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송년기획_ 2016년 춤계를 말한다: 춤비평가 방담


 



장광열
: 2016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해 춤계도 많은 공연들이 곳곳에서 열렸습니다. 서울의 경우 춤 전용 소극장외에도 영등포구를 포함해 춤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늘어나면서 곳곳에서 적지 않은 공연들이 열렸습니다. 공공지원제도, 춤 인프라, 국제교류가 다양화 되면서 춤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춤의 영역도 훨씬 확대되었던 한해였습니다.
 한불수교사업으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두 나라 무용가들의 교류 프로그램이 많았고, 한국 안무가들의 작품을 프랑스에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서울무용센터가 4월 8일에 오픈했는데 1년도 안되어 우리나라 춤계의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레지던시를 할 수 있는 숙박시설 및 연습실을 갖추고 있어 작은 규모의 해외단체나 안무가와의 작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이 공간에 대해 주목해야할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춤 지원사업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은 그동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는 몇몇 화제작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밖에 축제와 기획공연, 개인 발표회 등여타의 공연을 통해 보더라도 올해는 젊은 안무가를 중심으로 질 높은 작품이 선보이는 등 독립 안무가들이 약진하는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외국의 프로페셔널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무용수들도 눈부신 활동을 했습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은 '2016 브누아 드 라당스' 최우수 남성 무용수상을 수상했고,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박세은은 수석 무용수(프리미에 당쇠즈)에 올랐습니다. 한서혜는 보스턴발레단, 이상은은 드레스덴발레단, 최영규는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어요 .
 춤계의 국제교류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도 고무적입니다. 시댄스, 스파프, 모다페 등 대표적인 국제 춤축제들은 높아진 예술성 혹은 예년에 비교해 현상유지를 했지만, 창무국제무용제의 경우는 예산이 늘어났음에도 프로그램 구성이나 정체성에서 심각한 우려의 소리를 낳았고 부산국제무용제는 태풍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춤 공연이 어느 때보다 늘어난 것도 주목해야 할 흐름이었습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국제장애인무용제가 태동했고, 우리금융아트홀의 상주예술단체로 지정된 안은미무용단은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춤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국내외 장애인무용단과 안무가들의 다양한 작업은 장애인 춤이 한국 춤 문화의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원로 무용가들 배정혜 김매자 국수호 육완순의  활발한 활동도 이어졌는데요. 배정혜는  국립무용단과  공연한 와 신전통에 관한 렉처 퍼포먼스가 호평을 받은 반면에 국립무용단과 함께 공연한 김매자의 <심청>은 창무회 오리지널 버전과 비교해 완성도가 떨어졌고, 국수호가 서울시립무용단과 함께 공연한 <신시>는 과다한 물량과 과욕으로 외화내빈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현대무용진흥회를 이끌고 있는 육완순이 주최하는 서울안무가페스티벌은 기존 작품들이 이 축제를 통해 재공연되면서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춤계에서도 시국춤, 시국선언문 등이 나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국공립단체장들의 장기 공석상태도 문제였습니다. 국립무용단은 1년 2개월 만에 예술감독이 임명되었고, 국립국악원무용단은 5월부터 지금까지도 공석상태이며, 국립현대무용단도 예술감독이 5개월 동안 공석이었다가 며칠 전에야 선임되는 등 파행을 겪었습니다. 대통령 탄핵 정국과 김영란법 시행과 맞물려 한국 춤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잘못된 행태와 관행들도 대수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지현
: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는 ‘한불수교 130주년 상호교류의 해’였습니다. 공연예술에서만 400여개의 사업이 진행되었고, 그 중 춤 공연은 20여개의 사업으로 한국과 프랑스에서 공연되었지요. 규모 면에서 국가간 교류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교류가 서로의 작품을 초청해서 공연하는 것이었다면, 국립극장 국립무용단과 샤이오극장이 동일한 제작비와 역량을 모아서 공동제작을 시도한 작품 〈시간의 나이〉는 국가간 공동제작이라는 의미만큼 주목받았습니다. 한불 교류의 시점을 1886년 병인양요로부터 잡는 것도 우리 역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대한 제국에 힘으로 제압당해 교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기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대의 문화강국들과의 교류에서 우리는 무엇을 초점으로 그들을 만나야 할까요? 그저 우리 것을 좋아해 준다는 것에 인정받았다고 기뻐해야 할까요? 여태까지의 국제교류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행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간의 나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4월에 재공연이 있으니 선생님들께서도 관람해주시고 비평적 논의가 다양하게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이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에 안성수교수가 선임되어 임명장을 받고 기자회견을 하는 기사가 올라왔더군요. 국정농단의 중심에서 많은 책임이 물어지고 있는 조윤선 장관으로부터 급작스럽게 임명이 된 듯합니다. 김상덕 국립무용단 단장과 더불어 무용계는 정치현실이나 국민정서와는 아무 관계없이 사는 동네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두 분 모두 국정농단과 연결된 문화계 인사와의 친분이 언급되고 있지요. 그렇다면 더더군다나 공공무용단의 예술감독이 과연 순수하게 인선이 된 것일까가 앞으로 짚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마치 예술이 정치 진공의 세계인 듯 말하는 분들이 있던데 그런 분들은 오히려 더 정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많은 독립무용인들이 자발적인 서명을 많이 했지요. 이제 무용인들도 국민의 수준 정도의 의식은 가질 때가 왔다고 봅니다. 신임 국립무용단 단장은 객석을 채우는 능력이 있다고 하던데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그저 객석을 채우는 것과 공공성을 갖는 것이 동의어인지 말이죠. 시대마다 훌륭하고 소신 있는 예술인들은 왕이든 유명 정치인이든이 불러도 절대로 가지 않고 보려면 오라고 했다는 수많은 일화가 있지요. 우리는 아직 그런 수준은 멀었나 봅니다. 불러주기만 하면 만사를 다 접고 달려가는 모습이 참 부끄럽습니다.

