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로나 길찾기: 99 아트 컴퍼니 장혜림
카메라로 담아낸 시선이 흥미로워요
  • 일    시
    2020년 11월 18일 오후 2시
  • 장    소
    매더커피갤러리(서울 서초동)
김인아_〈춤웹진〉 기자



장혜림 ⓒ춤웹진




김인아: 〈춤웹진〉 기획 인터뷰 ‘코로나 길찾기’에서는 무용인을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올해 많은 공연이 취소 또는 연기됐는데, 장혜림 안무가는 어떠셨나요?
장혜림: 저도 마찬가지 같아요. 올해 초부터 공연이 계속 있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돼서 2월 마지막 주에 99 아트 컴퍼니 〈침묵〉을 예술의전당에서 올리기로 했는데, 코로나가 갑자기 심각해졌어요. 예술의전당에서는 못하게 막진 않지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했어요. 우리에게도 위기가 왔다는 걸 실감하면서 올해 첫 작업이었던 공연을 취소하게 됐죠. 코로나를 체감한 건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요. 올해 작업이 많이 있었지만 취소, 연기되거나 영상매체로 전환되는 것도 있어서 때마다 변화에 순응하면서 지냈습니다.

2월에 올리려 했던 첫 공연은 어떻게 됐나요?
내년도로 미뤘습니다. 올해 안에 공연하거나 다르게 변경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될 것 같단 생각에 안정적으로 내년으로 미뤘고 내년에 작업 준비를 할 거 같아요.

급작스레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우왕좌왕할 수도 있을 텐데요, 공연 취소에 대한 복잡한 심경도 그렇고 대관 비용이나 무용수의 연습 비용 등의 지불 문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겠습니다.
공연 취소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 제가 되니까 그게 어려웠어요. 이 공연을 왜 취소해야 하는지 코로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관객과의 약속인데 그것에 대한 결정을 하루 새에 하면서 정말 많은 질문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물론 재정적인 것도 문제가 있었지만 일단 우리가 밀어붙일 것인지 혹은 관객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해서 중단하는 게 맞는지 질문을 던졌을 때 ‘예술’이라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답을 찾으면서 이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으로 답이 내려졌어요. 취소를 결정하고 무용수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그다음의 문제들, 대관료에 대한 것들은 예술의전당에서 환불 조치를 받고 무용수들의 연습 페이는 이후에 코로나로 나온 사업이 있다면 충당할 수 있게끔 해야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해당 지원사업이 있어서 무용수들에게 소정의 연습 페이를 지불하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99 아트 컴퍼니 〈침묵〉 연습 장면 ⓒBaki




하루 새에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니, 신속한 대응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정하고 나서도 이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질문을 계속했어요. 그때 같은 예술의전당 안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인데도 불구하고 뮤지컬 공연은 진행됐거든요.
남편도 발레를 하기에 조언을 구했어요. 공연을​ 취소했지만, 이게 맞는지 의구심이 불현듯 들면서 한편으로 공연을 하는 것이 관객과 약속을 지키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남편이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공연을 진행하거나 혹은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취소하길 잘했다고 지지해주었고 저도 그 생각으로 굳혀졌죠. 관객들에게 일일이 환불 조치할 때에야 공연 취소를 실감했어요. 무용수들은 그동안 연습했던 것들에 대해 안타까움에 울기도 했는데 그때 저는 더 냉정해졌거든요. 이성적으로 되면서 눈물이 나지 않았었는데…. 관객 한분, 한분 티켓을 사고 보내주셨던 관심을 되돌려드릴 때 공연이 정말 취소됐고 이번에는 무대에서 만날 수 없다는 걸 느끼면서 현실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관객들을 위한 것이 무엇이고 예술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공연 취소를 결정한 후 9개월이 지났어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시죠?
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했을 거 같아요.

