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팩 솔로이스트,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세계를 만들어 내는 '작가 choreographer'의 탄생
이지현_춤비평가

2011 여름, 3주 정도를 연속적으로 비가 내렸다. 여느 해보다 좀 길다 싶더니만 끝은 아주 단칼에 깔끔하다. 언제 하염없이 퍼부었냐는 듯이 불볕이다. 전반적으로 지구의 기상이 이제는 '이변'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변화'에 대해 강요를 하고 나섰다. 이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어느 때의 경험을 참고할 만큼 얌전하지 않다. 예측과 대비의 수준을 각성시키고 있다는 차원에서 환경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변화의 질은 역동적이고 새롭다. 누구든 함부로 이 상황에 대해 단언할 수 없으며, 미래론이든, 종말론이든 어느 한쪽으로 단순하게 마음 정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가상으로 서바이벌을 은유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는 서바이벌의 긴장과 위협에 노출된 지금 사람들이 빠져들 만한 오락이 되고 있다.

그런 강렬한 변화에 춤계도 영향을 받고 있는걸까? 구태의연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사이의 구분은 명확하고 연속은 끊어져 가고 있다. 세대 간의 구별과 단선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이런 흐름이라면, 한국춤사에서 80년대의 부흥기이후 90년대 중반부터 2010년까지의 상황은 2011년부터 용틀음을 틀고 있고 앞으로 예측되는 변화를 위한 '카오스'로 정의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돋보였던 80년대와 2010년 이후 작금의 시기는 그 사이의 15년 정도의 카오스를 지나오면서 '양적인 팽창에서 질적인 도약'으로 변화의 질이 달라지는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역동적 시기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무용계의 상황은 어느 때 보다 불황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은 대학구조조정과 무용과 폐과사태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있으며, 정책과 지원구조는 많은 시도를 하고 있으나 창작의 흐름과 조응하지 못해 창작자들의 답답함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 두 가지 물질적 기반의 불안정은 당연히 무용인과 창작자의 양적 축소를 동반할 것이며, 그것은 다른 의미로 사회에서 요구되는 창작자와 무용인의 수준과 질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은 춤에 대한 예술적 안목의 성장으로 무용계 권력구조가 쉽게 왜곡하고 은폐할 수 있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같은 권력을 위해 예술을 이용하던 상황이 더 이상은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또 하나 방향모르고 대충 흐름을 쫒아가는 창작자에 대해서도 이전 같은 아량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예술적 역량에 대한 갈망은 강렬하고 뚜렷한 것이 된 셈이고 무용계가 이런 욕구와 요구에 잘 부응한다면, 오랜 시간 갇혀있던 폐쇄구조의 늪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변화의 한 가운데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미 20대 중, 후반의 젊은 안무가들에게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뚜렷한 세계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의 자아는 불안정한 현실 덕분에 현실적인 조건에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아 예술적 자아가 설 공간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 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그럭저럭 20대까지는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예술에 몰두 할 정도의 우리의 현실이 넉넉해 졌다는 얘기가 될 수 도 있다. 또 하나 춤 창작을 도와주고, 창작물들은 모아 무대를 만드는 신선한 기획이 양적으로 늘었고 질적으로 성장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HanPAC 테마별 공연예술 시리즈, 2011 한팩 솔로이스트
- 2011. 6. 10. 아르코 대극장


'솔로이스트'라는 단어는 자극적이다. 이 홀홀 단신의 한 단어는 춤에 대한 욕구불만을 날려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혹적이다. '솔로이스트'는 항상 모든 춤들의 정점에 우아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들이며, 그들이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가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함축으로 그들의 춤은 관객에게 충족적이다. 그러나 한팩 솔로이스트 공연에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스스로 혼선을 정리하지 못하였다. 미래 솔로이스트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안무가와 매칭프로그램을 염두에 둔 것 같으나, 4쌍의 형제, 남매, 자매 춤꾼들과 4명의 솔로 무용수들을 적절히 안배해 자신감 부족의 염려를 순도를 낮추는 것으로 절충하였다. 그러다 보니, 형제들의 춤을 보는 맛과 솔로이스트들과 안무가들의 초절정의 순간을 기대하는 맛이 엉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겁쟁이 기획이 선사하는 어정쩡한 식탁이 되어 버렸다.

