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한-러문화예술교류 30년 국제 컨퍼런스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교류 양상과 전망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예술교류 30년을 기념하는 국제 컨퍼런스가 10월 24일 서울사이버대학교 2층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한러문화예술협회와 주한러시아대사관이 공동주관한 이 컨퍼런스의 주제는 '한러 문화예술교류 30년: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다'로 지난 30년 동안 무용 연극 음악 미술 부문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교류 양상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전문가들의 기조연설과 발제, 그리고 참여자들의 토론으로 구성되었다.
 국제회의는 오전 11시부터 시작 오후 6시까지 개막식과 기조연설 그리고 1부와 2부에 걸친 한국과 러시아 발제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날 국제회의에는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주러 한국대사 내정자),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 나종민 문화부 제 1차관, 미하일 슈비드코이 러시아 대통령 문화예술담당 특별대표, 세르바크 차이코프스키 협회회장, 할리포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예술경영대학 학장 등 한국과 러시아 문화예술계(문학, 연극, 음악, 발레, 미술, 영화 등) 의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학자 및 예술가 등 12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국교 수교 이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양국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상호 방문을 통한 직접교류 및 콘텐츠 교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의 역사를 축적해왔다.
 이번 국제회의 주요 목적은 양국 전문가들을 초청, 주요 영역별로 그 동안 이루어진 한-러 문화예술 교류 성과를 평가하고 그 추이를 파악하는 데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경기 등 주요 행사를 앞두고 문화예술 교류를 활성화하여, 양 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또한 2020년에 맞이할 한-러 수교 30주년에 즈음하여 양국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규모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문화예술교류는 주변 국제정치 환경 변화와 무관하게 한-러 관계의 지속적 활성화를 위한 기제로 작용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러시아에서 온 회의 참석자 중에는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슈비드코이 러시아 대통령 문화예술담당 특사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미하일 슈비드코이 (Mikhail Shvydkoj)는 현재 러시아 대통령 문화예술 담당 특사, 외교부 특임대사로 일하면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예술경영대학교수, TV 프로그램 진행자, 주요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 중인 러시아 문화 예술계의 대표적 저명한 인사 중 한 명이다.
 주최측은 “푸틴 대통령의 대외문화예술 교류 정책을 총괄하는 슈비트코이 특별대표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 자체로서 러시아 정부의 한국과의 문화예술 교류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전직 장관이면서 러시아 문화예술계 현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사가 이 번 방한을 계기로 한국에 우호적 태도를 갖게 될 경우, 러시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획기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최근 분위기 속에서 우리 문화예술 콘텐츠를 러시아 내에 확산 시키고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미하일 슈비드코이가 〈무엇으로 감탄을 자아낼 것인가? 한-러 문화협력 :150년 역사와 그 이후〉를 주제로, 이규형(전 러시아 대사)가 〈한-러간 바람직한 문화예술 교류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진 1부 «한-러 문화예술 교류 30년:성과와 회고〉 섹션에서는 김진영(문학), 함영준(연극), 신혜조(발레), 장일범(음악 및 오페라)이 발제를 맡았고 〈한-러 문화예술 교류의 미래와 과제〉를 주제로 한 2부 섹션에서는 A.M Scherbak(차이콥스키회장), 최은주(경기도미술관관장), 장광열(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I.V. Bakanova(푸쉬킨 조형미술관 부관장)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한-러 발레 교류의 30년 궤적과 전망〉을 발표한 신혜조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시작된 한-소간의 발레교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소련무용단의 최초 국내공연인 ‘88서울올림픽 문화축전’의 볼쇼이발레단 내한공연은 발레 교류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며 “한-소 수교 이후 양국 발레단체들의 교류와 협력은 보다 활발하게 이어졌고, 확대된 교류는 러시아 발레의 국내 유입을 본격화, 체계화시켰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민간에서 활동하는 공연기획사들이 증가하면서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 라인업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볼쇼이발레단 이외에도 마린스키발레단,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발레단, 예카테린부르크발레단 등 러시아 내 메이저급 발레단들의 내한이 줄을 이었다. 그 중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와 함께 세계 정상의 발레단으로 평가 받는 키로프발레단의 내한은 한국 발레 발전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들의 내한은 1991년 초, 한소 문화장관 회담이 성사된 직후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1990년대의 교류 양상이 러시아 내한 공연단의 무대를 보고 배우며 수용했다면, 2000년대로 진입하면서부터 한국 발레계는 양적 팽창뿐만 아니라 질적인 발전과 성장을 도모해야할 시점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한국-러시아 간 교류의 지표라고 볼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를 확대해가면서 그 양상을 다양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즉 완성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방식 이외의 다양한 정책들, 예컨대 러시아식 교육 시스템을 도입한다거나, 발레단 운영 시스템을 본토화 하려는 시도 등 한국 발레 성장에 요구되는 근본적인 개혁 정책들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로부터 발레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시스템의 구축과 발레단의 안정적 운영방식을 전수받는 일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첫 번째로, 1990년대 초반,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개방되면서 러시아로 유학길에 올랐던 발레 영재들의 졸업과 귀국이 여기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고 둘째로, 러시아 정통파 전문가들의 영입은 발레후진국이었던 한국 발레계의 틀을 새로이 정립하는 혁신적 계기가 되었고 한국 발레가 세계로 진출하는 데 근본적 토대가 되었다. 당시 한국 발레의 세계화를 위한 방법으로 발레 본고장의 역량과 기반 시스템을 전수받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국내 주요 발레단은 많은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러시아 직업무용단 운영 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육 체계를 정비함으로써 한국 무용수들의 기량 향상을 도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를 주도적으로 실천한 발레단체들로 그는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인민공훈배우이자 볼쇼이 극장의 안무가 마리나 콘드라체바(М. Кондратьева), 33년간 볼쇼이 발레단의 총 예술 감독을 역임했던 유리 그리가로비치와 같은 거장들을 초빙했다. 그리가로비치는 국립발레단과 2000년부터 인연을 맺어왔으며, 국립발레단의 단골 레퍼토리인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레이몬다〉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아직까지도 그리고로비치의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다. 또한 유니버설발레단의 경우, 에드리언 델라스 초대 예술 감독 영입을 시작으로 다니엘 레반스(, 로이 토비아스, 브루스 스타이블, 올렉 비노그라도프(1998-2007)를 영입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기존 레퍼토리의 완성도를 향상시키고,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적 레퍼토리들을 축적해 나갔다”고 밝혔다.




