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엑스. 피 걸(Ex. P Girl) 〈파리 신드롬(Paris Syndrome)〉
우리는 정말 컬러블라인드 시대에 살고 있을까?
임수진

 2013년 현재, 사람들은 더이상 다른 나라를 방문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다른 문화에 대한 경험이 언제나 즐겁기만 할까? 혹시 우리는 글로벌리제이션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두렵고 불안한 감정들을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2010년 6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무용단 엑스. 피 걸(Ex. P Girl)이 뉴욕 히어 아트 센터(HERE Arts Center)에서 선보인 <파리 신드롬(Paris Syndrome)>은 다른 문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해 탐색한다.


 

파리 신드롬(Paris Syndrome)

 무대 위의 여섯 명의 여성 무용수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얼굴 생김새와 머리카락의 색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인종적/문화적 배경을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은 움직임 또한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대강 네 명의 백인과 두 명의 동양인으로 나뉘어지는 무용수들은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롭게 공존하며 함께 잘 어울리는지를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평화는 곧 이들이 관객들과 함께 퀴즈쇼를 진행하면서 흔들린다.
 무용수들은 관객들에게 각각 일본과 프랑스에 대해 질문하며, 두 문화 중 어느 곳이 더 잘 알려져있는지 구분짓는다. 뉴욕에서 열린 이 공연의 관객들은 프랑스 문화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고(적어도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몇몇의 아시아인들만이 일본에 대한 문제를 맞추려 애쓴다. 무용수들과 관객간의, 그리고 관객들 안에서의 문화 배경 차이가 눈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연명 <파리 신드롬(Paris Syndrome)>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일본인 히로아키 오타(Hiroaki Ota)가 파리를 여행하는 일본관광객들이 겪는 증후군을 일컫는 정신심리학적 용어로부터 차용되었다. 2006년 여러 매체들은 실제로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파리를 여행하면서 극도의 우울증과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다고 보도했으며, 이러한 증후군의 이유로 평상시 파리에 대해 갖고 있던 그들의 환상을 지적했다. 일본인들은 평소 파리를 예술과 낭만의 도시로 여기며 꿈같은 환상을 품고 여행을 떠나는데, 막상 꿈의 도시와는 거리가 먼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여러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왜 이토록 파리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까?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과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은 크게 두 경우로 사용된다. 하나는 유럽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들을 향한 비인간적인 시선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며 주로 이슬람 국가에 적용된다. 다른 하나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대응하는 개념으로 18-19세기 중국, 일본, 인도에 퍼진 유럽의 제국주의와 동서양을 명확히 구분하는 모더니즘으로부터 생겨난 서양을 향한 동양의 정형화된 시선이다. 서양은 정치, 문화, 경제, 과학분야에 걸쳐 동양에 영향을 끼쳤고 인위로 만들어진 서양의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수입되었다. 특히 일본의 광고와 대중음악에 영어가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고 서양의 문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만화 캐릭터들과 신화적 이야기들이 탄생했다.
 파리 신드롬은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에 대응하는 옥시덴탈리즘으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라 바라 볼 수 있다. 서양에 의해 일방적으로 심어진, 동시에 동양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난 서양에 대한 막연한 환상, 서양은 동양보다 우월하고 진보한 나라라는 기대감 등에 사로잡혀 있는 동양인이 그 꿈의 도시의 현실을 경험하고는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위에 제시된 옥시덴탈리즘의 두개의 해석 모두 타 문화를 대하는 일방적인 태도로 부터 나타났다는 사실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자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모두 사라져야할 개념이다. 두 개념은 모두 창의적이고 진보적이고 성숙한 사고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한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사고와 편견이 서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데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1)
“지리적 구분 뿐만 아니라 문화적 구분 또한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오리엔트’와 ‘옥시덴트’ 역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다시말해 ‘오리엔트’는 서양에 의해, 서양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단어일 뿐이다.” 2)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일본인 관광객은 서양의 제국주의와 문화침투에 의해 만들어진 파리의 환상에 사로잡혀 파리를 동경하였고, 그러한 태도는 결국 현실을 대했을 때 엄청난 충격과 심리적 불안감을 불러오는 하나의 신드롬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일본 관광객을 연기하는 무용수가 도착한 파리의 거리는 지저분하고, 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은 불친절하며 호텔 로비의 직원들은 프랑스어만 사용한다. 그녀가 문화 충격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다른 다섯 명의 무용수들은 그 동안 똑같이 입고 있었던 티셔츠를 벗는다. 그러자 그 안에 각각의 나라의 국기가 나타나고, 관객들은 이제 각 무용수들의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알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 전까지는 모두 비슷한 유형으로 춤추던 그들은 이제 각각 자신의 문화에 속한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미국인 무용수는 바(Bar)에 혼자 앉아 주위 남자들과 거리낌 없이 희희낙낙 거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한국인 무용수는 좋아하는 남자에게도 내숭을 떨며 고백의 기회를 놓치는 등 흔히 각 문화로 대표되는 여성의 모습을 연기한다. 무대위 그들은 대중문화산업이 대중들에게 그렇듯, 각 문화권의 사람들을 정형화 시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전형화된 캐릭터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수월하게 묘사하도록 도와준다. 호미바바(Homi K BhaBha) 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을 ‘패티시즘(fetishism)’에 비유해 설명한다.

