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 SIDance 20년(2) 스태프들이 뽑은 20년 베스트 10
신선한 충격 깊은 자극, 주옥같은 작품
 20년 동안 시댄스를 찾아왔던 75개국 394개 외국 무용단, 528개 국내 무용단 가운데 단 10편의 작품만을 선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모리스 베자르, 러셀 말리펀트, 이마누엘 갓, 이칙 갈릴리,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 발레단(에드워드 클루그), 에곤 마젠 & 에릭 고띠에, 수잔 링케, 웨인 맥그리거, 카롤린 칼송, 필립 장띠 등 기라성 같은 단체와 안무가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초청 당시 국내 무용계에 얼마나 신선한 충격과 깊은 자극을 주었는가, 무용가들과 일반 관객에게 무용에 대해 얼마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는가, 그리고 시댄스에 초청 받은 이후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상 등을 고려하여 선정했습니다. 시댄스 컬렉션의 취향과 안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선정에는 송애경(기획자) 우연(남산예술센터 극장장) 김신아(예술경영지원센터 실장) 김은희(예술경영지원센터 팀장) 곽아람(국립현대무용단 팀장) 씨 등 과거 시댄스에서 다년간 일했던 분들이 다수 참여했음을 밝혀둡니다. (정리_ 신재민 시댄스 홍보담당)



1.
핀란드 테로 사리넨 솔로의 밤 〈방 안의 남자〉 〈헌트-봄의 제전〉 (2005)
      테로 사리넨 무용단 〈페트루슈카〉 〈미지로!〉 〈떨림〉 (2006)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핀란드 공연예술계에 불기 시작한 다중 장르 융합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테로 사리넨. 국내에선 인터랙티브 퍼포먼스가 실질적으로 제작되지 않던 2005년 시댄스가 그를 소개함으로써 현대무용계 뿐 아니라 관련 분야에서도 지속적으로 회자되었다. 특히 테로 사리넨의 솔로 공연을 관람한 한 시댄스 스태프가 그날 밤 축제 일도 제쳐둔 채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후 시댄스 이종호 예술감독의 추천으로 국립무용단 창단 이래 52년만인 2014년에 테로 사리넨이 최초의 외국인 객원 안무가로 초빙되었다. 국립무용단과의 협업작 〈회오리〉는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올해 봄 앙코르 공연도 열렸다. 테로 사리넨의 경우는 안무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이전에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는 시댄스의 안목이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이다. 

 



 
2. 일본 테시가와라 사부로 무용단 〈Here To Here〉 (1998)

국내에는 부토 외엔 일본 현대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90년대 후반, 유럽에서 뛰어난 현대적 감각으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테시가와라 사부로. 제1회 시댄스에 초청된 그는 한국 무용계가 지니고 있던 ‘일본 현대무용은 2류’라는 그릇된 편견을 일거에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삼면의 하얀 벽과 천장, 텅 빈 사각형의 간결한 무대, 그리고 정적이고 섬세한 동작.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시적인 힘은 엄청난 추진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전까지 특별한 기획적 의도 없이 개인적 친분으로 한국에 들렀던 일본 현대무용만 보고 수준을 낮춰봤던 한국의 무용인들은 테시가와라 사부로의 내한 공연을 계기로 일본을 달리 보기 시작했고, 이후 시댄스를 통해 레니 바소, 곤도 료헤이 등 수많은 실력파 일본 현대무용단이 해마다 시댄스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3. 일본 에치 아르 카오스 무용단 〈로미오와 줄리엣〉 (1999)
                〈봄의 제전〉, 〈돌리〉 (2000)
     [천상무희(天上舞戲)-한•중•일 여성무용가 3인전] 중
     시라카와 나오코ㆍ오시마 사키코 〈B-슬래시〉 (2006)

1999년 제2회 시댄스에서 카오스 무용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안무가 오시마 사키코의 구성과 연출로, 시라카와 나오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남녀 2역을 혼자 추는 일인 무용극이다. 빈틈없는 공간 연출과 군더더기 없는 몸의 승리를 보여준 작품으로, 대극장 무대 천장에 매달린 의자들 사이로 독주하던 시라카와 나오코의 움직임은 가히 ‘니진스키의 재림’이라 평가 받을만하다.
카오스 무용단의 섭외 일화가 기억난다. 1998년 여름 프랑스에 갔던 이종호 예술감독은 우연히 발드마른 무용축제 프로그램이 복사된 허름한 종이에서 카오스 무용단의 공연사진을 보았다. 거친 종이에 흑백으로 복사된 사진 속에서도 놓칠 수 없이 드러나는 시라카와 나오코의 무대 장악력. 그 사진 한 장에 매료된 예술감독은 카오스 무용단을 수소문, 일본에까지 찾아가서 이듬해 시댄스에 초청했다.
이후 오시마 사키코의 결혼과 시라카와 나오코의 부상 등으로 활동이 저조했지만, 최근 두 사람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부상을 극복하고 지난해 7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시라카와 나오코와 오시마 사키코가 일본 현대무용계에 또다시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 기대된다.




