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춤 한류의 가능성
현대춤과 KORE-A-MOVES
이만주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스웨덴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 스톡홀름 중심가에 자리잡은 단센스 후스(Dansens Hus, 춤의 집)의 750석 중극장 좌석은 빈 자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우리나라의 춤 공연에서 접하는 젊은 관객들이 아니었다. 관객은 어린이에서 청소년, 청년을 넘어 중장년 층, 노인들로 다양한 분포를 이루고 있었다. 막이 오르자 장내를 떠들석하게 하던 투박한 스웨덴 말들이 일시에 멎었다.
 첫 번째 공연인 ‘안성수 픽업그룹’의 『바디 콘체르토』가 끝나자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가 일었다. 그칠 줄 모르는 박수는 의례적인 박수가 아니었다. 박수에는 현지 스웨덴인들의 진한 감동이 배어 있었다. 다음으로 ‘안수영 댄스프로젝트’가 컨템포러리 댄스로 재창작된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고, 마지막으로 다시 안성수 안무의 『로즈(Rose)』가 이어졌다. 두 공연이 끝났을 때도 짙은 감동의 박수는 재현되었다.
 “저의 수십 년 간에 걸친 외교관 생활에서 경험한 바로는 현지 나라에서 한국 공연예술 단체를 초청해 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우리 예술단체가 관객들로부터 비싼 관람료를 받는 공연을 하고, 현지 초청 측으로부터 공연료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오늘 한국 돈으로 4만원에 가까운 관람료를 낸 관객이 전 좌석을 메우고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를 치는 것을 보니 감동적입니다. 우리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드디어 국제 사회에서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도 높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이번 공연을 본 현지의 주 스웨덴 한국 외교관은 자랑스러워했다.

 

 

 

 한국의 역량 있는 안무가들과 현대춤의 수준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후원하고 IPAP(대표: 장광열)에 의해 기획되어 추진되고 있는 KORE-A-MOVES는 2010년 11월, 첫 행사로 독일과 영국, 네덜란드에서 우리 무용가와 무용단들의 춤 공연을 펼친 이래, 이번 제2차 행사는 2013년 2월 14일부터 시작되었고 3월 9일까지 덴마크, 스웨덴 등 노르딕 나라들을 중심으로 독일, 영국에서 펼쳐진다.
 필자는 2월 20일 스웨덴 스톡홀름 단센스 후스에서 있은 현지 무용 관계자들과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한국춤비평가 협회의 포럼부터 참석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부터 6시 30분까지 소극장에서 춤비평가인 이순열이 ‘한국의 미(Flavour of Beauty in Korean Cultuure)’, 김채현이 ‘한국의 춤 현황과 새로운 양상(Dance in Korea, Now and New Phase)’, 이지현이 ‘2000년 이후 한국 창작춤 안무의 미학적 특성(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Choreography in Korean Changjak-choom since 2000)을 발표하고 청중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런 후 오후 7시부터 앞의 세 공연이 이어졌다.


 

 

 첫날 공연을 관람한 후, 한국에서 온 매체 기자가 스웨덴 국회부의장과 일반 관객을 인터뷰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고 또한 필자 자신도 두 명에게 감상을 물어보았다. 유럽 춤계의 수준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안성수의 색깔 있는 안무와 ‘백조의 호수’를 컨템포러리 댄스로 재창작한 안수영의 안무에 이구동성으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전반적으로 그들이 작품들을 보고 느낀 점이 필자와 같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음 날인 21일에 있은 ‘한국 젊은 안무가의 밤(Korea’s Young Choreographers Night)’에는 예효승이 『I Go』, 정석순이 『For Whom 2.0』, 이인수가 『What We've Lost』를 공연했다.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도 스웨덴 관객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전날과 마찬가지로 무용수들의 탁월한 기량과 노력이 돋보였다.
 포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왜 한국 무용수들은 춤 기량이 그렇게 뛰어나는가?”는 현지인들의 주된 의문이었었다. 우리는 “본래 한국인들은 영적이라 신명이 있고 노래와 춤에 뛰어나다”는 막연한 대답들을 하는데 그쳤으나, 문화수준 높은 스웨덴인들이 한국 현대춤을 그만큼 좋게 봤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한국 젊은 안무가의 밤’이 끝난 후, 초청 측이 안무가와 무용수들을 위해 내는 저녁 자리에서 단센스 후스의 예술감독인 비르베 수티넨(Virve Sutinen)은 “한 국가의 안무가들만을 초청해 집중적으로 공연을 올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작품들의 수준과 질이 뛰어났고 관객들이 만족해하므로 이번 행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파리, 비엔나, 취리히 등, 유럽 대도시의 중심에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 긴 세월 동안, 오페라, 관현악, 발레가 문화예술의 중심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오늘의 유럽 도시들은 앞다투어 춤전용 극장이라 할 수 있는 댄스 하우스(Dance House)를 만들고 있다. 문예 당국이나 지자체가 건립하거나 개인이 만든 댄스 하우스를 중앙정부, 지자체 정부, EU 본부가 대폭적으로 지원하여 육성한다. 현재, 유럽의 댄스 하우스는 런던의 The Place, 파리의 Centre National de la Danse, 뒤셀도르프의 Tanzhaus 등, 20여 곳이 넘는다.
 오늘날 고급예술, 대중예술 가릴 것 없이 그 밑바탕에는 춤이 있고, 현대춤의 부상은 전세계적인 추세이다. 문화예술의 선진국들에서 현대춤은 독자적인 중요한 예술 장르의 하나가 된 지 오래이다. 필자가 컨템포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사용하는 ‘현대춤’은 한국의 경우에는 모든 예술춤을 아우르는 개념이며 현대무용, 한국 창작춤, 현대 발레를 포함한다.
 한국은 춤의 강국이다. 한국처럼 춤의 역사가 유구하고 다양한 춤 유산을 갖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은 현대춤의 강국이기도 하다. 1년에 전국에서 1,500여 이상의 춤 공연이 이루어지고 그 중 상당 부분을 현대춤이 차지한다. 현대춤에 관한 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와 그 수준과 수량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전국에 무용학과를 갖고 있는 대학교(2년제 대학 포함)가 40여 곳에 이르며, 수많은 무용단과 독립무용가들이 1년 내내 공연을 펼친다. 현재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십 명의 한국무용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인기는 대단했다. 한 예로 현지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국인 학생이 동양인이라고 따돌림을 당하다가 강남 스타일 덕에 급우들과 어울리게 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K-Pop 한류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류는 대중예술인 TV 드라마, 영화, 만화, K-Pop에서 시작되어 부침하다가 현재, 다시 K-Pop으로 부력을 받고 있다. 한편으론, 오늘날 한류는 그 개념과 외연이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제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감을 사지 않고 그들의 저항을 맞게 되지 않도록 어쩌면 더 이상 한류를 운운하지 말아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왕 한류를 논할 바에는 고급예술의 한류에 신경을 쓸 때가 되었고, 이번 제2차 KORE-A-MOVES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류 확장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현대춤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현대춤에 대한 문화예술 정책당국의 각별한 관심과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되어지는 이유이다. 독일인들에게는 피나 바우쉬라는 한 무용가가 헐리우드 전체와 맞먹는 자존심이었다. 만약 우리도 피나와 같은 존재를 갖게 된다면 더 이상 한류를 운위할 필요가 없게 될런지도 모른다.  

​이만주
본협회 회원, 춤비평

2013. 03.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