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표지_ 2016년 춤계를 말한다: 선정 10대 뉴스

■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촛불집회 이후 춤계 정화 바람

 대한민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한 것은 비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국정농단 그 자체에 대한 분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잘못된 관행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출이다. 국민들이 두 손에 쥐었던 촛불은 이제 건강하고 정직한 대한민국을 향해 그 빛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무용계에서도 건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촛불과 맞물려 시행 2개월째를 맞고 있는 김영란법은 그동안 묻혀있던 한국 춤계의 잘못된 관행과 부끄러운 민낯들을 급기야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 예술검열, 김영란법 시행으로 한국 춤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잘못된 행태와 관행들이 대통령 탄핵정국을 계기로 대수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용히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무폭력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있는, 정의와 정도를 갈망하는 무용가들의 염원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계에, 그리고 한국의 춤계에 더 세차게 분출될 것이다.

 

 




■ 국공립무용단 예술감독 장기 공석 및 늑장 임명 단체운영 파행

 

 국공립 춤단체 수장(首長)인 예술감독 공석 사태가 장기적으로 이어진데다 후임 감독 선임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단체 운영에서 파행을 가져온 한해였다.
 창단 7년째를 맞는 국립현대무용단은 전임 안애순 예술감독의 임기가 6월 30일로 만료되었으나 12월 들어서야 후임감독을 선임했다. 국립국악원무용단은 지난 4월 한명옥 예술감독 퇴임이후 아직도 후임 감독을 선임하지 못한 채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립무용단은 2015년 6월 윤성주 예술감독이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후 무려 1년 2개월이 넘도록 예술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0월에서야 새 예술감독을 임명했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의 경우 임기 만료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으나 연임이나 신규 선임에 대한 논의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국립발레단의 경우 내년 공연 작품들을 아직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직업무용단에서 예술감독은 단체의 정체성에 걸 맞는 작품 개발에서부터 단원들의 기량 향상, 작품 선정과 제작 스태프 구성, 무용수 캐스팅을 통한 공연의 예술적 완성도를 책임지는 중요한 직책이다. 따라서 외국의 경우는 적어도 계약만료 최소 1년 전이나 그보다 더 일찍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거나 후임감독을 선임해 다음 시즌을 준비하도록 한다.
 직업무용단의 예술감독 부재는 선장이 없이 먼 길을 항해하는 것과 똑같다. 행정의 수장이 대행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국립극장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연출과 안무자들을 객원으로 초빙해 지난해 말 공연한 〈향연〉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정갈하고 세련된 작품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정작 중요한 춤의 맛깔과 그 질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허점이 노출되었다. 예술감독의 장기 부재가 초래한 부정적인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한불 수교 춤 사업 국내외에서 활발 가시적 성과 거두어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한불상호교류의 해'가 12월 12일 1년 4개월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한불상호교류의 해는 국가 간 교류 사업으로 최장 기간, 최대 규모, 최다 분야 등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는 프랑스 전역에서 행사 227개를, 프랑스는 우리나라에서 행사 245개를 했다. 그 결과 프랑스 국민의 5.7%(378만 명)와 우리 국민의 9%(459만 명)가 문화, 교육, 과학기술 등에서 서로 양국의 문화를 체험했다.
 무용 분야에서는 20여 건이 넘는 공연들이 이 교류 사업에 참여했다. 국립극장과 샤요국립극장이 공동 제작한 〈시간의 나이〉와 국립무용단의 〈회오리〉, 국립현대무용단 전 예술감독 안애순과 안성수, 이인수, 김판선, 김보라, 이경은, 김요셉의 작품, 〈사심없는 땐스〉 등 안은미무용단의 작품이 소개되었고, ‘당스 엘라지’ 행사도 파리와 서울의 LG아트센터에서 개최되었다.
 6명의 프랑스 아티스트와 4명의 한국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생태춤 즉흥 공연은 제주국제즉흥춤축제를 새롭게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는 두 나라 무용가들과 연주가들에 의한 1시간 길이의 〈Voici〉가 공연되기도 했다.