〈minor〉 (천종원 안무, 김재덕․김재윤 출연)
김재덕은 병립할 수 없는 보헤미안적인 허무와 아이 같은 열정의 공존을 보여주는 댄서이다. 게다가 그가 여러 미숙함에도 기대를 얻어내는 지점은 노래에서 싱어송 라이터처럼 음악작곡으로 장편의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생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영국에서 램버트, 내셔널 발레 스쿨에서 수학한 남동생이 있었고, 이번 형제 무대에 이란 작품에서 이 둘이 춤을 추고 김재덕의 후배인 천종원이 안무를 하였다. 천종원은 이제 20대 중반으로 약력은 덜하나, 이번 <마이너 룸>에서 안무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들의 작품은 정확히 안무자에게 전권을 주는 형식이라기보다는 멘토 역할을 하는 협업 스타일에 가깝다. 이런 작업 방식이 친분이 있는 그들 사이에서는 더욱 협업의 효과를 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게 이 방식은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들이 설정한 공간은 '단조의 방'이다. 물론 장조와 상대적으로 단조는 비정상, 우울, 은둔의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그 방안에서 형제는 닮은 듯, 다른 듯 춤을 춘다. 발레와 현대무용이라는 춤의 배경을 현대무용으로 수렴해내면서 김재윤의 춤은 조금은 미숙해 보이나 김재덕과는 달리 김재윤은 단단한 몸과 다져진 발레 기본으로 동작이 깔끔하게 절제되어 있다. 무대 한켠에 묘한 부조화의 소품들이 엉켜 있다. 되는대로 몰아놓은 비닐뭉치, 나중에 거기서 나오는 도끼와 망치, 그 앞을 가리고 있는 화려하지만 생명이 없는 조화를 담은 키 큰 화분... 반대편에 위치한 생뚱맞은 변기... 이런 이질적인 이야기를 가진 소품들이 이 형제의 춤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이다.

이들은 대부분 화기애애한 춤을 함께 추는 편이다. 그들의 unison에서는 배려와 따뜻함이 베어 나온다. 그 둘이 각자의 캐랙터를 갖는 다기 보다는 이 둘은 분신에 가깝다. 그래서 서로 각자의 표현을 하는 부분에서 어떤 갈등은 만들어 지지 못하고, 형제의 춤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변기에다 구토를 해대거나, 마치 무슨 살인을 음모라도 하는 것처럼 비닐을 깔고 도끼를 꺼내고 웃통을 벗는 그들이 말하는 "정신이상자"들의 행동은 몹시 날 것이긴 하지만 장난스럽다.

이들의 협업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은 작품의 세계에 대한 뚜렷한 중심을 누군가가 갖고 있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서로가 빈 부분을 적절히 알면서 메워갔다는 것이고 그것이 낳은 결과는 작품이 표현하려는 것을 충실히 표현해냈을 때 느껴지는 충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 단조의 방에서 도끼를 어깨에 멘 형제의 몸이 무대 뒤로 그림자로 투사되고 ㅡ들의 몸위로 'just two of us'가 흐른다. 이 마지막 부분은 팝송이 갖는 힘으로 그간 그들이 성장하면서 그랬을 법한 놀이, 장난, 반항, 탈선, 광기를 하나의 성장동화로 통쾌하게 감싸 안는다. 거칠었던 방황과 광기를 공포 반, 코믹 반으로 잘 섞어 낸 독특한 작품이 하나 탄생했다.

<발자국> (알랭 플라텔 안무, 예효승 출연)
예효승은 현재 세드라베 단원으로 일본 파파타라후마라와 카롤린 카르송 무용단 단원의 경력이 화려한 무용수다. <발자국>은 세드라베의 안무자인 알랭 플라텔이 예효승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예효승의 과거, 흔적, 돌아봄의 정서 가득한 작품이다. 무대에는 중앙에 마이크만이 내려와 있다. 조명은 처음에 관객을 훑어 비추다가 무대로 돌아간다. 예효승은 카고 바지에 셔츠를 걸친 일상복 차림으로 손에 종이봉지가 들려있다. 주로 상체를 정교하게 사용하는 관절과 근육을 역방향으로 비트는 섬세하나 강렬한 동작으로 그는 과거로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흐른다.

놀랍게도 동작의 추상성과 함축성이 어느새 우리를 어느 골목에서 혹은 어느 연습실 구석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입에 구겨 넣고 있는 누가에게나 있을법한 외로운 순간으로 이동시켜 준다.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는 꾸역꾸역 먹는 소리와 뱃속부터 올라오는 어떤 욕구가 빚어내는 말이 되지 못한 웅얼거림은 관객의 마음을 예효승의 마음 가까이에 두게 한다. 말할 수 없었던, 말하지 못했던, 차마 말이 되지 못했던 그 마음은 무대에서 춤으로 완전히 피어 오르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사람'으로부터 춤을 만들어 내는 알랭 플라텔의 솜씨는 누구나 아는 단순한 논리임에도 매번 놀라운 가시화를 시켜낸다. 알랭의 접근법과 그 접근법을 예효승이 자신의 '몸 다룸'을 통해 보여주는데, 그의 등과 견갑골, 가슴과 팔의 근육은 마치 각자 따로따로 떨쳐 일어나 각자의 배역을 충실히 해내듯이 몸이 아닌 하나의 배역을 해낸다. 자신의 얘기를 춤이 아닌, 동작이 아닌, 그런 개념과는 다른 '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의 중요한 사례를 <발자국>이 보여주고 있다.
 