이후 중단되거나 취소됐던 여러 공연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서산에서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성공기원 개막작, 알티밋 무용단에서 안무자로 참가한 공연이 취소됐어요. 99 아트 컴퍼니에서 했던 〈심연〉을 남자 군무 버전으로 새롭게 작업을 하는 거였어요. 남자 댄서 7명과 같이 여름을 뜨겁게 보냈어요. 물론 코로나 때문에 열악한 환경이긴 했지만,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개인 시간을 쪼개서 열심히 했어요. 이제 정말 무대에 올라갈 수 있겠다고 했는데, 코로나가 갑자기 심해져서 8월 공연이 있기 3~4일 전에 취소됐어요. 제작팀에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거란 얘기를 듣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을 때, 8시 연습이었는데 낮에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 폐쇄된다는 연락을 받고 남자 댄서들의 눈물을 봤어요. 그 사이에 ‘부산국제무용제’는 영상으로 대체됐고 서울발레시어터에서 한 〈장미의 땅〉이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올라가는 거였는데 전날 취소되고 다시 미뤄졌다가 또 취소됐어요. 

 이런 상황을 많이 겪다 보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무용수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이 들더라고요. 알티밋 무용단 단원들을 저녁에 만나기로 한 날 제가 무용수들에게 하나씩 줄 장미꽃을 사 갔어요. 장미꽃이랑 샴페인, 케이크를 사서 박수를 치면서 연습실에 들어갔어요. 무용수들이 너무 침울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위기의 순간이긴 하지만 또다시 만날 거고 언젠간 공연이 올려질 수 있을 거란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해피하게 연습을 마무리 짓게 됐어요.
 여러 번의 취소와 이런 상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해 저의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때 고민하게 됐어요. 예술가들이 돈도 못 벌고 무대도 못 서고 하는 일들이 줄줄이 생기고 공연이 취소되는 너무 힘든 상황을 보면서 제 공연이 아니어도 안타까웠거든요. 얼마만큼 에너지를 쏟았을지 잘 알고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 무대와 현장이 좋아서 하는 건데,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안타까움을 여실히 느끼다 보니 그날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나의 태도를 바꿔보자, 그리고 이것이 무용수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너무 슬프고 우울한 게 아니라 이걸 발판으로 또 생각할 수 있고 긍정할 수 있게끔 내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99 아트 컴퍼니 〈심연〉 ⓒnick