 

 




■ 김영란법 시행으로 단체 관람 취소, 논문심사 난항 등 여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여파로 공연 제작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기업들의 후원이 위축됐다. 기업들이 청탁금지법을 계기로 마케팅 차원에서 하던 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 후원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기업들이 단체로 구매한 티켓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직업 발레단과 축제 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기업의 후원이나 티켓 구매 등도 현저하게 줄어 타격을 받았다.
 그동안 춤 단채들이나 공연기획사들은 기업 협찬·후원을 받아 공연 제작비를 충당하고, 기업들은 그 대가로 얻은 초대권을 홍보나 접대에 이용해왔다. 그러나 지난 9월 28일 시행에 들어간 청탁금지법의 경우 초대권 대부분이 청탁금지법상의 선물 상한액(5만원)을 넘는데, 이와 관련한 유권해석이나 판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기업들이 자칫 '뇌물'로 해석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장르 성격상 진입장벽이 높고 공연 횟수도 적어 기업 협찬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 음악이나 무용뿐만 아니라 대중적이고 유료 관객 비율이 높은 뮤지컬 공연에도 기업들이 후원·협찬을 보류한 사례가 줄을 이었다.
 학위 논문의 경우도 학교에서 책정한 논문 심사비가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검토하는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보니, 심사 자체를 거절하는 사례가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어 심사위원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서울무용센터 개소, 춤 공연장 확대 등 춤 인프라 확장

 4월 8일 춤 전문 창작공간을 표방하며 개관한 서울무용센터는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그램과 유용한 사업으로 춤계의 중요한 인프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옛 서부도로교통사업소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1년 5월에 문을 연 '홍은예술창작센터'는 무용을 기반으로 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운영되어왔다. 이에 서울문화재단은 지속적으로 춤 전문 공간의 필요성에 관한 현장의 요구를 수용해, 지난해 30여 회의 공개자문을 받고 6개월간 리모델링을 거친 후 '서울무용센터'로 재개관하게 됐다.
 서울무용센터는 지속 가능한 춤 생태계 조성을 위해 예술가와 프로젝트를 직접 지원하는 창작지원팀과 홍은예술창작센터에서 나눠 운영하던 지원사업을 통합했고, 지원대상도 무용 장르에 집중했다. 또한 데뷔 10년 이내의 젊은 안무가를 대상으로 지원금, 공간, 인큐베이팅, 기획, 홍보를 전사적으로 지원하는 〈유망예술지원사업 닻(DOT)〉을 비롯해 〈작품지원사업〉,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까지 무용 관련 지원 시스템도 개선했다.
 호스텔을 6개로 늘리고 스튜디오도 새로 정비하는 등 〈국제 프로젝트 공모사업〉를 통해 한국에서 활동하려는 해외 활동 예술가들을 위해 다양한 쇼케이스와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 뉴욕의 무브먼트 리서치(Movement Research), 독일 함부르크의 케이쓰리 탄츠플란(K3 Tanzplan Hamburg), 일본 교토아트센터(Kyoto Art Center) 등과 업무협약(MOU)을 통해 레지던시 예술가를 일대일로 교환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했다.

 

 




■ 재공연 등 우수 레퍼토리 유통 확대, 독립 안무가들 약진

 

 2016년에는 독립 안무가들을 중심으로 우수한 작품이 여럿 창작되어 예년에 비해 전체적으로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신작 작업 못지않게 우수 레퍼토리들이 재공연 되는 등 유통이 확대되는 흐름도 보였다.
 전문 발레단과 직업 발레단을 중심으로 인기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작품들이 서울과 지역에서 수차례 공연되었고, 독립 안무가들의 우수 작품도 창작산실 지원사업, 시댄스와 스파프, 창무국제예술제, 모다페 등 축제를 중심으로 재공연되는 빈도가 많았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선정한 춤비평가상과 베스트 5에 선정된 작품 외에도 안영준의 〈당신의 바닥〉, 김남진의 〈씻김〉, 장은정의 〈비밀의 정원〉, 서울안무가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표상만의 〈훌륭한 사람〉과 정철인의 〈비행〉, 비평가상을 받은 이주미의 〈돌려드립니다〉 등도 호평을 받았다. 창작산실을 통해 공연된 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씨어터의 〈공상 물리적 춤〉은 몸의 확장으로 이어진 움직임과 오브제의 조합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성용 이윤정 김진미 등 독립 안무가들과  유빈댄스, 다크서클즈컨템포러리댄스, 쌍방, 트러스트무용단, 현대무용단더바디,
댄스씨어터샤하르, 구보댄스컴퍼니 등 전문 춤단체들의  꾸준한 활동도 이어졌다.  

