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코로나19로 가속화하는 공연의 디지털 유통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삶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의 세계가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BC)’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AC)’로 구분될 것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의 직접 접촉이 제한되고 비접촉 소통 방식이 강화되는 시대가 되면서 그에 맞는 생존방식이 필요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많은 분야가 타격을 입었지만 공연예술은 정체성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하다. 원칙적으로 공연예술은 무대 위의 퍼포머를 통해 공연되는 동안만 존재하는 1회적인 예술이다.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특성 때문에 공연예술은 다른 장르의 예술보다 아날로그적 성격이 강하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경우 공연장의 일부는 계속 문을 열었지만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연장이 문을 닫고 공연예술축제가 취소됐다. 영국과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빨라도 내년 초에야 공연장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5월 말부터 공연장을 재가동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무대와 객석 간 거리두기 규정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품을 공연하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 공연계에서 잇따라 등장한 것이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online streaming)이다. 즉 PC나 휴대전화의 인터넷 환경에서 음원, 영상 등을 재생하는 스트리밍을 통해 연극, 오페라, 콘서트, 뮤지컬, 무용 등의 공연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크게 유튜브 등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무관중 공연 실황을 생중계하거나 기존의 공연 영상물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콘서트홀' 홈페이지 캡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코로나19 이후 'Nightly Met Opera Streams'로 무료 공연 스트리밍.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 확산 속도에 따른 공연장 폐쇄 조치가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 세계 공연 기관이나 주요 단체들 사이에서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붐은 3월 중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필)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에서부터 시작됐다. 두 기관은 그동안 공연계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과 그 유료 서비스의 선두주자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공공성을 위해 영상 콘텐츠들을 무료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공식 유튜브에서 스트리밍 중인 〈오페라의 유령〉 캡처




 이어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각국 공연 기관과 단체들도 무료 온라인 스트리밍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의 세계적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자신의 작품을 공식 유튜브 채널로 스트리밍하고 있는데, 2011년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공연 실황은 이틀간 공개돼 무려 1000만명 접속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사실 어떤 나라보다 공연의 무료 온라인 스트리밍이 빠르게 이뤄진 나라다. 작품 홍보를 위해 2016년 10월 뮤지컬 〈팬레터〉가 처음 네이버TV로 전막 실황중계를 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공공 극장들은 기존에 계획된 작품을 취소하는 대신 무관중으로 공연하되 네이버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예술의전당이 그동안 콘텐츠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통해 축적해 놨던 공연들을 3월 중순부터 유튜브로 스트리밍하면서 한국에서도 온라인 스트리밍이 화두로 급부상했다. 이어 국공립 공연 기관 및 단체들 역시 그동안 아카이빙용으로 만들어놨던 공연 영상을 스트리밍하기 시작했다. 세종문화회관 등 몇몇 공공극장은 예산을 투입해 무관중 공연을 기획한 뒤 스트리밍하기도 했다.




예술의전당의 '싹 온 더 스크린' 송출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예술의 전당의 '싹 온 더 스크린 유튜브 스트리밍' 홈페이지 캡처



국립발레단의 KNB 스트리밍 발표.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의 장기화 속에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은 기존 공연의 보완재에서 대체재로 여겨지게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온라인이 예술가와 관객을 잇는 핵심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온라인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이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유료화의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공연 영상 콘텐츠를 공연과 다른 새로운 장르로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극장 내 좌석 간 거리두기에 따른 티켓 판매 수입 감소가 심각한 공연장이나 공연 단체에게 온라인 스트리밍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어차피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언택트(비대면)’가 일반화되는 사회라면 공연 장르 역시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악한 한국 공연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비인기 장르나 영세한 제작사 및 단체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드는 영상화 작업에 나서기도 어려울뿐더러 영상물을 만들어도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 등 공공의 역할이 요구된다.


