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무용인의 진로 다양화를 다시 고민하다
송준호_공연 전문 기자

 취업, 즉 '먹고 사는' 문제는 당연히 예술인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기반이나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이상 예술인도 직업전선에 있는 노동자에 다름없다. 그래서 최근 예술인 복지법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예술노동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다른 장르와는 달리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인의 경우 필연적으로 이런 '노동 인생'의 수명은 더 짧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무용인에게 은퇴 후 혹은 졸업 후의 진로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해 전문무용수의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하는 자리가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 이미 1995년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이 모나코에서 ‘직업무용수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고, 이를 계기로 전문지원센터의 필요성이 제기돼 지금의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에는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이 이어져 지난 2007년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출범하는 결실도 맺었다. 최근엔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관련 사업을 토대로 빈번하게 대담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어느 정도일까. 17년 전에 비해 전문무용수를 비롯한 무용인의 좁은 진로 문제는 얼마나 개선됐을까.



전문무용수의 직업화 어려움 여전

 올해도 어김없이 비슷한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지난달 27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전문무용수의 직업화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장광열 한국 춤정책연구소장은 '전문무용수 직업 창출을 위한 제도 개선과 현실적 과제'의 문제를 짚었고, 장인주 무용이론가는 '전문무용수 직업전환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를 흥미롭게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은 '민간 예술단체의 살아남기와 고민'에서 국립 무용단에 대한 차별적 지원에 따른 민간무용단 운영의 고충을 설명했다.
 크게 보면 이번 행사도 기존 세미나나 심포지엄에서 나왔던 현황 분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 제도의 허점과 이에 대한 보완책 제시, 뿌리 깊은 춤계 내부의 관행에 대한 반성, 해외 직업전환 프로그램 동향, 그간의 전문무용수 직업전환정책의 연구결과 등이 주를 이뤘다. 직업전환 문제라면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 현황이 있었어야 했는데 다분히 '은퇴 전' 생활의 어려움에 초점이 맞춰진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무용수들의 진로 결정과 각종 지원에 관한 최일선 단체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활동과 연관돼 있다. 2007년부터 시행됐던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직업전환 프로그램은 당시 은퇴한 전문무용수 두 명을 재활트레이너로 육성함으로써 첫 성공 사례를 이룬 바 있다. 해당 프로그램이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삭감으로 2010년부터는 중단되어 무용수들의 두 번째 인생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최근 조사였던 <2007 전문무용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66.8%의 무용수들이 은퇴 뒤에도 춤과 관련된 직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답하고 있다. 반면 타분야에 대한 희망은 26.4%에 불과했다. 춤을 포함한 문화 영역에서의 전직 희망은 81.4%로 압도적이다. 이는 무용수들의 타 분야에 대한 정보 부족과 불안감을 대변해준다.
 그러나 춤 유관 분야로의 전직 또한 무용단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은퇴 후 무용단에서 새로운 직무를 맡거나 학교의 체육ㆍ무용 강사로 새 출발을 하게 된 무용수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은퇴한 무용수의 전직 종목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개인 교습이나 사설학원을 여는 것이다. 학원을 차리는 데 필요한 자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전혀 지식이 없는 분야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창업을 하는 데 필요한 전문지식이나 타분야로의 순조로운 재출발을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적인 지원과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앞으로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부분이다. 



