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길찾기: 휴먼스탕스 조재혁
고통 속에서 발견합니다
  • 일    시
    2020년 9월 10일 오후 2시
  • 장    소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휴먼스탕스 조재혁 ⓒ춤웹진




김인아: 〈춤웹진〉 기획 인터뷰 ‘코로나 길찾기’에서 휴먼스탕스 조재혁 안무가를 모셨습니다. 최근 코로나가 재확산하면서 공연예술계가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올해만도 여러 차례 공연취소와 연기가 잇달았는데, 그간 춤 활동이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조재혁: 코로나 때문에 2월 말부터인가 공연계가 어려워졌죠. 처음엔 심각성을 모르다가 점차 알게 됐고, 그 시기에 작품 준비를 하고 있어서 예민했던 거 같아요. 공연 시연하고 뒤풀이가 있었어야 했는데 두 멤버가 우려해서 하지 못했어요. 스태프들과 같이 자리를 하지 못해 미안했죠. 그때부터 공연이 줄이어 취소됐어요. 해외 라인도 끊겼고요. 해외에 멕시코 친구가 있어서 올해 그 친구들과 같이 작업하려고 했었는데 할 수 없게 됐어요. 저는 전통춤, 민족춤 무대도 서니까 그런 소규모 무대가 취소, 연기되기도 했고요.

공연이 취소, 연기되면서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겪진 않으셨나요?
그동안 춤 작품으로 수익을 올리는 게 없었어요. 한국은 그런 시장도 아니고요. 하물며 국·공립단체도 수익이 안 되는데 독립 예술가, 소규모의 단체를 운영하는 개인 단체들이 공연을 통해 수익을 올린다는 건 어렵죠. 그럼에도 사업 규모가 크거나 단체마다 수익이 있는 사업이 있겠지만 저는 그렇진 않아요.
 한국 무용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는 콩쿠르와 입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워크숍, 수업, 강사료의 수입과 그동안 모아둔 돈을 쓰죠. 없으면 참고 안 먹고 버텨요. 신기하게도 저는 8월 이후로 공연과 일이 더 많아졌어요. 특히 워크숍이 많이 생겼어요. 심사나 수업도 그렇고요.

국립무용단에서 12년간 단원으로 활동한 후 벌써 5년째 휴먼스탕스 대표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줄로 압니다. 민간단체의 수장으로서 예술경험은 단체에 속해있을 때와 다를 텐데요, 지금 같은 코로나 위기에서는 어떤가요?
국립무용단을 나오고 처음 1년간은 행복하게 지냈지만 점차 현실에 부딪히면서 치열해졌고 그만큼 바쁘게 살았어요. 고통스럽고 힘든 부분이 많았죠. 내가 안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해도 되나 또 좋은 영향을 가질 사람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저를 찾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게 많았죠. 특히 소극장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기 위해 기획자도 많이 찾아다녔고, 제가 기획한 것도 많았어요.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게 도와주는 신에게 감사하죠. 저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죽을 것 같을 때 동아줄을 내려줬어요. 무용단 나와서 실패를 많이 하다 보니 겸손해지고 감사하게 되고 더 소중하게 되더라고요.
 안전한 것이 가장 불안했어요. 국립무용단 시절에 한 기자가 물어보더라고요.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냐고요. 지금이라고 했죠. 그러면서 가장 불안하다고 대답했어요. 무용단은 가장 좋은 환경에서 예술을 만들고 배울 수 있는 곳이었지만 제 활동에서 놓아야 할 끈이기도 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럽고 힘들 때 무언가를 발견하게 돼요. 안전할 때는 그걸 찾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 작품도, 주변 관계도 새롭게 찾아지는 것이 있어요. 이번 코로나 때엔 나보다 다른 이의 안녕을 더 생각하게 됐어요. 후배들과 친구들이 더 걱정되더라고요. 어려운 시기에 후배들을 잘 돕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못 챙겨주는 부분이 있어서 미안하고 반성하게 돼요.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춤추는 친구들을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7 창작산실_ 휴먼스탕스 〈미아〉 ⓒ휴먼스탕스




주변 후배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많이 힘들죠. 대부분 공연이 취소되니 무용수로 설 기회가 없어요. 생계를 위해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있는데 밤새워 일하다 아침 수업을 못나가기도 하고, PC방이 문을 닫아서 그나마 알바 자리도 잃게 됐죠. 월세도 내야하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막막하다고 해요. 마음 아프죠. Z세대라고 불리는 지금 젊은 친구들이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바짝 정신 차려야 해요. 지금은 반성하는 시기일지도 모르겠어요. 코로나는 천재(天災)이자 인재(人災)이고, 자연이 주는 메시지니까요.

