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표지_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수상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작발레 <심청>이 지난 2월 17일 발표된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86년 초연된 <심청>은 세계 12개국 40여개 도시 공연을 통해 독창성과 예술성, 흥행성을 인정받고 있다. 초대 심청 역을 맡았던 문훈숙 단장의 인터뷰와 국내외 리뷰를 통해 지난해 초연 30년을 맞은 발레 〈심청〉을 조망해 본다. (편집자주)




인터뷰_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앞으로 더욱 진화하는 <심청> 만들 터

 


 


 



방희망
: 안녕하세요. 먼저 바쁘신 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의 〈심청〉 공연으로 이번 제3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과 공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예술의전당에서 1천여 편 가량 공연, 음악, 전시가 참 많이 올라가는데, 그중에서도 선정되어 더욱 의미가 깊을 듯합니다. 대외적인 보도자료에는 〈심청〉이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구체적인 이유가 드러나 있지 않아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어떤 측면에서 점수를 많이 받은 것일까요? 초대 심청 역을 맟았던 문훈숙 단장님께서 짐작하시는 선정이유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문훈숙: 모두 <심청>을 좋게 보아주신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여러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지난 17일의 시상식에서 장광열 선생님께서도 말씀해주셨지만, 예술성, 대중성, 작품의 전체적인 수준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평가기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심청〉이 그 옛날 어려웠던 30년 전에 초연을 했고, 그동안 계속 진화를 해오면서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점도 고려된 것 같습니다. 1989년 첫 해외공연을 뉴욕시티센터에서 올렸는데 ‘뉴욕 타임스’에서도 좋은 평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심청〉이 뭔가 획기적이라거나 기술적으로 새롭거나 창의적인 작품이 아니고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작품입니다. 애드리언 델라스 선생님이 이 작품을 만들 때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프티파의 고전 발레 형식 그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 관객들의 호응도가 높았던 것을 고려해주셨는데,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고전명작은 표가 잘 팔리지만 창작발레는 티켓 판매가 어렵거든요. 〈심청〉을 공연할 때는 해외스타를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저희 단원들로만 공연하는데 티켓판매율이 높고 관객반응도 좋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평가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최우수상을 받은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하고, 더구나 〈백조의 호수〉나 〈오네긴〉 이런 작품이 아니라 〈심청〉으로 받았다는 자체만으로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단체들이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작년의 〈심청〉공연은 작고하신 박용구 선생님께 헌정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저희 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도 4월에 박용구 선생님 1주기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박용구 선생님께서 어떻게 〈심청〉의 대본작업에 참여하시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합니다.

: 박용구 선생님께서 저희 초대 예술감독이신 델라스 선생님과 친분이 두터우셨어요. 그때 저는 무용수였기 때문에 〈심청〉 제작 과정에 관여하지 않아 어떻게 그분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사실 잘 모릅니다. 박용구 선생님이 델라스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하셨고 델라스 선생님도 교육을 하시는 입장에서 한국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박용구 선생님께 도움을 많이 받으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용구 선생님 따님도 발레를 하셨는데요, 저희 발레단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높으셨고 자주 오셨던 것 같습니다. 델라스 선생님이 떠나시고 나서 한참 뒤에 저와 친정아버지(박보희 문화재단 이사장), 박용구 선생님이 함께 계셨던 자리에서 박용구 선생님께서 “한국발레의 대부가 임성남이라면, 한국발레의 대모는 미국사람이지만 애드리언 델라스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어려웠던 상황에서 초대감독님이 어떻게 해 오셨는지를 봐오셨기 때문에요.

 

 



: 〈심청〉같은 창작발레를 선구적으로 만들어 오시면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일까요?

