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협업 춤 작업(3) 서울발레시어터 & 연희단팔산대 〈아리랑 별곡〉 〈당산벌림〉
농악과 만난 발레, 절반의 성공
장광열_춤비평가

 농악과 발레의 만남을 표방한 〈아리랑 별곡〉 (11월 26-27일, LG아트센터, 평자 27일 관람)은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 2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무대였다.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고 진옥섭(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이 기획과 연출을, 제임스 전(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이 안무를, 김운태(연희단팔산대 연희감독)가 연희감독을 맡았다. 농악 연희자의 앞모습과 여자 발레 무용수의 뒷모습을 조합시킨 강렬한 이미지의 포스터는 이 공연의 성격을 확연하게 부각시켰다.
 서울발레시어터와 연희단팔산대의 협업 성격을 띤 이날 무대는 두 단체의 대표작들이 별개로 공연되거나 두 단체 단원들이 함께 출연하는 작품으로 짜여졌다. 농악과 발레의 만남을 표방하면서 두 단체의 인기 레퍼토리를 번갈아 보도록 하고 두 단체의 퍼포머들이 함께 만든 작품을 엮은 이 같은 모양새는 기획공연이 표방한 ‘농악과 발레의 만남’에서 크게 비겨 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늘 보아왔던 레퍼토리들을 다시 보아야 하는 순서보다 평자의 관심은 두 단체의 퍼포머들이 함께 출연한 신작 〈아리랑 별곡〉과 〈당산벌림〉에 모아졌다.
 〈아리랑 별곡〉이 소리와 발레와의 만남에 짧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구성이었다면, 마지막 순서에 배치된 〈당산벌림〉은 커튼콜과 맞물리면서 전막 발레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디베르티스망 처럼 기교적인 움직임을 통한 볼거리를 보여주려는 듯, 농악과 발레의 배틀을 보는 듯한 구도로 진행되었다.

 

 



 〈아리랑 별곡〉은 현재의 아리랑의 모태가 된 ‘정선 아리랑’ 음악이 작품 전편에 깔렸다. 공연 리플릿에는 “떼돈 번다”는 말의 어원이 된 소나무를 운반하는 떼꾼들의 목숨을 건 래프팅과 사랑과 이별, 그리고 또다시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떼를 타는 순환의 인생을 스토리로 집어넣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강원도 정선의 토박이 소리꾼 홍동주, 최진실의 소리에 몇 명의 연희단팔산대 단원들이 연주자로 참여하고, 서울발레시어터의 12명 무용수들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제작진들은 적지 않은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 것으로 기록했지만 정작 작품은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 보다는 노래를 곁들인 연주와 춤으로 조합되었다. 제임스 전의 안무는 캐릭터 댄스를 통한차별화 된 솔로춤이나 2인무 보다 12명 댄서들이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추는 춤 위주로 배열했다. 홍동주, 최진실은 작품 속에서 담아내고자 한 어떤 드라마를 의식한 소리라기보다는, 남여의 다른 목청에서 오는 노래 그 자체를 음미할 수 있도록 불렀다.
 안무가는 전체적으로 발레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춤의 특성, 발레 테크닉을 강조한 춤 구성보다는 현대무용에서 보여 지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비중을 둔 춤의 조합을 보여주었다. 해금 솔로와 피아노와 해금 그리고 창자들의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에서 남녀 대무(對舞)로 춤의 대형을 변화시키는 등 나름대로 춤적인 구성에 변화를 꾀하는 시도는 있었으나 악기 군에 따른 춤, 2인무 부문에서 차별성을 살려내는 시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어졌더라면 두 장르 간 협업의 의미는 더욱 부각되었을 것이다.

 

 



 〈당산벌림〉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농악에서 나오는 진법의 하나로 ‘ㄷ’자 대형으로 서서 ‘ㄷ’자 안을 무대삼아 독무나 군무를 선보이는 대목이다. 제작진들은 공연 리플릿에서 “각 농악에는 진법(陣法)이라 하여 대열을 이루었다 푸는, 마치 전쟁터의 진법과 같은 군무를 운영하는 비법이 있고 이에 근거해 〈당산벌림〉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정확히 짠 안무가 아닌 적당한 틀을 주고 나머지는 춤꾼의 본능에 맡겨 당일의 리듬감으로 솟구치는 판을 만들겠다는 제작진들의 의도답게 〈당산벌림〉에서는 농악의 상모돌리기, 자반뒤집기 등 기예적인 것들과 훼떼와 그랑 주떼 등 발레 무용수들에 의한 테크닉적인 춤들이 번갈아 무대를 수놓았다. 발레에서의 디베르티스망에서 보여 지는 오락적인 요소들. 개개 무용수들의 탈렌트를 보여주는 구성이 연희자들과 댄서들의 춤 기량으로 짜여 진 것이다.
 〈아리랑 별곡〉이 소리와 연주, 춤이 계산된 구도 안에서 만나는 작업이었다면, 〈당산벌림〉은 자유롭게 나열된 형태였다. 농악과 발레, 이 두 장르는 기획공연 형태로는 처음 극장무대에서 일단 만났지만, 향후 이 작업은 보다 더 진지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발레 무용수들의 기량이 더욱 높아져야 하고 춤의 어휘도 더욱 많아져야 하며, 음악과 춤의 배합에서도 더욱 세밀함이 요구된다.
 해외무대로의 진출을 표방하지 않더라도 두 장르가 크로스오버 내지는 퓨전 작업으로 제대로 된 상품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단순한 만님이 아니라 두 이질적이면서도 어느 일면 공통적인 요소들이 질적으로 퍼포머들의 끼와 함께 상승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장르가 갖는 서로 다른 특성들을 배려하는 퍼포머들의 감각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농악과 발레는 춤 중에서 서로 가장 먼 경계에 있다. 그러나 오로지 근육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가깝다. 무대는 계체량을 재는 저울이니 혹독한 훈련만이 생존법이고, 이 직선의 근육질 위에 곡선의 서정과 시적 상상력을 요하기에 두 춤은 닮은꼴이다. 바로 이점이 절묘한 어울림을 꿈꾸게 한 것”이란 기획자의 의도는 분명 의미가 있고 관객들로서도 그 신선한 발상에 호기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첫 시도에서는 곡선의 서정과 시적 상상력이 무대 위에서 상충을 통한 체감, 그래서 새로운 감흥의 전이까지 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관객들에게 이번 무대는 마치 한편의 특별한 갈라 공연을 보는 듯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작품 8편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과 위트를 곁들인 해설이 흥겨움을 더했다. 이질적인 두 장르의 만남을 표방한 신선함과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그들의 관람문화를 흥취로 끌어 낸 레퍼토리 구성은 칭찬할 만했다. 

2016. 12.
사진제공_한국문화재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