그런 이유로 예술계에서도 그동안 적극적으로 끌어안지 않았던 생태환경, 동물과 같은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Z세대에 대해 저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누군가는 그 세대가 재난 세대가 아니냐고 하더군요. 학창시절엔 세월호 참사를 겪었고 대학 졸업 후 취업 시기엔 코로나 재난에 발목이 잡혔어요.
희망을 놓으면 안 되는데 그럴까 봐 마음 아파요. 춤은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데 이런 위기의 상황에선 좋아하는 걸 잃어버리게 되죠.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니까요. 선배들, 춤계 사람들이 잘 이끌어주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주어야 해요. 결국 춤을 출 수 있게끔, 추고 싶게끔 만들어줘야죠.
 코로나는 세대와 분야를 막론한 모두의 재난이잖아요. 요즘 정부 방침으로 오후 9시에 가게를 닫아야 하는데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우리보다 더 심각할 거예요. 그런 분들이 안정된 생활을 해야 춤도 보고 예술을 향유할 수 있을 텐데요. 지금같이 먹고 살기 힘들다면 어느 누가 예술을 찾겠어요. 우려되는 지점이 적지 않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용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춤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새롭게 감지되는 방식이 있다면요?
각자 위치에서 버티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더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겸손해져야 하고요. 코로나로 인해 그런 자세를 배우게 됐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 같고요. 개인적으론 새로운 방식을 찾진 못했지만 여러 분야에서 만들어가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어요. 공연예술계의 영상 콘텐츠 개발은 코로나가 없을 때도 있었지만 앞으로 더 활성화될 테고요. 개인적으로 SNS를 하진 않지만 주위를 보니 SNS 홍보를 많이 하던데 그런 적극적 태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좋은 거 같아요.






2020 창작산실_ 휴먼스탕스 〈돌〉 ⓒ휴먼스탕스




지금 하고 있는 안무작업은 무엇인가요?
내년 2월 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창작산실 공연으로 작품 〈돌〉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해야죠. 사람들과 빨리 만나고 싶어요. 댄서들도 부르고 싶고 같이 한 공간에서 얘기 나누고 싶은데 아직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창작산실은 꿈의 무대예요. 2017년 창작산실 소극장 공연으로 〈미아〉라는 작품을 선보이긴 했지만 ‘휴먼스탕스’라는 이름을 걸고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건 처음이에요. 제가 생각한 예술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죠. 저를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할 거 같아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므로 많은 스태프, 훌륭한 댄서와 같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저에겐 꿈을 향해 가는 길이자 또 한 번의 큰 발걸음이에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죠.

내년 2월이면 5개월 정도 남았네요. 준비과정도 궁금해요.
저는 보통 첫 달은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하고 그 다음 달에는 일주일에 1~2번 해요. 그렇게 서칭을 두 달하고 본격적으로 2~3개월 남으면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2~3시간, 오래 하지 않아요. 다들 바쁘고 하는 일이 많으니까 스케줄 잡는 게 어려워서요. 대략 20~25번 만나면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것 같은데, 너무 짧죠. 결국 시간과 싸움이에요. 평소에 더 고민하고 연구한 후에 연습시간을 갖고 임팩트 있게 안무해요. 그러려다 보니 집에서는 잠도 안자고 고민하게 되죠. 제 성격상 연습시간을 길게 하진 않아요. 3시간 지나면 멍해지고 댄서들도 힘들 거고요. 그 시간 안에 댄서들이 집중을 잘 해줘서 감사해요.




휴먼스탕스 조재혁 ⓒ춤웹진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도록 조언해주셨으면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의 이야기가 떠올라요. 어떤 상인이 행복의 비밀을 배워오라며 자기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에게 보냈어요. 현자는 지금 당장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우선 자신의 저택을 구경하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죠. 그리고는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건네주었어요. 아들은 저택을 구경했지만 찻숟가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다시 구경에 나선 아들은 이번엔 저택에 있는 예술품을 구경하고 오느라 숟가락의 기름을 없애고 말죠. 현자는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줘요. 코로나 상황에서 오늘 나눈 이야기는 〈연금술사〉의 이야기와 비슷한 거 같아요. 위기에도 생계를 유지하며 아티스트로서 예술을 추구하는 것, 두 가지를 다 놓치지 않아야 해요. 어려울 때일수록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코로나 발생에는 이유가 있고, 버티고 나면 반드시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예요. 마라톤의 ‘세컨드 윈드’처럼 심장이 잘 안 뛰는 고통의 한계를 넘기면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맛보듯 이 시기를 이겨내면 더 좋은 일이 생기겠죠. 그때 우리가 느끼고 반성했던 부분을 자양분 삼아 더 소통되고 확장되고 좋은 사회로 나아갔으면 해요.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고 문화 수출도 더 활발해져야죠. 졸업한 친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하고 정부에서도 문화예술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해요. 예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고 좋은 인격을 가져야 좋은 예술이 나온다는 생각에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돼요. 무엇보다 춤은 소통해야 만들어지기 때문에 무용인 서로 아끼길 바라요.

후배들이 방향성을 잃지 않게끔 북돋아주고 싶다는 애정 어린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춤계의 단합으로 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합니다. 휴먼스탕스 조재혁 안무가의 다음 행보도 응원하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2020. 10.
사진제공_춤웹진, 휴먼스탕스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