 



 




■ 〈태평무〉 예능보유자 인정 예고와 보류 사태

 

 문화재청은 태평무 명예보유자 강선영(1925~2016) 사후 2016년 2월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 양성옥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인정 예고한다고 밝혔으나 이후 춤계 일부 인사들이 양 교수가 신무용을 하는 김백봉 선생의 직계 제자라는 점과 양 교수보다 연배가 높은 태평무 계승자들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보유자 인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39개 무용단체가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에 대한 무용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논란이 일자 최종적으로 10월 26일 제7차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국가무형문화재 태평무 보유자 인정이 ‘보류’ 되었다고 발표했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는 승무와 살품이춤 보유자 인정 건도 보류했다.

 

 




■ 춤 국제교류 다변화

 

 서울무용센터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국제교류 프로그램과 한국의 지역적 환경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국제 춤축제의 태동, 그리고 시댄스와 스파프 등 국제 무용축제와 LG아트센터 등 극장을 통해 해외 정상급 안무가들의 우수작품들이 국내에 선을 보였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부산, 대구에 이어 제주국제즉흥춤축제를 새롭게 시작했으며,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팸스 초이스, 스파프의 서울댄스콜렉션과 시댄스의 후스 넥스트, 현대무용진흥회가 서울안무가페스티벌 개최 등을 통해 안무가들을 위한 해외 진출 기회를 마련하는 사업들을 지속해 나갔다.
 김재덕, 김보라, 박순호, 김재승, 최명현 등의 젊은 안무가들과 안은미 등이 해외 무대에서 활약을 펼쳤고, 해외에서 활약하는 안무가 허용순과 주재만의 활약상도 돋보였다.

 

 




■ 강수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은퇴 30년 해외 무용수로 국위 선양

 

 7월 22일 밤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 〈오네긴〉의 타티아나가 사랑을 포기하는 마지막 장. 오래도록 간직해 해어질 대로 해어진 사랑의 편지를 품에 안고, 비탄에 가득 찬 여인의 찢기는 마음을 움켜쥐며 눈물 흘릴 때 1400여 명의 관객은 하나같이 전율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이 30년 동안 몸담았던 슈투트가르트발레단과 함께 고별공연을 하면서 무용수로서의 은퇴를 선언했다. 강수진은 19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이후 무용의 아카데미상인 브노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 수상, 궁정 무용수(Kammertanzerin) 등극 등 세계무대에서 동양을 대표하는 무용수의 반열에 올랐다. 강수진은 지난 30년 동안 발레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30년 간 활동한 무용수를 위해 특별히 헌정한 이날 공연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해외로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가 30년 동안의 프로 무용수로서의 치열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한국인 댄서들이 세계 춤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 김기민 브노아 드 라 당스 수상, 박세은 최영규 한서혜 이상은 수석 무용수로 승급

  해외 한국 무용수들 맹활약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 중인 발레리노 김기민이 5월 17일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남성 무용수 상을 수상했다.
 김기민은 지난해 말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공연한 〈라 바야데르〉에서 용맹한 전사 솔로르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파리오페라발레단, 뉴욕시티발레단 등에 소속된 쟁쟁한 발레리노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1991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발레의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한국인 남자 무용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김기민이 처음이다. 최우수 여자 무용수상은 강수진이 1999년에 수상한 바 있다.
 박세은은 11월 5일 파리오페라발레 수석 무용수(프리미에 당쇠즈)로 승급했다. 지난해 뉴질랜드-일본 혼혈인 한나 오닐이 프리미에로 승급하긴 했지만 순수한 아시아 무용수가 347년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오페라발레에서 프리미에가 된 것은 박세은이 처음이다. 2011년 오디션을 통해 파리오페라발레에 준단원으로 입단한 박세은은 2012년 카드리유, 2013년 코리페, 2014년 쉬제로 계속 승급했었다.
 보스턴발레단의 한서혜와 드레스덴오페라발레단의 이상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최영규도 2016년에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으며, 노르웨이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는 권세현도 컨템포러리 발레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주요 무용수로 캐스팅 되는 등 맹활약을 보였다.

 



  

 

2016.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