: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 초연은 아니고 88올림픽 시즌에 올렸을 때에요. 3미터 높이 뱃전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무용수들의 안전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무용수들이 어리다보니 예술가로 보호해준다는 인식이 낮았던 시대였지요. 그런 상황 속에서 뱃전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안전장치가 너무 안 되어 있으니까 당시 주역을 맡았던 김인희 씨와 제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었어요. 당시 재단 이사장이신 저희 아버지가 지나가다 보시고 무슨 일인지 얘기를 들어보시더니 당신께서 직접 뛰어내리셨어요. 그런데 잘못 굴러 떨어지시면서 안경이 깨지고 갈비뼈에 금이 가고 와이셔츠가 찢어지는 굉장히 큰 사고가 났거든요. 그제야 부랴부랴 보호망을 치게 되었지요.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심청이 희생하는 상황인데, 제작 과정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위해 희생하셨다고 얘기하곤 하지요.
 그 때는 모든 상황이 다 열악했습니다. 발레의 불모지이다 보니 의상, 무대 세트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어려움이 많았지요. 제가 2007년 〈발레 춘향〉을 제작해보니 80년대 그 어려운 상황에서 델라스 선생님이 〈심청〉을 만들어낸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기본을 잘 잡으신 것이었는지 감탄이 되더군요. 동서양의 조화를 잘 이룬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춤을 추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장면과 장면이 감정적으로는 연결이 안 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 빈 공간들을 채우는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델라스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신 부분은 없었지만 제가 상당히 많이 생각해서 채워 넣고 나중에 단장이 된 이후에는 그런 부분들을 아예 안무 속에 넣게 되었어요. 그림으로 말하면 색칠이 안 된 부분을 완성해 넣는 느낌이었지요.
 작품은 예술감독 하셨던 분들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곤 했는데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감독님 시절에 원래 스토리에는 없는 간택 장면을 넣고, 2막 용궁 장면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감독님의 손을 거쳐서 〈심청〉이 30년 동안 계속 진화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발레단이 존속했기 때문입니다.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초대 단장님, 안무가 허용순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지만 무용수들을 픽업해서 프로젝트 형태로 작업하면 작품이 남지 않잖아요. 단체가 중심이 되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꾸지 않고, 예술감독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존중하면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저희 발레단뿐만 아니라 SBT(서울발레시어터) 등 창작활동을 하는 단체들에 안무가를 지원하는 정책 또는 지원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부분과도 관련되는데, 판소리인 〈심청〉을 대사가 전혀 없는 무용 그것도 발레로 소화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긴 사설이 있는 판소리에는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데, 두 시간짜리 발레로 압축하다보면 중요한 사건 위주로 전개할 수밖에 없어서 말씀하신대로 연기하기에 감정적으로 비어있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발레단 전체로서도 〈심청〉을 공연하는데 있어 어디에 역점을 두고 공연하는지, 관객들이 이것만큼은 가져갔으면 좋겠다 강조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델라스 선생님이 이 작품을 만들 때 사실은 한국 관객보다 외국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드신 것 같아요. 그래서 뺑덕어멈 이야기도 빼고, 메인인 심청과 아버지의 관계만 부각시키셨죠. 한국발레의 발전사를 담고 있는 것과도 같은 이 작품을 초연할 때 어린 단원 및 학생들을 데리고 만드셨기 때문에 내용이 굉장히 단순해요. 델라스 선생님께 여쭤보진 않았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효에 대한 감정을 보편적으로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셨던 것 같아요. 1막에서의 토속적인 느낌, 남성미를 보여준다면 3막에서는 한국의 수준 높은 궁 문화, 여성적인 측면, 2막은 동·서양도 아닌 환상의 세계- 이렇게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구성을 하신 것 같고요.
 대사가 없는 발레이다 보니 3막의 상봉 장면도 스토리텔링에 한계가 있긴 해요. 봉사가 수십 명이 들어와야 하는데 여섯 명, 여덟 명 이렇게 들어올 수밖에 없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봉하는 장면에서는 미국 등 해외에 가서 공연을 하면 관객들이 다 웁니다. 그 힘 중의 하나는 바로 음악인 것 같습니다. 이 작품만을 위해서 작곡이 된 거니까요. 델라스 선생님과 작곡가가 가끔씩 피아노 앞에서 집에서 다리로 가는 데는 몇 마디가 필요하고, 태풍이 시작될 때는 빗방울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음이 필요하다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 차이코프스키와 프티파의 모습이 그러지 않았을까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3막의 탈춤도 원래 궁에서 탈춤을 추지는 않지만 외국 사람의 시각에서는 탈춤이 독특하거든요. 그래서 탈춤의 쿵덕쿵덕 하는 장단에 봉사가 지팡이를 짚는 음을 어울리게 넣는다던지 이런 것들이 안무가와 작곡가가 표현하려고 노력하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 역대 심청 역할을 많은 발레리나가 연기해 왔습니다. 그들에 대해 소개해주시고, 타이틀롤인 심청 역할에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점이 무엇일지, 누가 어떤 면에서 심청 역을 잘 소화해냈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총 22명이에요. 현재 가장 심청에 잘 어울리는 분은 황혜민씨라 할 수 있겠고 17일의 시상식에도 추었지요. 박선희 (현 선화예술고등학교 발레부 전임)씨도 정말 잘 추셨고, 김인희 단장은 저와는 완전히 다른 개성을 지닌 무용수로서 정말 뛰어났고요. 이 작품은 스토리텔링을 잘 해야 합니다. 테크닉보다는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 감성이 풍부한 발레리나에게 맡기게 되요. 예를 들면, 심청이 뱃사람들에게 끌려가기 전 마지막 아버지와 춤출 때 스텝은 굉장히 단순하거든요. 단순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건데, 눈빛 하나를 주더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가 달라지거든요.
 임혜경씨 같은 경우는 아주 뛰어난 발레리나지만 키가 커서 아버지와 딸의 모습으로 보이기에 어려울 수 있어서 가장 하고 싶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청을 추지 못했어요. 전은선씨도 기억에 남고 안지은씨도 서정적이고 감성이 풍부하고 라인이 예뻐서 기억에 남아요. 작년에 공연했던 솔리스트 한상이씨도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데 마치 심청을 추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았어요.