99 아트 컴퍼니 〈심연〉 ⓒ옥상훈




많은 공연이 취소되고 다음을 기약하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앞을 내다보려는 마음가짐이 무용수들에게 잘 전달됐을 듯해요. 그럼에도 젊은 무용수들은 돈을 벌려는 일은 아니었지만 오를 무대가 없다보니 생계 문제에 있어 더 큰 타격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요, 그런 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인 거 같아요. 단체를 운영하고 무용수들에게 많은 돈을 월급으로 주진 못하지만, 매번 공연이 있을 때 공연 페이를 주고 그 돈으로 생활하잖아요. 알티밋 공연에서도 2달을 매일 같이 연습하고 나서 조금 받을 수 있는 페이도 내년으로 미뤄진 거고요. 저도 무용수들과 취소된 공연에 있어서 연습은 몇 달에 거쳐서 이뤄졌지만 페이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고민이 많이 됐거든요.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것이 크지 않더라고요. 지원금을 받아서 소정의 금액을 나눠 갖는 방식 이외에 재정적인 것에 대한 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갈 건지는 저에게 숙제인 거 같아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다보니 자연스레 다음해를 고민하게 됩니다. 일부 기획사나 축제 사무국에서는 갑자기 공연이 취소되거나 변경해야 할 때를 대비해 플랜B를 마련해놓는 상황이죠. 안무가들도 염두에 두고 있을 듯합니다. 내년 공연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올해 취소됐던 〈침묵〉을 내년에 어떻게 올려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공연/무대의 형태 예전과 같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첫 번째로 하고 있고, 내가 기대하는 만큼 많은 관객을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 〈침묵〉이 소규모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같이 하게 됩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어나고 공연장에 작품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지만 어쨌든 삶은 영위되고 있고 사람은 계속 누군가를 만나야 하잖아요. 최소한으로 만나서 공연을 보여줄 수 있는 게 플랜A인 거 같아요. 영상으로 대체하지 않고 실제로 공연을 올렸을 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식이죠. 두 번째는 영상에 대한 문제예요. 올해 영상작업을 많이 하면서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동안 영상 작업에 관한 관심은 있었지만 실천하진 못했어요. 현장이 좋고 직접 만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요. 영상으로 만나는 건 제 작업에서 추구하던 방식은 아니었는데 올해 영상 작업을 3개 이상 하면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영상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어요. 소규모 관객 대면공연과 영상 작업, 이 두 가지를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진행했던 영상 작업도 소개해주세요.
올해 궁중문화축전에서 기획한 공연이었는데 효명세자를 주제로 효명이란 인물을 예술가로서 바라보면서 창덕궁에서 이동형 공연으로 만드는 작업이었어요. 4월에 올라가는 거였는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6월로 연기됐다가 9월로 연기되고 결국엔 영상 작업으로 전환됐습니다. 작업 기획 자체가 전문 무용수와 시민 무용수 20~30명이 함께 만들어내는 거였는데, 완전히 불가능하게 된 거죠. 작년부터 작업 구상을 했고, 시민과 만나서 어떤 작업을 이루어갈지 어떤 커뮤니티댄스 형태를 구축해나갈 건지 디자인을 해놓은 상태였어요. 시민 무용수들을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작업이 전환됐어요. 효명의 영감을 무용수들의 몸으로 치환해서 한 장면씩 담아내는 거였는데 
궁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작업이라 여러 가지 변하는 상황들이 마치 코로나 상황처럼 힘들었지만 재밌게 작업했죠. 이틀 동안 영상 작업을 했고 편집과정을 줌(ZOOM)으로 거치면서 특이한 작업 시스템을 경험하게 됐어요. 올해 비도 많이 왔잖아요. 궁 투어를 하고 회의를 하려 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궁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반복됐죠. 예전 같았으면 다음에 만나자고 했을 텐데 줌 화상 회의로 진행했어요. 긍정적인 면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댄스 필름을 영상 감독님께서 의뢰하셔서 작업하게 됐어요. 올해 2월 즈음하는 거였어요. 영국에 계신 분이었는데 코로나로 한국에 올 수 없었다가 최근 9월에 오셔서 2주 격리 끝에, 우여곡절을 겪고 진행할 수 있었어요. 여러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하는 작품이어서 출품 이후로 릴리즈될 거 같아요.
 또 SPAF에서 완전히 공연이 영상으로 대체되면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영상 작업을 했어요. 영상의 결과물을 보면서 한편으로 좋았던 게 작품을 잘 남기고 싶은 욕구들이 예술가들한테 있잖아요. 항상 기록용으로 남기다가 영상 디렉터님과 이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세세하게 얘기 나누고, 카메라에 담기는 걸 경험했어요. 현장에서 보는 거와 다르게 섬세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런 작업들을 통해서 많이 배웠어요. 영상매체에 대해서도 그렇고 작품을 영상 매체로 옮길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SPAF의 이번 영상이 한국-러시아 상호교류 일환으로 러시아 오픈룩 페스티벌에 상영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어제 들었어요.






