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국제즉흥춤축제 화제의 즉흥프로젝트 선보인 이윤정
나와 너, 너와 나의 순수한 몸짓
김인아_<춤웹진> 기자

 

 



김인아
올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에서는 예년과 다르게 두 개의 즉흥 프로젝트 프로그램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댄스프로젝트뽑기의 즉흥프로젝트는 공연 후의 반응이 유독 뜨거웠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는지요?
이윤정 축제의 예술감독님으로부터 공연에 대한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공연이 있었어요. 즉흥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인데 언제쯤 올릴 수 있을지, 구성원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좋았지요.
지난 해와 재작년에 했던 〈75분의 1초〉라는 공연을 보면서 제 친구 관객이 저것은 우리 딸 이야기인 것 같다, 일어나고 넘어지는 모습은 마치 우리의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순간에 이런 공연을 전문무용수 뿐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분들을 모집해서 함께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었어요. 그때 공연을 보았던 지인들과 가족 분들께 이번 기회를 말씀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너무나 흔쾌히 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셔서 올릴 수 있게 됐지요. 지원금이 많지 않은 상황을 말씀드리면서 대신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즐겁게 춤출 수 있도록 워크숍을 준비하겠다고 하니 모두들 워크숍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전문무용수들, 일반인 참여자 분들, 마지막으로 다 같이 함께 하는 즉흥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곳곳에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의 일반인 참여자들이 선보인 즉흥춤이 인상적이었어요. 일반인들의 즉흥춤은 어떻게 구성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전문무용수들의 즉흥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당일에 선보여진 말 그대로 즉흥이었구요. 일반인 참여자들에게는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전체적인 구성(장면)을 만들고, 2주 동안 4회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워크숍을 하면서 어떻게 즉흥공연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마지막 날 다행이도 중요한 장면들이 생겨나서 그것을 공연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지요.
이번 즉흥프로젝트는 “균형과 불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일반인 분들과 했던 모든 장면이 제게 의미 있는 것이라, 처음부터 설명을 해드리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모두가 손을 맞잡고 무대로 들어오는 장면이에요. 손을 잡는다는 것은 안정되고 기대어있는 상태잖아요. 이것이 팽팽하게 잡아끄는 힘의 원리로 끊어지고 개개인이 튕겨져 혼자 세상에 남겨지는 순간, 저마다 몸의 균형을 잡는 모습이 있었어요.
이후에 노년의 어머님이 천천히 걷는 장면으로 이어져요. 저는 걷는 것 자체가 균형과 불균형이 계속 유지되는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머님은 무대 위를 천천히 걷거나 정지해 있으면서 균형과 불균형을 실험하고 계신 거였어요.
그 다음에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큰 원을 그리며 한 방향으로 뱅글뱅글 도는 남자아이의 장면이었어요. 실제로 그 친구는 마지막에 넘어졌는데(웃음), 이런 불균형이 관객들에게는 상상의 여지를 주는 이미지로 남겨질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러고 나서 가장 어린 아이를 어른들의 손과 팔로 구름처럼 옮기는 장면으로 이어졌어요. 외국 동영상을 보면 임프로바이저들이 자녀와 컨택하는 모습이 많거든요. 내 아이가 있다면 나도 그렇게 놀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 장면에 담겨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중간에 이 아이가 아빠에게 가는 바람에…(웃음) 어쨌든 이 장면은 연습과 리허설에서는 아름답게 성공했었는데, 돌발적으로 아이가 어른들의 손에서 빠져나와 무대를 돌아다니게 되면서 그 역시 즉흥의 묘미로 여기게 됐지요.
다음 장면은 여자아이 두 명의 장면이에요.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으니까 둘이 겹치지 않게 위치해야한다는 것과 한 명이 움직이면 다른 한 명은 움직임을 정지해달라는 아주 간단한 규칙을 지정해 주었어요. 워크숍에서 직선과 곡선의 움직임 소스를 제시했었고 두 친구가 시간차를 두고 두 가지 다른 움직임 형태를 보여주었죠. 한 친구는 쑥스러움이 많고 다른 한 친구는 굉장히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데, 그 쑥스러워 하는 친구가 서서히 움직임에 적응하며 제 스스로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한편으로 많이 뭉클하더라고요. 무대에서 보여준 이 친구들의 짧은 듀엣이 어쩌면 진짜 즉흥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지막은 머리를 맞댄 것에서부터 몸 전체의 컨택으로 나아가는 장면이에요. 어떻게 하면 프로와 아마츄어 모두가 어울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만들어졌어요. 에너지와 음악이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관객도 함께 무대에 나와 춤췄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우리 안에서 답을 찾고 마지막 장면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흥으로 날려버리기보다 에너지는 올리되 조명을 차분하게 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죠.

