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신년기획_ 국공립무용단 예술감독 연속 인터뷰(1)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선택과 집중, ‘실험’과 ‘국제교류’에 힘쓰겠다
김인아_<춤웹진> 기자

국립현대무용단 새 예술감독에 안성수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무용원 창작과)가 선임되었다. 안성수 신임 예술감독은 “현대무용의 발전을 견인하고 국민들의 현대무용 작품 향유기회를 확대하며, 국제교류를 통한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한다”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설립목적을 강조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의 글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국립현대무용단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신임 예술감독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아직 모든 게 정리되진 않았다. 우선 계획되어 있는 작품으로 지난해 6월 15일 파리 샤요국립극장 모리스 베자르홀에서 초연된 〈혼합(Immixture)〉을 첫 번째 공연으로 계획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름으로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2013년 샤요국립극장 프로그래머 Jarmo Penttila에게 신작을 의뢰받은 후 2014년 시댄스에서 쇼케이스 형식의 공연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혼합〉은 작품명에서 보여주듯 제각각 다른 장단과 강약을 지닌 동서양의 음악 위에 섬세하고 연속적인 전통춤과 현대적 움직임을 얹어 ‘눈으로 보는 음악’을 만들었다. 동양적인 움직임은 〈춘앵무〉 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초반 4분 동안은 〈춘앵무〉를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이후 움직임을 해체하고 서양무용의 움직임을 더하여 새롭게 만들어 냈다.
 잘 만들어진 작품을 레퍼토리화하여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혼합〉과 〈볼레로〉, 핀란드 WHS와 작업한 〈투오넬라의 백조〉가 레퍼토리 작품으로 선보여질 것이다. 첫 번째 공연 〈혼합〉에 이어 6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볼레로〉를 올린다. 첫 번째 신작 〈제전악-장미의 잔상〉을 2017년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국악라이브 연주가 함께하는 리드미컬한 작품으로 제전(祭典)에서 연주되는 제전악을 한국의 전통악기를 사용해 새롭게 작곡하고 여기에 한국무용 〈오고무〉를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다.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신작을 발표할 것이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새로운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이 보여줄 작품에 대해 기대가 크다. 해외 유수의 극장이나 무용단과의 협업, 작품 소개 등 국제교류의 방향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그간 국내외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외국인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한국의 소리와 전통이라고 느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미를 그들에게 보여줄 것 같다. 우리나라 무용수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적극적인 국제교류를 이뤄갈 생각이다. 세계 유수의 무용단들과 협업할 계획도 갖고 있다. 유럽, 미국에 있는 무용단과 1차적으로 교류할 것을 모색하고 있다. 2017년도에 적극적으로 시행하여 다음해 2018년도에는 성과가 보이게끔 하겠다.

성공적인 국제교류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 방식을 취할 예정인가?
제가 할 방향은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쉽게 말씀드려서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단어를 다시 알파벳으로 나눠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무용의 동작을 관찰하고 해체시키고 있는 요소들을 다시 붙여서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 그 단어를 갖고 제 취향대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제 작업이다. 그렇게 했을 때 한국의 미도 없어지지 않고, 컨템포러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련의 작업이 첫 공연으로 3월에 오르는 〈혼합〉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단장 겸 예술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다수의 국립예술단체 예술감독이 행정에 치중하기도 했지만, 국립현대무용단은 예술감독 개인의 작품을 자주 올려 사유화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앞서 공연계획을 말씀해주셨는데, 예술적 작업과 행정적 운영 가운데 예술감독으로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행정에 대해서는 방향성만 제시하려 한다. 두 분 전임 감독께서 여러 일들을 잘 해주셨는데, 저는 취임하면서 여러 일들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 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무용센터를 비롯해 여러 공공기관들이 예술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굳이 중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실험적인 작업이 우선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용수 트레이닝과 작업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무용수들과 함께 창작에 매진하고 국제교류에 힘을 쏟겠다.

국립현대무용단은 프로젝트 단원제로 상근 단원이 없다. 무용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느껴지는 만큼 단원제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진다. 지금까지의 운영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무용수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무용수들, 숨은 고수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있다. 12월과 1월, 2차에 걸쳐 오디션을 연다. 이번 오디션은 일반 오디션의 형식에서 벗어나있다. 1차는 현 시대에 사용하는 모든 움직임을 활용한 컨템포러리 움직임 클래스이며 클래스에서 선정된 무용수에 한해 1월 2차 워크숍을 갖는다. 최종 선정된 무용수들은 신작 및 레퍼토리에 출연하게 된다.
 오디션을 통해 메인 무용수 팀을 만들려 한다. 약 15명 정도가 될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 정규직이 없기 때문에 작품마다 계약하게 되겠지만, 오디션에서 뽑은 무용수들이 문제가 있지 않는 한 계속 같이 작업할 것이다. 발레, 한국, 현대, 힙합 등 장르 구분 없이 본인의 몸을 잘 사용하는 무용수를 선택할 계획이다.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뽑고 싶다. 이번 오디션은 재야의 숨은 고수를 찾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해외안무가들과 작업할 때에 오디션을 다시 개최할 텐데, 무용단과의 협의가 좀 더 필요하다.

