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획_ 유니버설발레단 황혜민ㆍ엄재용 고별 무대 〈오네긴〉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 황혜민과 발레 〈오네긴〉
간판스타가 선택한 두 가지 사랑
 
 메이저발레단을 판단하는 기준은 각기 다르지만 공연 작품을 유통시키는 프레 젠터들에게는 나름데로의 잣대가 있다.
   그중 하나가 군무에서부터 솔리스트 그리고 주역 무용수에 이르기까지 고른 기량을 갖추어야 가능한 전막공연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는가? 이다. 공연의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여타 발레단에서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작품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도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 〈백조의 호수〉라면, 존 크랑코(John Cranko)  안무의 〈오네긴 Onegin〉은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존 크랑코 사후 그의 발레 유산을 관리하는 존 크랑코재단은 한 동안 이 작품을 슈투트가르트발레단만 공연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독일 뮌헨을 주도로 하는 바이에른 주립발레단에게 공연 허가권을 주었고, 지금은 철저한 계약에 의해 작품을 관리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베이징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레퍼토리로 추가할 수 있었고 이도 일정한 기한이 지나면 재계약을 하도록 하고 있다.
  드라마 발레의 정수로 불리는 〈오네긴〉을 공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춤 시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위상은 그만큼 높아진다. 관객들의 입장에서도 특별한 캐릭터와 만나는 발레 작품을 무용수들의 춤과 연기를 비교해 가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호사를 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존 크랑코(John Cranko)가 안무한〈오네긴(Onegin)〉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시킨 알렉산더 푸쉬킨(Alexander Pushukin)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드라마 발레로서 〈오네긴〉의 강점은 모호한 거리감을 없애고 인물들 간의 구체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춘 분명한 캐릭터 설정이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사이를 파고드는 춤의 안배는 왜 존 그랑코를 드라마 발레의 거장으로 불리게하는 지를 가늠하게 한다. 올가와 타티아나ㆍ오네긴이 함께 추는 3인무, 올가와 오네긴의 2인무를 군무진들의 커플 댄스와 접목시켜 렌스키의 질투를 끌어내는 등 인물들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춤과 접목시켜 표출해내는 연출력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적 행동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비극적인 인물 오네긴과 이런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시골 영주의 딸 타티아나. 여자의 일방적인 연모와 이를 외면하는 남자의 비정함. 여기에 극장예술로서 드라마와 춤을 받쳐주는 요소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용한 쿠르트-하인츠 슈톨체의 편곡과 위르겐 로제의 오리지널 무대와 의상은 언제 보아도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타티아나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 공주와 흑조 오딜, 〈지젤〉에서 지젤과  함께 적지 않은 무용수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꼽는 배역이다. 강수진도 브노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까멜리아 레이디〉의 마르그리트 역으로 수상했지만 정작 30년 동안 몸담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떠날 때 은퇴공연 작품으로 〈오네긴〉의 타티아나를 택했고,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다이애나 비쉬네바도 타티아나를 선택했다.


 


 