댄스필름 현장 ⓒ장혜림




영상 작업이 증가하면서 해외 프리젠터들이 전보다 쉽게 온라인으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유통의 측면에서 이점도 있다고 합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영상 작업을 잘해놓으면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요. SPAF 작업에 관한 얘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요.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SPAF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제(祭)Ⅱ〉입니다. 2019년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와 협업했던 작품인데 한국적인 정서를 더 집어넣고 작품 안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던 번제라는 것, 태워서 신에게 드리는 제사, 향기를 신에게 드리는 제사라는 의미를 조금 더 시각적으로 구현해낼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드로잉을 무대에서 구현했어요. 목탄이 실제로 무용수에게 발려지는 행위들이 있어요. 목탄은 나무를 태워서 만든 거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우리의 몸이 노동으로 인해 태워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노동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삶이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는데, 그걸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무대에서 번제라는 불꽃의 형상을 그림으로, 서로 협동해서 손을 부여잡고 그림을 반복하는 행위로 보여주자 해서 장면들을 만들었죠.
 이 작품은 작년 11월에 재안무했고, 올해 SPAF에 지원했죠. 관객과 만나는 것을 기대했다가 SPAF에서 일찍이 영상 작업으로 대체하는 걸 안내해주었어요. 관객과 못 만나서 아쉬움이 있지만 드로잉 자체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거든요. ‘정면에서, 약간의 위에서, 높은 곳에서 보면 어떨까? 이것이 신에게 드리는 제사의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시각적으로 아주 높은 곳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까?’란 질문이 제 안에 살짝 있었어요. 그걸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 영상이었죠. 카메라의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던 게 재밌었어요.
 영상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영상 감독님이 촬영 후 편집한 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셨더라고요. 영상을 보면서 초 시간별로 피드백을 적다 보니 100개가 넘을 정도로 길어졌어요. 사실 하나의 문제였고, 감독님과 저의 생각만 맞으면 감독님도 충분히 아실 수 있는 거였지만 디테일하게 초에 따라 설명하다 보니 가짓수로는 너무 많은 거예요. 과연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할까 했지만, 감독님이 통화로 제 의견을 들어주셨고 다음 날 수정본을 받아봤는데 완벽하게 수용해서 보내주신 거예요. 감독님과 제 생각이 맞으면서 영상이 제가 원하는 방향성을 갖게 됐어요. 모든 작업이 그렇듯 영상 매체도 결국 사람의 생각이 투영돼 나오는 것이란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죠. 이런 과정의 작업을 SPAF에서 경험하게 됐어요.






99 아트 컴퍼니 〈제(祭)Ⅱ〉 ⓒBaki




이번 SPAF에서 영상 작업을 긍정적으로 경험하셨군요.
네. 앞서 궁중문화축전에서 했던 영상 작업이 꽤 어려웠어요. 첫 영상 작업이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영상 감독님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미술하는 친구를 섭외에서 제가 생각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했고, 그걸 갖고 갔어요. 영상 감독님이 이렇게 하면 제 상상을 방해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셨지만 너무 하나하나 다 정해서 오면 현장에서 바뀔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유연하지 못할 수 있다고요. 현장에서 모니터링했는데 이 장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끊어야 할 거 같다고 했더니 편집하면 된다고 끊지 말라고 하셨고 저에겐 다 생소했어요. 영상은 편집이 가능한 예술인데 저는 늘 현장에서 틀렸으면 다시 가야 한다는 걸 갖고 있다 보니까 회로를 바꾸는 것이 어려웠죠. 창덕궁 인정전이란 넓은 공간에서 제가 계속 다시 하자고 하다 보니 낮부터 저녁까지 쭉 촬영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한 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또 생기는 거예요. 영상에서 미묘한 무용수의 실수들이 보이고, 영상 각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가고 싶다 하니까 무용수들도 왠지 그럴 것 같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작업하고 나서 저를 돌이켜봤을 때 내가 영상이란 매체의 편집 기술을 믿지 못하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니터 안에서 완벽한 것을 추구하려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다른 부분인 걸 배웠어요. 


앞선 경험을 자양분 삼아 이번 영상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祭)Ⅱ〉는 아무래도 탄탄하게 만든 작품이어서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좀 더 있기도 했고요. 영상 감독님과 커뮤니케이션을 미리 경험해서 전보다 능숙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요.






