주 내려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30주년을 맞은 소감?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 순간들을 넘기고 여기까지 어떻게 버티어 왔는지... 지역무용단체로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지역에서 무용단체로 30년 넘게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특히 전북지역에서 현대무용을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여건임을 잘 압니다. 사포의 창작 정신과 열정은 이번 30주년 기념공연에 신작을 올린 것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사포의 겨울 숲〉은 4명의 안무가들이 각 파트를 맡아 안무하고 선생님께서 연출을 하셨더군요.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는지요?
사실 신작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 사포 총회에서 단원들이 먼저 신작을 올리자고 해서 용기를 냈지요. 지난겨울 대본을 완성하고, 이미지에 적절한 음악 선택을 끝내고, 3월에 4명의 안무자들인 박진경 송현주 김유진 조다수지에게 맡아야 할 파트 음악을 전해주었지요. 그 때부터 온통 내 두뇌는 작품 생각뿐이었습니다.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포!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이 단원들에게 전해져서 한 마음이 되었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역 단체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창단 30주년 공연인데도 지역의 문화재단에서조차도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었지요.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해서 침묵했습니다. 사포는 전북지역 최초의 현대무용단이며 30여년을 지속적으로 활동해 온 단체인데... 역사성도, 예술적 자산이라는 의미도 무시된 것이지요. 문화재단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지원금 대상을 선정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보니 올해 무용분야는 전북지역의 무용협회들에게만 주어졌더군요.

공공 지원금 심의에 참여하는 심사위원들은 지원신청사업이 갖는 의미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역 춤계의 경우 아직도 특정한 협회가 지원금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네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 시간이나 되는 신작을 올리고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 화보집을 발간해 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어떤 것들을 했고 기념사업의 재원은 어떻게 확보하셨는지요?
사포 30년 역사를 정리한 [사포의 시간 1985-2015] 이라는 타이틀의 도록을 발간했 고, 1997년도 작품이며 제 2회 춤비평가상 수상작인 광주민중항쟁 무용삼부작 2부 [김화숙의 편애의 땅]을 컴퓨터용 파일로 출시했습니다. 신작 〈사포의 겨울 숲〉을 무대에 올렸구요. 모든 건 무용단 자체에서 해결했지요. 30주년 기념사업을 위해 사 포가 비축해 둔 2천만 원과, 후원금 모금을 통해 약간의 기금을 마련했고, 그래도 부족하여 예술감독인 저도 사비를 털었고, 안무자들도 조금씩 협조를 했습니다.
사실 사포의 포스터, 팜플렛, 의상 등 전시도 하고 싶었고, 30주년 기념 파티도 하고 싶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전문무용수 지원센터에서 무용수 5명을 지원해주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포를 사랑하는 오래된 지인들과 원광대 선,후배들이 조금씩 후원을 해주어 이번 신작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사포를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네요.

 

 



30년 전 전북 아니 호남지역에서의 현대무용 작업은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무용수의 확보에서부터 공연장, 제작환경까지요. 당시 호남 지역의 춤계 여건은 어떠했나요?

전북지역은 80년대 중반이었음에도 1년에 무용공연이 10편도 안 되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단원들의 개인적 발전을 위해 초창기 전주의 지하 창고극장인 예루소극장에 조명기구를 달아가며 감행했던 사포소극장시리즈와 자동차 해드 라이트를 조명삼아 춤추던 야외공연, 그러니까 그 때는 공연장소, 조명도 스스로 개척해야만 하는 척박한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그 때 함께 땀 흘리며 고생했던 단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사포가 존재하겠지요? 다행스럽게도 원광대 무용과 졸업생들 덕분에 꾸준히 신입단원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무용수에 대한 부족함은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나 원광대 무용학과가 없어지고 신입단원이 몇 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어서, 사포의 춤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올해부터는 문을 활짝 열려고 합니다.

창단공연 작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디서 했는지 궁금합니다.
초대 대표 강형숙 안무 〈어느 해, 어느 달〉, 그리고 전영선 안무 〈공해풀이〉였습니다. 장소는 원광대학교 대강당이었구요. 그 시절에는 전북지역에 극장이 별로 없었기에 대학 공연장을 택했습니다. 강형숙에 이어 신용숙이 2대 대표를 그리고 신경옥, 김옥, 김자영이 대표를 이어가고 지금은 박진경 대표가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포 창단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 동안 사포를 지켜온 건 신용숙 선생이었고 단원 중에서는 창작품을 가장 많이 남겼습니다.

지역의 무용단체로 30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서울 집중인 우리나라에서 지역무용단 30년은 그 존재 자체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포 30주년 역사는 바로 전북지역 현대무용사이기도 하니까요. 사포는 지금까지 30회의 정기공연과 35회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소극장 기획공연 그리고 무용과 관객의 자연스러운 만남의 장인 야외공연 20회, 그리고 50여 회의 초청공연을 통하여 현대무용의 불모지인 전북지역에 새바람을 일으켰으며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등 지역 간의 교류 공연을 통하여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1994년에는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와 〈거울 속의 카르멘〉으로 상해예술제에 참가했고, 2004년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청되어 〈판소리와 춤-지울 수 없어라〉를 공연하여 우리 전통 판소리와 현대무용 장르를 소통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사포, 말을 걸다〉 시리즈를 통해 관객과 보다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춤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역 춤 단체를 떠나 사포의 활동은 우리 현대무용사에서도 의미 있는 창작 작업이 여럿 있었습니다. 현실참여적인 소재, 호남의 역사를 소재로 한 작업들이 특히 그렇지요.