4. 영국 아크람 칸 무용단 〈대지〉 (2004)

2004년까지만 해도 ‘떠오르는 스타’ 정도였지만, 이제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 중 하나로 자리잡은 아크람 칸. 그를 떡잎부터 알아보고 한국 무대에 초청한 것은 시댄스였다. 현대와의 조화는 전통춤에 늘 존재하는 논점인데 이에 대한 통쾌한 해답을 아크람 칸이 던져주었던 것. 시댄스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의 〈대지〉는 인도 전통춤인 카탁에 현대적 감성을 더한 ‘컨템포러리 카탁’으로, 아시아 전통무용과 유럽 현대무용의 탁월한 화학적 융합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제와 스토리라인이 시청각적 표현으로 완벽하게 전달되는 빈틈없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후 아크람 칸은 LG아트센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초청 받는 등 국내 무용팬들에게 영순위 인기 안무가로 등극했다. 

 



 
5. 프랑스 앙즐랭 프렐조카주 발레단 〈헬리콥터〉 〈봄의 제전〉 (2003)
                 〈갈라〉 (2016)

2003년 시댄스 사상 처음으로 무대 위 누드 장면 사진으로 일간지 1면에 기사가 났던 〈봄의 제전〉과 〈헬리콥터〉. 특히 〈헬리콥터〉는 ‘누가 이 음악으로 춤 출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파격적인 무대였다. 헬리콥터 프로펠러의 요란한 굉음 속에서 연주된 슈톡하우젠의 현악 사중주를 들으며, 가장 최첨단의 기술과 가장 동물적인 인간의 몸의 조우를 떠올렸다는 프렐조카주와의 공연후 대화가 떠오른다. 현대무용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토월극장 3회 매진 기록을 세운 공연이다.
프렐조카주 발레단은 작년에 다시 시댄스를 찾았다. 프로그램 〈갈라〉에서 선보인 9편의 작품(〈베라탐으로의 귀환〉, 〈전투가 지나간 풍경〉 군무, 〈스펙트럴 에비던스〉, 〈라 스트라바간자〉, 〈로미오와 줄리엣〉, 〈정원〉, 〈백설공주〉 이인무, 〈밤〉 독무, 그리고 〈수태고지〉(전편)를 본 관객은 다시 한 번 그의 안무와 연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9편의 개별 작품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긴 작품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은 90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신작 초연과 동시다발적 해외 순회공연으로 정신없이 바쁘던 그가 한국행을 불과 며칠을 앞두고 프로그램을 늘리면서 전체를 연결하는 연출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아무나 대가가 되는 게 아님을 실감했다. 

 
 



6. 이탈리아 아떼르발레또 무용단 〈바흐예찬〉 〈로시니 카드〉 (2007)
               〈로미오와 줄리엣〉 (2009)

‘이탈리아의 포사이드’로 불리며 유럽 최고의 독창성을 과시한 마우로 비곤쩨띠. 그가 예술감독을 맡으며 난공불락의 오페라 전통에 밀려 영원한 2인자에 머물던 이탈리아 무용의 위상을 기적처럼 회생시킨 국립 아떼르발레또 무용단. 이들도 역시 시댄스를 두 차례 방문했다. 특히 2009년 시댄스의 폐막을 장식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 마디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몸, 프로코피예프의 절도 있는 선율, 그리고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비디오 아티스트인 파브리찌오 플레시가 맡은 무대 디자인과 의상은 관객을 압도했다. 특히 파브리찌오 플레시의 금속성 프로펠러 세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들의 작품은 클래식 발레와 현대무용 사이의 중간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창작발레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당시 국내 무용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7. 스페인 라 베로날 〈숏컷 – 세 도시 이야기〉 (2013)
          〈죽은 새들〉 (2017)