99 아트 컴퍼니 〈제(祭)Ⅱ〉 ⓒBaki




영상 작업에 대해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기다리겠다는 입장도 있고 흐름에 맞춰 앞으로 영상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어요. 장혜림 안무가는 영상 작업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저는 긍정적인 성격인 거 같아요. 제가 안 해 본 영역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에 영상을 해봤으니까 이런 식으로 해봐야지란 생각보단 제가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만약에 영상과 만나야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상황의 흐름이 달라질 때 수용하는 태도와 본질을 놓치지 않고 가야 한다는 가치관, 두 가지가 공존하는 거 같아요. 무대, 춤이라는 현장 예술에 대한 것, 라이브가 주는 것에 대한 것, 그래서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구하기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무용수들과 같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우리 선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은 받아들이면서 같이 걸어가 보자고 동의를 구하고 한 번 걸어가 보는 것.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무모하게 내가 할 수 없고 관심 없는 영역인데 시대가 변하니까 유행을 타듯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수용해서 가보는 태도예요.

공연이 중단되면서 뜻하지 않은 공백이 많은 해였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덧붙여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한국무용을 하면서 한국무용계 흐름에서 독립 예술가로 활동한다는 게 녹록치 않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했던 것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현대무용에서 독립 단체들이 활성화되어 있는 게 부러웠고 한국무용 안에서도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99 아트 컴퍼니란 단체를 만들었는데 이런 때에 저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이런 위기를 만났을 때 공연이 있든 없든 정기적으로 연습을 지속하고 있거든요. 적어도 일주일에 4번을 만나서 클래스를 해요. 만약 공연이 없으면 공유하고 싶었던 것을 워크숍으로 돌아가면서 하거나 몸을 트레이닝하는 클래스를 만들어서 진행하고, 외부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는 식으로 계속 무언가를 진행합니다. 올해 〈침묵〉 공연이 취소되고 공백이 있을 때 2~3개월 정도는 거기에 매진했어요. 우리가 문화예술을 하고 있지만, 예술사조를 전혀 모르고 있진 않나 생각에 책 한 권을 선택해서 읽고 만나서 얘기도 하고, 창작을 지향하다 보니 전통춤을 소홀히 했던 부분이 있어서 전통춤을 선택해서 연습해보기도 하고요. 돌아보고 다져가는 시간을 가졌던 거 같아요. 올 초에는 공유하고 다지는 시간에 충실했던 거 같고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얼마 전 저는 출산했기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땐 리허설하는 영상이나 사진을 같이 공유하고 서로 텍스트로 나누기도 했어요. 며칠 전에 어떤 음악가분을 초청해서 즉흥을 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아는 음악가냐 했더니 요즘은 SNS를 통해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평소에 좋아하는 뮤지션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흔쾌히 수락하셔서 3회째 같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혜림 ⓒ춤웹진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덧붙여주세요.
위기가 있을 때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더 활성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지당하는 것이 문화예술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 굴하지 않고 예술가들이 힘을 내고 현장 혹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잘 이겨낸다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문화예술계가 계속 침체여서 예술하는 사람이 사그라들까 걱정하게 돼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이들에게 미래가 없다면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을지, 아기를 낳다 보니 아이의 미래는 어떨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문화예술이 좀 더 꽃피울 수 있도록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같이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고, 그들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춤사랑과 열정으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내년에는 많은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코로나 위기에서도 쉼 없이 준비하는 99 아트 컴퍼니를 응원하며 다음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정리: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김인아

한국춤비평가협회가 발행하는 월간 〈춤웹진〉에서 무용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하여 무용인 인터뷰를 포함해 춤 현장을 취재한 글을 쓴다. 현재 한예종에서 무용이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 ​ ​ ​ ​ ​ ​ 

2020. 12.
*춤웹진