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 SIDance 20년(3) 성과와 과제
춤계 업그레이드로 향하는 춤축제의 독자성
김채현_춤비평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고은, 〈가을 편지〉) 지난 20년 동안 해마다 춤계에 건네진 가을 소포, 서울세계무용축제.
 춤 국제 프로그램이 흔한 오늘 서울세계무용축제 또한 여느 국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그런 세태를 굳이 타박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등장한 배경을 일별하면 여느 국제 프로그램에 비해 차이나는 실감을 가질 것 같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쌓은 공적을 춤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그 당대의 현실과 결부해서 약간의 언급이 필요하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있기 6년 전,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로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과 그 연장선상의 노태우 정부는 무려 32년 만에 종막을 고했다. 나로선, 이런 역사적 변동과 그 직후의 세계화 흐름을 서울세계무용축제를 촉발시킨 원동력으로 본다.
 1992년, 그해에 서태지와아이들이 강진(强震) 같은 랩을 무기로 한국을 뒤흔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여권만 있으면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정부로서 해외와 외국인들 눈에 군부를 연상시키는 사회 통제 이미지를 씻는 유화책으로서 노태우 정부가 취임 직전인 1988년 1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를 취한 이후의 일이다. 표현과 이동의 자유를 당연시하는 사회 흐름 속에서 문민정부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사실상 문민정부 시기에 국민들은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통해 세계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 의식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그 문민정부 또한 세계화를 정부 시책의 화두로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예술계에서 세계화가 국제 교류와 국제적 행사들의 창설로 실행되던 흐름 속에서 문민정부를 이어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시작되던 그해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첫 막을 열었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태어나던 때의 사정은 그러하다. 그 20년 동안 시댄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예술감독 한 사람의 집요한 공력으로 꾸려져 왔고, 그는 여기에 자신의 후반기 삶을 바쳐왔다. 

 


 20년 동안 건네받은 가을 소포에는 모두 75개국 394개 해외 무용단, 528개 국내 무용단의 작품이 들어 있었다. 해마다 오는 소포에 기복이 있었고 다른 내용물을 원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의치 않았을 여건과 이와는 아주 대조적인 기획 추진력을 돌이켜 보면 가을 소포는 그 자체로도 특급 소포로 분류된다.
 세계화 시대가 열리고부터 출현한 유사한 교류 프로그램들의 족적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경향과 비교하면 서울세계무용축제의 독자성은 두드러진다. 경험으로 보아, 국내 춤 교류 프로그램이 중심을 잡는 어느 누군가가 없으면 시들해지기 마련이고 더욱 안목마저 없으면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을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실증한다. 

 


 서울세계무용축제는 20세기 말에 시작되어 2020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20년 전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세계화 시대 초기에 해외 주요 춤 흐름과 국내 춤을 소개하는 창구로서 기획되고 이를 통해 무용 문화의 확산을 지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 몇 해 특정 국가나 권역의 춤 소개와 국내 춤의 해외 진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국제 합작을 병행하는 쪽으로 중점을 옮기는 것으로 관측된다.
 여차하면 인공지능 운운하는 시대에 이미 인터넷으로 해외 춤에 대한 갈증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고 국내 여타 행사들에서도 해외 춤들이 다수 소개되고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계몽의 차원에서 행한 것들이 이제는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와는 차이가 있어도 표면적으로는 여타 행사들에서도 다반사가 되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를 참작해서 근래에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백화점식 전시보다 특화된 집약성을 기획에 구현하는 것을 다른 행사들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해외 교류에서 단편적인 교류가 주류를 이루어 무슨 효과를 목표로 하는지 헤아리기 쉽지 않은 행사들은 갈수록 효과가 저조해지기 때문이다(고비용 저효율).
 문화계에서 케이팝 등 예능을 중심으로 대자본이 동원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영화와 뮤지컬은 진즉에 산업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과 비교해 생태계마저 지지부진한 춤계는 대책이 없거나 답답할 만큼 느리다. 비록 국제 교류 부문의 일이긴 하지만 지지부진함을 탈피하려는 자구책을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스스로 찾고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국제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하며 한국 소개를 병행해 왔고 향후에 국제 협업과 한국의 대외 진출을 강화하는 전략은 춤계의 대책으로서도 관심사이다.

 


 서울세계무용축제를 향해 춤계로부터 기대와 더불어 충언과 주문도 더러 있었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직면해온 여러 고충들은 춤계의 고충과 일정 부분 겹친다. 그 같은 고충을 도외시하고 곧장 기대·충언·주문하는 것은 결례이다. 그렇더라도, 20년 성년은 그러한 것을 가려서 헤아리는 역량을 상징한다.
 서울세계무용축제의 이종호 예술감독은 연중 상당 일수를 해외 체류 일정으로 채우는 줄로 안다. 이런 열성은 서울세계무용축제를 견인하는 자산이자 세계로 열린 한국 춤계의 자산이기도 하다. 그의 공력과 열성으로 춤계가 한결 업그레이드되기를 꿈꾸며 올해도 가을 소포를 기다릴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2017. 10.
사진제공_국제무용협회(CID-UNESCO)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