코로나가 앞당긴 공연 영상화와 온라인 스트리밍

공연예술은 생산과 소비에서 유연성이 적다. 라이브가 주는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작용은 다른 어떤 장르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예술의 매력이다. 하지만 생산자(예술가)와 소비자(관객)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특성은 시간적, 장소적 제약이라는 특성상 티켓 가격을 비싸게 만든다. 노동집약적 수공업으로 규격화가 어려워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수도 없다. 이런 생산의 비효율과 소비의 제약 때문에 공연예술은 만성적인 적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공연예술의 불변의 법칙인 ‘비용질병’ 때문에 다른 어떤 장르보다 공공 의존도가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 불어닥친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ICT)의 발전은 휴대용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새로운 매체와 그에 수반된 플랫폼의 다양화를 통해 공연예술의 유통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 공연예술의 유통은 공연장을 기본으로 이뤄졌다. 비디오 테이프에서 DVD로 공연 영상물 제작이 활성화됐지만 기본적으로 기록용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MET, 베를린필, 영국 국립극단(NT)이 공연 유통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들 기관은 공연실황을 공연장 외에서 많은 사람이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공연 영상화의 장점은 또 있다. 공연의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만들었으며 실제 공연에서는 불가능한 클로즈업을 통해 퍼포머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다양한 카메라워크를 통해 프로시니엄 무대를 보는 것보다 훨씬 역동적으로 화면을 송출하기 때문에 공연 영상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MET, 베를린필, NT로 대표되는 공연 영상화와 그 유통 방식은 크게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시네마 라이브 뷰잉) 형태와 개인용 IT 기반 스트리밍&VOD(주문형 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는 2007년 시작된 MET Live in HD(이하 MET 라이브)와 2009년 시작된 NT Live가 대표적이다. MET는 2006년 12월 줄리 테이머가 연출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미국 내 100여개 영화관에서 유료로 실황중계한 것을 시작으로 2006~2007시즌 동안 6개를 MET 라이브로 선보였다. 당시 오페라하우스 위주의 오페라 유통 플랫폼을 영화관으로 확장시키며 시즌을 거듭할수록 규모가 커져서 최근엔 2200여개의 영화관과 공연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MET 라이브의 성공은 전세계 공연장과 축제로 하여금 영상 제작 및 유통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코로나19 이후 공연을 무료 스트리밍 하는 영국 국립극단(NT)의 홈페이지 캡처




 NT 라이브 역시 장르는 연극이지만 전반적인 형태는 MET 라이브와 유사하다. NT 라이브는 2009년 6월 헬렌 미렌 주연의 연극 〈페드라〉를 위성으로 영국 50여개 영화관에서 유료로 실황중계하면서 시작됐다. 시차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는 지연 중계되고, 아시아는 언어 문제에 따른 자막 처리 때문에 위성이 아닌 고화질 블루레이를 상영한 뒤 반납하는 형태다. 고화질 블루레이는 NT가 실시간 상영했던 것에 여러 차례 추가로 찍은 영상을 더해 편집한 것이다.
 한국에서 예술의전당의 ‘싹 온 스크린’도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방송PD출신인 고학찬 전 사장이 취임후 MET 라이브와 NT 라이브를 벤치마킹해 추진한 것으로 2013년 11월 토요콘서트를 4개 지역문예회관과 5개 CGV 영화관에서 무료 실황중계하면서 시작했다. 이후 클래식은 실황중계를 하지만 뮤지컬, 연극, 오페라, 발레 등 다른 장르는 편집까지 끝낸 DVD를 지역문예회관 중심으로 상영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개인용 IT 기반 스트리밍&VOD는 2008년 베를린필이 온라인으로 콘서트를 중계하는 ‘디지털 콘서트홀’과 로열오페라하우스, 바비컨시어터,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 BBC 등 영국의 50여개 주요 공연 관련 기관들이 2009년부터 참여한 ‘디지털 시어터(Digital Theater)’가 대표적이다. 두 기관 모두 양질의 콘텐츠를 저렴하게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MET 라이브와 NT 라이브가 영화관 송출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디지털 콘서트홀과 디지털 시어터는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공연을 스트리밍하는 방식을 택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자체 플랫폼은 물론 앱을 통해 스마트 TV와도 연동돼 큰 화면으로도 볼 수 있다.
 둘 다 월간 또는 연간 단위로 회원권을 구입할 수 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공연실황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공연실황을 VOD로 들을 수도 있다. 디지털 시어터의 경우 교육적 목적이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는데, 실시간 중계는 거의 없고 VOD 형태로 공연을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2009년부터 대중음악 콘서트를 중계하기 시작해 점차 여러 장르로 확장했다. 공연예술 분야는 2016년 뮤지컬 〈팬레터〉의 전막 공연의 실황중계가 처음 시도된 이후 공연계 전반에서 일반화됐다. 초기에는 영상으로 작품을 다 본 관객이 공연장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공급 과잉인 국내 공연시장에서 홍보 및 마케팅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네이버에서 공연 스트리밍은 개인용 IT 기반 스트리밍 방식이며 네이버TV와 V라이브의 2개 채널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 영상 유통의 승자는 개인 IT 기반의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이 됐다.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의 경우 그동안 영화관이든 공연장이든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실내공간에서 행해졌는데,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층의 경우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보다 개인 IT 기반의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앞으로도 스마트폰 기능이 발전하고 언택트 문화가 심화될수록 개인 IT 기반의 공연 스트리밍 방식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트리밍 방식으로 공연 영상을 관람할 때의 몰입도는 매우 낮다. 낮은 몰입도 때문에 학교에서 실제로 수업이 이뤄질 때보다 짧게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공연 영상을 몰입해서 관람하는 시간은 애호가라도 20~30분을 넘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공연 콘텐츠에 대한 창작방식의 변화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집중시간이 짧은 온라인 콘텐츠 특성을 반영한 짧은 콘텐츠가 많아질 전망이다.