 

 



워크숍 시간에 참여자 분들께 어떤 점을 강조하셨나요?

감정에 빠지지 않게 몸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 자칫 감정적으로 흘러 지시어에 집중하지 않으면 몸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즉흥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어요. 순간적으로 생기는 감정도 즉흥일 수는 있겠으나 지금 우리는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생성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배제해 줄 것을 당부 드렸지요. 퍼포머는 감정에 도취되지 말 것, 다만 감정과 느낌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리고 싶었구요.
무대 위의 시간은 선택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고맙게도 어린 친구들을 비롯한 참여자 분들 모두 우리만의 즉흥춤 규칙들을 잘 지켜주어 완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즉흥프로젝트에는 연출가도 함께 참여했는데 어떻게 역할을 나누게 되었는지요?
2015년 SIDance에서 〈75분의 1초〉를 올렸을 때 지금의 남인우 연출가가 드라마터그로 참여했었어요. “균형과 불균형”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시면서 작품을 더 확장시켜보자고 하셨죠. 작품이 곁가지를 뻗거나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시곤 했어요. 그렇게 작년의 〈75분의 1초〉, 이번 즉흥프로젝트까지 함께 만들어왔어요.
게다가 이번 공연에서는 남인우 연출가는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해주셨는데, 극장에서는 제가 출연도 해야 하기 때문에 무대 뒤의 컨트롤을 맡아 주셨구요. 워크숍 등 준비 과정에서는 일반인 참여자 분들의 연습 체계를 만들어 주셨어요. 사실 남연출가는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 예술교육의 베테랑이시거든요. 그 덕을 제가 톡톡히 봤어요.
첫날 연습을 하는데 아이들이 그 공간을 사선으로 마구 뛰어다니고 그랬죠. 어른들의 경우엔 전형적인 춤동작이 아닌 우리의 움직임들이 과연 춤이 될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춤을 출 수 있을까라며 춤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었구요. 남 연출가는 참여자 분들이 움직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돕고, 공간 안에서 어떻게 있어야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 모두가 지키도록 했어요. 춤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몸을 아주 예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다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자칫 부상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룰이 굉장히 중요해요. 참여자 분들이 춤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는 점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일반인이 참여한 이번 즉흥프로젝트는 관객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 냈지요.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지금, 안무가로서 남다른 소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춤이라는 게, 인생이라는 게 균형과 불균형이 있잖아요. 나의 몸, 그리고 상대의 몸에 집중하게 되면 균형과 불균형 속의 흐름을 찾게 되고 그 흐름 안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춤을 통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참여자 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몸을 인지하고 움직이는 것의 차이를 깨닫고 춤에 대한 열망을 갖는 것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지요.
일반인 분들과 함께 한 시간은 스스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저에겐 연령을 나누어 사람을 판단하는 그릇됨이 있었고, 모두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균등하게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점도 있었지요. 점차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느꼈고, 그만큼 더 열심히 몸 공부를 하고 즉흥춤 수업에 적합한 올바르고 구체적인 지시어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3주는 많은 깨달음과 감정들, 고민과 생각에 휩싸여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연주자들의 다양한 악기가 공연에 참여했는데요. 처음부터 악기 편성도 염두에 둔 작업이었는지요?
네. 이번 공연에서는 드럼, 사운드디자인, 첼로가 참여했어요. 첫 번째 전문무용수들의 즉흥에서는 움직임이 많을 테니까 음악이 약했으면 했고, 일반인 참여자들의 무대에서는 리듬을 넣는 정도로 부탁 드렸어요. 드러머는 2007년 정영두 안무가 작품 때부터 알고 지냈구요. 저와 이번에 처음 작업하게 된 사운드디자이너는 어떤 소스를 가져올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연 전날 한번 만나서 작품이 어떤 흐름인가를 보고 사운드 체크를 했었어요. 전작 〈75분의 1초〉 마지막 장면에 첼로를 길게 연주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번 즉흥에서 첼로는 길어지거나 멜로디를 넣거나 하지 말고 현의 튕김 소리들로 드럼, 사운드디자인과 리듬을 만들어달라고 말씀 드렸죠. 첼로도 마찬가지로 공연 전날에 만났었네요. 그야말로 즉흥연주였어요.
이번 즉흥은 우리 모두 연주자이고, 우리 모두가 댄서이기 때문에 움직임이나 음악이 위계를 갖거나 서로에게 보조적인 수단이 되지 않길 바랐어요. 움직임과 음악이 서로의 흐름을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뿐, 힘의 분배는 균등하게 이뤄졌으면 했죠.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 2013년부터 올해까지 총 4회 출연을 비롯해 다양한 즉흥춤 공연을 펼쳐 오셨는데요. 공연장에서 혹은 외부공간에서 즉흥춤의 묘미는 다르게 와닿을 것 같습니다. 경험에 비춰봤을 때 공간이나 상황에 따라 퍼포머가 체감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요?