장르를 구분 짓지 않고 무용수를 선발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모든 움직임을 두루 잘하는 무용수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우리나라에 숨은 고수들이 많다고 생각했나?
한 장르의 움직임이라도 잘하면 두루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힙합장르, 백댄서로 활동하는 무용수들도 포함하고 싶다. 이번 오디션에는 발레 전공생들도 많이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무용수들은 음감과 리듬이 단연 뛰어나다. 미국에서 무용을 시작하고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이들의 음악적 재능에 많이 놀랐다. 그런 부분을 더욱 개발하고 싶다.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뛰어나다. 무용수로 성장하기위해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트레이닝을 다하지 않나. 우리나라 무용수들은 서양인들의 묵직함은 없지만 유연하고 섬세하게 움직일 줄 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의 차별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뛰어난 안무가들의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그들의 생각들을 모아 다양한 현대무용의 창작 플랫폼을 만드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한 생각과 계획은?
올해 창작산실지원사업의 심사도 했었고 평가위원이기도 했다. 여러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을 많이 보았다. 저는 그분들의 완성된 작품을 소개해줄 수 있도록 국립현대무용단을 운영할 것이다. 제가 생각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모습은 외국의 내셔널 댄스컴퍼니와 마찬가지로 무용가 위주다. 그게 저의 생각이다. 작업방향의 측면에서 국립무용단과의 차별성이라면, 국립현대무용단은 해체조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에 국립무용단의 작업은 큰 덩어리를 재배열(rearrange) 한다. 재배열 작업은 장르의 3분법이 있기에 가능하고 해체조립이 가능한 것은 그 3분법이 없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는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앞으로의 국립현대무용단이 국내 일반관객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중의 눈에 맞추겠다는 소리는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최선을 다하면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애매모호한 상황으로 관객을 빠뜨리고 싶지 않다. 많은 무용작품이 관객들을 의문의 방으로 이끄는 것 같다. 때문에 관객이 현대무용에 흥미를 잃고 무용공연을 다시 찾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는 한국에서 신방과를 다니다가 자퇴하고 영화를 한 적이 있다. (이후 87년부터 무용을 시작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17년 동안 근무하며 무용전공생과 함께 해왔다) 영화 제작에서 2분 룰이라는 것이 있다. 그 안에 진전이 없으면 재편집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재밌게 보았다. 처지지 않는 빠른 전개가 묘미였다. 저의 춤 작업에서도 속도감이 드러나는 2분 룰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대중적 코드와 맞닿은 부분일 수 있겠다. 그게 저의 작업방식이다.

흉흉한 시국 속에 연말연시를 맞고 있다. 국립예술단체의 예술감독 선임은 더욱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임명과정과 수락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11월 초 문화체육관광부 예술담당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예술감독직을 제의 받았다. 다른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이 저에 대해서만 얘기를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무용단에 대한 생각과 소신을 밝혔고 얘기한대로만 된다면 제가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에서는 무용단을 맡을 수 없다, 무용 발전을 견인하고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일을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 그 당위성이 주로 이야기 되었다.
 이전에도 비공개적인 제의가 여러 번 있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에서의 제의였으나 말씀해 주신 분들도 확신에 차서라기보다는 지나가는 말이었던 것 같고 저 역시 당시에는 요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학교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것에 조용히 행복해하며 제가 하는 일에 만족하기 때문이었다. 좋은 무용수를 만드는 것이 내 나름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이번 예술감독직을 제가 할 수 있는 일,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왜 갑자기 사명감이 들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다. 3년 후면 기력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을까(웃음). 처음 공식 제의를 받고 한 달여 후인 12월 1일에 임명되었다.

예술감독 임기 동안 교수직은 어떻게 되나?
3년간 휴직 상태다. 저에게 배우고 싶어 전문사(대학원)을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있었다. 몹시 미안하다. 제가 가르쳤던 과목 중에서 발레는 저와 같이 했던 강사들이 맡고, 컴포지션은 99년부터 함께 작업했던 분이 학부에서 가르치지만 전문사는 해당과목이 없어질 것 같다. 제가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이 빠지는 것에 대해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그만큼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무용단 행정을 위해 새로운 인력을 보충할 계획이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대무용단 사무실에 가서 깜짝 놀랐다. 다른 국공립단체 조직의 인원보다 현대무용단의 행정인력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행정전문 인력으로 모두 젊은 편이다. 현재 사무국장과 홍보팀장이 공석 상태인데 공모를 통해 모실 계획이다. 

2017.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