 
​직업전환의 성공과 실패 사례

 은퇴 전 무용단에서의 지위를 내세우거나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다고 해서 무조건 사설학원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솔리스트 출신인 A씨도 처음엔 상당한 자금을 들여 그럴듯한 학원을 차렸지만 예상과는 달리 처음 몇 달간은 적자의 연속이었다. 상권 분석을 하지 않고 무작정 눈에 잘 띄는 대로변 공간을 임대한 것이 화근이었다. 고민 끝에 그는 학원을 정리하고 다시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한 후 적당한 곳에 다시 학원을 열었다.
 "계속 기다리기만 했으면 망했을 것이다. 나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인근에 요가학원도 있고 피트니스 센터도 몇 개나 있었다. 막연하게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발레를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 실수였다. 그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취향 같은 것도 연구하고 유사업종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분석한 후 시작해야 한다."
 학원 운영에는 SNS도 적극 활용한다. 단순히 강사와 원생의 관계를 떠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장기회원의 유치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 A씨는 "발레를 단순히 체형 교정이나 살빼기 용도로만 보지 말기를 당부하는 마음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자주 연락을 한다. 또래와는 친구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발레에 대한 애정을 심어줄 수 있어 무용인으로서 보람도 있다"고 말한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B씨는 졸업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20대 후반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 때문에 삶은 갈수록 우울해졌고, 가끔씩 작품에 참여해도 예전만큼 보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점점 더 무용수 생활과 멀어지던 그때 뮤지컬 무대가 새로운 기회로 찾아왔다.
 "우연히 뮤지컬 오디션 정보를 보게 됐다. 사실 노래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캐릭터 연구만 해서 갔는데, 다행히 심사위원들이 춤 실력과 표현력을 잘 봐준 것 같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C씨는 친구와 함께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템은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각종 패션 소품 등이었다. 할인 이벤트와 연예인 모델 섭외, 대량의 이메일 발송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처음엔 기대 이상의 수익을 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MD를 새로 채용하고 사이트 디자인도 바꿔봤지만 추락은 계속됐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B씨는 결국 수천만 원의 적자를 안고 1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다.
 D씨는 춤을 계속 추고 싶었지만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게 된 경우다. 그는 자신의 부상 관리를 하면서 재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 학창시절 필라테스에 대한 경험이 있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다.
 "다쳐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무용수의 근육을 잘 몰라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던 경험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재활 트레이닝이나 운동처방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배출되는 무용인의 수가 많은 만큼 전문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용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정책과 교육의 다변화로 진로 개척 힘 키워야

 위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무용인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때 실태조사에서 나온 것처럼 춤이나 신체 관련 업종으로 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심신을 연마해온 무용수들이 춤 활동에서 축적된 예술적 감성과 신체적인 능력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직종은 개인은 물론 무용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역이다. 또 이런 상황은 기존 직업전환 프로그램의 재시행과 추가 개발을 더욱 촉구하는 부분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결국 무용인의 직업전환은 더 이상 은퇴 후가 아니라 졸업 전부터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매해 쏟아져나오는 1천여 명의 대학졸업자 가운데 전문무용수의 길로 들어서는 이는 극소수다. 나머지는 현실적으로 바로 타 직업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다. '88만 원 세대'나 졸업 후의 '좁은 문'은 무용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현재로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본인이 춤을 그만두게 되면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재능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렇다.
 수십 년간 이어진 춤계의 습성이나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정부의 지원 정책 등의 개선을 외치는 접근방식은 지금 당장 선택의 기로에 선 무용인들에게는 공염불처럼 들릴지 모른다. 물론 정부 지원 확대를 통한 무용수의 직업전환 활성화는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당위과제다. 하지만 급격히 협소해진 춤 저변의 현재는 전문화되고 복합화되는 현대사회의 조류를 미리 받아들이지 못할 까닭일 수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고와 감성에 대한 각성이 어느 떄보다 요구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대학은 이런 상황을 정책이나 교과목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다음 인생'을 고민하는 대부분의 무용인들을 취업, 창업, 직무별로 세분화해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무용단 창단이나 학원 개원, 뮤지컬 등 인접예술로의 진출, 요가나 필라테스 강사 등 기존 진출 영역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조류를 적극 반영해 새로운 직무를 발견하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현장에서 일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춤의 인접 분야에 대한 교육을 비롯해 대중문화나 사회 일반에서 발견되는 춤의 요소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는 식의 접근법도 도입할 만하다.
 무엇보다 무용인이 보다 전문화되고 직업화하기 위해서는 직업전환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버리고 춤예술 전체의 확대와 발전 차원에서의 거시적 관점이 필요하다. 지금은 중단된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직업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재활 트레이너로 거듭난 장향인 씨는 은퇴의 기로에 선 무용인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무용인들이 예술가로서의 고집이 있어서 예술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서 둘러보면 많은 일자리가 있다. 꼭 한 가지만 고수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는 일반의 상식을 넘어서는 감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무용과 나오면 할 수 있는 것들' '무용수 그만두면 하는 사업'의 항목에서 일반인도 예측할 수 있는 아이템은 이미 그 실효성이 다해가고 있다. 이제는 춤의 감동처럼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담긴 콘텐츠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춤을 춰야 할 때다. 그리고 정부와 학교 그리고 춤계는 이 같은 새로운 진로가 구현 가능하도록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2012.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