어느 공간이든 묘미는 있어요. 공연장에서 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죠. 어떻게 보면 한정된 공간이라 제일 재미없는 공간이기도 하구요. 작년 즉흥춤축제에서는 옥상에서 시작해서 스튜디오로 내려오는 구성이었어요. 옥상에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과 별이 떠 있었죠. 다른 퍼포머와 달과 별을 보고, 관객들도 따라서 밤하늘을 보게 되고… 가만히 있을 때 바람을 느끼기도 하구요. 야외 공간에서는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즉흥적인 상황이 생기고 그 영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풍부해져요. 하지만 단점은 열린 공간에서는 보다 관객을 끌어당기고 집중시켜야하기 때문에 조명이나 음악과 같은 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움직임도 닫힌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구요. 야외 공연은 흥미로운 만큼 에너지 소모도 많지요.
뜻하지 않은 관객들의 반응을 즐기고, 돌발상황에 저 역시 반응하는 것이 즉흥춤이잖아요. 즉흥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순간을 버티는 힘도 아름답고, 제가 그 순간에 선택한 것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도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단지 춤만이 아니라 우리 삶과도 맞닿아 있지요. 그리고 내가 어디만큼 와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얼마만큼 배우고 경험했는지 가장 명확하게 답을 주는 것도 즉흥춤이라고 생각해요.

즉흥춤의 가치를 여쭙고 싶어집니다. 즉흥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즉흥춤을 처음 배웠을 때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것, 잘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즉흥춤 기본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없이 몸으로 알아가는 것은 굉장한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어린 아이 둘이 상대가 움직일 때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룰을 숙지하고 그 안에서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며 움직임의 자유를 느끼는 것과 같아요. 혹자는 즉흥춤을 두고 무용하다가 막힐 때 갑자기 때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잘 듣고 방향성을 찾는 것, 그 순간의 리듬과 속도를 찾으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 즉흥춤이지 절대 때우는 춤일 수 없어요.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이 관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우리네 삶과 즉흥은 마찬가지죠.
한편으로 즉흥춤에서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면 재미가 없어요. 내 주체적으로 나를 이끌어 나아가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때 행복하죠. 1960년대 저드슨 교회에서 언니, 오빠들이 외쳤던 평등주의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유효하지만, 그대로 지켜지거나 발현되기란 여전히 쉽지 않아요. 즉흥춤은 관계를 평등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어요.
저는 즉흥춤을 할 때 수많은 언어를 잠깐 잠재우고 태초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을 끄집어내서 투명하게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에요. 살면서 이만큼 순수한 몸짓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요? 즉흥춤은 나의 몸, 우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에요.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원금을 하나도 못 받았지만(웃음) 매년 해왔던 11월 공연을 올해도 선보일 계획이에요. 11월 21-22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을 대관해 놓았어요. 이제 서울국제즉흥춤축제로 봄 농사를 잘 마쳤으니, 여름과 가을 잘 준비해서 겨울을 맞이해야죠. 이번에 같이 공연했던 무용수들과 그때도 함께 하는데요. 임산부 무용수를 제외하고 한명 더 충원해서 공연하려고 해요. 〈75분의 1초〉에서의 균형과 불균형 이야기가 연장될 예정이에요. F1+F4=0, 즉 ‘힘의 균형’을 도식으로 풀어서 〈1과 4〉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어요. 힘의 균형 ‘0’의 상태로 만들어 보는 움직임, 혹은 다수와 소수 사이에 나타나는 신체적·사회적 불균형과 힘의 원리를 움직임으로 풀어보는 것이 남은 숙제예요.

균형과 불균형에 대한 탐구 연작도 무척 기대가 큽니다. 바쁘신 가운데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2017.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