 

 



권옥희
: 대구-부산 지역의 공연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해였습니다. 대구보다 부산쪽이 좀 더 활성화되면서 그간 다소 가라앉아 부산의 있던 춤이 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시립무용단에 아시아권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용철 예술감독이 부임한 뒤 올린 작품 〈업경대〉가 부산 시민들에게 긍정적으로 회자된 것이 그 바람의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의 협회는 아직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제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구의 경우에는 젊은 안무가들이 자유롭게 설 수 있는 무대가 적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협회를 비롯, 문화재단의 심사과정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다반사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일 년, 길게는 이 년에 한 번씩, 그것도 늘 받는 사람만이 소액을 돌아가면서 받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협회와 재단의 눈치를 많이 보고 그쪽과의 연을 만들고, 눈에 나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불합리한 제약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시급히 조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재단에서 하는 심사 또한 대구 무용계를 모르는 서울을 비롯, 타지역의 분들이 심사를 맡아서 서류만 보고 평가하는 경우에다, 협회여론(입김)으로 심사위원이 선정되는 심사는 누가 내려오든지 간에 평가기준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보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심사위원 선정과 지원금의 액수 문제로 지역의 무용인들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협회와 재단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또 하나 짚을 문제는 지원금을 받은 공연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든 환경인 것 같습니다.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대구국제무용제의 경우 예산에 비해 형편없는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구국제무용제는 몇 년 전부터 제가 국제무용제가 아니라 ‘국적’만 다른 무용제라고 말했왔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세금낭비라고. 그럴 때마다 주최측은 예산이 적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고, 작년에 비해 올해 크게 늘어난 예산인데도 대극장 공연만 하나 추가했을 뿐, 내용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변화된 것을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사람문제(능력과 책임의식)인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평가가 아니어서 공연장에서 누군가 제게 눈을 흘기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변화와 발전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해서 내년에는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생각입니다.

 

 



이병옥
: 저는 주로 전통무용 쪽만 보는데요, 작년 올해 사이에 90대 원로 무용가들의 작고가 많았습니다. 강선영, 이매방, 전황, 김덕명 선생님께서 작고하셨고 김백봉, 김문숙 선생님이 생존해 계십니다. 역사의 흐름이겠지만 그 분들에 대한 사회적인 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통무용 분야에서는 작고하신 분들의 회고 1주기 공연들이 있었습니다.
 그룹전 공연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명인명무전, 한국춤대전, 예인열전, 명무대전, 대한민국 명무전 등등 동인 식으로 확대되는 특징을 갖습니다. 50, 60대가 주역이 된 전통무용 그룹전이 많이 늘어난 추세입니다. 이번 25일 〈꽃보다 춤꾼〉이라고 해서 남성 춤꾼들의 류파별 한량무 춤판을 벌리는 것도 한 예입니다. 전통춤의 여러 유형, 종목들을 발굴해서 공연하는 양상인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김채현: 최근 몇 년동안 독립춤꾼들의 활동 비중이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는가, 그리고 이런 활동을 춤비평, 지원(후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서울무용센터가 자리 잡는다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거든요. 주로 인디 춤꾼들의 성향에 맞춘 작업들이 무용센터에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촛불적 춤계 민심이랄까, 거기에 해당하는 공론화 과정을 추려서 탄핵정국 국면 이후 무용계의 기회라면 기회, 계기라면 계기를 잘 살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우리 무용계에 가시화된 뚜렷한 현상은 아닌데 관심의 측면에서는 ‘춤계의 공공질서란 무엇인가’하는 점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지요. 공공질서라 하면 무용인들의 공공적인 처신도 있겠지만 지원이라든지 선정에 있어 공공질서는 무엇인가를 많이 묻게 되거든요. 지원 내지는 선정사업이 쇄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 점을 앞으로도 당분간은 집중 논의해서 쇄신의 결과를 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지원·선정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공공무용단이 갖는 비중이 너무도 크다는 점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공공무용단의 책임자, 예술감독의 임명이 석연치 않게 이뤄지고 있단 말이죠. 임명하는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 묻게 되는 것은 우선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공무용단의 책임자를 일방적으로 임명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임명 방식에 대한 절차의 타당성 문제를 짚게 됩니다. 공공무용단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탄핵정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촛불민심이라든지 춤계민심을 도외시하는 식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지 않는가, 다시 말하면 춤계의 열망을 잘못 읽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올해 그런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여론도 무용계에서 많이 부각되고 있어요.