“나는 ‘스테레오타입’을 ‘패티시즘’으로 바라본다. 인종과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역사적 분류는 다양한 믿음과 가능성을 획일화시키고 식민지 담론을 강화하기 위한 식민주의 기능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패티시즘도 마찬가지이다. 한 대상을 향해 생겨난 판타지는 패티쉬의 대상을 모두 동일시하여 바라본다.” 3)

 그에 따르면, 식민지 담론에서 스테레오타입이란 한 대상에 대한 획일성을 갖고자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판타지로부터 생성되었다. 쉬운 예로 아시아 스테레오타입 여성으로 대표되는 오페라 <나비 부인>을 들수 있다. 이 공연은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패티시즘으로 가득하다.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하는 작품들을 보면 보통 동양 여자와 서양 남자가 관계를 맺는다. 동양 여자는 동양 남자대신 서양 남자를 택하고, 결국 서양남자에게 버림을 받아 상처를 받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최후를 맞는다. 이 속성은 <나비 부인> 이야기와 정확하게 부합하기에, 이는 ‘나비부인’ 스테레오타입이라 불린다.” 4)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은 동양 여성 뿐만 동양 남자들이나 동양계 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미국 TV프로그램이나 영화는 그들을 시민이 아닌 이민자로써, 영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며 주로 식료품점이나 세탁소를 운영하는 욕심많은 사업가로 그려진다. 또한 남자답지 못하고 여성스러운, 백인 남성들보다 열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컬러블라인드(colorblindness)


 <파리 신드롬>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인종적/문화적 배경은 각각 프랑스, 독일,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나뉘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모두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을 때 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들로써 매우 평화로운 사이를 유지했다. 그러나 티셔츠를 벗고 가슴에 단 각각의 국기가 등장하면서 각자 고유의 문화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곧 글로벌리제이션/다문화 사회/컬러블라인드 사회(colorblindness)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각기 다른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긴 한걸까? 다문화 사회로 대표되는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공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 이전 미국은 ‘인종’이 언제나 주요 사회 이슈였다. 흑인과 백인갈등, 백인과 동양계 미국인의 갈등, 동양계 미국인과 흑인의 갈등 등 여러 인종차이로 인한 문제가 늘 발생났다. UC얼바인의 클레어 김(Claire Jean Kim) 교수는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인종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며 의문을 던진다.

“1950, 60년대의 공민권운동이 정말 미국을 컬러블라인드 사회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사회에서 작동하는 인종차별을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컬러블라인드라는 개념이 탄생한것은 아닐까?...많은 인종주의 이론가들과 비평가들은 컬러블라인드는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백인 지배 중심의 사회를 숨기기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5)

 <파리 신드롬>은 여행 중 겪는 문화충격, 서양 사회에 대한 동양인들의 막연한 환상, 다문화사회가 겪을 수 있는 여러 문화적 충돌 등을 유쾌하게 그린다. 마리아 앙투아네트, 닌자, 게이샤, 고질라, 미이라 등으로 분장한 무용수들이 일본 관광객을 쉴 새 없이 공격하고 혼란에 빠져 울음을 터뜨린 그녀는 관객들을 폭소케한다. 공연은 내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만들지만, 논쟁 가능한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 이 글은 공연 <파리 신드롬>이 담고 있는 여러 흥미로운 이슈들을 문화간의 상호 교류와 일방적 침투가 지속중인 현대 사회에서 고려될 수 있는 여러 담론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 다문화의 공존은 정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여러 학자들의 주장했듯 그저 진보된 사회임을 연기하기 위해 가상의 개념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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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ary, Diana. Edward Said: Orientalism and Occidentalism, Journal of the Canadian Historical Association, vol 17, 2006, p13
2) Said, Edward W. Orientalism. New York: Vintage, 2003, p5
3) Bhabha, Homi K, The other questions: The stereotype and colonial discourse, 1982, p26
4) Boyle, Jenn, Asian and Asian American Stereotypes. Suite101.com: Online Magazine and Writers' Network.
  http://www.suite101.com/article.cfm/media_literacy/50465
5) Kim, Claire Jean. The racial Triangulation of Asian Americans, Politics & Society, Vol 27 No1, March 1999, 116

임수진
한양대학교 무용학과 학사, 뉴욕대학교(NYU) 퍼포먼스 연구(Performance Studiese)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과대학교 예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중이며 월간 몸 기자로 활동중이다. 퍼포먼스 연구 및 문화연구의 방법론적 접근을 토대로 무용을 비롯해 다양한 공연예술, 융복합 장르 예술 등을 연구중이다.

2013. 1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