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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검무전’을 마치고
전통춤의 영역 확장과 인문(人文)
김영희_ ‘검무전’ 기획 및 연출

 ‘검무전'(劍舞展)은 전통춤 중에서 검무(劍舞)를 모아보자는 의도로 2012년에 처음 기획한 공연이었다.
 2013년에는 전통 검무 외에 무예로 행하는 검무에 초점을 맞추어 ‘검무전 II’를 올렸다. 검무가 검을 다루는 무예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는 17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2014 검무전’이라는 타이틀로 이틀간 공연(10월 9-10일, 서강대메리홀 대극장)을 올렸다. 총 14종의 검무가 선보였는데 판을 조금 크게 벌려 그간 공연했던 검무들과 역사 속에 등장했던 검무, 그리고 신무용 검무와 창작 검무까지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검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검무가 이렇게 매력 있는 춤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검무에 대한 나의 관심은 2007년 김미영이 발표한 「문학작품에 표현된 18세기 교방검무의 미적 특성」이라는 소논문에서 구체화되었다. 검무를 어린 시절 배운 적이 있었고, 궁중과 교방에서 검무가 추어졌다는 점도 알고 있었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지은 「무검편증미인」이라는 검무 시(詩)도 알고 있었는데, 이 논문은 조선후기 검무의 동작 특징과 미적 특징을 분석했다.
 매우 인상적인 논문이었고, 그 당시 일제강점기의 기생 자료들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20세기 중반까지 검무의 변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곧 2009년 봄에 한국무용사학회 심포지움에서 나는 「한국 근대춤에서 검무의 변화 연구」를 발표했고, 그해 겨울 최성애의 「18‧19세기 사행록에 표현된 검무 ‘협(俠)’의 특징 연구」라는 박사논문도 발표되었다. 승무, 살풀이춤으로 쏠려 동맥경화의 지경에 이른 전통춤계의 흐름에서 검무는 새로운 화두로 다가왔다.
 2010년에는 검무들을 모은 공연을 상상하며 종목을 메모하고 출연자를 섭외하기도 했었다.

 



 우리 전통춤 중에 문헌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는 춤이 처용무와 검무이다. 처용무와 검무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바, 검무는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로부터 시작된다. 황창의 가면을 쓰고 추었다는 검무는 경상도 지역에서 내내 계승되어 조선후기까지 추어졌다. 그리고 조선후기에 풍류 문화가 넉넉해지면서 전국 교방에서 검무가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정조 임금시대에 궁중으로 들어가 검기무로 추어졌다. 일제강점기에도 검무는 승무와 함께 법무(法舞)로 추어졌고, 기생조합과 권번의 공연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검무는 오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녀들이 추었던 검무 외에 검을 들고 추는 여러 춤들이 떠올랐다. 굿판에서 무당들도 검무를 춘다. 굿거리 중에 실물처럼 검을 사용하기도 하며, 신칼로 의미부여 되어 굿의 구조 속에서 액과 살을 막는 상징적인 칼춤을 춘다.

 



 종묘와 문묘에서 추는 일무 중에도 검무가 있다. 조상들의 무공(武功)을 칭송하기 위해 추는 정대업지무에서 무구(舞具)로 칼을 드는데, 모양은 변형되었지만, 검의 동작들이 이어진다. 동학도들이 추었다는 검결(劍訣)에서는 결단과 수련의 의미로 칼노래와 함께 칼춤이 추어졌다고 한다. 또 상여 앞에서 망자가 가는 길의 액운을 막기 위해 커다란 탈을 쓰고 양 손에 검을 든 휘쟁이가 추는 검무도 있다.
 그리고 항장무는 중국 진나라 말기에 유방과 항우의 무사들이 패권을 다투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추던 검무로, 민간에 흥미진진하게 회자되던 이야기 속의 검무이다. 그 외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칼춤들이 역사 속에서 추어졌을 것이다.

 





 

 이 검무들이 모두 해원(解寃)과 존숭(尊崇), 수련(修鍊)과 결단(決斷)을 위해 추어졌으니, 전통시대에 검무는 일상과 역사 속에서 삶의 활로(活路) - 살아갈 방도를 위해 추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삶에서 검을 생각하면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 파괴와 단절이 떠오른다.
 검(劍)을 생각하면 검기(劍氣), 무인(武人), 무예(武藝), 의협(義俠), 결단(決斷), 살생(殺生), 베다, 자르다, 절단하다, 영웅, 정의와 순결을 지킨다, 공격과 방어, 검술, 전쟁(戰爭) 등의 개념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검의 이미지로 붉은 피, 푸른 새벽, 달빛, 눈빛, 긴박함, 기예의 극치 등도 떠오른다. 그리고 검을 다룰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은 극단으로 치달으며, 치열함 속에 낭만적이기도 하며 허탈하기도 하다.
 검무는 기본적으로 대결의 춤으로 대무(對舞)이다. 2인, 4인, 또는 8인 검무로 추며, 칼의 목이 돌아가는 칼을 들고 추기도 하고, 자루와 칼이 쭉 이어진 칼을 들고 추기도 한다.
 칼의 길이도 다양하다. 음악의 구성은 염불로 시작하는 검무도 있고, 느린 타령으로 시작하는 검무도 있다. 한삼을 끼고 추다가 벗는 구성도 있고, 처음부터 한삼을 끼지 않는 검무도 있다. 의례를 강조한 구성도 있고, 기예를 강조한 구성도 있다. 전립의 장식에 꿩털을 달기도 하고 종이꽃을 장식하는 검무도 있다. 이렇게 검무의 스타일이 다양한데도, 20세기 중후반에는 많이 추어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검무보다는 승무와 살풀이춤이 시대적 감수성에 적합했기 때문일 수 있다.




 검무는 교방춤으로서의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기예와 검기(劍氣)를 품은 협(俠)의 미까지 복합적이며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춤이다. 이 춤의 아름다움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다고 본다.
 대무(對舞)로 추는 검무가 원래의 구성미와 스토리를 보여준다면, 독무로서 재구성되어 춤꾼 각각의 매력과 춤의 공력과 기예를 보여줄 수 있다. 또 검 내지 검무가 창작의 모티브가 되어 안무가들에 의해 이 시대의 다른 감수성과 발언을 하게 할 수도 있다. 또는 무협지에서 읽었던 무예로서 검(劍)과 예술로서 무(舞)의 경계를 넘나드는 움직임의 지극한 경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두가 전통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함이며, 검 내지 검무를 통해 인문(人文) - 우리 삶의 흔적과 무늬들을 춤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상이 세 번째 검무전을 치루며 기획한 나의 의도이다. 앞으로 ‘검무전 III’까지 무대에 올린다면 우리 전통 속에 추어졌던 검무들을 어느 정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2014.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