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현장 스케치(2) 무용역사기록학회 심소 김천흥 10주기 학술대회
6편 연구 논문 발표, 다양한 조망과 아쉬움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전통무용가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아 무용역사기록학회가 ‘조선무악(朝鮮舞樂)의 전승맥락과 심소 김천흥의 학예 정신‘이라는 주제로 8월 25일에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19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심소김천흥무악예술보존회가 그동안 ’심소 김천흥 신진연구자상‘을 제정하고 준비했던 수상금을 이 학술대회에 기증하면서 공동주최했으며, 한국연구재단과 (사)한국춤문화자료원이 후원했다. 

 


 무용역사기록학회장 한경자 교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심소 김천흥 선생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 상영이 있었고, 3부 구성으로 모두 6편의 논문 발표가 있었다.
 1부 발표는 ‘‘조선무악’의 전승맥락‘이라는 주제로, 조경아(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조선총독부 기록영상 ‘조선무악’의 한계」와 박정경(국립국악원)의 「김천흥과 ‘조선무악’을 통한 국립국악원의 무용 복원 연구」 가 있었다. 1931년에 조선총독부가 촬영하고, 1979년에 일본의 한국문화원에서 발견된 궁중무 7종에 대한 영상을 토대로 한 연구이다.
 이 영상은 35mm 흑백필름의 무성영화로 이왕직 아악부 악인 85명이 참여했으며, 〈봉래의〉〈보상무〉〈무고〉〈장생보연지무〉〈포구락〉이 편집되어 있는 영상과 〈처용무〉와 〈향령무〉가 편집되어 있는 영상이 있다. 국립국악원 아카이브에 소장되어 있으며,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상은 짧게 편집되어 있어서 당시 궁중무의 단편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조경아는 “무동의 춤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영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무동이 추는 궁중무의 미감(美感)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박정경은 김천흥의 궁중무 복원작업이 영상 ‘조선무악’과 크게 관련이 없음을 확인하였다.
 2부 ‘심소 김천흥의 학예정신’에서 최경자(국립국악원)의 「심소 김천흥의 정재 재현작업 재조명」, 위송이 (단국대학교)의 「심소 김천흥의 궁중무용 복원양상과 창조정신」이 발표되었다. 김천흥 선생이 짧게는 국립국악원에서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진행한 국립국악원의 궁중무 복원공연에 대해, 길게는 1954년에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를 개소한 후 1956년의 첫 번째 발표회부터 진행한 궁중무 복원작업에 대해 연구 주제로 삼은 발표였다.
 최경자는 김천흥의 무대에서의 궁중무 복원작업이 정재와 민속무를 아우르는 경험과 해박한 무대연출의 기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위송이는 이번 발표에서 유일하게 작품 분석을 통해 김천흥의 복원작업을 설명했다. 『계사년 정재무도홀기』(1893)의 무보와 김천흥이 1982년에 복원한 〈무고〉와 〈장생보연지무〉의 영상을 비교하여 연례에서 추던 궁중무와 무대에서 변화한 양상을 도출했다.
 3부는 ‘심소 김천흥의 춤자료 현황’이라는 주제로 오정은 (한국춤문화자료원)의 「심소 김천흥의 자료현황과 자료활용사례」와 김도연(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과 황용구(이음스토리)의 「심소 김천흥 자료의 실시간 입력 DB개발」가 있었다. 오정은은 김천흥의 자료 소장 상황을 설명했고, 자료를 통해 재연한 김천흥 안무의 〈처용랑〉의 복원사례를 설명했다. 김도연과 황용구의 발표에서는 김천흥 아카이브의 개발 과정을 설명했다.(필자는 3부 발표를 직접 경청하지 못했다.) 

 


 심소 김천흥 선생의 10주기에 선생의 업적을 되새기고자 마련된 뜻 깊은 자리에서 6편의 논문이 발표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논문의 주제가 김천흥 선생의 활동 전반을 조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1931년의 영상 ‘조선무악’과 관련하여 김천흥 선생의 활동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상이 짧게 편집되어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김천흥 선생의 출연 여부도 아직 확실치 않으며, 관련 문헌도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중무 복원작업에 대한 분석도 위송이의 분석을 제외하면 이미 논의된 성과들이다. 그러므로 아직 다루지 않은 김천흥의 민속춤 관련한 활동이나 저술작업, 창작작업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 필요했다고 본다.
 그리고 발표 전반에서 손선숙, 박은영, 하루미, 김채원 등의 일제강점기부터의 궁중무 선행연구가 충실히 반영되지 않았고, 선행연구에서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한 점도 눈에 띄었다. 결국 김천흥 선생 5주기 기념학술대회나 7주기 기념연구논문집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고, 새로운 논점이 제기되지 못했다.
 또한 학술대회에서 각 발표에 대한 토론자의 질의는 발표자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새로운 문제의식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학술대회를 창의적인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번 토론의 내용은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김천흥 선생에 대한 회고가 많았으며, 발표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용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회고조의 의례적인 질의와 토론을 지양해야 한다.
 이번 학술대회의 1, 2부에서 다룬 궁중무와 관련했을 때, 일제강점기 이후 궁중무는 공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전개되었으며, 변곡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진연진찬에서 추어지던 궁중무가 고종·순종 생신축하연에서 여흥으로 추어졌고, 1960~1980년까지는 당대적 감수성으로 김천흥을 중심으로 무대에서 궁중무가 복원되었으며, 2000년 무렵부터 또 다른 재구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매 시기마다 김천흥 선생이 존재했으니, 직접 무동으로 춤추었고, 직접 복원작업을 했으며, 그의 복원성과를 토대로 다음 안무자들이 재구성했던 것이다. 그러하니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궁중무에서 김천흥을 빼놓을 수 없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심소 김천흥의 학예정신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고 하겠다.
 김천흥 선생의 활동은 궁중무와 민속춤 전반, 궁중악과 민속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창작을 포함한 공연, 집필, 교육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다. 후속 연구는 이러한 활동들을 범주화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를 책임편집하고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의 역사성과 다양성을 알리기 위해 ‘검무전(劍舞展)’을 5년째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2017. 09.
사진제공_무용역사기록학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