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추모 기획(2) 트리샤 브라운과의 작업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정현진_안무가. 전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원

 트리샤 브라운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지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7년간 몸담고 있던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을 그만두며 그녀와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트리샤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참 예의 바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어. 비록 너의 영어가 서툴러 소통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네 긍정적 자세가 바로 너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어. 그리고 너와 함께 일하면서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순간순간 확신했어"라고….
 외국인인 내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사람으로 인식된 계기는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 덕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들어서 "YES" 밖에 할 수 없었다. 무용단 스태프나 매니저들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무조건 "YES"로 일관하였고 어느새 그들에게 나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인지되어 있었다. 한 번은 퇴근하려는데 리허설 디렉터가 나에게 어떤 얘기를 하였고, 물론 나는 또 한 번 "YES"라고 하며 퇴근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말은 비디오를 보면서 연습하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YES"를 하면서 퇴근을 하여 그를 웃기면서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출근을 하면서 트리샤에게 고개까지 숙여가며 “Hi”를 외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사 할 때 대부분 "Hi" 하고 손만 흔드는데 비해 나는 고개까지 숙였으니…. 그녀가 볼 때 내가 매우 예절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내 인생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을 응시하기 위해 트리샤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추천서를 써줬으며 세상 어디든 너를 데려가고 너를 갖게 되는 곳은 정말 행운이라며 극찬을 해주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이처럼 완벽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단순히 기뻐하기에 앞서 트리샤 브라운이란 사람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으며 나 역시도 사람을 바라볼 때 겉모습만이 아닌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꽤나 조용한 사람이었다. 비록 활발한 성격은 아니지만 개개인을 보살펴주는 것에 게을러 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았으며 진정한 리더이자 정이 많은 예술가였다.
 2006년 1월, 파리오페라하우스에서 있을 공연을 이틀 앞두고 나는 젊은 혈기로 최고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파리에 있던 대학동기 친구들과 밤새워 마셨다. 다음날 리허설 도중 중심을 잃고 몸이 흔들렸고 당황하여 순서까지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였다. 말이 리허설이지 프랑스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러 온, 마치 실제 공연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반응을 살피며 '이젠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내게 달려와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 물으며 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의사를 불러 진료와 물리치료를 해주고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녀는 나를 프로로서 믿어 주었기에 나의 실수에 화를 내기보단 내 몸을 먼저 걱정해 주었던 것이다. 프로로서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저지른 내 자신에 대해 화도 많이 났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아끼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또한 이 일을 통해 스스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프로 무용수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트리샤 브라운은 포스트모던댄스의 개척자로 불린다. 기교와 음악으로부터 춤을 해방시켰으며 공연장 안에 있던 춤을 공연장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녀는 과장되지 않은, 절제와 반복 그리고 재구성과 미니멀한 동작으로 장르를 넘어선 훌륭한 안무가였다.
 또 한 가지 그녀의 훌륭한 점은 우리 무용단과 함께 연습을 할 때뿐만 아니라 공연을 위해 이동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때 함께 하는 이들의 무척 사소한 장난과 표정, 동작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비디오로 찍어 자료를 수집하였다. 늘 주변 무용수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안무를 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도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직접 시범을 보이며 무용수에게 동작 하나하나 의견을 들어보는 등 예술가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참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지만, 그녀는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이 자신의 무용단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무용수들처럼 월급을 받으며 작품을 만들어냈던 소박하고 검소한 사람이었다. 〈PRESENT TENSE〉, 〈ASTRAL CONVERTIBLE〉, 〈SET AND REST〉, 〈GROOVE AND COUNTERMOVE〉, 〈GEOMETRY OF QUIET〉, 〈CANTO PIANTO〉, 〈I LOVE MY ROBOTS〉, 〈FORAY FORET〉, 〈EARLY WORK〉 외 다수 출연하면서 그녀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정현진
Company J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를 졸업한 후 유럽을 거쳐 뉴욕으로 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트리샤 브라운 댄스컴퍼니 무용수로 활동하였다. 유럽, 미국, 아시아의 주요 극장에서 공연된 트리샤 브라운의 많은 레퍼토리 작품에 출연했으며 귀국 후 매년 신작을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7. 0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