: 〈심청〉은 상당히 많은 발전을 이루어낸 역작입니다만, 여전히 완성을 향해 진행중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심청〉에서 가장 보완해야 할 부분, 혹은 장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전반적으로 의상과 무대 세트를 새롭게 바꾸고 싶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바꾸고 싶은 부분은 2막이에요. 올해 천안에서 공연 예정인데 그 때, 머리 관들의 크기를 줄이고 낡은 의상도 교체하고 싶어요. 바다 속 장면이라 무대 세트도 멀티미디어를 가미하면 어떨까 고민하고 있고요. 스토리 라인도 조금 약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많이 고치고 싶었는데 이 부분은 작곡가가 새로 음악 작업을 해주셔야 하거든요. 작곡, 편곡, 오케스트레이션, 녹음까지 그 비용이 꽤 많이 소요됩니다. 1막 아버지와 헤어지기 전 심청의 독무도 넣고 싶고, 배 위의 장면도 더 보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구성면에서는 작년에 기존 3막 구성을 2막으로 줄여서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하기도 했어요. 관객 입장에서는 두 번의 인터미션이 길고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인터미션을 한 번으로 줄여 2막으로 만들까 시도했는데 역시 음악의 문제가 있어서 그대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 유니버설의 여주인공들은 유난히 청순가련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심청〉과 〈춘향〉에는 여주인공의 가련함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드라마틱한 효과를 높이기 위함인지, 때로는 필요이상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1막 2장에서 선원들의 강인한 남성군무로 춤의 다양성을 확보한 것은 좋지만, 가녀린 심청이 선원들에게 유린당할 위기에 몰리게 되는 장면이 나오고 〈춘향〉의 옥중 장면에서도 비슷하게 고초를 겪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린 관객들도 많이 보는 작품이라서 걸리기도 하지만, 황석영, 방민호 등의 작가들이 심청을 구원의 여성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몸을 판 여성으로 그리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시각이 남성작가의 판타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주인공들이 상당히 수동적인 존재로서 효나 절개 등의 미덕을 설파하는 캐릭터로서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구요. 한편으로 원래 판소리 상에서 인지상정이 있게 그려지는 선원-상인들이 발레 〈심청〉을 통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말씀하신 장면은 물론 스토리상에는 없는데 델라스 선생님이 초연 때부터 넣으신 장면이에요. 음악 이름이 ‘Attack Scene’이라고 되어 있어요. 외국인의 시각에서 심청의 고통을 표현하고, 스토리상에는 없지만 극적인 효과를 위해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를 설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신 거지요. 직접 여쭤보진 않았지만 아마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도 배타고 일주일, 이주일 넘게 가는데 그런 사건이 있을 법도 하겠다고 생각하고 극의 업 앤 다운을 위해 넣으신 것 같아요.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심청이 고통을 겪었는데 선장이 이 아이는 제물이니까 안 된다고 막는 표현을 하신 거죠. 작가들처럼 철학적인 맥락은 아니지만 극적인 부분을 위해 가미한 것이라고 봅니다.