유료화의 가능성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의 우려

코로나19 사태는 백신이 나오지 않는 한 언제 종식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또 백신이 2~3년 안에 개발된다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또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할 경우 비대면 문화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공연계에서는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앞으로도 공연장에 사람이 덜 오게 되면서 온라인 스트리밍이 활발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영상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던 공연계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비율이 높아진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대중음악은 확실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해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 공연은 네이버 V라이브 플러스를 통해 생중계 했는데, 당시 3만3000원의 이용료를 내고 14만명이 시청했었다. 네이버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45억원의 수입을 배분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SM엔터테인먼트는 그룹 슈퍼엠의 온라인 콘서트 ‘비욘드 더 퓨처’를 네이버 V라이브로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가 매주 선보이는 라이브 콘서트 스트리밍 서비스 ‘비욘드 라이브’의 첫 주자였다. 전 세계 109개국에서 모인 7만5000명의 ‘온라인 관객’이 3만3000원을 내고 콘서트에 참석했다. 콘서트 생중계와 뮤직비디오, 음악 방송 등을 넘나드는 카메라 워킹과 온라인으로 시청 중인 관객이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와 마치 마주보는 듯한 시점을 연출하는 등 온라인에 최적화된 공연으로 콘서트의 완성도를 높임은 물론 생생한 현장감까지 재현하는 세계 최로 온라인 맞춤형 유료 콘서트다. 2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이어진 NCT 드림, NCT129, 동방신기 등의 콘서트는 온라인 관객 수가 더 늘면서 매출 역시 증가했다.




  

그룹 슈퍼엠의 온라인 콘서트 모습 SM 엔터테인먼트 제공




 대중음악에 비해 규모는 비할 바가 없지만 공연예술계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료 공연이 시도됐다. 지난 3월 체코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벨 슈포르츨은 자신의 집 거실에서 연주한 음악회 영상을 유료화했고,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온라인 유료 콘서트를 열었다. 3월 28일 독일 베를린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온라인 생중계된 조성진과 괴르네의 공연은 입장료가 7.90유로(약 1만500원)를 내야했지만 900명 이상 연주를 지켜봤다.




