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마츠 에크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신작
노령, 그것은 아랑곳없어
이선아_〈춤웹진〉 유럽 통신원

마츠 에크(Mats Ek)의 신작이 6월 22일부터 7월 14일까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Opéra national de Paris, Palais Garnier) 무대에 올려졌다. 2016년, 마츠 에크는 안무 작업을 중단 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적이 있다. 그가 왜 다시 무대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오랜만에 그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소식에 대중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개인적으로는 마츠 에크의 듀엣 작품들을 좋아한다. 〈The Appartment〉, 〈Smoke〉, 〈BYE〉 등. 그중에서도 특히 실비 길렘(Sylvie Guillem)이 춤추는 〈Smoke〉는 지금도 가끔 보곤 한다. 마츠 에크의 특별한 몸의 언어와 감성이 실비길렘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이다. 마츠 에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유투브에서 검색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번 공연은 기존 작품 〈카르멘〉(Carmen)과 신작 〈ANOTHER PLACE〉, 〈BOLERO〉 총 세개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공연 트레일러 영상: https://youtu.be/fSeeDue5EjM)


〈카르멘〉

〈카르멘〉은 마츠 에크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마츠 에크가 아내 아나 라구나(Ana Laguna)를 위해 안무했다. 라구나는 스페인 출신의 무용수이며, 카르멘 역할을 맡았을 당시 38살이었다. 카르멘 장면 중 시가를 물고 있는 아나 라구나의 모습은 마츠 에크의 아이콘 이미지로 유명하다.(참고로, 마츠에크의 카르멘은 2006년 한국에서 국립 발레단 무용수들에 의해 공연된 적 있다.)




Ana Laguna 〈Carmen〉




 이번에 카르멘 역할을 맡은 무용수는 아만딘 알비송(Amandine Albisson)과 엘레오노하 아바냐토(Eleonora Abbagnato)다. 공연을 본 7월 6일은 아만딘 알비송이 무대에 올랐다. 카르멘 역할을 맡은 아만딘 알비송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많이 아쉬웠다. 주인공 카르멘 보다는 모자쓴 남자 무용수들이 입에 시가를 물고 춤추는 군무 장면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카르멘을 먼저 본 지인들이 왜 실망스럽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나 라구나는 카르멘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영상을 찾아봤는데 확연히 달랐다. 연기가 아니라 자신이 카르멘이 되어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춤에는 힘이 느껴졌고,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강인하고 아름다웠다.






Mats Ek 〈Carmen〉 ⓒAnn Ray_OnP







〈Another Place〉

두번째 작품 〈Another Place〉는 듀엣 작품이다. 마츠 에크는 여성 무용수로 성숙한 무용수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된 무용수가 오렐리 뒤퐁(Aurélie Dupont)이다. 남자 무용수는 스테판 뷰리옹(Stéphane Bullion)이 맡았다. 오렐리 뒤퐁은 2015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 고별 무대 ‘adieux à la scène’를 가진 무용수다. 은퇴한 무용수를 캐스팅했다는 것은, 에뚜알 무용수들중 마츠 에크가 원하는 이미지의 무용수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Mats Ek 〈Another Place〉 ⓒAnn Ray_OnP




 작품 〈Another Place〉는 기존 작품 〈Place〉, 〈Appartment〉와 비슷한 구성과 느낌을 준다. 〈Place〉의 새 버전이라고 느껴질 만큼 매우 비슷하다. 무대 위에 놓여진 테이블, 오랫동안 함께 한 남녀의 관계, 삶에 관한 이야기다. 음악은 프란츠 리스트 (Franz Liszt)를 사용했다.
 오렐리 뒤퐁의 춤을 보는 33분간, 잠시 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얼굴 표정, 움직임 하나하나 깊은 표현력과 풍부한 감성이 돋보였다. 카르멘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오렐리 뒤퐁에 의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작품이 끝날 때쯤 두 무용수가 테이블 위에 앉아 무대 뒤쪽을 바라 볼 때, 막이 올라가면서 무대 뒤편의 파리 오페라 극장 무용 스튜디오(Le Foyer de la danse)가 보인다. 이 공간은 파리 오페라 역사에 있어 중요한 공간이다. 관객이 이 공간을 볼 수 있는건 흔치 않은 기회다.




Mats Ek 〈Another Place〉 ⓒAnn Ray_OnP




 오렐리 뒤퐁은 이날 공연중 가장 아름다운 무용수였다. 올해 오렐리 뒤퐁의 나이 마흔다섯이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은퇴 나이는 여자는 마흔 둘, 남자 무용수는 마흔 다섯이다. 카르멘 역할을 맡은 무용수와 오렐리 뒤퐁의 춤을 보면서 마흔이 넘어야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무대 에서는 은퇴 했지만, 오렐리 뒤퐁의 무대를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볼레로〉(Bolero)

무대 위에 욕조가 놓여 있다. 한손에 양동이를 든 노인이 욕조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욕조에 물을 붓고는 나갔다 다시 들어와 물을 붓고,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마츠 에크와 많이 닮아 보이는 이 노인은 마츠 에크의 형 니클라스 에크(Niklas Ek)다.






Mats Ek 〈Bolero〉 ⓒAnn Ray_OnP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라벨의 볼레로 음악이 흐르고, 무용수들이 한명, 두명 나와 춤을 춘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그룹으로 춤을 추고 무대 양옆으로 다시 나가는 등 16분간 무용수들의 등퇴장이 많다. 무용수들중 한국인 무용수 윤서후가 보인다. 작지 않은 키와 시원한 춤동작이 스물네 명의 무용수들 사이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존재감이 확실해 보였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역동적이고 속도감 있게 흐른다. 반면, 노인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반복할 뿐이다. 볼레로의 음악이 최고조를 향하면서 노인의 욕조에는 물이 쌓여간다. 볼레로의 음악이 끝나면서, 노인은 욕조의 물속으로 몸을 담근다.

 신작 〈볼레로〉는 마츠 에크의 이전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다. 이전 작품들이 주로 사랑,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볼레로〉는 이야기 없이 흘러간다. 감성적이지도 않다. 마츠 에크 하면 떠오르는 테이블, 모자, 자켓 등도 없다. 과감하게 노출 시킨 무대, 천장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만곡 형태의 무대 미술, 발레단에서 가장 젊은 무용수들로 구성된 무용수들에게 딱 어울리는 모자 달린 검은색 점프수트 의상까지. 젊고 감각적인 무대였다. 74세인 마츠 에크에게는 지금도 무한한 가능성이 느껴진다.

이선아 

현재 파리에서 거주중이며 자신의 단체 선아당스(SunadanSe)와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 무용단 “Compagnie Le Guetteur”에서 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춤웹진>을 통해 프랑스 무용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 ​ 

2019. 07.
사진제공_Ann Ray_OnP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