네. 첫째는 기획에서부터 발표까지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던 춤으로 보는 역사·Ⅰ광주민중항쟁무용삼부작 1부 〈그 해 오월 1995〉, 2부 〈편애의 땅 1997〉, 3부 〈그들의 결혼 1998〉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1980년 광주 오월을 무용으로 형상화 한 작품으로 이 작품들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토월극장, 자유소극장을 모두 사용하였지요. 즉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이라는 극장의 특성을 살린 작품입니다. 이 삼부작은 1999년 ‘오월의 눈물’이라는 타이틀의 무용 CD-Rom으로 제작, 출시되었습니다.
둘째로는 동학농민혁명이 소재가 된 춤으로 보는 역사 ·Ⅱ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진혼곡, 1994〉, 〈다시 핀 그대에게 1996〉, 〈그대여 돌아오라 2005〉를 발표함으로써 역사성과 시대정신이 살아있는 무용 레퍼토리들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편애의 땅〉은 한국춤비평가상 작품상을 수상했었지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객석을 다양하게 사용해 성공한 첫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광주민중항쟁 무용삼부작 중 2부 〈김화숙의 편애의 땅〉은 저에게 제2회 춤비평가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80년 광주문제를 전체주의적 시각에서 다룬 작품으로 자유소극장 1층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고, 관객은 2, 3층에서 작품을 내려다보게 하여 객관성을 유지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안무상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지요. 관객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동작의 한계도 있었고, 무용수들의 초점 맞추기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그러나 이 작품은 힘든 만큼 효과도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작품들을 공연했었습니다. 그중에는 애착이 가는 작품도 있을 텐데요.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준비부터 발표까지 꼬박 5년이 걸린 광주민중항쟁을 주제로 한 춤으로 보는 역사 - 무용삼부작입니다. 그 중에서도 〈편애의 땅〉은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1층을 무대로 사용하였고, 관객은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는 공간의 특성상 안무와 연습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반면에 가장 빛나는 무대였기에 내겐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습니다. 버스 대절까지 해서 서울공연을 감행할 수 있는 그 힘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마도 세상을 향해 사회적, 개인적 부당함을 호소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무용작품으로 표출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 〈편애의 땅〉은 객석에서 1997년도 ‘올해의 작품’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사포가 지난 30년 동안 거둔 성과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는 서울과 지역의 문화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왔고,
둘째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창작품을 발표했으며
셋째는 사포 특유의 작품 스타일이 형성되었고,
넷째는 대극장, 소극장, 야외무대의 특성에 적합한 레퍼토리를 개발해 온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포를 통해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배출하셨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강형숙, 신용숙, 최병용 등 평론가들이 기억할만한 무용수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이후에도 참으로 좋은 무용수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안타깝게도 현실이라는 우산 속으로 들어 가버렸지요. 강형숙 선생은 가정으로, 최병용 선생은 성실한 학교 교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포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우리 신용숙 선생은.... 아마도 하늘에서 이번 30주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박진경, 부대표인 송현주가 그 뒤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단원들이 신기하게도 사포의 정신과 춤을 이어가고 있어가고 있네요. 이들의 춤 속에 신용숙선생의 모습을 문득 문득 발견하고 놀라곤 합니다.

 

 



30년을 맞은 사포의 앞으로의 활동방향이 궁금해집니다. 단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함께 해주시지요.

이번 30주년을 끝내고 단원들도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한 템포 쉬면서 차후 계획을 세워야겠지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년에도 사포의 정기공연은 진행될 것이고, 지속적으로 창작품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또 10년이 쌓여가겠지요? 단원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춤의 매력에 빠져들기를 바랄 뿐입니다. 춤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지혜로운 무용인으로 성장하여 춤으로 자신도 행복하고 세상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지난달에 새 책을 출간하셨지요? 무용교육혁신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무용 교과목 독립을 위한 노력도 수십 년째 꾸준히 하고 계신데요. 선생님의 앞으로의 활동계획도 듣고 싶습니다.
글로벌 리더쉽-창의·소통·통합의 초등 인성교육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는 ⌜춤으로 소통하는 시간⌟이라는 책을 전혜리 선생과 공저로 출간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초등학생을 위한 창작무용으로 되어 있어요. 무용 교재도 시대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제로 창의, 소통, 통합이라는 단어를 포함시켰습니다. 사실 출판사 측에서 원고를 보고 적극적으로 제안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가장 큰 숙제가 남아 있는데... 예술교과군에 ‘무용’을 포함시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무용계 전체가 한목소리가 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예요. 무교혁 멤버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용인 모두가 동참해 준다면 기운을 받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춤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주변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무용예술계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우리나라 무용수들의 실력은 이미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무대에서 최고로 무용수로 만들어줄 세계적인 안무가 배출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무가를 길러낼 수 있는 환경적 배려와 함께 시스템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대학 개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오늘날, 대학 무용학과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하고 더불어 무용계 전체도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무용인 모두 화합하고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니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합시다. 

2016. 11.
사진제공_현대무용단 사포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