차세대 거장을 예감케 하는 마르코스 모라우. 그가 이끄는 라 베로날은 2013년 이후 4년 사이에 더 대단한 스타 안무가가 되어 올해 다시 시댄스를 찾았다. 그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위트 있고 감각적인 안무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국제무대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2013년 〈모스크바〉 〈레이캬빅〉 〈시에나〉 세 작품에서 발췌, 재구성한 〈숏컷 – 세 도시 이야기〉는 수학적이고 재치 있는 안무로 시선을 사로잡으며, 무용과 지형학 간의 유사점을 시사하는 라 베로날만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올해 시댄스 폐막을 장식하는 〈죽은 새들〉은 피카소를 시작점으로 하며, 안무ㆍ음악ㆍ무대 디자인ㆍ의상 등 모든 요소가 피카소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무대 위에서 완벽히 형상화한다.
정규 무용 과정을 거친 안무가가 아닌 마르코스 모라우는 그렇기에 오히려 본인이 가진 연극, 예술사, 사진 등 다방면의 지식이 움직임에 더해져 라 베로날만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늦깎이로 안무를 시작한 매튜 본이 떠오른다.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인 마르코스 모라우는 조만간 매튜 본을 능가하는 거장이 되어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마르코스 모라우는 현재 국내 한 무용단과의 협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스웨덴-독일, 브라질 예프타 반 딘테르 & 티아고 그라나투 〈디스 이즈 콘크리트〉 (2015)
  스웨덴-독일 예프타 반 딘테르 & 민나 티카이넨 & 다비트 키르스 〈그라인드〉 (2015)

쿨베리발레단 객원안무를 맡았던 예프타 반 딘테르는 위에 소개한 마르코스 모라우와 함께 현재 유럽의 대규모 극장 및 단체에서 러브콜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젊은 안무가이다. 베를린과 스톡홀름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엄격한 신체 움직임과 동작 자체에 대한 연출된 연구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조명, 소리, 인식과 감각의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이 상호작용하고, 무용수들이 다양한 환경에서 춤을 추며, 이 모든 과정이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면서 하나의 퍼포먼스를 완성한다.
2015년 시댄스에서 예프타 반 딘테르는 두 작품을 선보였다. 조명 디자이너 민나 티카이넨과 사운드 디자이너 다비트 키르스와 함께한 〈그라인드〉는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다. 고동치고 분절되며 깜빡이는 조명과 어둡고 반복적인 테크노 비트와 함께 완성된 안무는 이 작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한 감각을 만들었다. 어지러운 비트와 회전조명 아래 두 남성 무용수가 쉴새 없이 서로 몸을 부대끼는 〈디스 이즈 콘크리트〉는 몸과 관계에 대한 섹시하고 명확한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9. 레바논 기 나데르 〈모든 것들이 숨는 곳〉 (2011)
  레바논/스페인 기 나데르 | 마리아 캄포스 〈시간이 걸리는 시간〉 (2017)

2010년 마스단사 1등상을 수상한 솔로작으로 2011년 시댄스를 찾았던 기 나데르가 스페인 안무가 마리아 캄포스와 협업한 작품으로 올해 시댄스를 재방문한다. 전 유럽에서 엄청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시간이 걸리는 시간〉은 진자운동을 모티브로 운동과 영속(永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기 나데르의 정교한 안무는 그 정교함에만 머물지 않는 정신세계의 깊이가 느껴진다. 데뷔 이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범작을 보여준 적이 없는 무서운 저력의 소유자인 그는 머지않아 거장으로 불릴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객원안무자로 초청받아 맹렬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10. 한국 전무후무(全舞珝舞) (2005)
  이매방 승무 / 강선영 태평무 / 김덕명 양산학춤 / 장금도 민살풀이춤
  김수악 교방굿거리춤 / 문장원 입춤

권번생활을 했었다는 이유로 평생을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장금도 선생을 이 무대 위에 모셔 가족들과 평생 기다린 화해를 이루게 해드렸다. 이 공연을 함께 준비했던 기획자 진옥섭이 장금도 선생이 가족들과 함께 떠난 호텔 방에 홀로 남아 선생이 지나온 춤인생을 추억하며 홀로 소주를 마시던 장면,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 부부를 이 소중한 무대에 모셨던 기억이 난다. 〈노름마치〉를 낸 이후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지금은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빠진 진옥섭은 한동안 시댄스 전통춤 무대의 기획 파트너였다. 그날도 무대 한켠에 서서 해설을 맡은 그는 예의 걸진 입심으로 대통령 일행을 폭소와 박장대소의 연속으로 몰아넣었다. 

 


2017. 10.
사진제공_국제무용협회(CID-UNESCO)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