2011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
- 2011. 6. 29~30. 아르코 대극장


2011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의 총 15작품은 보기에도 벅찬 작품의 양과 질로 객석을 압도하면서 치러졌다. 무용 소외지역이라 할 수 있는 울산, 포항, 울진, 영양 구석구석까지 찾아가는 무대까지 마련되어 있는 꽉찬 올해의 기획은 그간 해외무용스타들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자 이 기획공연이 이제 자리를 잡고 해외체류 무용수들에게는 명예로운 무대이자, 관객들에게는 자부심과 만족을 안겨주는 무대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중의 스타는 역시 강효정이었다. 여성무용수의 힘과 능력을 한껏 보여주는 (Douglas Lee 안무, Jason Reilly와 듀엣)에서의 놀라운 춤은 현대발레의 안무가 도달 할 수 있는 지점을 무용수가 어떻게 보여주는 지를 단숨에 압축하여 보여 주었으며, (Christian Spuck 안무, Jason Reilly와 듀엣)에서 이미 테크닉을 넘어 오히려 테크닉에 대한 풍자를 표현하고 연기해야 하는 경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강수진이 정서적인 강점으로 배역을 풍부히 소화해내 고유의 미적 위상을 갖는 발레리나였다면, 강효정은 힘과 유연함, 밝음과 풍부함을 겸비하여 완숙단계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원석의 보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eclosion〉 (김남경 안무․출연)
이번 프로그램에서 대부분의 고전발레 소품과 현대발레 작품 속에서 단연 이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작품은 이다. 올해 34살인 김남경은 이제 그간 한국에서 춤추었던 8년을 가볍게 뛰어 넘어 10년째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피에트라갈라 컴퍼니 단원으로 적을 두고 있다. 이번에 보여준 10분간의 무대는 전체 19분의 솔로 작품 중의 일부이다. 가장 현대인다운 심적인 갈등- 고립, 단절, 탈출에의 의지-을 가장 원시적 상태로 표현해는 이 작품은 묘한 매력을 안고 있다.

어두운 방안, 다리가 잘린 등받이 의자에 긴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몸이 유체처럼 얹혀져 있다. 그 방의 스탠드인 듯한 백열구 하나와 그 옆에 낮은 마이크가 방안 어둠의 무게와 바닥의 울림을 증폭해낸다. 김남경이 의자 주변을 떠나 방안을 휘저어 다닐 때도 음악이 없는 공간 혹은 하차투리안의 'Masquerade Waltz'가 흐르는 동안에도 김남경의 몸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신음과 애씀의 소리는 점점 더 강하게 들리는 듯하다.

무릎길이의 튜닉을 걸치고 긴 웨이브 머리를 파도치면서 바닥을 구르고 뒹굴던 몸은 점점 격력하게 일어나 왈츠 아닌 왈츠, 팔과 어깨가 굳은 채 전사같이 무릎만 굴신거리거나 보폭을 넓혀 한발로 추진력을 갖는 스텝을 통해 3박자를 만들어 내며 현대인의 불편한 왈츠를 빚어낸다. 진정한 마음속 자유를 찾기위해 지금 현재의 감옥은 금빛으로 단장되어 있으나 감옥은 감옥이다. 그리고 그 감옥을 탈출해야 하는 건 현대인의 숙명이다. 사지를 펼치고, 이완시켜 몸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뻗을 수 있는 데 까지 던져 다시 되돌아오는 사지의 힘을 받아 내 몸의 중심과 사지의 원심력을 위태롭게 조화시킨다. 마치 사지가 분해되어 버릴 것 같은 이 강한 던짐은 왈츠가 깊어질 수 록 몸의 중심으로 힘을 모아내어 탈출의 힘으로 쌓여 나간다.

마치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에서 제물로 받쳐지는 여자 주인공의 김남경식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은 거친 동작과 정교하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지만 작품을 이끌어 가는 김남경의 에너지-자신을 풀어 놓았다가, 다시 모을 수 있는- 사용의 논리와 무형의 구성이 조작되지 않은 원시적 매력을 가진 작품으로 탄생되어지고 있었다.

 

2011.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