 

 



채희완
: 춤구경을 많이 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올 한해를 결산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먼저, 11월 7일에 춤비평가협회에서 시국선언을 만장일치의 내용으로 했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역사적이고 춤계에서도 의미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춤은 어느 예술장르보다도 삶과 직접적이므로 삶에 따라 춤의 동향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만, 많은 부분 그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민심의 향방이 춤을 그대로 두지 않은 형편에서 비평가로서 같이 동참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뜻 깊은 일이었다고 자평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선언문에 있었던 것처럼, 이 지경으로까지 가는데 동조하거나 뒤쫓는 작태는 안 벌렸는지, 또는 방조, 방치하거나 외면하고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하게 됐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춤비평가협회가 기존에 있었던 춤평론가회와 결별해서 새롭게 진출하게 된 계기와도 맞물려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역에 있는 지방대학은 인문계뿐만 아니라 예능계도 마찬가지지만 무용과가 거의 폐쇄 직전에 와 있고, 있더라도 고사 직전에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춤 동향을 살피는데 지극히 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책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중고등학교의 정식 예술교과목으로서 정책적으로 진입해가고 있다는 점은 암울한 춤 교육계 전망에서 밝은 것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거기에도 비평계의 적극적인 발언과 행위가 따라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산 지역에서는 부산시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이 힘 있는 작품내용을 구성, 그야말로 시민단체로서 관공서 춤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춤 작업성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로 보았습니다. 한편 부산 지역에서는 생태문제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춤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춤 공간의 확보·확대라고까지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실내 무대공간을 넘어서 거리로 산으로 들로 춤 공간을 넓히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현장과 더불어서 최근, 그전부터도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춤의 비평대상으로, 예술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이른바 시국춤이라고 할까요. 11월, 12월에 시국판에 춤추어진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주어지고 집단적으로도 행해졌는데, 그것을 비평계에서는 춤 이전의 것으로 봐서 그런지 혹은 예술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무관심하거나 도외시해왔습니다. 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순열: 한해를 돌아보는 시점에서 탄핵정국이라든지 촛불민심과 같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이 혼란 속에서 맞이할 내일이 어떤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단테의 「신곡」이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요즘 사태를 보니 정말 쇼큐멘터리의 극치입니다. 다큐멘터리와 쇼크를 합쳐 쇼큐멘터리라고 하는데 아무도 이 말을 쓰진 않는 것 같더라고요. 쇼큐멘터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스케톨로지(scathology)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는 똥파리라는 뜻이에요. 한 때는 개판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죠. 지난번에 유인촌 이라는 개판을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몬도가네 상을 주었었는데요. 개판이라고 하면 개들이 촛불시위를 할 것 같아서 똥파리라고 해야 제대로 되지 않나, 그래서 스케톨로지라고 얘기하게 됐습니다. 우리들의 쇼큐멘터리는 스케톨로지입니다.
 몬도가네의 후속편이 몬도델라 돈나(여인들의 개판)인데, 이것에 스케톨러지가 한데 엉켜있습니다. 똥파리를 만드는 데에 비아그라가 없어선 안돼요. 그 본질을 이야기하자면 비아그라 판, 몬도델라 돈나에서 핵심적인 것이 fuck입니다. fuck라는 것은 fornication under the concent of the king, 임금의 재가를 받아서 잡질을 하는 것의 약자에요. 킹과 퀸이 아닌 그 대행자가 할 때에는 fucks, 마지막에 s가 붙어요. fornication under the concent of the 순실, 즉 순실의 재가를 받아서 놀아나는 똥판이지 않나 생각해요. 단테의 신곡이 똥판의 시조라는 것은 단테의 신곡을 보고 쓴 것이 「데카메론(Decameron)」, 그리고 그것을 보고 쓴 것이 영국의 초서(Chaucer)가 쓴 「켄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입니다. 똥판으로 만든 것도 지옥 속의 탐욕과 음란함,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인데요. 신곡에서 단테가 깜깜한 숲길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거기서부터 지옥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처한 것이 깜깜한 숲속과 같습니다. 거기서 베르겔리우스라는 로마 시대의 신을 만나요. 그의 인도를 받아서 지옥을 거치고 나중에 천국을 갈 때에는 베아트리체가 데리고 가지요. 왜 베르겔리우스의 인도를 받는가, 신곡 해석자들은 그 생각을 못하는데 베르겔리우스의 에클로브 때문입니다. 5절에 보면 ‘이제 꼬마 무당의 시대는 지났으니, 우리 좀 더 드높은 노래를 부르자’라고 합니다. 최순실, 최태민의 무당들을 만나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 시대를 지나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깨끗한 사람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비평가협회라고 해서 시국선언도 했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동참을 했는데 형식적으로만 그런 것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새로워지고 우리들 속에 더러움이 있다면 씻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2016.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