조성진과 마티아스 괴르네의 '스테이지 앳 홈' 온라인 콘서트 웹페이지




 지금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공연계에서 극장과 아티스트들 대부분 무료로 공연을 스트리밍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폐쇄와 도시 봉쇄가 전대미문의 사건인 데다 공연계가 그동안 공공 지원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 예술의 가치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만 MET Live, NT Live,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은 앞서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나 온라인 스트리밍&VOD로 수익을 낸 선두주자다. 물론 세 기관이 오페라, 연극,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각각 자타공인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영상화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의 엄청난 초기 비용을 고려하면 수익이 크다고도 할 수 없다.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의 경우 도이체방크의 후원이 없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
 게다가 공연 영상 콘텐츠의 디지털 유통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MET Live는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시즌당 티켓 판매가 평균 2200만여장에 이를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MET는 2014년부터 실제 공연장에 관객이 줄어들었는데, MET Live의 영향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ET의 사례는 아니지만 영국에서 2014년 오페라 투어링 컴퍼니가 오페라 영상을 본 뒤 실제로 공연장에 관객들이 올지 조사한 적 있는데, 영상을 본 관객의 85%가 공연장에 갈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었다. 이 때문에 영국 로열오페라는 MET Live와 유사한 사업을 고민하다가 취소한 뒤 여름마다 런던에서 시네마 라이브 이벤트로 짧게 무료 상영한 뒤 디지털 시어터에서 개인이 찾아보도록 했다. 반면 NT는 NT라이브의 인기에도 실제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주는 등의 영향은 보이지 않았다. 연극과 오페라라는 장르 및 실제 공연에 대한 티켓 가격의 차이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유료화 추진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처음부터 유료화를 목적으로 공들여 영상을 찍었던 해외 사례와 달리 한국에서는 그동안 홍보·보관·기록용으로 영상을 찍었다. 당연히 영상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볼 수 없으며 창작진, 스태프, 배우 등과 저작권 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국공립 기관은 앞다퉈 과거에 찍어놓았던 영상물을 스트리밍했는데, 매번 창작진 스태프 배우 등 관계자들에게 동의를 구해야 했다. 온라인 스트리밍에 대한 계약을 이들과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익적 목적으로 무료 스트리밍을 하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동의를 해줬지만 유료화할 경우에도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동의하더라도 수익의 배분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영상화 사업의 선두주자인 예술의전당이 공연 영상 콘텐츠 시장을 무료로 인식하게 만든 문제를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해외 예술 기관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영상으로 만드는 것과 달리 예술의전당은 상당수가 다른 단체의 작품이다. 예를 들어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유니버설발레단 〈지젤〉,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윤동주〉, 에이콤의 뮤지컬 〈명성황후〉, EMK뮤지컬컴퍼니의 뮤지컬 〈웃는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한 레퍼토리가 적기 때문에 자신의 극장을 대관하는 단체와 계약해서 만든 것이다.
 대개 예술의전당의 영상 제작비는 뮤지컬은 2억5000만원~3억원, 클래식 1억~1억2000만원, 발레 8000만원~1억원, 연극 8000만원 안팎 정도로 알려져 있다. 영상 사용 기간 등 단체와 예술의전당이 맺는 조건에 따라 비슷한 장르라도 제작비가 달라진다고 한다. NT의 경우 영상물 제작비가 편당 10억원이 넘고, MET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NT나 MET가 관객이 있는 실제 공연을 찍는 것과 달리 예술의전당은 제작사에 1회분 단체관람료를 다소 할인한 가격을 지불한 뒤 관객 없이 공연을 찍는다. 이후 리허설 등의 촬영까지 추가해 최종 편집한 DVD를 만들게 된다. 제작사의 경우 단체관람료 외에 수익이 따로 없어서 다소 불만을 가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예술의전당과의 관계, 평소 엄두를 내지못한 고화질 공연 영상을 가지게 되는 점을 들어 ‘싹 온 스크린’에 동의한다.
 예술의전당의 ‘싹 온 더 스크린’은 문화 소외층 지원을 위한 공익 사업으로 국고를 받는 것으로 설계돼 기본적으로 유료화가 불가능하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뮤지컬 〈웃는 남자〉가 메가박스에서 상영될 때 티켓을 팔았지만 그 수익을 EMK나 예술의전당 모두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공익 목적으로 기부했다.
 최근 온라인 스트리밍이 화두가 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유료화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듯하다. 공연계에서는 온라인 스트리밍에 대한 각종 보도가 나오면서 영세한 제작사나 극단, 비인기 장르 등에서는 박탈감을 느낀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듯하다. ‘싹 온 더 스크린’의 영상 제작비가 자신들의 실제 공연 제작비를 몇배 웃도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료화와 관련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타 아티스트가 나오거나 브랜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니면 쉽지 않다는 게 공연계 전반의 목소리다. 예를 들어 클래식계 최고 스타 가운데 하나인 조성진조차도 무료 스트리밍했을 때는 4만8000명(이틀간 영상 공개하는 동안 누적조회수는 24만명)이었지만 스타 성악가 괴르네와 함께 한 유료 콘서트일 때는 겨우 900명이었다.
 사실 해외에서도 대중적인 뮤지컬의 경우 유료화가 가능해서 ‘브로드웨이HD’가 공연 실황 영상을 제공하는 채널로서 자리매김해 왔고, 5월 또다른 채널인 ‘브로드웨이 온 디맨드’가 런칭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조만간 일부 대형 뮤지컬을 중심으로 유료화가 가능한지 여부를 테스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뮤지컬을 제외한 다른 장르는 세계적 권위가 있어서 독자적으로 유료화를 추구한 MET, NT, 베를린필 이외엔 아카이빙이나 교육 등에 영상을 활용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유료화보다도 디지털 시대에 맞게 공연계의 영상 제작 지원 및 영상물 관리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영상 자료들이 있긴 하지만 양적으로 부족한 편인 데다 앞으로 영상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만큼 별도로 관리하는 조직이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영상 자료를 보려면 직접 예술자료원에 가야 하며 온라인으로는 볼 수도 없는데, 영국의 디지털시어터나 프랑스의 누메리당스처럼 영상 라이브러리 같은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덧붙여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후죽순 만들어진 영상자료들을 모아서 앞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할 필요도 있다.

2020. 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