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신년기획_ 2017 비평가가 주목하는 안무가(3) 김보라
신체와 신체의 매칭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질감
장광열_춤비평가

 



 확실히 한국의 춤 환경은 현저히 바뀌었다. 김보라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안무가 중 한명이다.
 김보라의 대표 레퍼토리가 된 〈혼잣말〉은 2011년 아르코공연예술인큐베이션 차세대 안무가에 선정되어 그 과정을 마치면서 마련된 쇼케이스 때 습작으로 선보였었다. 이듬해 작품을 다듬어 정식으로 공연했고, 2013년 후쿠오카 댄스프린지페스티벌에 소개되었다. 이를 본 평자에 의해 그해 가을 서울아트마켓(PAMS) 기간 중에 열린 서울댄스플랫폼(SDP)에 쇼케이스 공연으로 소개되었다.
 서울댄스플랫폼에서 이 작품을 본 독일 탄츠 메세(International Tanzmesse NRW)국제교류 담당자인 Carolelinda Dickey는 〈혼잣말〉을 2014년 탄츠 메세의 공식 쇼케이스 작품으로 선정했다. 그보다 앞서 2014년 2월에는 요코하마댄스콜렉션 본선에 진출 심사위원장 상을 받았다. 〈혼잣말〉은 2014년에만도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6개국에서 초청받았다. 그렇게 김보라는 유럽의 춤 시장이 주목하는 한국의 안무가로 급부상했다.

 

 



 젊은 안무가를 위한 공공지원제도 프로그램 참여, 우수 작품 공연, 외국의 플랫폼과 안무 경연대회 참가, 팔릴 만한 작품들을 모아 놓은 더 큰 댄스마켓으로의 진출, 춤 상품으로 안착, 그리고 이어진 유통까지. 이 모든 것들이 불과 4년 안에 이루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작 시스템을 갖춘 프로듀서가 그녀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기획사 디아츠앤코는 김보라와 2년간 총 4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범상치 않은 안무가로서의 감각이 프로듀서의 눈에 띈 것이다. 공간과 제작비까지 안무가는 작품의 인큐베이팅에서 제작까지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 〈프랑켄슈타인〉과 〈꼬리언어학〉 등이다.

 

 



 대한민국은 어느 새 유능한 안무가와 단체에게는 인큐베이팅, 기획, 제작, 유통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거칠 수 있도록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갖춘 춤 환경을 조성한. 무용강국으로 변했다. 어떻게 보면 김보라는 이런 달라진 춤 제작환경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디아츠앤코 대표인 송남은은 “허름한 창고 공간에서부터 대극장 무대, 컨테이너 박스로 이뤄진 복합 공간과 역사성을 담고 있는 문화역사 284에 이르기까지 김보라가 공간을 해석하고 관객과 조우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대범함 속의 섬세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떠한 제한된 여건들도 창작 작업의 콘텐츠로 역이용하는 총명함과 융통성을 발휘해왔다. 깨질 듯이 섬세하고(fragile) 조심스러우며, 다분히 개인적이고(private) 때때로 비밀스럽게 느껴지는 그녀의 외적 이미지는 어느 새 춤으로 전환되는 그 순간 반전의 한 방을 멋지게 날리곤 했다”고 기억했다.

 

 



 무용수로서 김보라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범상치 않은, 그래서 마음을 뒤흔드는 움직임의 질,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시선을 집중시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안무가로서 김보라는 소재에 따라 움직임과 오브제를 매칭시키는 감각과 에너지의 배합이 주는 묘한 질감의 움직임 조합 능력이 특출나다. 감각적인 순발력이 발휘되는 그녀의 춤과 안무는 그래서 늘 흥미롭다.
 춤비평가 방희망은 김보라의 안무작 〈소무〉에 대해 “그동안 〈혼잣말〉〈각시〉〈Thank You〉 등의 작품 속에서 섬세하게 포착해낸 감정의 결을 복합적인 은유로 감싸 안아 전달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턱없이 과장되지 않게 개성과 위트를 담은 세련된 안무도 보기에 부담이 없다. 〈소무〉는 그녀가 갖고 있는 장기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이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모던한 오브제를 대비시켜 따뜻한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용도로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은 〈Thank You〉와 이어지고, 토속적인 소스를 현대무용에 끌어들이는 아이디어와 정서는 〈각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평했다.

 

 



 2013년 LDP무용단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40분 길이의 〈I'm Not There〉와 문화역사 284 공간에서 선보인 1시간 길이의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그녀가 2014년 7월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초연한 〈Thank you〉는 기억될 만한 수작이었다. 감사의 표시로 하는 인사법을 관습과 연결시키는 안무가의 착상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절제의 미학을 통한 지적인 안무, 간결한 오브제와 신체와 접촉하는 또 다른 신체의 매칭이 주는 콘셉트가 인상적이었다.
 2014년 요코하마댄스콜렉션에서 모든 심사위원들이 1등을 준 상이라는 말과 함께 심사위원상을 받은 안무가가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고 싶다며 내년에 요코하마댄스콜렉션에서 신작을 만들어 하루를 공연해 달라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각시〉였다. 이 작품 역시 2014년에 만든 〈꼬리 언어학〉과 함께 해외 진출이 빈번한 작품으로 탈바꿈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졸업 후 바로 유럽으로 건너가 2006년 윌리엄 포사이드무용단의 객원 안무가가 이끄는 아일랜드의 Daghdha Dance Company에서 활동했고 이어 2007년에는 스위스의 Alais Dance Company에서 무용수로 활동한 경험이 한예종 재학 시절 춤추는 것보다 안무에 더 관심이 많았던 댄서의 잠재된 안무 감각을 일깨우는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무용수들을 만나 함께 진중하게 고민하면서 창작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많은 댄서들과 작업하다 보니까 주고받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주게만 되더군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공부와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서 파생되는 다른 움직임들을 보고 싶습니다. 내가 아이디어만 좋은 안무가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항상 있어요. 내 작품에 내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김보라의 색깔이 강한 작품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이 끊이지 않는 창작에 대한 호기심과 경건함만으로도 안무가 김보라에 대한 평자의 신뢰는 한동안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 2017-2018년 아트프로젝트보라 주요 공연 일정

● 3월 24-26일 신작기획공연 〈인공낙원〉 /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

● 4월 6일 〈각시〉 / 춤작가 12인전 /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 5월 25일 〈소무〉 / MODAFE /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

● 5월 27-28일 〈꼬리언어학〉〈각시〉 / 브라질 Festival ABCDan a 2017 / CCSP (Centro Cultural São Paulo)

● 8월 〈각시〉 / 일본 Odoru Akit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 일본 아키타현

● 9월 4주간 영국 안무가 Marc Brew와 콜라보레이션 R&D / 영국문화원 “한영상호교류의 해”

● 7-9월 중 협의중 〈인공낙원〉 이태리 Florence Summer Festival

● 9월 협의중 〈꼬리언어학〉 에스토니아 SA Vaba Lava

● 11월 21-26일 〈꼬리언어학〉 / 동아시아플랫폼 홍콩 City Contemporary Dance Festival


2018년

● 2월1-3일 〈꼬리언어학〉 / 미국 White Bird Dance “NEW VOICES IN KOREAN DANCE” / 미국, Portland, Lincoln Performance Hall
● 3월 9-18일 영국문화원 “한영상호교류의 해” 프로그램 Presentation at ‘Pyeongchang Cultural Olympiad’ 개막 / ‘한영상호교류의 해’ 폐막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03.
사진제공_아트프로젝트 보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