 메이저발레단의 간판 무용수는 말 그대로 발레단의 얼굴이자 그 발레단의  위상을 가늠하는 또 다른 잣대이다. 한동안 재정난을 겪던 ABT가 고액의 연봉을 지출해야 하는 수석 무용수들을 떠나보내면서 줄리 켄트를 붙잡은 것이나 니나 아나니아쉬빌리를 일년의 절반은 ABT 작품에 출연하는 것으로 해 수석 무용수로 홍보한 것 역시 간판 무용수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 하면 떠오르는 무용수 황혜민과 엄재용은 그런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 두 수석무용수가 은퇴를 발표 고별공연으로 〈오네긴〉을 택했다.  그동안 한국 발레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활약해온 두 사람은 11월 공연을 끝으로 발레단을 떠난다. 유니버설발레단에 각각 2000년과 2002년 입단한 엄재용과 황혜민은 지난 1년과 15년 동안 뛰어난 파트너십을 선보이며 많은 팬들을 확보해 왔다.
  황혜민과 엄재용이 처음 호흡을 맞춘 것은 프랑스 파리의 상젤리제 극장에서 열렸던 ‘2002 파리 21세기 에뚜왈 갈라’ 프로그램에서였다. 전막 공연으로 커플 신고식은 2004년 인도 왕궁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라 바야데르〉였다.
  이후 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돈키호테〉〈잠자는 숲속의 미녀〉〈지젤〉〈호두까기인형〉〈로미오와 줄리엣〉〈심청〉 등 유니버설발레단이 보유한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역 파트너로 활약했고 해외 갈라 공연에서도 한국 무용수들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이 호흡을 맞췄던 전막 공연 횟수는 무려 910여 회가 넘는다. 국내외 갈라 공연까지 포함하면 족히 1천 회 이상이다.
  황혜민은 엄재용에 대해 “상대역을 빛나게 해주는 환상의 파트너”라고 말하고, 엄재용은 황혜민을 “파트너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무용수”라고 평가한다. 황혜민은 온전히 무대를 떠나지만 엄재용은 유니버설발레단을 떠나더라도 프리랜서 무용수로서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15년 동안 황혜민이란 무용수로 인해 발레단의 이미지를 더욱 고양시켰다. 그리고 관객들은 황혜민과 오래 동안 호흡을 맞춘 엄재용과 그리고 여타 댄서들이 만들어 내는 발레를 눈과 귀, 가슴으로 음미하는 호사를 누렸다. 고별 공연 작품인 〈오네긴〉에서 두 무용수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1막과 3막에 선보이는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파드되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 1막이 오네긴을 짝사랑한 타티아나의 간절한 바람이 그녀의 꿈속에 투영된 춤이라면, 3막은 성숙해진 타티아나를 사랑하게 된 오네긴이 사랑을 갈구하고 첫 사랑의 감정에 휘말린 타티아나가 내적 갈등 속에 함께 추는 파드되이다.
  현실을 택한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떠나보내며 객석을 향해 두 팔을 내밀고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작품의 심볼과도 같은 장면이다. 고별무대에서 황혜민이 이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낼지 이 역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1996년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에서 강수진이 춤추는 타티아나를, 그리고 2016년 같은 극장에서, 강수진이 은퇴공연에서 춤추는 타티아나를 보았다. 강수진이 창조한 타티아나는 ‘자신의 가슴에 묻어두면서 그 사랑을 이루고자 한 동양적인 비련의 여 주인공’이었다.
  2017년 11월 26일 밤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이 날은 1965년 4월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한 〈오네긴〉이 50년을 넘어 이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황혜민의 타티아나로 기억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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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민 직격 인터뷰

열정을 갖고 ‘무대’를 즐겨라

 

 
장광열 무용계에서는 고별 공연 소식을 접하고 너무 이른 은퇴가 아닌가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어떤 동기가 있었나요?
황혜민 좋은 모습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었어요. 〈오네긴〉 작품을 올리는 시기도 맞았구요. 회사 사람들이 저희 은퇴소식을 듣고 나서  향후 10년 동안 〈오네긴〉 올리지 말걸 그랬다며…. 우스갯 소리겠지만요.
 
은퇴 후의 혜민님의 습을 어떻게 상상하면 될까요? 발레 교사 아님 발레 트레이너, 아님 안무가?
일단은 쉬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지만 2세 계획도 있고 후배양성을 할 것 같아요.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함께 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과 인물이 있다면요?
거의 모든 작품들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나 〈오네긴〉을 처음 했던 2009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이번 〈오네긴〉 공연이 평생 기억에 남겠죠
.


 

 

혜민님 발레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꼽는다면?
문훈숙 단장님과 *네프 선생님. 단장님이 절 이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리고 네프 선생님의 코치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에요.

* 예브게니 네프(Evgenii Neff): 마린스키발레단 무용수에서 발레마스터로 변모한 그는 마린스키발레단 전속 뿐 아니라 다른 발레단의 객원 마스터로도 활동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5대 예술감독이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Oleg Vinogradov)와 함께 1998년 5월 발레 마스터로 부임해 많은 역할을 했다.

은퇴 작품으로 〈오네긴〉을 선택한 것은 혜민님의 결정이었는지요?
저희 둘 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에 〈오네긴〉으로 꼭 은퇴하고 싶었어요.

〈오네긴〉은 혜민님 발레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유니버설발레단이 2009년 국내 처음 공연권을 가져와 초연을 했는데, 참 좋은 시기에 잘 맞는 드라마발레를 만났죠. 저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해준 작품이에요. 드라마 발레에 마스터 피스(master piece)인 것 같아요.

이번 고별 공연을 통해 어떤 성격의 타티아나를 보여주고 싶었나요?
순수한 소녀의 어린 사랑과 성숙된 사랑 두 가지를 다 표현하고 싶었어요.


 

 

가장 오래 동안 춤춘 파트너는 엄재용 무용수일 겁니다. 파트너 무용수로서 엄재용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최고의 파트너이죠. 자신보다 여자를 더 빛나게 해주는 남자에요. 그런 파트너링이 있었기에 편하게 춤출 수 있었어요.

직업무용단을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느 자리에서든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무대를 즐기세요!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유니버설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