 



: 유니버설 발레단의 올해 계획과 포부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 올해는 서울 정기공연뿐만 아니라 지역순회공연을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모던발레를 많이 했지만 2001년도에 처음 시작할 때는 홍승엽 선생님, 안애순 선생님 같은 국내 안무가 두 분의 신작으로 했고 나중에는 해외의 중요한 모던 안무가를 거쳐야겠다는 생각에 윌리엄 포사이드나 오하드 나하린, 이어리 킬리안, 나초 두아토 등의 명작 모던 발레 작품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안무가를 발굴하고 우리만의 작품을 개발하여 로열티를 받으면서 공연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외국 안무가 한 분, 한국의 현대 무용 안무가 두 분과 함께 작업해서 대한민국발레축제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작년부터 주니어 컴퍼니를 통해 새로운 안무가를 발굴하고 있었는데 이번 저희 발레단과의 새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협의 중에 있는 공연은 카자흐스탄에 페스티벌이 하나 생기는데 저희 발레단이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모던 발레를 가지고 갈 예정입니다. 10월에는 3년 만에 〈오네긴〉을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올립니다. 제가 수석무용수 황혜민씨에게 그녀가 가장 잘하고 돋보이는 작품이 〈오네긴〉의 타티아나, 그 다음이 〈심청〉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발레 팬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 분들에게 그녀의 〈오네긴〉은 반드시 꼭 봐야 하는 공연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 경기도 어렵고, 다른 단체도 인원을 감축했다고 들었는데 유니버설 발레단에도 그런 운영상의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 저희가 작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인턴 7명을 지원 받았는데 발레단 운영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더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전년도 수준으로 지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첫 해의 3명보다 못하게 2명으로 줄어들었어요. 7명이면 1억 가까운 예산이기 때문에 저희 같은 민간단체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지원이라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그 7명의 단원들에게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연간 100회 가까운 공연을 소화하는데 있어서도 부상의 위험을 줄일 수 있어 발레단 전체에 큰 도움이 되는 지원입니다.
 그리고 김인희 단장도 여러 번 건의하는 내용인데, 발레축제나 창작산실 같은 안무자 지원 프로젝트를 할 때 안무자뿐만 아니라 단체의 창작활동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민간 발레단인 와이즈발레단의 경우도 단체가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지원이 뒷받침이 되면 거기서 안무가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안무가들이 발굴되면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얼마 전, 6월에 공연할 신작을 준비 중인 외국 안무가가 자기도 처음에는 솔로, 2인무로 안무를 시작했다가 10분, 15분의 작품으로 늘리면서 이제는 단막공연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며, 언젠가는 전막 공연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 하더라고요. 이렇게 단계별로 기회를 주면 민간단체에서 작은 작품을 만들면서 성장하고 유럽 같은 경우 나중에는 픽업되서 메인컴퍼니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인프라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면 한국발레계의 숙제인 안무가 발굴이 더 힘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해외출장을 앞두고 바쁘신 와중에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중요한 이야기를 많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지난 30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제가 봤을 때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은데, 문화예술계에 계신 여러 관계자들께서 〈심청〉을 좋게 보고 높이 평가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갈고 닦아서 언젠가는 해외 공연을 뛰어넘어 해외 발레단이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가져갈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진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성을 다 하겠습니다. 

2017. 03.
사진제공_유니버설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