 2부 순서에서 〈한-러 문화예술교류 30년, 이후의 향방 - 공연예술 현장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한 장광열(숙명여대 겸임교수)은 지난 30년 동안의 교류를 토대로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문화예술 교류의 향방으로

첫째, 민과 관, 해외 유관기관과의 협력추진 및 네트워킹 확대
둘째, 주민 참여형, 어린이 청소년 교류, 아티스트 간 협업 확대
셋째, 교류 유형과 교류 채널의 다양화
넷째,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별 교류 확대
다섯째,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활용한 교류사업 확충
여섯째, 전문 인력 지원 및 양성, 번역서 등 저술 지원 확대를 꼽았다.

 “예술 작품을 공연하고 예술가 개인의 미적 가치를 보다 폭넓은 관객층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전문 지식에 기반 한 커뮤니케이션 및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향후 한-러 문화예술 교류 프로그램은 보다 많이, 보다 너 넓은 곳에서 소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 교류를 위한 해외 유관기관과의 협력추진 및 네트워킹 확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성이 있다.
 두 나라 도시의 자매결연을 활성화하거나 대학 간 교류 확대, 공연예술의 경우 극장간 결연을 통해 지속적인 작품 교류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국제적인 조직을 갖춘 기관과의 협력체계를 활용, 인적교류와 정보교환을 활성화시킨다면 금상첨화이다.
 문화예술 국제교류를 실행하는데 있어서는 정책기관이 스스로 프로젝트의 시행 주체가 되기보다는 때로는 민간 전문 에이전시나 전문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시행이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곧 외국의 극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등과 축제, 그리고 각종 문화재단 등과의 공동 추진을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문화예술 교류는 단기간에 그 성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과시적이거나 일회성의, 전시적인 정책이나 행정은 금물이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마련은 그래서 필요하다. 공연예술의 경우 그동안의 한-러 교류는 일회성 공연에만 그치는 단순한 구도가 거의 전부였다. 향후에는 공연과 함께 워크숍 등을 편성하거나 공연 외에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렉처와 관련 영상상영 등 참여형 복합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보다 면밀한 문화외교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외국이 되었든 국내가 되었든 세계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를 직접 체험케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국인들이 저만치 떨어져서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두 나라의 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양국의 문화예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소극적인 정책일 수가 있다. 이는 국가 브랜딩을 위해서도 중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이 자체가 문화외교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 프로젝트의 추진“을 꼽았다.
 “주민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 교류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양국의 주민들이 두 나라의 문화를 상호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확충되면 확충될수록 더 끈끈한 친밀감 형성을 통해 교류에서 공감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두 나라의 주민들이 직접 두 나라의 민속춤을 추고 민속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양국의 문화와 예술을 직접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교류 프로그램 확대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두 나라의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양국의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쌓아 간다면 성장하면서 그 친밀감은 더 깊이 자리 잡을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예술 교류는 기존의 수도 중심,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두 나라의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확대되어야 한다. 지역 사회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및 작품도 교류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두 나라의 모든 지역 주민들을 열려 있는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교류는 새로운 예술계의 흐름를 반영하는 컨템포러리, 곧 동시대의 작업이 되어야 한다. 이즈음 세계 공연예술계의 트랜드인 협업, 공동제작 작업이 두 나라 예술가들 사이에서 보다 활성화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문화예술 유산의 활용, 인적 자원 교류 및 다양한 체계에 대한 정보와 지식 공유, 그리고 네트워킹의 확장은 한-러 문화예술 교류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3기 푸틴 정부에서도 문화 및 역사 유산의 보존, 문화적 기회에의 접근 가능성 확대, 문화적 삶에 대한 참여기회 확산, 국민의 창의적, 혁신적 잠재력 실현을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이슈로 꼽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컨퍼런스는 국제회의 ‘한-러 문화예술교류 30년’ 조직위원회(집행위원장 김현택 한국외국어대학교부총장, 한러문화예술협회 회장인 이상균 학교법인 신일학원 이사장)이 주축이 되어 준비했다. 컨퍼런스 자료집은 약 4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양국에서 15명에 이르는 발표자들의 발표 논문들과 함께 한러문화예술교류 30년 연표를 담고 있어, 지난 30년 동안 양국 간 진행된 교류의 구체적 성과들에 대한 포괄적 조망을 가능하게 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참가자들의 저녁 만찬 후 오후 7시30분부터 시작된 축하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장광열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춤웹진〉 편집장,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한예종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17. 11.
사진제공_한러문화예술협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